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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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96화
196화
5
제갈진문이 찾아온 것은 회의가 끝나고 한 시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그러잖아도 무림맹 쪽 상황을 알아보려던 공손양으로선 잘된 일이었다.
마주 앉자마자 한두 마디 더 말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제갈진문이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낙남으로 사람들을 더 보내야겠네.”
“몇 명을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일천은 보낼 생각이네.”
“숫자도 숫자지만, 고수들을 많이 보내야 할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네. 하나 위남에 있는 놈들 때문에 쉽지가 않아.”
말을 맺은 제갈진문이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공손양은 제갈진문의 말에 담긴 뜻을 간파하고 담담히 물었다.
“저희에게 따로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제갈진문이 공손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곳의 힘으로 위남의 전력을 막을 수 있겠나? 그리만 할 수 있다면 화산의 전력을 낙남으로 돌릴 수 있을 것도 같네만.”
무림맹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상주로 삼백의 무사를 파견했다. 그로 인해 전력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 화산의 무림맹 군웅들이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 생각하고 전력의 차질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림맹은 이제 자신들을 도와줄 생각은커녕 도리어 모든 걸 떠맡기려 한다.
이기적인 독선인가, 불가항력의 흐름인가.
막지 못할 것은 없었다. 대신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길길이 날뛰겠군. 아마 낙남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철수시키라 할지도…….’
공손양의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제 와서 희생이 너무 크네, 어쩌네, 운운하며 힘들다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곤경에 처한 저들에게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위험은 강 건너의 불일 뿐이니까.
‘모험을 해야 할 것 같군.’
쉬는 동안 나름대로 적에게 타격을 줄 방법을 생각해 봤다.
머리를 짜내서 몇 가지 가능성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다만 문제는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제갈진문을 향해 입을 여는 공손양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제가 계획을 하나 세운 게 있는데, 그걸 실행에 옮기지요. 대신 무림맹도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셔야겠습니다.”
4
공손양과 제갈진문의 밀담이 오간 다음날 새벽, 어스름이 어둠을 밀어낼 즈음이었다.
새벽바람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수십의 인영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장원을 향해 달려갔다.
소리도 없다. 말도 없다. 그저 묵묵히 물 위를 스치는 제비처럼 풀 위를 밟고 달려간다.
장원 주위에 퍼져 있던 순찰병들은 이미 은밀하게 제거된 상태. 순식간에 장원에 접근한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담장을 날아 넘었다.
“누구냐?”
“적……?”
장원 안의 경비들이 그들을 봤을 때는 차가운 칼날이 이미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일각이다! 잊지 마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말뜻을 아는 까닭이다.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열 명이 앞에 선 채 다섯 겹으로 이루어진 대열은 놀라 뛰어나오는 자들을 그대로 휩쓸었다.
“막아라! 적이다!”
“미친놈들이로구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광란의 파도처럼 밀려가는 그들을 막지는 못했다.
선두의 무사들이 지나가면 그다음 사람이, 또 그다음 사람이 공격한다.
다섯 겹으로 이루어진 대열이 모두 지나간 곳에는 시신만이 남을 뿐이다.
순식간에 백여 명의 무사가 제대로 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쓰러졌다.
비명과 고함이 뒤섞인 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뒤늦게 수뇌들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침착하게 놈들을 막아라!”
“어느 놈이 감히 대천외천가의 가주께서 계신 곳을 쳐들어왔단 말이냐?!”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그랬다. 그곳은 위남의 광운장, 천외천가의 주력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공격한 자들은 사도철군이 이끄는 영풍산장의 연합세력이었다.
철저히 진형을 갖춘 채 움직이는 절정 이상의 고수 오십.
그들의 급습은 신속하고도 강했다.
사막의 용권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특히 선두에 선 묵령천 사람들의 단호한 손속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조차 섬뜩해할 정도였다.
그들은 한 수 한 수에 전력을 다했다.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냈다.
지난 이십수 년간 쫓기며 살아온 세월, 한을 가슴에 안고 쫓기다 죽어간 가족과 동료들의 한을 천외천가의 피로써 갚겠다는 듯.
헌원신우의 검은 일말의 사정도 없이 상대의 심장을 부수었고, 능야산의 비도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적의 이마와 목을 뚫었다.
목영운도, 누하진도, 목영락도 누구도 망설임이 없었다.
칼날이 춤을 추고, 검이 벼락을 뿜어낼 때마다 천외천가 무사들의 몸이 난자되고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네 이놈들!”
대장로 순우경이 전각의 문을 박차고 나오더니,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그들을 막아섰다.
헌원신우와 증모당과 기령산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공격했다.
쩌저저정!
순우경이 제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 해도 세 사람의 합공을 막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뒤로 잠깐 밀려난 사이 그 뒤에 있던 사도철군이 철혈마검을 내려친다.
콰앙!
연이은 공격에 순우경의 내력이 흔들리고, 안색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물러선 순간, 세 번째 열에서 세 발의 탈혼시가 튕겨졌다.
쐐에에액!
기껏해야 삼 장의 거리.
순우경은 다급히 검을 휘둘러 두 발의 탈혼시를 튕겨냈다.
그러나 미처 막지 못한 한 발이 그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대장로! 물러서십시오!”
대경한 천외천가의 고수 둘이 순우경의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두 발의 탈혼시가 그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쐐애액! 퍼벅!
“커억!”
“크윽! 뭐 이런……!”
겨우 몸을 틀어 심장이 관통되는 것을 겨우 피한 그들이 거친 신음을 토해내며 물러설 때다.
빠박!
도유관의 도끼가 그들의 이마를 쪼개고 지나갔다.
전광석화! 톱니가 쓸고 지나가듯 연이은 공격이다.
그리고 번개가 무색한 탈혼시!
척발조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조차 그들의 연환 공격에 휘말려 다급하게 몸을 빼내기에 바빴다.
더구나 사도철군과 몇몇은 그들조차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고수들.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합공과 연환 공격은 절대고수들조차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수라는 놈들이 어디서……!”
척발조는 사도철군 등의 연환 협공에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뿐, 직접적인 공격은 가하지 못했다.
혈암과 적암이 그들의 연환 공격에 휘말려 피를 뿌리며 물러선 이후로는 더욱 조심했다.
일각.
싸움은 일각 동안 벌어졌다.
그동안 오십 명의 별동대는 장원을 네 차례에 걸쳐 갈지자로 훑고 지나갔다. 그러고는 볼일 다 봤다는 듯 담장을 넘어갔다.
들이닥칠 때만큼이나 빠른 후퇴.
천외천가와 천해의 수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별동대는 장원의 담장을 넘어서 화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새벽에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은 빠르고 강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삼백여 구의 시신. 그중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만도 이십여 명이나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장로 순우경를 비롯해 혈암과 적암조차 부상을 입었으니, 나머지 부상자의 면면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반면에 적의 시신은 겨우 다섯.
순우연은 이를 갈았다.
“어떤 놈들이더냐, 기정!”
“영풍산장에 있던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연합세력입니다, 가주.”
“이놈들! 감히 이따위 약은 수를 쓰다니!”
말은 그리하면서도 순우연은 간담이 서늘했다.
적들 중 절대 경지에 이른 자도 있었다.
현재 연합세력 중 절대지경의 고수는 오직 둘, 절대공자 좌소천과 철혈마제 사도철군뿐이다.
하지만 좌소천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그렇다면 오늘의 침입자는 사도철군이라는 말.
전마성의 성주라는 그조차 자존심을 접고 연환 공격에 나섰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다는 각오!
‘젠장! 너무 방심했어!’
적을 어떻게 칠 것인가 하는 생각만 했지, 거꾸로 공격받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공야황이 남쪽을 치고 들어가는 상황. 저들에겐 광운장을 공격할 여유가 없을 거라 여겼다.
고통을 받고 있을지 모르는 아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단전이 파괴된 후 실어증에 걸려 숨만 붙어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고 서두르지 않았다.
쓸모없는 아들은 그에게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던 차에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공야황이 알면 자신을 얼마나 비웃겠는가!
분노가 몇 배로 증폭되어 치밀었다.
“기정, 사상자를 정리하고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라. 천해 쪽의 피해도 알아보고.”
“예, 가주.”
순우기정이 물러가자 순우연의 눈이 동쪽을 향했다.
저 멀리 화산 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일렁였다.
‘건방진 놈들! 오늘의 빚을 배로 갚아주마!’
9장 세상이 나를 악마라 부른다 해도
1
나른한 봄날 오후.
개방의 작수 부분타주인 추운개는 춘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장가객잔에서 점심을 대충 얻어먹은 지 반 시진, 햇살이 사선으로 파고드는 처마 밑에 앉은 지 일각 만이었다.
눈꺼풀이 어찌나 무거운지 만 근도 넘을 듯했다.
저 앞에 있는 장원을 감시해야 하는데도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제기랄!
팔을 들어 올려 어깨가 빠지도록 뻗어보기도 했다. 목뼈가 분해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머리도 흔들어봤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젠장, 잠깐 존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오히려 이럴 때는 잠깐 자두는 게 나중을 위해서 더 나은 법이라고.’
결국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반 각. 그의 코에서 커다란 방울이 맺힐 때였다.
툭! 떼구르르…….
바가지에 뭔가가 떨어졌다.
소리가 제법 커서 조는 중에도 뚜렷이 귀에 들렸다.
뻥.
그의 코에 맺힌 방울이 동시에 터졌다.
그는 억지로 눈을 뜨며 와락 인상을 구겼다.
‘뭐야? 어떤 애새끼가 돌로 장난을…….’
지금까지 반 시진을 앉아 있었어도 구리 동전 하나 준 놈이 없었다.
장소가 동냥을 할 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도 누가 동냥해 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소리가 제법 컸다.
동네 꼬마들이 장난을 친 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애새끼가…….”
겨우 머리를 반쯤 든 그의 눈에 신발이 보였다.
남자의 신발. 그것도 제법 컸다.
‘애새끼가 아니잖아?’
추운개의 눈알이 옆으로 돌아 바가지를 향했다.
순간 졸리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으, 은자다!’
바가지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덩어리. 족히 두 냥은 되어 보이는 은자다.
신발의 주인이 던져 준 것일 터이다. 근래 일 년 만에 받아보는 통 큰 손님이라는 말.
졸음이 확 깼다.
만 근이 넘을 것 같던 눈꺼풀이 머리카락 한 올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그의 또렷해진 눈이 천천히 들렸다.
청의가 보이고, 허리에 찬 도가 보이고, 신발 주인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대의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바가지에 동전도 아닌 은자를 던졌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아이고, 무사님. 고맙습니다요!”
추운개의 머리가 땅에 닿은 순간, 청년이 나직이 물었다.
“개방의 제자인 것 같소만, 뭐 좀 물어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