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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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87화
187화
그가 앞장서자 나머지도 일제히 그의 뒤를 따라 입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목숨을 바쳐 주군을 구하는 것이 호법의 임무다. 그런데 거꾸로 되었다.
비참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냥 되돌아서서 미친 듯이 싸우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죽어가는 자신들을 놔두고 등을 보일 좌소천이 아니다. 자신들이 먼저 나가야 좌소천도 나갈 것이다.
너무나 그것을 잘 알기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도유관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젠장! 호법이라는 놈이 주군을 놔두고 도망쳐야 하다니!’
도유관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특히 사도진무는 참담한 마음에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사도진무야! 저들이 그토록 두렵더냐? 그토록 오만하던 너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
그때 좌소천이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등에 대고 전음으로 소리쳤다.
<빠져나가거든, 곧바로 태백산을 벗어나시오! 명심하시오! 나를 기다릴 생각 말고 전력을 다해서 왔던 길로 달려가시오!>
그러고는 홱 몸을 돌리고 무진도를 높게 쳐들었다.
전신이 붉은 기운에 휩싸인 공야황이 두 손에 혈천마혼구를 응집시킨 채 오 장 허공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눈을 반개한 좌소천은 그를 향해 천천히 도를 내려쳤다.
무진도에서 은은한 광채가 어둠 속으로 쭉 뻗은 순간!
고오오오오!
고막을 먹먹케 하는 압력과 함께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갈라졌다.
일도진멸악(一刀進滅惡)!
무진칠도의 마지막 칠식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칼 한 자루!
혈천마혼구를 밀어내던 공야황의 눈이 부릅떠졌다.
뒤따르던 은사는 해쓱한 표정으로 급급히 몸을 세웠다.
찰나!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쩌저저저적!
얼어붙은 하늘이 무너지고, 어둠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천선곡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좌소천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안개 속으로 빨려들고, 공야황은 허공에서 삼 장 이상 솟구쳐서 오 장 밖에 내려섰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급박하게 달려온 천외천가의 무리 중에서 몇 사람이 땅에 내려선 공야황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사오십대의 중년인들로 하나같이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순우연이 그들 사이에서 나오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주!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가 난데없는 난리를 보고 받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가고 있던 때였다.
게다가 공야황 등은 천외천가에 사실을 알려줄 시간도 없이 좌소천을 쫓았으니 순우연으로선 당연히 정확한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공야황이 입가를 문지르며 차갑게 말했다.
“놈이 본 해까지 들어와서 신녀를 구해갔다.”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녀를 구해갔다니요?”
“천소라는 놈이 몰래 들어와서 그녀를 데려갔다는 말이다!”
순우연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천소가 누군데 천해까지 들어가서 신녀를 구해갔다는 말씀입니까?”
“나도 그의 이름만 알 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야. 신녀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지!”
순우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공야황이 직접 나서서 싸운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 나서고도 막지 못했다니!
‘대체 어떤 자가 신녀를 구했단 말인가?’
솔직히 더 빨리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공야황을 비롯한 천해의 사람들이 나선 알고 느긋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신녀를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늘!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빌어먹을!’
순우연이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입술을 깨물 때였다. 공야황이 안개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이럴 시간이 없다. 놈도 깊은 내상을 입었으니 도망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야. 뒤를 쫓아라!”
태백산만큼이나 강인해 보이는 공야황의 입가에서 선혈이 흐른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눈빛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순우연은 내심 경악하며 좌소천이 빨려 들어간 안개 속을 바라보았다.
‘천소, 그가 얼마나 강하기에 공야황의 자존자대함이 흔들릴 정도란 말인가?’
직접 두 사람의 대결을 보지 못한 그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때다.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응?”
안개는 전과 같았다. 그런데 흐르는 방향이 전처럼 일정치가 않았다.
“기정, 진세가 바뀌었다! 가서 알아봐라!”
막 안개 속으로 들어가려던 사람들이 그 말에 멈칫했다. 진이 바뀌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사이 순우기정이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놀란 표정으로 뛰어나왔다.
“가주! 진이 파훼됐습니다!”
“무슨 말인가?”
“귀원칠곡진이 파훼되고 진무진만 남았을 뿐입니다.”
“뭐야?”
한편, 안개 속으로 튕겨진 좌소천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우욱!”
끝내 억눌렀던 선혈이 목구멍을 가득 메우며 쏟아졌다.
속은 시원해졌지만 진기가 흩어져 온몸에 힘이 빠진다. 생각보다 내상이 더 심한 듯하다.
좌소천은 흩어진 진기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부러진 칼날이 심장에 박힌 것만 같다.
짜릿한 고통이 혈류를 타고 치달린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상을 걱정하며 안개 속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 그는 이를 악물고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안개를 반쯤 통과했을 무렵, 뒤쪽에서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진이 파훼되었다는 걸 알았나 보군.’
곧 놈들이 몰려올 터. 좌소천은 서둘러서 안개를 빠져나왔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말대로 곧바로 이곳을 떠나간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절대 떠나려 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자신 역시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단 몸을 피하고 보자.’
좌소천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 공야황과 은사, 순우연을 비롯한 이십여 명이 안개를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피를 그 정도로 토했다면 내상이 보통 엄중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안개를 헤치고 나오던 중 핏물을 발견했다.
공야황에게 당한 내상이 깊은 듯했다.
순우기정의 말에 순우연이 동쪽을 바라보았다.
“태백산을 빠져나가려면 동쪽 산길을 타야 합니다. 이곳은 본 가의 터전, 추적대가 쫓는다면 날이 새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악문 공야황은 고개를 저으며 잇새로 말했다.
“아니야. 그는 동쪽으로 가지 않았어.”
“예?”
혈천마마공에 당한 자의 몸에는 특이한 기운이 심어진다. 그 기운이 남쪽에서 느껴진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공야황의 입가로 냉소가 걸렸다.
“그래도 그대들은 동쪽으로 추격해. 놈의 수하들은 그곳으로 갔으니까. 놈은 우리가 쫓는다.”
“알겠습니다, 해주.”
순우연이 대답할 때다. 공야황이 바윗덩이 같은 표정으로 순우연을 직시했다.
“명심해. 다른 놈은 사지를 잘라 죽이든 어떻게 죽이든 상관없다. 하나 신녀만큼은 터럭 하나 다치지 않게 데려오도록 해라.”
순우연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 명을 내리겠습니다, 해주.”
3
천선곡을 떠나 두 번째 능선을 넘을 즈음.
이를 지그시 악문 좌소천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조금 전, 사이한 기운이 스멀거리자 금라천황공이 마치 천적이라도 만난 듯 스스로 움직이며 사이한 기운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좌소천이 그 기운의 정체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혁련호운과 소영령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같았으니까.
그는 이제 혁련호운과 소영령의 몸에 그 괴이한 기운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공야황과 싸우다 보면 그 기운이 절로 스며드는 것이다.
‘정말 괴이한 무공이군.’
아마 금라천황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움직이지도 못했을지 몰랐다.
문제는 자신의 내상이 너무 심한 바람에 사이한 기운을 완벽히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러한 중에도 금라천황공이 공야황의 사이한 기운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뜻밖의 성과였다.
‘금라천황공을 이용하면 호운이나 영령의 몸을 다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좌소천은 일단 남쪽으로 더 내려가며 쉴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몸속에서 금라천황공과 대치하고 있는 사이한 기운도 문제지만, 당장 더 큰 문제는 내상이었다.
자신이 입은 내상은 생각보다 더 엄중했다. 시간이 흐르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정상적인 몸을 되찾을 수 있을 듯했다.
능선을 두 개 더 넘자 울울창창한 숲을 끼고 집채만 한 바위들이 늘어선 곳이 나왔다.
동굴은 아니더라도 쉴 만한 곳이 있을 법한 곳이었다.
좌소천은 그 근처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반 각 정도를 살핀 끝에 거대한 바위가 이마를 맞댄 곳에서 제법 괜찮은 장소를 발견했다. 깊이도 이 장 정도 되고 높이도 키보다 조금 높은 곳이었다.
그는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금라천황공을 운기했다.
그렇게 일각 정도 지났을 때였다. 금라천황공을 끌어올려서 운기요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음?’
공야황의 기운이다. 그가 근처에 왔다는 말.
가늘게 뜨여진 좌소천의 눈이 잘게 떨렸다.
아마 혼자가 아닐 것이다.
자신은 이제 겨우 사오 성 정도의 내력만을 회복한 상태. 그들과 부딪치면 단 몇 초도 견딜 수 없었다.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다.
‘하는 수 없나?’
좌소천은 이를 악물고 몇 곳의 혈을 스스로 두들겨서 잠력을 격발시켰다.
갑자기 내력이 들끓자, 사이한 기운도 힘을 못 쓰고 숨죽인 채 구석으로 도망쳤다.
이제 저들의 손에서 벗어난다 해도 잠력을 격발시킨 것으로 인해 당분간 무공을 펼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심하면 영원히 무공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소였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길.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들의 손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지나가는 바람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 할 판이었다.
‘하늘이 도와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좌소천은 내부에서 끓기 시작하는 기운을 느끼며 무릎 위에 놓아두었던 무진도와 묵령기환보를 집어 들었다.
공야황의 기운이 지척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쉽지 않을 것이다, 공야황!’
공야황과 마주친 것은, 집채만 한 바윗덩이들이 굴러다니는 곳을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였다.
“후후후, 천소!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오늘 내 손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다!”
공야황과 은사가 빠져나갈 곳을 막은 채 시커먼 하늘에서 내려선다.
좌소천은 그들을 보며 천천히 무진도를 빼 들었다.
‘과연 이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격발시킨 잠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자신조차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말을 주고받는 시간조차 아껴야 할 판.
좌소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사를 공격했다.
쉬이익!
무진도에서 묵빛 도강이 길게 뻗치자 은사가 대경해서 뒤로 물러섰다.
“헛!”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 거라 생각했거늘. 이전과 조금도 다름 없는 공세가 아닌가!
그가 물러서자, 좌소천은 한 번의 공격으로 멈추지 않고 연이어 무진칠도의 삼초식을 연이어 펼쳤다.
순간 묵빛 번개가 줄기줄기 뻗치며 은사를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