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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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46화
146화
그 후로도 공손양은 좌소천과 한 시진가량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구포봉과 장하경이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숙부님.”
구포봉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의 궁주에게 숙부라는 말을 들으니 하늘 끝까지 오른 기분이었다.
좌소천도 미소를 지으며 장하경에게 눈을 돌렸다.
“장 형, 몸은 괜찮소?”
장하경이 목이 꺾어져라 숙이며 대답했다.
“끄떡없습니다, 주군! 이쯤이야 상처도 아닙니다.”
내궁에 진입하며 몇 군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워낙 상처가 많은 몸이기에 그 정도는 표도 나지 않았다.
좌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구포봉에게 물었다.
“악양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돌아가야지, 내 터전이 그곳인데.”
“육대주나 다른 분들은 바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음하하하. 명색이 그래도 호남제일 구포방이네. 걱정 말게!”
구포봉이 호기롭게 웃으며 큰소리쳣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천신궁이 뒤에 있거늘, 누가 감히 구포방을 건드릴 것인가?
좌소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하경을 바라보았다.
“장 형은……?”
장하경이 대답할 새도 없이 구포봉이 눈을 흘기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갈 거네.”
막 입을 열려던 장하경이 눈을 부릅떴다.
“누구 맘대로요?”
구포봉이 머리를 쑥 내밀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 구포방에 충성 맹세했잖아. 한 입으로 두말할 건가?”
“그, 그거야…….”
“그리고 생각해 보게. 이곳에 있어봐야 자네 실력으로는 용꼬리도 되기 힘들어. 그러니 차라리 닭대가리도 되란 말이야.”
“닭대가리는 무슨…….”
“감찰총령주 자리를 주지.”
“감찰… 총령주요?”
장하경이 솔깃한 표정으로 구포봉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간 좌소천이 준 무공을 죽어라 수련한 덕에 절정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구포봉의 말대로, 그 정도 무공으로는 제천신궁에서 목에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정말… 입니까?”
“호남제일 구포방의 감찰총령주면 출세한 거지. 아마 여자들도 줄을 설걸?”
그리고 복수할 길도 열릴 것이다.
제갈세가도 구포방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 실력을 더 쌓은 다음에 제갈승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청하면 되지 않겠는가.
“뭐 좋습니다. 정 원하신다면 그럼 그렇게 하죠.”
“어쭈? 내가 뭐 아쉬워서 그러는 줄 알아? 구포방에도 사람 많아. 자네만 한 얼굴이 없을 뿐이지.”
“그러니까, 결국 제 얼굴 때문에 총령주 자리를 준다고 하신 겁니까?”
“왜 싫어? 솔직히 자네 얼굴, 정말 멋진 얼굴이야. 쫄따구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얼굴이지. 아마 얼굴만 내밀어도 일이 대부분 해결 될 걸?”
“칭찬입니까, 놀리는 겁니까?”
“그야 칭찬이지. 정 싫다면 나도 다시 생각해 보겠네.”
“뭐 싫은 건 아닌데…….”
옥신각신하는 구포봉과 장하경의 얼굴이 여느 때보다 밝다.
좌소천은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때 도유관이 굳은 표정으로 좌소천의 방에 들어왔다.
“주군, 누가 이걸 보이면서 주군을 만나 뵙자고 합니다.”
도유관이 내민 것은 두 번 접힌 제법 두꺼운 천이었는데, 천에는 황금빛 용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걸 본 좌소천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음? 이건……?’
눈치 빠른 구포봉이 좌소천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험, 우리는 이만 가보겠네. 쉬시게나.”
장하경도 어정쩡한 자세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나간 후에야 좌소천이 도유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 하시오.”
도유관이 눈을 반짝였다.
“상당한 고수로 보입니다만, 누군지 아십니까?”
투기가 이는 눈빛. 그에게서 호승심을 느낀 듯했다.
좌소천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긴 아는데, 정확히는 모르오.”
“예?”
“나중에 알려주겠소. 일단 그를 먼저 들어오라고 하시오.”
어정쩡한 대답.
도유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한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은 사십대 중반의 중년인이었다.
그는 방에 들어와 좌소천과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서더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직시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중년인은 담담한 좌소천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금룡이라 하오.”
“혁련 전 궁주가 보냈소?”
“아니오.”
“하면 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임무 때문이오.”
“임무?”
“본래 우리의 임무는 궁주를 보호하는 일이오.”
좌소천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금룡을 올려다보았다.
그걸 누가 모르나? 궁주의 호법이 당연히 궁주를 보호해야지, 그럼 누굴 보호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
“쉽게 말해서, 우린 누가 되었든 무조건 현재의 궁주를 보호해야 하오.”
“전 궁주가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이오?”
“오래 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임무여서, 전 궁주는 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좌소천은 비천사룡의 존재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비천사룡은 제천신궁의 초기부터 오직 궁주로 임명된 사람의 목숨만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궁주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만히 앉아서 초절정 고수 네 사람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
아마 구포봉이 알았다면, 용 네 마리가 알아서 호주머니에 들어왔다며 희희낙락 했을 일이다.
하지만 말투와 표정을 봐선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제야 금룡이 곤혹한 표정으로 사정을 말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소. 형제들끼리 이야기를 해봐도 확실한 답이 안 나와서 이틀이 지난 오늘에야 오게 된 것이오.”
비천사룡의 임무만 생각한다면 그들이 보호해야 할 사람은 이제부터 좌소천이 되어야 한다. 현 궁주는 좌소천이니까.
문제는 좌소천이 전 궁주를 무력으로 누르고 궁주가 되었다는 점이다.
“궁주 자리가 정상적으로 물려진 것이라면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는데…….”
그에 대해서 사룡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힘으로 빼앗았으니 인정할 수 없다.
-아니다, 궁주의 입으로 물려준다 말했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결국 갑론을박 끝에 금룡이 좌소천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좌소천 앞에 서있는 것이다.
좌소천은 그제야 금룡의 말뜻을 대충이나마 이해하고 냉랭히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나의 호법이 되지 않아도 되오. 나 역시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목숨을 맡기고 싶지 않으니까.”
그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금룡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게…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한 터라…….”
그 모습을 본 좌소천의 눈빛이 깊은 곳에서 반짝였다.
금룡의 성격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나머지 삼룡의 성격도 큰 차이는 없을 듯했다.
비천사룡은 궁주의 호법으로 키워진 사람들. 아마 이들은 어릴 때부터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 살아왔을 것이다. 온갖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험한 강호와는 동떨어진 삶을.
‘그래, 어찌 보면 닳고 닳은 강호인보다 순수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이 든 좌소천은 차가운 표정을 풀고,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금룡의 눈을 직시했다.
“그대의 말은 잘 알겠소. 가서 동료들에게 말하시오. 깊게 생각할 것 없이 한 가지만 생각하라고. 현재 제천신궁의 주인이 누군지. 그래도 싫다고 하면, 내일 동트기 전 백수정 앞으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시오. 때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칼로 이해하는 것이 빠를 때도 있는 법이니까.”
움찔한 금룡의 눈이 좌소천의 마지막 말에 반짝였다.
백수정이라면 내궁 후원의 한적한 정원에 있는 정자다. 그곳으로 나오라는 말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게다가 머리보다 칼로 이해하라고 했다.
칼로써 결정내자는 말. 강자의 결정에 따르자는 뜻.
그러잖아도 제천전 안에서의 싸움에 은근히 불만을 가지고 있던 비천사룡이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 때문에 옥신각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알겠소이다. 그리 전하지요.”
만족한 듯 금룡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방을 나갔다.
좌소천은 방문이 닫히자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주, 단단히 눌러놔야겠어.’
2
다음날 새벽, 후원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우르르릉! 콰과광!
콰르르릉!
사람들은 후원 쪽에서 나는 소리에 황급히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하지만 후원으로 접근하기도 전에 좌소천의 직속무사들과 능야산의 형제들에게 가로막혔다.
“주군께서 신입 호위들을 교육 중이십니다.”
공손양이 왠지 모르게 아까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막았다.
공손양뿐이 아니었다. 능야산과 도유관을 비롯해, 헌원신우와 능야산의 형제들 몇몇 역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이 근질거려서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교육을 어떻게 시키기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난단 말인가?
모두가 궁금한 눈으로 후원을 바라보았다.
입이 바짝 타고 가슴이 울렁거린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저만치 후원 담장과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고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모두 열 명 정도로 보이는 노인들.
그중에 동천옹과 무영자, 등소패, 위지승정이 보였다. 나머지도 원로원의 노인들인 듯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웅성거리던 그 시각.
좌소천은 비천사룡을 상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마음껏 펼쳐 냈다.
비천사룡의 협공은 오제조차 홀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혁련무천과 혁련호정의 협공을 상대해 본 좌소천이기에 비천사룡의 강함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좌소천은 좌수로 건곤신권과 금라천수를, 우수로는 무연만상과 무진칠도를 펼쳤다.
상대는 죽여야 하는 자들이 아닌 거둘 자들. 하기에 좌소천은 격전 와중에도 무진칠도 중 마지막 멸천이식만큼은 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비천사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좌소천을 상대해야만 했다.
비천사룡은 대를 이어 전해진 제룡사천무(帝龍四天武)를 펼치고도 좌소천에게 밀리자, 악에 바친 듯 공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백수정의 정자 앞의 공터는 직경 이십 장 정도.
다섯 사람이 격전을 벌이기 전만 해도, 그곳에는 사람 키만 한 멋진 정원석이 몇 개 서 있었다. 말끔하게 다듬어 놓은 정원수도 이십여 그루가 있었고.
그런데 십여 초가 지날 무렵에는 자갈과 앙상한 몸통만 남은 나무 등걸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십여 초가 지날 즈음.
좌소천은 비천사룡이 하나의 진세에 의존한 채 협공을 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진세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면 몰라도 진세를 파악한 이상 더는 비천사룡의 협공이 좌소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초가 더 흐를 때였다.
구성의 공력이 실린 천공멸혼이 청룡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연한 청룡이 검을 들어 무진도의 도세에 정면으로 맞섰다.
쾅!
“크읍!”
무진도의 도세를 이기지 못한 청룡이 먼저 비칠거리며 검을 늘어뜨렸다.
동시에 기회라 생각한 듯 석 자 길이의 검강을 앞세운 백룡의 검이 좌소천의 배후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순간, 좌소천의 신형이 셋 넷으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십여 개의 권영이 백룡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극성으로 금환비영을 펼친 좌소천이 건곤신권의 삼초식을 찰나간에 펼친 것이다.
삼초연환권은 건곤합일에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더구나 수십 초의 대결 중에 비천사룡이 펼치는 진세의 약점을 파악한 터.
십여 개의 권영이 회오리치며 백룡의 검세를 휘감았다.
석 자 앞까지 다가온 검강이 옆으로 미끄러진 순간,
퍼버벅!
백룡이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튕겨졌다.
둘이 무너지자 금룡과 적룡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채 오 초가 더 지나기도 전.
“허억!”
두두두둥!
금라천수와 건곤신권에 온몸을 두들겨 맞은 적룡이 헛바람을 토해내며 뒤로 나가떨어지고, 장포를 난도질당한 금룡이 비칠거리며 황급히 물러섰다.
고오오오…….
공터를 휘돌던 다섯 사람의 진기가 회오리바람에 휘말려서 천공으로 솟구쳤다.
좌소천은 무진도를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금룡을 바라보았다.
“나를 인정하든 안 하든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그대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