절대천왕 1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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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2화
152화
어느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순간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수, 순우무궁…….’
그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즉시 몸을 날렸다.
<켈! 어딜!>
동시에 기괴한 한마디 웃음과 함께 건너편 건물에서 흰 그림자가 솟구쳤다.
천해의 독혼관에서 나온 순우무궁, 바로 그였다.
혁련미려는 한 마리 송충이가 척추를 타고 맨살 위를 기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야. 듣기로는 어딘가에 격리되어 있다고 했는데…….’
순우무궁이 당장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수십 번에 걸친 예행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진즉 길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뒤돌아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앞만 본 채 움직였다.
‘돌아보면 안 돼!’
뒤를 돌아보면 길을 잃는다. 그것이 천선곡에 펼쳐진 진을 통과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
<킬킬킬, 어떤 놈이 가르쳐 준 거지? 제법인데?>
너울지며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혁련미려는 입술을 깨물었다. 짜릿한 통증과 함께 핏물이 배어 나오며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다행히 순우무궁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았다면 저렇게 여유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기 전에 진세를 빠져나가야 한다.
다른 무공은 몰라도 경공만큼은 자신이 있는 자신이 아닌가. 진세를 통과한 후 전력을 다해 달리면 제아무리 순우무궁이라 해도 자신을 잡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그것만이 유일하게 순우무궁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좌로 가다가 갑자기 우로 꺾어졌다.
다섯 걸음을 더 걷고 일 장 직경으로 빙 돌았다. 눈앞에 희미하게 기둥 같은 것이 보였다.
‘기둥을 향해 열두 걸음을 걸으면 문이 보인다 했지?’
그때 뒤에서 살소가 흘러나왔다.
<흐흐흐, 이제 보니 계집이었구나. 계집이라……. 킬킬킬.>
바로 뒤다. 멀어봐야 이삼 장의 거리.
벌벌 떠는 쥐를 모는 고양이처럼 즐기는 말투다.
혁련미려는 떨리는 다리에 혼신의 내력을 집어넣고는, 달리듯 걸음을 옮겼다.
바로 뒤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바로 뒤에 흰 그림자가 따라붙고 있었다.
<우흐흐, 냄새가 기가 막히구나. 천해의 계집들은 절대 이런 냄새가 없지. 빌어먹을 계집들. 가슴 좀 도려냈다고 나를 박대하다니.>
혁련미려의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몸이 떨려 걸음이 늦추어졌다.
여자의 가슴을 도려냈다고? 악마 같은 놈!
웃으며 함께 거닐고, 마주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던 세월이 이 년이나 된다. 지금은 그 세월이 악몽처럼 그녀의 뇌리를 휘저었다.
후읍, 후읍.
바로 뒤에서 들리는 냄새를 음미하는 콧소리.
그녀는 더 참지 못하고 악을 쓰듯 외쳤다.
“무궁! 제발 따라오지 마!”
안개가 출렁였다.
뒷목을 움켜잡으려던 손길이 멎었다.
그사이 악을 쓰며 한 소리 외친 혁련미려는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무, 무궁? 너… 너였나, 혁련미려?”
손을 반쯤 내민 순우무궁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돌았다.
“형이 계집 하나를 데려왔다더니, 그 계집이 바로 너였어? 천해로 찾아온 형의 눈빛이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했는데……. 그래서였나?”
어느 순간, 그의 눈에서 돌던 붉은 기운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랬단 말이지? 형이 저 계집을 차지했단 말이지? 크크크크, 킬킬킬! 찢어 죽일 것들이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순우무궁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괴이하게도 조금 전과 달리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쭉 찢어진 눈 속의 붉은 눈동자, 곤두선 머리카락, 일그러진 얼굴.
수라귀!
전설에서나 나옴직한 수라귀의 얼굴이었다.
“둘 다 갈기갈기 찢어서 생으로 씹어 먹고 말겠다! 크카카카카!”
일순간, 괴소를 터뜨린 순우무궁이 기둥 밖으로 벗어나고 있는 혁련미려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천선곡 안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누가 허락없이 곡을 빠져나갔다! 잡아라!”
문처럼 보이는 돌기둥 사이를 빠져나간 순간 종소리가 울렸다.
혁련미려는 종소리를 뒤로 한 채 정신없이 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천선곡의 진세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진세를 벗어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진세보다 더 지독한 방해물에서 벗어나야 했다.
순우무궁, 그가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혁련미려, 네년은 절대 내 손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몇 번씩 방향을 바꿨다.
길이 나오면 피해가고, 탁 트인 곳이 나오면 몸을 숙인 채 기다시피 통과했다.
행여나 부러진 나뭇가지가 자신의 행로를 알릴까 봐 작은 나뭇가지도 함부로 꺾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어릴 때부터 들었던 추적에 대한 기본을 지키려 최대한 애를 썼다.
문제는, 그녀가 태백산의 지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과 날이 밝아오려면 반 시진 정도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정신없이 달리던 그녀는 십 리도 가지 못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허탈한 탄성이 그녀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오! 맙소사!”
까마득한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은 제아무리 경공이 뛰어난 혁련미려라 해도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그녀는 황급히 좌우를 둘러보고는, 나무가 유난히 우거진 숲을 향해 뛰어들었다.
“킬킬킬. 혁련미려, 네년이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가는구나.”
이십여 장 뒤에서 들리는 순우무궁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공력을 끌어올려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순우무궁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나을 터. 그녀는 최대한 조심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간 지 얼마, 혁련미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양편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앞에 있었다. 빙판처럼 반질거리는 암벽은 물기마저 있어서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앞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힌 거와 다름없었다.
협곡의 절벽 사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깔의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곳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독기……?’
그랬다. 어스름 속에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그것은 독기였다.
머리가 띵해진 혁련미려는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켈켈켈. 미려, 왜 더 가지 않는 거지?”
그때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곧 숲을 헤치고 순우무궁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무… 궁…….”
“크크크, 내 형의 여자가 되려고 왔나? 아주 재미있군, 아주 재밌어.”
“그게 아니라…….”
“아니라고? 그럼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가? 정말 그런 거야, 미려?”
붉게 보이는 눈동자가 일렁인다.
혁련미려는 소름이 끼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무궁, 제발… 나를… 보내줘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원을 해보았다.
그러나 순우무궁의 붉은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혁련미려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유난히 붉어진 입술을 벌렸다.
“좀 더 일찍 잡을 수도 있었지. 그런데도 여기까지 그냥 따라오기만 했어. 왜 그런지 알아?”
어느덧 이 장의 거리.
혁련미려는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정말 몰라요. 제발… 보내줘요.”
순우무궁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랜만에 여자의 살맛을 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지.”
혁련미려는 그 말을, 자신을 겁탈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하기에 고개를 저으며 한가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 형의 아내가 될 여자예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럼 안 돼요.”
그러나 순우무궁의 말뜻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뭘 잘못 알았군. 나는 너와 그 짓거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야. 그저 부드러운 네 살을 먹고 싶은 것뿐이지. 킬킬킬…….”
그제야 순우무궁의 말뜻을 정확히 알아들은 혁련미려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서, 설마……?”
그녀가 비틀거리며 물러설 때다. 스윽, 코앞까지 다가온 순우무궁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쫙 펼친 다섯 손가락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미처 물러날 틈도, 대항할 새도 없이 순우무궁의 지력이 혁련미려의 전신대혈을 두들겼다.
동시에 순우무궁이 우수를 뻗고, 강력한 흡력이 혁련미려의 몸을 당겼다.
“헉! 아, 안 돼!”
혁련미려는 딸려가는 몸을 억지로 비틀며 대항했다.
하지만 마혈이 찍힌 그녀가 대항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우무궁은 바로 앞까지 딸려온 혁련미려를 바라보며 음소를 흘렸다.
본래 겁탈할 생각은 없었다. 천외천가의 추적대가 오기 전에 죽여서 자신의 식욕을 채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사슴처럼 공포에 질린 혁련미려를 보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이다.
“우흐흐흐. 물론 먹기 전에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는 손을 뻗은 채, 몸에 달라붙은 경장으로 인해서 굴곡이 완연한 혁련미려의 몸을 쓸어보았다.
“제, 제… 발…….”
혁련미려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사향내와 함께 섞여 나올 때마다, 순우무궁은 벼락이 뇌리에 꽂힌 듯한 쾌락에 몸을 떨었다.
바로 그때, 벼락이 떨어졌다.
쉬이이익!
막 혁련미려의 멱살을 움켜쥐려던 순우무궁의 고개가 하늘로 쳐들렸다.
하늘이 길게 베어지며 한 자루 검이 떨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두 쪽 날 것 같은 검세!
이전에 비해 월등히 강해진 자신으로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웬 놈이 감히!”
분노가 치민 순우무궁은 혁련미려를 움켜쥐려던 손을 거두고 검세에 대항해 두 손을 휘둘렀다.
콰과광!
협곡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순우무궁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아악!”
그 여파에 혁련미려의 몸도 뒤로 튕겨졌다.
곧이어 두 번째 공격이 다시 떨어져 내렸다.
쒜에에엑!
상대의 무기는 기다란 연검이었다.
하지만 연검에서 펼쳐진 것이라 믿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순우무궁은 조금도 방심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 공격을 막았다.
떠엉!
절벽을 거대한 망치로 두드린 듯 천공을 울리는 북소리가 났다.
동시에 선우무궁의 몸이 뒤로 퉁겨지고, 허공에서 두 번째 공격을 펼친 자도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크읍! 이런 개 같은……!”
순우무궁은 중심을 잡자마자 앞을 노려보았다.
천해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힘을 키웠다.
독물에 물리고, 배가 고프면 자신을 물어댄 독물을 잡아먹고, 온몸을 갉아대는 독기를 이기기 위해 혼신을 다해 운기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천해에서 배려해 준 무공을 익혔다.
그러한 세월이 수년. 와중에 몸속에 잠자고 있던 잠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기에 이제 자신이 있었다.
형이라 해도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처음 나와 부딪친 자를 이기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어! 저딴 놈 하나 이기지 못하다니!’
분노가 이성을 가리고,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마기가 스멀거리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찢어서 개밥으로 만들어주마!”
얼굴이 일그러진 순우무궁의 두 눈이 다시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과 두 눈뿐이 아니었다. 가슴으로 들어 올리는 두 손도 피에 담군 듯 시뻘겋게 변해갔다.
그사이 넘어져 있던 혁련미려가 안간힘을 다해 소리쳤다.
“제 혈도 좀…….”
혁련미려의 공포에 찬 목소리를 즐기려 했는지, 순우무궁이 마혈을 심하게 제압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내려선 중년인에게 재빨리 자신이 찍힌 혈도를 불러주었다.
“거골, 곡지, 비유를 먼저…….”
그가 적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적은 아니었던지 눈앞에 서 있던 자가 번개처럼 손을 놀려서 자신의 혈도를 풀어준다.
혁련미려는 팔과 어깨의 마혈이 풀리자, 몸을 부르르 떨고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절벽 쪽으로 몸을 피했다.
독기로 인해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당장은 두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그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