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8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80화
180화
“응,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녀 같았어. 모자하고 면사를 썼는데, 무공이 기 대협보다 훨씬 강했거든. 언뜻 보이는 눈도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너무 아름다웠고. 게다가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극음의 기운이 알게 모르게 흘러나오는데…….”
혁련미려의 말이 이어질수록 좌소천의 표정도 바위처럼 굳어졌다.
그럴지 모른다 생각했다. 확신은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그래도 속으로는 제발 그녀가 아니기만 빌었다.
하지만 혁련미려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바로 신녀, 소영령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한시가 급한 상황.
바위처럼 굳어진 좌소천의 표정에 쩍쩍 금이 갔다.
‘영령, 어쩌자고 그곳엘 갔단 말이냐?!’
혁련미려는 좌소천의 지나친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이를 악문 좌소천의 잇새로 이지러진 목소리가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그녀가 바로…… 신녀가 바로… 제 사매, 영령입니다, 누님.”
“맙소사! 어찌 그런……!”
혁련미려의 방을 나온 좌소천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소영령의 얼굴만큼이나 맑은 구름이 서쪽으로 빠르게 흐른다.
저 구름을 타고 가면 태백산까지 금방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직 무사할까? 혹시 다치지는 않았을까?
설마… 늦은 것은 아니겠지?
이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내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영령!’
물론 몰래 떠나지는 않을 생각이다. 밝힐 것은 밝히고 갈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더라도!
세상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더라도!
‘여령은 이해해 주겠지.’
좌소천은 고개를 내리고 저만치 정원에 서 있는 도유관을 불렀다.
“도 호법, 사람들을 모아주시오. 할 말이 있소.”
“예, 주군!”
잠시 후.
사람들이 다 모이자 좌소천이 자신의 뜻을 밝혔다.
“사매가 태백산 천외천가에 들어가서 위험에 처했소. 해서 나는 즉시 사매를 구하러 태백산에 다녀와야 하오. 그대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모레 아침까지 오지 않거든, 곧바로 영풍산장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사람들은 머리 위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능야산이 다급히 말렸다.
“너무 위험합니다, 주군!”
사도진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매를 구하러 태백산에 가겠다니요? 걱정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당장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수장이 그러한 일로 위험을 자초하겠다니요?”
“나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은 사매요. 나는 가지 않을 수가 없소.”
“하아, 이거 참…….”
사도진무의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선우 백부가, 영령이 그리된 것은 결국 자신 때문이 아니었던가.
설령 최악의 경우 이미 죽었다 해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소식을 듣는다면 평생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너무 걱정할 것 없소. 비천사룡이 함께 가니 조심만 한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것이오.”
그 말에 능야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주군.”
도유관이 가느다란 눈으로 능야산을 흘겨보았다.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호법이 괜히 호법입니까? 당연히 따라가서 주군을 지켜야지요.”
적수응과 황신양, 황보충, 영호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박찼다.
그러자 묵령천의 사람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외천가에 가는데 저희가 빠질 수는 없지요.”
남은 사람은 사도진무뿐.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좌 궁주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일 년도 안 돼 천하제일패의 자리에 오르실 정도로 냉철한 분이, 이제 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모험을 하시려 하다니 말입니다.”
좌소천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놈이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 말에 도유관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씩 웃었다.
“사도 공자, 저는 그래서 더 주군을 존경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천하제일의 지위를 버릴 사람이 하늘 아래 몇이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좌 궁주의 신상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가 강호를 적실지…….”
사도진무가 말을 길게 끌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항상 입을 무겁게 닫고만 있던 황신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무슨 뜻이오?”
“별 탈 없이 궁주님의 사매를 구할 수 있다면 이후의 상황도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적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게 될 테니 그 또한 성과라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그러지 못할 경우가 아니겠소?”
“그럼 저들도 그만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종남에 있던 자들마저 천선곡으로 되돌아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좌소천과 호위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선 천외천가 역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리되면 종남의 적도 얼마간은 움직이기가 힘들 것이다.
상황이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는 말.
황신양의 말을 이해한 사도진무의 눈이 반짝였다.
‘흠,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군.’
천하정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좌소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전마성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전마성과 철혈무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좋소. 그럼 나도 가겠소.”
결국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종리명한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이런! 공손 형님이 우려한 게 바로 이 일이었나?’
공손양은 자신에게 상황을 알리라 했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천이당의 정보원들을 통해 말을 전하고 싶어도 좌소천이 서두르고 있으니 시간이 날지 모를 판국이다.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네.’
그때 좌소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 그렇다면 함께 가지요. 한시가 급하니 바로 출발하겠소.”
‘젠장!’
좌소천이 호위대와 함께 임시 지부를 떠난 지 한 시진 후.
태양이 서쪽으로 완연히 기운 유시 무렵, 사인학이 말을 타고 장안에 도착했다.
그는 골목길을 세 번이나 헛돌고 난 후에야 천이당 임시 지부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제길, 이렇게 구석에 있으니 찾기가 어렵지.”
말에서 내린 사인학이 문을 두드리자, 문이 조금 열리더니 한 사람이 삐죽 머리를 내밀고는 좌우를 둘러본 후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로 오신 거요?”
사인학은 호법패를 그의 코앞으로 내밀고는 자신의 정체를 전음으로 밝혔다.
“궁주님의 호법인 사인학이라 하오. 궁주님께선 안에 계시오?”
천이당의 무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호법패와 사인학을 번갈아 보았다.
호법패는 진품인 것 같았다.
그런데 호법이 궁주의 행방을 모른다 하니 의심이 갔다.
사인학은 무사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고 눈을 부라렸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성질이 좀 지랄 같소. 해서 꾸물거리는 사람을 보면 석 달 열흘간 고생을 시켜야 마음이 좀 풀린다오. 당신은 어떻소? 본래 꾸물거리는 성격이오?”
흠칫한 무사는 그제야 사인학이라는 이름이 생각났다는 듯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정이라 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인학은 고개 숙인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고는 장원 안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장원이 조용하군.”
“영풍산장에서 오신 분들은 지금 안 계십니다.”
막 장원으로 들어가던 사인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계신다고? 그럼 화산으로 돌아가셨소? 이상하네. 오면서 보지 못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디를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인학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때 공손양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만일 주군께서 어디로 간지 모르겠거든, 혁련미려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아보아라.”
사인학은 그 말이 떠오르자 곧장 정이에게 물었다.
“혁련 낭자는 어디 계시오? 좀 만나봐야겠는데…….”
정이가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부장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결국 사인학은 오금상을 통해 혁련미려를 만났다.
그리고 일각 만에 그녀의 방을 뛰쳐나와서 다시 말을 타고 정신없이 영풍산장으로 달렸다.
“미치겠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이야?”
3
사인학이 영풍산장에 도착한 것은 저녁 어스름이 몰려올 무렵이었다.
공손양은 뛰듯이 안으로 들어온 사인학의 말에 입가로 가져가던 찻잔을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신녀가 바로 주군의 사매였다고?”
“예, 형님.”
먼지를 수북이 뒤집어쓴 사인학이 급히 혁련미려에게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공손양은 파문이 일고 있는 찻잔을 바라보며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끝낸 사인학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형님,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치라…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까? 당장 사람들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쳐들어갈까?”
“그거야…… 아이구, 답답해!”
당장 가슴을 칠 것처럼 답답해하는 사인학이다.
공손양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런 사인학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생각마저 하신 주군이다. 그런 주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그것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인학.”
“형님! 그렇게 태평하게 있다가 주군께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공손양이 조용히 웃었다.
“나라고 해서 어찌 걱정되지 않겠느냐? 하나… 그분은 하늘이시다. 천 년 강호사 이래로 가장 큰 하늘. 너는 주군을 믿느냐? 나는 주군을 믿는다만.”
“무, 물론 나도 믿지요.”
“그럼 기다려라.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주군은 결코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분이 아니시니까.”
“하지만…….”
“물론 뭔가 대비를 하긴 해야겠지. 주군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가서 오행대의 대주분들과 장로님들을 모시고 와라.”
3장 지옥(地獄)으로
1
기천승이 조사한 자료는 세밀하고도 정확했다.
그는 약초꾼들이나 다닐 법한 은밀한 길을 찾아놓았다. 거기에 더해 때로는 절벽에 가로막히고, 넓이가 오 장 정도 되는 작은 협곡도 있는, 상당한 경공술을 익힌 자만이 이동할 수 있는 길도 찾아놓았다.
좌소천은 기천승이 남긴 책자의 내용을 더듬으며, 태백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정말 좌소천이 태백산에 처음 와보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거침없는 좌소천의 발걸음이다.
뒤를 따라가는 호위대들은 그런 좌소천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적지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놀러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갑자기 적을 만나도 담담할 것만 같았다.
심지어 주위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가 정겹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밤새들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나아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빠르게 나아가던 좌소천이 바위 능선에 올라서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뒤에 늘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칼날처럼 솟구친 수십 개의 봉우리가 보름달 아래 병풍처럼 늘어선 곳이 보였다.
좌소천은 그곳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비천사룡만이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갈 것이오. 나머지 분들은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주군.”
도유관이 그럴 수 없다는 듯 한 걸음 나서자 좌소천이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오. 사람이 많으면 그럴 수가 없소. 이건 명령이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