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0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00화
200화
적룡도의 도신을 타고 시뻘건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상대의 피가 아니다. 자신의 피다.
갈라진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도를 움켜쥔 손을 붉게 물들인 후, 도신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다.
“내가… 졌군.”
힘든 두 마디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좌소천은 검신이 사라진 묵령기환보를 허리춤에 꽂았다.
“귀하의 생각처럼 천외천가는 그렇게 강하지 않소. 곧 그걸 알게 될 거요.”
모용빈이 자신의 적룡도를 바라보며 고소를 지었다.
“훗, 어쩌면 자네 말이 맞을지도…….”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겨룰 수 있겠나?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지?”
좌소천은 무심한 눈으로 모용빈을 바라보았다.
“절대의 하늘이 열렸다는 말이 들리거든, 그곳으로 찾아오시오.”
“절대의 하늘…….”
좌소천은 모용빈의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며 서봉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제 곧 종남의 땅도 붉게 물들 것이었다.
‘세상이 나를 악마라 부른다 해도…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멈추지 않고 갈 것이다.’
일각 후.
종남파의 본산이 존재하던 태을궁 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고함소리가 공포에 찬 비명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짐승들도 굴속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각 후, 어스름으로 뒤덮인 종남산 깊숙한 곳에서 장한 하나가 달려나왔다.
장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산 밑을 향해 내달렸다.
그의 모습이 산 아래로 사라질 즈음, 좌소천이 태을궁 쪽에서 내려왔다.
그는 장한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골치가 좀 아플 거다, 공야황.’
10장 나에게 자비(慈悲)를 바라지 마라
1
종남이 붉게 물든 그날 자시 무렵.
광운장에서 메뚜기 떼처럼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천여 명의 무사. 그들은 광운장을 나서자마자 곧장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려갔다.
드넓은 위하평원의 풀벌레들이 숨을 죽였다.
하늘을 날던 밤새들도 날개를 접고 둥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시각.
거지 하나가 영풍산장의 정문 앞에 나타났다.
비라도 맞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은 거지가 정문으로 다가오자 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막아섰다.
“무슨 일인가? 이 밤중에 동냥을 온 것은 아닐 테고?”
현재 영풍산장은 위사든, 경비든, 순찰이든, 모두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연합세력 고수들이 맡고 있다. 언제 적들이 침입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멍청한 새끼들. 지금 이 시간에 동냥질 다니는 거지가 어디 있다고 지랄이야?’
만방개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눈앞의 위사는 일반적인 위사가 아니다. 자신이 개방의 사결제자라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걸 잘 아는 만방개는 속마음과 달리 공손히 말했다.
“나는 개방의 제자인 만방개라 하오. 급한 일로 공손양이라는 분을 만나러 왔소.”
전마성 진마각의 무사인 나정필의 눈이 커졌다.
이화공자 공손양!
그는 어제의 공손양이 아니었다.
그가 계획한 작전 하나로 수백의 적이 죽고, 연일 밀리던 형세도 팽팽한 상태로 바뀌었다.
단 하루 사이, 그가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화산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무림맹주도, 전마성주도 아닌 공손양이었다.
그런 공손양을 개방의 제자가 만나자고 한다.
개방이 비록 무림맹의 일파라 하나 여태 개방의 제자가 영풍산장을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
더구나 지금은 자시가 넘어가는 시각이 아닌가.
나정필은 만방개를 쓱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개방의 제자가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찾아온 것이오?”
‘지미, 급하다는데 꼬치꼬치 캐묻기는. 추운개,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아주 급히 전해야 할 말이 있소. 시간이 없으니 즉시 통보해 주셨으면 하오.”
코도 돼지코고, 눈은 반쯤 풀린 것 같은데다 머리도 크다.
굳이 그걸로 사람을 판단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정필은 그런 만방개가 조금 못미더웠다.
개방 제자만 아니었다면, 급하게 공손양만 찾지 않았다면, 더 이야기 나눌 것도 없이 아침에 다시 오라며 쫓아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그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말씀은 드려보겠소.”
공손양은 나정필의 보고를 받고 눈빛을 빛냈다.
무림맹과는 그간 정첩당을 통해서 정보를 교환했다.
물론 그 정보의 대부분이 개방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평상시라면 정첩당의 수하가 자신을 찾아와야 맞았다.
별다른 왕래가 없던 개방의 제자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도 급한 정보라는 말.
“들여보내시오.”
잠시 후.
만방개가 더부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뭔가가 그의 머리에서 툭툭 떨어졌지만, 공손양은 개의치 않고 탁자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지요.”
만방개는 새삼스런 눈으로 공손양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누구든, 심지어 같은 무림맹의 사람들도 자신이 이를 떨어뜨리며 방 안에 들어서면 눈살을 찌푸린다.
그중에는 경멸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자도 있었고, 짜증을 참기 위해 이를 지그시 무는 자들도 있었다. 겉으로는 반기는 척하면서.
그런데 눈앞의 공손양의 눈빛에선 조금도 그런 가식이 보이지 않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 진심으로 반기는 듯 입가에는 담담한 미소마저 떠올라 있을 뿐.
“만방개라 하오.”
“공손양입니다. 밤늦게까지 수고하십니다.”
“수고는 무슨…….”
만방개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양을 힐끔거렸다.
삼경에 찾아온 거지를 반기다니, 진심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인가? 다시 보자 공손양이 크게 느껴졌다.
제천신궁이 왜 천하제일의 세력인지 알 것 같았다.
“먼저 차라도 드려서 손님 접대부터 하는 게 예의입니다만, 급한 일로 오셨다니 실례를 무릅쓰고 말부터 들어볼까 합니다. 무슨 일인지요?”
공손양의 예의 바른 질문에 만방개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거지를 손님 대우하면서 예의를 찾는 자가 다 있더군.
아마 자신이 그 말을 한다면, 개방의 거지들이 다 낄낄거리며 웃을지 몰랐다. 정신 나간 놈이라면서.
전이었다면 자신도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서 그 말을 했을 때, 웃는 놈은 한여름 똥개를 잡듯 패버릴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나중 일. 만방개는 추운개가 전해온 급전을 말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고 나직이 말했다.
“적수에서 급전이 왔는데, ‘무진이 작수에 들렀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공손양의 눈이 점점 커졌다.
“무… 진?”
“예, 그리고…….”
만방개가 떠난 지 일각이 지나도록 공손양은 탁자 위의 찻잔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무진이 작수에 들렀다.
―그에게 천외천가 작수 지부가 박살났다.
만방개의 말은 그 두 가지가 다였다.
두 번째 소식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고,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소식은 왠지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게 누구냐며 만방개를 닦달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 말이 정말이냐며 만방개의 말을 의심했든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천외천가의 작수 지부를 때려 부수었다는데 그걸 어찌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공손양은 두 번째 소식보다 첫 번째 소식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예 두 번째 소식은 귀청이 앵앵거려서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아는 것이다. 무진, 그 이름의 주인을!
‘마침내 주군께서 돌아오셨다!’
그런데 왜 본명을 알리지 않았을까? 왜 작수를 쳤을까?
단순히 그곳이 천외천가의 지부라서 쳤을 리가 없다.
목적이 뭘까?
공손양이 고민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작수를 치고 바로 이곳으로 오실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어느 순간, 공손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만일… 종남으로 가셨다면……?’
현재 종남에 남아 있는 천외천가의 무사들은 칠팔백 정도. 좌소천이 작심하고 그들을 치면, 전멸을 시키지는 못해도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모든 것이 끝났을지도 모르겠군.’
작수와 종남이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천외천가가 어떻게 나올까?
두 곳이 무너지면, 천외천가는 뒤가 빈다. 비어 있는 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대고수가 위협한다면, 제아무리 강한 천외천가라 해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공손양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번졌다.
‘신비고수의 등장에 한동안 당황하게 되겠지.’
물론 신비의 고수가 좌소천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게 될 즈음에는 상황이 완전히 변해 있을 것이었다.
문득 든 생각에 공손양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 단주님, 무진이 누군지 아십니까?”
천장에서 기천승의 의혹에 찬 물음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그가 누군데 그리 강하단 말인가?”
공손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당의 제자들이 주군을 뭐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하늘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기천승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서, 설마?”
“무당에서는 주군을 무진이라 부른답니다.”
공손양의 은밀한 연락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긴장한 표정을 짓고 들어오는 사람, 의아한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 눈을 비비며 들어오는 사람, 가지각색이었다.
“무슨 일인데 부른 건가? 놈들이 움직이기라도 했나?”
사도철군은 당장 적을 치러 나갈 것처럼 말하고, 동천옹은 장난처럼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뭔데 오밤중에 부른 거냐? 뭐 맛있는 거라도 주려고 그러는 거냐?”
공손양은 빙그레 웃으며 답을 미뤘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다 모이시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부른 사람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답답해 죽겠군. 대충 다 모인 것 같은데, 이제 말해보게나.”
단목연호가 답답한지 머리를 쑥 내밀고 다그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
공손양은 입을 다물고 차만 홀짝였다. 은근히 즐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일각. 마침내 북리환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그가 순찰조를 돌아보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은 북리환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특히 동천옹과 무영자가.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킁, 밤늦게 순찰 도느라 욕보는 거 같아서 한번 쳐다보았다. 왜? 불만이야?”
동천옹의 말에 북리환의 표정이 몇 번이나 변했다.
‘제길, 위로해 주는 말이야, 뭐야? 이 양반이 저녁에 못 먹을 걸 먹었나?’
그때 공손양이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모이신 것 같군요.”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공손양의 입으로 향했다.
공손양은 조금 더 뜸을 들이고는, 사람들이 발작하기 직전에 본론을 꺼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당분간 비밀입니다. 제가 여러분만 부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럼. 걱정 말고 말해보게나.”
“당연히 군사가 말하지 말라면 말하지 않아야지.”
너도나도 당연한 소리는 할 필요없다는 듯 나섰다.
그러다 무영자가 흑살기를 넘실거리며 한마디 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떤 놈이든 비밀을 누설하면, 내가 밤에 찾아가서 잠자는 놈 입을 찢어버릴 것이야.”
공손양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나직이 말했다.
“어제 오후에 천외천가의 작수 지부가 한 사람에게 당해서 무너졌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반 정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그렇게 묻는 눈으로 공손양을 바라보기만 했다.
공손양의 말이 이어졌다.
“어쩌면 지금쯤 종남에 남았던 천외천가의 주력도 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었을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놀랐던 사람들마저 눈을 가늘게 뜨고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너 장난 하냐?’ 그런 눈빛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수 지부는 단순히 지역을 유지하며 유사시 지원을 하기 위해 남은 무사들뿐이다.
그러나 종남은 달랐다. 그곳에는 알려진 것만으로도, 절대고수가 둘에다가 그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혼자서 그들을 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혼자 종남을 쳐? 군사가 요즘 고민을 많이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사람들이 일제히 그런 눈으로 공손양을 흘겨보았다.
잘근잘근 저밀 것 같은 눈빛들.
그런데도 공손양은 묘한 웃음이 떠오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주군께서는 그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야 이곳으로 오실 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