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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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48화
148화
순간 사도철군이 털썩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금방이라도 눈알을 터뜨릴 것 같던 안광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킁. 그놈의 고집은…….”
백리도운은 내심 안도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모험이라면 모험이었다. 사도철군의 성격을 몰랐다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모험.
백리도운은 자신의 모험이 성공하자 다음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주군께서는 이차 출정에 나서십시오.”
“이차 출정을?”
사도철군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백리도운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천하의 형세를 좌우하는 일에 주군께서 빠지면 안 될 말이지요. 일차 출정에 좌 궁주가 수장으로 나갔으니, 이차 출정에선 주군의 앞을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군께선 이차 출정의 수장이 되어서 천하에 주군의 위엄을 알리십시오.”
“흠, 그 생각은 좀 괜찮군.”
사도철군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졌다.
마치 자신이 천하의 주인이라도 된 듯한 표정.
백리도운은 웃음을 참고 한번 더 사도철군의 마음을 허공으로 띄워주었다.
“사실 좌 궁주 같은 괴물만 아니라면 누가 감히 주군 앞을 막겠습니까?”
“험, 뭐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 본 성의 위엄을 알리려면 한가락 하는 놈들을 보내야 할 텐데, 일차 출정에는 어떤 놈들을 딸려 보낼 생각인가?”
8장 절대(絶代)의 하늘[天]
1
제천신궁의 주인이 바뀐 것쯤은 신경 쓸 것도 없다는 듯 황강산에서 부는 바람은 변함이 없었다.
둥! 둥! 둥!
바람을 타고 북소리가 울린 것은, 혁력무천이 궁주 위에서 물러난 지 칠 일째 되던 날이었다.
정오의 북소리가 울린 지 반 시진 후.
좌소천은 공손양을 대동한 채 제령전에 들어섰다.
제령전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섰다.
사단과 내오당, 외오당의 주인들은 물론이고, 신검장과 광한방을 비롯해 외부 세력의 수장들 일곱. 그리고 십구지부(十九支部)의 지부장들 중 열다섯 명이 모인 상황이었다.
연락을 받고도 불참한 자들은 남양과 당하, 각산, 등주 등, 신양 북쪽의 지부장들뿐이었다. 그들은 혁련무천의 심복으로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좌소천은 공손양과 함께 맨 앞의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좌소천의 입이 열렸다.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군요.”
격전 와중에 중상을 입거나, 죽어 공석이 된 자리에 새로운 책임자들이 임명되었다.
제천단은 황창안, 패천단은 악청백, 호성당은 조철신, 명혼당은 단사용. 그리고 밀천단은 새로운 군사인 공손양을 주인으로 맞이했다.
비록 반강제이긴 했지만, 혁련무천이 순순히 궁주의 위를 내놓고 물러났기에 별다른 마찰은 생기지 않았다.
“이제 앞날을 위해 머리를 맞대봅시다.”
좌소천의 말이 떨어진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광이 물었다.
“궁주, 북쪽 지부에 대해선 어찌 처리할 생각이신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혁련 궁주가 물러난 이상 그들은 기댈 언덕이 필요할 겁니다. 놔두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전 궁주나 대공자가 그들을 부추기면 반기를 들지도 모르오, 궁주.”
“아마 그럴 여유가 없을 겁니다.”
좌소천의 확신에 찬 대답에 사람들이 일제히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공손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림맹이 남양과 등주, 방성을 압박하게 될 겁니다. 이미 주군과 사전에 협의가 된 만큼 지금쯤은 그 일이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설마 그 세 곳을 무림맹에 넘겨주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좌소천이 직접 말했다.
“넘겨줄 생각입니다.”
그 말에 웅성거림이 멎었다.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본 궁의 북서 경계는 앞으로 당하와 심양이 될 것입니다.”
“궁주, 그것은……?”
“애써 얻은 곳을 그냥 넘겨주다니요? 재고해 주시지요, 궁주!”
웅성웅성…….
간부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좌소천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신 북동부의 경계를 회양과 박주까지 늘릴 작정입니다.”
웅성거림이 갑자기 뚝 멈췄다.
“회, 회양과 박주라 하셨습니까?”
이광이 호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회양과 박주를 얻을 수 있다면 남양이나 방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北)으로는 하남 중부까지 치고 올라가고, 동(東)으로는 그동안 손을 대지 못했던 안휘로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물론 뜻이 있다고 해서 덥석 집어먹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곳과 마찰을 빚어야만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무림맹의 간섭이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단목연호가 물었다.
“무림맹이 그냥 놔두겠소이까?”
“그래서 남양과 방성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혁련 궁주는 협상을 맺은 천외천가가 섬서를 치는 사이 평정산과 노산까지 치고 올라가 무림맹 코밑까지 얻을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천외천가가 동료이고 무림맹이 적이었을 때 이야깁니다.”
좌소천의 목소리가 조용히 장내에 울려 퍼졌다.
“우리가 남양과 방성을 포기하면, 무림맹은 우리 쪽을 신경 쓰지 않고 무사들을 천외천가를 상대하는데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가로 회양과 박주를 얻는 것이지요. 남양과 방성을 내어준 이상 무림맹도 심하게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을 내어주고, 적어도 다섯은 얻는 격이었다.
더구나 북동부가 북서부에 비해 훨씬 발전 가능성이 많았다. 다섯이 아니라 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무림맹이 눈감아주는 것은, 그곳이 무림맹의 주력을 이루는 구파오가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내의 간부들은 좌소천의 계략에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친구와 적이라는 관계를 바꾸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함으로써 얻고 잃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절대의 패주!
그러한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심장이 벌떡거리며 뛰었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에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남의 귀에 들릴까 봐 숨을 들이쉬어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참만에야 숨을 고른 단목연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한데, 천화원에 대해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말로는 천화원에 대해 묻지만, 실상은 혁련무천과 혁련호정을 그대로 놔둘 것이냐 하는 물음이다.
혼자의 생각이 아닌 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볼 것을 강요한 듯했다.
천화원에 있는 혁련가의 인원은 모두 오십여 명. 여자가 삼십여 명이고, 남자는 이십여 명이었다.
그중 일류 이상의 고수로 분류되는 자는 모두 아홉 명.
좌소천은 조철신을 호성당의 신임 당주로 임명하고, 일백의 무사를 파견해서 그들을 감시토록 했다.
그럼에도 단목연호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좌소천은 한마디로 잘라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천화원은 제천신궁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앞으로는 그들 역시 제천신궁의 일원으로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은 혁련무천과 혁련호정의 꿍꿍이를 염려하고 있는데, 좌소천은 그들을 단순히 제천신궁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혁련호정을 북벌의 수장 중 한 사람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연속되는 충격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궁주,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그를 전면에 내세우다니요!”
이광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단목연호는 물론이고, 호연금 등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만큼은 심사숙고해 주시오, 궁주!”
“말도 안 됩니다! 그는 너무 위험한 자이옵니다!”
좌소천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낭랑히 말했다.
“여러분의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좌소천의 맑고 힘있는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사이로 좌소천의 목소리가 흘렀다.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수하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다음 대 궁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혁련호정은 죄인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을 저지르고 물러난 전대 궁주의 아들일 뿐이지요. 하니 혁련호정도 자격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하기에 그에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지요.”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설마 좌소천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하긴 천하의 어떤 패주가 누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자식들, 가족들, 하다못해 제자가 대를 잇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온 강호가 아니던가!
“구, 궁주…….”
이광이 말을 더듬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였지만, 누구도 말을 더듬는 그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좌소천은 입만 벙긋거리는 이광을 바라보았다.
“정 그가 걱정이 되신다면, 이 단주께서 북벌의 총 수장이 되어 이끌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순간 이광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떠졌다.
그의 나이 육십셋. 만월평의 혈전 이후 전각에 틀어박힌 지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죽기 전에 한 번쯤 강호에 나가 칼바람 속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남들이 주책 떤다고 할까 봐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북벌의 수장을 맡으라며 멍석을 깔아주질 않는가.
이광은 벌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단목연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험, 궁주. 그 일을 내가 하면 어떻겠소?”
이광이 버럭 소리 질렀다.
“어허! 단목 전주! 궁주께서 나에게 물었지 않소!”
“그야 이 단주가 싫어하는 것 같아서 말한 것이 아니외까?”
“내가 언제 싫다고 했소!”
갑자기 조용하던 장내에 불꽃이 튀었다.
어이없는 이유로 두 노익장이 눈싸움을 하자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좌소천은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북벌에 앞서 천외천가를 먼저 제거할 것입니다. 악의 씨앗인 천해 역시.”
눈싸움을 하던 이광과 단목연호가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좌소천이 마지막 충격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고 돌아오는 날, 나는 우리가 이룬 하늘의 이름을 바꿀 겁니다.”
자리에 앉은 이광과 단목연호가 동시에 홱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도 잔뜩 긴장한 채 좌소천을 주시했다.
좌소천은 무겁고도 힘있는 목소리로 새로운 하늘의 탄생을 알렸다.
“새로운 하늘의 이름은, 절대의 하늘! 절대천성(絶對天城)이 될 것입니다!”
쿠구궁!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에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홉떴다.
절대천성!
전설이 될 그 이름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2
산허리에 감긴 안개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미시 무렵.
태백산 천선곡 천궁전에 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긴급으로 전해진 한 가지 소식에 침 삼키는 것조차 참고 상석을 바라보았다.
순우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왼손에 턱을 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순우연이 이마를 꿈틀거리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그놈이 제천신궁을 집어삼킬 힘을 키울 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야.”
“솔직히 보고를 받고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가주.”
“하긴 혁련무천조차 눈뜨고 당했거늘…….”
순우연은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는 순우기정을 바라보았다.
“조금 급하게 되었군.”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기회라…….”
“내부를 정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전에 두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겼으면 합니다.”
“흠…….”
콧소리를 내며 반쯤 감은 순우연의 눈빛이 깊어졌다.
순우기정이 빠르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천해가 함께 움직인다면, 굳이 혁련무천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합니다, 가주.”
“천해가 나오려면 아직 보름 정도 남았지 않은가?”
“상황이 급해졌으니 시기를 앞당겨야지요.”
“시기를 앞당긴다?”
순우연은 팔걸이를 톡톡 치고는, 어느 순간 조용히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좋아, 내가 그들을 끌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