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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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68화
168화
그는 간부들이 모여 있는 방에 들어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주 지독한 놈들이야. 철저히 약물로 만들어졌어. 인성도 없고, 오직 시술자의 명령만 듣게 되어 있더군.”
“전설로 전해지는 강시 같은 것입니까?”
좌소천의 질문에 무영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 정도는 아닌데,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독하다고 봐야겠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정신도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
“손자기의 말에 의하면, 그자들을 십팔사령이라 부른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열셋이 더 남았다고 봐야겠군요.”
“열셋이나 더 있다고?”
무영자의 흑살기가 출렁거렸다. 그러더니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열셋이 전부일지, 그게 문제군. 저런 놈들을 만들 정도면 다른 괴물도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좌소천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천앙동의 괴인들이라 했던가?’
손자기가 쓴 글에 나와 있던 말이다.
그는 그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손자기가 정확히 모르고 있는 자들도 있다 했는데, 그럼 그들도 그런 괴물이 아닐지 모르겠군요.”
“순우무종의 입이 열리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군.”
공손양의 말에 좌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고 있는 순우무종이 깨어나면 염불곡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낼 계획이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내상과 단전이 파괴된 충격이 겹쳐서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어쨌든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긴장을 늦추면 그만큼 동료들의 희생이 커진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밤의 싸움으로 자신감에 차 있던 간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실 그들은 사령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능야산 정도의 고수가 사령 중 하나와 비등한 접전을 벌였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다.
그 정도로도 간부들은 대충 사령의 힘을 예측할 수 있었다.
유리하긴 해도 쉽게 이기기는 힘든 괴물.
문제는 그런 괴물이 열셋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는데, 좌소천의 말대로라면 또 다른 자들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답답한지 동천옹이 이를 갈며 머리를 저었다.
“빌어먹을 놈들! 사람을 지들 마음대로 개조하다니!”
하지만 미리부터 걱정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좌소천은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간부들과 장로들을 둘러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길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한 괴인들을 내놓는다 해도,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적을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귀청을 파고드는 맑은 목소리에 사람들의 굳어졌던 어깨가 펴졌다.
그때 무영자가 흑살기를 일렁이며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저런 놈들은 분명 어딘가에 약점이 있네. 내가 놈들의 약점을 알아내 보겠네, 궁주!”
“꼭 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님.”
“음하하, 걱정 말게!”
동천옹이 기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오랜만에 사람 구실 좀 하겠군.”
무영자의 흑살기가 더욱 세게 요동쳤다.
‘빌어먹을 칠삭둥이 같으니라고. 기분 좀 맞춰주면 키가 더 작아지나? 도대체가 도움이 안 돼!’
7장 화산으로 향하는 바람
1
늑대를 한 마리 잡은 기천승은 늑대의 뒷발에서 힘줄을 뽑아내 계곡물에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는 쩍 벌어진 옆구리의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고, 힘줄에 내력을 집어넣어 바늘처럼 날카롭게 한 후 내장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꿰맸다.
상처는 근 한 뼘에 달했는데, 순우무궁에게 당한 상처가 아니었다. 나중에 나타난 두 괴인에게 당한 것이었다.
괴인은 미친 순우무궁만큼이나 강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였다면 다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우무궁에게 내상을 입어 몸이 둔해진 그로서는 두 괴인의 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그들의 목적이 순우무궁을 잡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으음…….”
상처를 꿰매고 마지막 마무리를 짓는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력한 내력이 실린 손에 찢겨져 나간 상처였다. 꿰매긴 했지만 그 충격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객으로서 처절한 수련을 받지 않았다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의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기천승은 고통을 참고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몸을 숨긴 곳은 천선곡에서 오십여 리는 떨어진 곳의 바위 틈바구니였다.
큰 마을로 나가 몸을 치료하며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야 그가 더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천외천가에 비상이 걸렸다. 함부로 움직이면 언제 저들의 눈에 띌지 모르는 일.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자신이 있는 바위 틈바구니는 입구가 넝쿨로 가려져 있어서 밖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흘 정도는 들키지 않고 지낼 수 있을 듯했다.
‘이삼 일이면 조용해지겠지.’
그때까지 최대한 몸을 만들어야 했다.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임무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기천승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 그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실낱같던 기운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굵어졌다. 중간 중간 막히던 것도 조금씩 뚫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 전신으로 서서히 진기가 퍼져 나가며 고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각가량이 지나자 곧 고통을 잊고 완벽한 무아지경에 빠졌다.
평상시 운기행공을 하면서 완벽한 무아지경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라 할 수 있는 일. 그만큼 내상이 심하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려던 기천승은 갑자기 밀려오는 냄새에 잠시 더 눈을 뜨지 않고 주위 상황을 판단했다.
넝쿨로 막힌 입구 밖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대체 이런 오지 구석, 그것도 사람이 도저히 다닐 수 없는 곳에서 누가 고기를 굽는단 말인가?
그가 누구든 적 아니면 동료,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이곳이 태백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대로 둔 걸로 봐서 적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이 한가하게 고기나 굽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너무 깊게 몰입했어. 자객이 된 후 처음 있는 일이군.’
쓴웃음을 지은 기천승은 무릎 위에 놓인 검을 잡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바로 그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이 보였다.
기껏해야 일 장의 거리!
기천승은 눈을 뜨다말고 몸이 굳어버렸다.
“이제 정신이 들었소?”
그 눈의 주인이 말한다.
아무리 자신이 내상을 입었다 해도 일 장 앞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몰랐다니.
‘고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눈의 주인이 중얼거렸다.
“아직 정신이 안 들었나? 아닌데? 검을 잡았잖아?”
기천승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놀리는 소리라는 것을 그가 왜 모를까.
“그댄 누군가?”
“아! 이제 입이 열리셨군.”
기천승은 눈의 주인을 똑바로 바라본 채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눈의 주인이 말했다.
“너무 놀랄 것 없습니다. 적이었으면 눈을 뜰 때까지 두 시진이나 기다려 줬겠습니까?”
자기가 두 시진이나 기다렸다는 말이다.
적이 아니라는 뜻.
기천승은 그를 직시한 채 검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고기 냄새는 왜 풍긴 건가?”
“그거야 기다리다 보니 배가 고프지 뭡니까? 때마침 멍청한 멧돼지 한 마리가 저 밑에서 졸고 있기에 잡았지요.”
“고기 냄새는 둘째 치고 사람들이 연기를 보고 올지도 모르네.”
“걱정 마십시오. 조금 전까지 근방 이십 리를 뒤졌는데 길 잃은 강아지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기천승은 이마를 찌푸리며 눈의 주인을 자세히 살폈다.
이제 이십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주군을 제외한다면, 저 나이 대에서 가장 강할 것 같군.’
신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로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가 왜 근처를 뒤졌는지 아십니까?”
그걸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기천승은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조금 전과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찾으려고 뒤졌지요. 그런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약초꾼 두어 사람만 만났을 뿐 제가 원하는 사람은 찾지 못했습니다.”
확연히 달라진 눈빛. 왠지 모를 아픔이 배어 있는 표정이다.
“그러다 찾은 것이 당신입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강호의 고수인 당신 말입니다.”
기천승은 묻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눈의 주인, 혁련호운이 마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기천승을 바라보던 혁련호운이 물었다.
“혹시 태백산을 잘 아십니까?”
“조금 아네.”
“부상을 입은 이유를 알아도 되겠습니까?”
“적과 싸웠네.”
“천외천가입니까?”
“맞네. 바로 그들과 싸웠지.”
“그럼… 천외천가의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령’이라는 여인이 태백산으로 간 것을 알고 무작정 달려왔다. 태백산에 도착해서야 혁련호운은 그녀가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왜 태백산에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더 강할지 모르는 무공, 삶조차 포기한 것 같던 결연한 눈빛. 그러한 그녀가 찾아갈 만한 곳은 자신이 생각할 때 오직 한곳이었다.
천외천가!
그리고 그녀의 정체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제천동을 나선 후 소문으로 들었던 신비의 신녀!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태백산을 훑으며 천외천가의 위치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 누구도 천외천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서 천외천가의 위치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지금쯤은 천외천가로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태백산 줄기를 타고 헤매던 중 우연히 바위 틈바구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운기행공을 하는 것만 봐도 기천승은 절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자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일단 기천승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운기행공을 하며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죽은 사람에게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혁련호운은 질문을 던져 놓고 기천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천승이 되물었다.
“무슨 일로 그곳을 찾아가려는 건가?”
그 말이 혁련호운의 귀에는 안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여인이 천외천가를 찾아갔습니다. 아무래도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죽기 전에 구하려고 합니다.”
기천승은 다급히 말하는 혁련호운을 쳐다보았다.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나?”
“그 여자도 약하지 않고 저도 한 수는 있습니다. 도망은 칠 수 있을 겁니다. 아신다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급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겠다는 젊은이다. 기천승은 처음 겪어보는 묘한 감정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좋네. 하지만 조심해야 하네.”
그는 혁련호운에게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천외천가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혁련호운은 기천승의 말이 끝나자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밖에 구워놓은 고기가 조금 남았을 겁니다. 그건 대협께서 드십시오.”
어이없는 감사의 인사에 기천승은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아마 지난 수십 년 사이 가장 환하게 피어나는 웃음일지도 몰랐다.
그사이 혁련호운이 넝쿨을 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금방 되돌아온 그는 고개를 삐죽 내밀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저는 혁련호운이라고 합니다. 혹시 제천신궁에 대해서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