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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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1화
171화
그들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피를 볼수록 더욱 난폭해졌다.
사지가 잘린 몸으로도 도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자들.
그들은 중상을 입고 쓰러진 자들마저 거침없이 목을 베고, 심장을 터뜨려 죽였다.
지옥의 악귀들! 무정귀가 바로 수라귀였다!
그 광경에 무림맹의 군웅들이 분노해서 달려들었다.
“악랄한 놈들!”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죽이다니! 개만도 못한 놈들!”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팔백의 무사가 달려들었지만, 일각이 되기도 전에 삼백이 죽었다. 그리고 이각이 흐르자, 살아남은 백오십여 명이 공포에 질려서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 후퇴해!”
“일단 물러서라!”
상황이 그리 흐르자 백호당도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아섰을 때는 일천삼백의 무사였다. 그러나 돌아가는 자들은 육백이 채 되지 않는다.
척발조가 청룡당과 백호당의 뒤를 쫓는 수하들을 바라보며 살소를 흘렸다.
“클클클, 오늘 화산이 붉게 물들겠군.”
“해주께 좋은 선물이 되겠어.”
마사가 손에 뭍은 피를 닦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유사만은 화산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이 좋지 않은지 그가 평소답지 않게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세상에는 예상외로 강한 놈들이 많아. 안심해서는 안 돼.”
“킬킬, 신녀인가 하는 계집에게 혼이 나더니 간이 작아졌군.”
척발조가 유사를 비꼬며 놀려댔다.
유사는 척발조를 한번 노려보고는 여전히 인상을 풀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제길,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군.’
그때 마사가 앞을 노려보며 차가운 광소를 흘렸다.
“우흐흐흐흐! 무림맹의 맹주도 왔다는데, 얼마나 강한지 봐야겠어!”
허운자와 함께 자하궁을 내려온 우경 진인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멀리서 들리는 고함과 비명, 그리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되었는가?!”
정첩당의 부당주 우문사가 급히 달려와 상황을 전했다.
“청룡당과 백호당이 그들을 막았사온데, 적들에게 밀려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채 후퇴하고 있습니다, 맹주!”
“현무와 주작은?”
“소식을 접하고 청룡과 백호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맹주! 즉시 달려가서 놈들을 칩시다!”
천무단주 팽철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우경 진인 역시 한시도 지체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적에 대한 것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정면으로 싸운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더구나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계곡의 넓이가 좁은 곳. 인원수보다 개개인의 무위가 승패를 판가름할 것이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우경 진인이 허운자를 바라보았다.
“장문인, 제자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돌아가서 옆을 치게. 나는 천무단과 함께 사당을 지원하겠네.”
허운자는 우경 진인의 뜻을 알아채고 즉시 제자들을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사숙!”
암벽을 타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화산의 제자들만이 안다. 적들이 그 길을 모른다면 옆구리를 얻어맞는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매화검수 이상만 나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무림맹을 도와줘라!”
그가 일갈을 내지르고 남쪽을 향해 달려가자 삼백의 화산제자가 뒤를 따랐다.
우경 진인도 즉시 천무단의 고수들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모두 가세!”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현무당과 주작당이 합세했는데도 밀리는 것은 무림맹 쪽이었다.
게다가 언뜻 봐도 엄청난 피해가 느껴졌다.
분명 일천수백의 무사가 이십 리 전방에서 제일선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은 무사 중 현무당과 주작당을 제외한 무사들은 아무리 봐도 채 오백이 되지 않았다.
청룡당과 백호당의 무사 반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
보고 있는 중에도 무림맹의 군웅들이 적들에 의해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뿌리고 있었다.
메아리치는 비명에 화산이 통째로 울렸다.
우경 진인의 가슴도 울렸다.
“천무단은 정의의 이름으로 놈들을 쳐라!”
그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분노의 외침이 화산을 뒤흔들었다.
“모두 가자! 이놈들!”
팽철이 도를 뽑아 들고 전면에 서서 신형을 날렸다.
천무단의 고수들도 이를 악물고 무기를 뽑아 들었다.
악귀 같은 자들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군가. 자신들의 사형제, 사질, 사손들이다.
적들에 의해 제자들의 사지가 잘리고 피분수가 하늘로 솟구친다.
달려가는 그들의 가슴에서 자비도, 인정도 사라졌다.
“아미타불! 부처께서도 오늘만큼은 살계를 용서해 주시리라!”
소림의 법성 대사는 반야대승공을 십성으로 끌어올린 채 천해의 마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부처께서 용서해 주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몸이 지옥불에 던져진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당장은 수라귀의 손에서 제자들을 구해야 했다.
“지옥의 나찰귀 같은 자들이 돌아갈 곳은 지옥밖에 없으리니!”
구름이 검붉은 핏빛으로 타오른다.
바위 위에 올라선 좌소천은 하늘이 아닌 땅을 내려다봤다.
땅도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성, 그리고 비명이 뭉뚱그려져 메아리치며 계곡 전체가 울어대고 있다.
무려 삼천. 팽팽하게 맞선 두 무리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계곡 일대가 전장이다.
지옥의 전장!
천신의 군대와 아수라의 무리가 하늘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듯하다.
좌소천은 일단 어떤 자들이 천외천가와 천해의 무사들인지를 살펴보았다.
무작정 내려가면 적인지 아군인지를 모를 듯했다. 자칫하면 엉뚱한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
“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격해야 하오! 멋모르고 달려드는 무림맹의 사람들이 있거든, 우리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도록 하시오!”
그때였다.
남쪽 계곡에서 화산파의 제자로 보이는 도인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곧장 천외천가 무리의 허리를 양단할 듯이 달려갔다.
허운자의 일갈이 화산을 울렸다.
“화산의 제자들아! 지옥의 악귀들을 모두 지옥으로 돌려보내라!”
그들로 인해 천외천가의 무리들 중 한쪽이 반으로 쪼개어졌다.
순간 좌소천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공손양이 즉시 의견을 내놓았다.
“주군, 후미를 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더 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갑시다!”
싸움의 초반은 천해와 천외천가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그러나 천무단이 가세하면서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천해와 천외천가의 수장들을 견제하자 사당 무사들의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우세한 것은 아니었다.
우경 진인은 마사와 팽철, 법성은 유사를 상대하느라 몸을 빼지 못하는 상태. 천무단의 고수들은 대장로 순우경과 사암을 비롯하여 천외천가의 절정고수들을 상대하느라 다른 사람을 도울 틈이 없었다.
하지만 적들 역시 그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절대지경의 고수와 초절정의 고수들이 발목 잡히자, 한순간에 화산을 점령할 것 같던 기세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절대적인 열세 상황에 희망의 불빛이 비추었다.
그렇게 무림맹의 군웅들이 비세(非勢) 속에서도 악착같이 적의 전진을 막고 있을 무렵. 허운자가 화산의 제자들을 이끌고 남쪽 계곡에서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천외천가의 세력이 두 동강났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자 천외천가 무사들이 우왕좌왕했다.
화산의 장로와 매화검수들이 흐트러진 그들을 휘몰아쳤다.
비세였던 전세가 일순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숨을 몇 번 쉬기도 전에 팽팽한 상태로 돌아섰다.
바로 그때, 천외천가의 후미가 해일에 휩쓸린 모래 성벽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천신궁이다!”
“절대공자 좌소천이 무사들을 이끌고 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림맹 쪽에서도 힘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놈들을 더욱 강하게 쳐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천외천가의 악귀들을 지옥의 불구덩이에 집어넣어라!”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우르릉!
마사와 쉴 새 없이 이십여 초식을 나누고 물러선 우경 진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들 중에 오제와 어깨를 겨룰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솔직히 말해서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생각했었다.
무림맹을 떠나올 때 자신이 직접 나설 것인지, 아니면 팽철만 보낼 것인지 고민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클클, 무림맹의 맹주라더니 제법이로구나!”
“그대 하나쯤은 지옥으로 보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글쎄, 가능할까?”
마사의 빈정거림에 우경 진인의 미간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전신에서 웅혼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두고 보면 알겠지.”
나직한 그의 말과 함께 애검인 자하검을 타고 자색 검강이 쭉 뻗었다.
마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붉게 물든 손을 들어 올렸다. 화산파 제자들의 급습으로 전세가 급박해진 상황. 더 이상은 우경 진인과 드잡이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상대를 물리치고 전세를 다시 돌려야만 했다.
“제법 머리를 썼다만, 오늘 우리를 막기는 어려울걸?”
순간이었다.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기운이 서로를 향해 밀려갔다.
“가거라! 자하동천(紫霞動天)!”
찰나, 몸을 날리는 우경 진인의 손에서 화산의 전설인 자하오검 중의 일식이 펼쳐졌다.
다섯 줄기로 나누어진 자색 검강이 동아줄처럼 꼬아지며 마사를 향해 뻗어나감과 동시, 마사의 두 손에서 시뻘건 아수라가 튀어나왔다.
그가 평생 익혀온 아수라혈장(阿修羅血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림없다!”
콰과과광!
두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쳐 뒤엉켰다.
천번지복의 굉음과 함께 휘몰아치는 일진광풍!
두 사람은 일 장의 간격을 둔 채 서로를 마주보고 전력을 쏟아냈다.
그때 제천신궁의 출현이 알려졌다.
벌게진 우경 진인의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반면에 마사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천무단의 무사들 셋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여유를 보이던 척발조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사! 그는 놔두고 일단 뒤쪽을 치게!”
“빌어먹을!”
마사는 우경 진인을 향해 전력을 다한 일장을 내치고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몸을 뺐다.
“뭐 하느냐! 대충하고 뒤에 있는 놈들을 막아라!”
잠깐 사이 척발조의 외침이 더욱 다급해졌다.
제천신궁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뒤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순우경과 유사와 사암도 천무단의 합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쏟아냈다.
그럴수록 팽철과 천무단의 무사들은 상대를 더욱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졌다.
“놈들이 뒤로 가지 못하게 막아!”
좌소천과 오행대는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후미를 휩쓸었다.
일 검, 일 도, 일 수가 휘둘러질 때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낫에 베인 짚단처럼 무너져 내린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이 불고, 거대한 해일이 덮친다!
“으아악!”
“제천신궁이다! 막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악다구니!
하지만 해일은 멈추지 않고 가로막는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좌소천, 혁련호정, 사도진무. 세 사람이 선두를 달리며 해일의 기세를 이끌었다.
무진도가 대기를 가를 때마다 서너 명이 속절없이 쓰러진다.
혁련호정은 분노를 쏟아낼 곳을 찾았다는 듯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적을 추살하고, 사도진무는 좌소천과 혁련호정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적들을 향해 대호처럼 달려들었다.
그 뒤로 비천사룡과 악청백을 비롯한 오대의 대주와 부대주들, 네 명의 장로, 묵령천의 형제들, 각 문파에서 가리고 가린 고수들 일백여 명이 거침없이 적들을 휩쓸며 전진했다.
대부분의 절정고수들이 앞으로 나가 있는 상황. 뒤에 남은 무사들이 좌소천 일행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잠깐 사이, 삼백여 명이 무너지며 후미 일대가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무림맹 분들은 뒤로 물러서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시오!”
좌소천의 냉랭한 일갈이 지옥으로 변한 계곡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