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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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07화
207화
제갈진문은 그런 분위기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만, 성급한 공격은 자칫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공격은 일단 적에 대한 분석이 끝난 다음에 해야 할 것입니다.”
남궁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지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 아니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이삼 일이면 어느 정도 자세한 상황이 밝혀질 것입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우경 진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이삼 일이라……. 그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구려.”
그러고는 넌지시 물었다.
“아직 좌 궁주에 대한 소식은 없소?”
전에는 좌소천이 있으나 없으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예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공야황과 대결을 벌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변한 듯했다.
제갈진문은 그 이유를 알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은…….”
그때였다. 밖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군사께 아룁니다! 영풍산장에서 서신이 왔사옵니다!”
“영풍산장? 안으로 들어오게.”
제갈진문의 명에 정첩당의 무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제갈진문에게 서신을 전했다.
제갈진문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신을 개봉했다.
잠시 후, 서신을 다 읽은 제갈진문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새벽에 천외천가의 대대적인 습격이 있었다 합니다.
“습격? 어떻게 되었다 합니까?”
대경한 육부경이 다급히 물었다.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다행히 물리친 것 같습니다.”
제갈진문은 일단 그렇게 말문을 열고 서신에 적힌 내용을 알려주었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앞 다투어 연합세력의 대처를 칭찬했다.
“오! 그거 반가운 소식이구려!”
“그 정도면 대승은 아니어도 놈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을 터, 충분히 승리했다고 볼 수 있겠소이다그려.”
“사도철군이나 공손양이라는 젊은 친구나, 참으로 대단하외다.”
하지만 칭찬의 말속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곧 그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너무 걱정할 것 없겠소이다. 화산에서 사람들이 오면 우리도 놈들을 칩시다!”
“저들도 놈들을 물리쳤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소이까?”
너도나도 소리치는 장로들의 목소리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영풍산장의 승리가 그들의 가슴에 호승심의 불꽃을 당겨놓은 것이다.
무림맹이 연합세력에게 뒤질 순 없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때 제갈진문이 뒤쪽에 적힌 내용을 마저 말했다.
“그리고, 놈들의 작수 지부와 종남에 있는 자들이 신비의 고수에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합니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종남의 송양자가 제일 반가워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비의 고수가 누군지 궁금했지만, 당장은 적 세력의 일각이 무너졌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럼 진짜 해볼 만하겠구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4
혈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태양은 떴다.
위가장의 아침은 혈전이 벌어진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정은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입을 열면 억누른 슬픔이 목구멍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들이다.
하루사이에 수백 명의 동료가 보이지 않는데도,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하긴 무당의 제자들이 이십여 명이나 죽었는데 자신 역시 가슴으로만 슬퍼하고 있다.
냉정해서가 아니다. 슬픔이 전염되는 게 무서운 것이다.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제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날까?’
문득 소식이 끊긴 좌소천이 보고 싶어졌다.
‘쳇, 무진만 있으면 천혈마신쯤은 단칼에 없앨 수 있을 텐데…….’
그때 저만치 헐레벌떡 뛰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오룡 중 둘, 철군영과 진현이었다.
‘얼래? 어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고도 힘이 넘치나 보군. 누구는 뼈마디 쑤셔서 죽겠는데.’
정은이 기둥에서 등을 떼고 다가오는 두 사람을 흘겨볼 때다. 코앞까지 다가온 철군영이 버럭 소리쳐 물었다.
“정은! 들었나?”
“뭘?”
“사신당을 재편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철군영은 정은의 시큰둥한 반응에 혀를 찼다.
“쯔쯔, 백호당의 대주 될 사람이 저래서야 원.”
정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인가? 백호당의 대주라니, 누가?”
“누구긴? 자네 말이지!”
“내가? 하하하! 철 도우도 원. 백호당은 서른 살 이상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무슨 소린가?”
“이제 아니야.”
“아니라니?”
“나이 상관없이 뽑는다고 하네. 실력 위주로!”
정은은 눈만 멀뚱거리며 철군영을 바라보았다.
철군영이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
“맹주께서 명을 내리셨네. 나이에 상관없이 실력 위주로 청룡과 백호당을 새로이 조직하라고 말이야.”
“그래?”
“그래. 해서 자네와 나, 공오, 진현이 모두 백호당에 편입되었네. 그리고 특히 자네는 대주가 되었네. 알겠나? 무당의 정은이 스물넷의 나이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을 거느리는 백호당 대주가 되었단 말일세. 하하하!”
“말도 안 돼!”
벌떡 일어선 정은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철군영에 이어 진현마저 정은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말이 안 되긴? 이번 싸움에서 자네가 보여준 실력은 기존 대주들을 압도하는 것이었네. 솔직히 우리도 자네가 그 정도의 실력을 감추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대주로 뽑힌 건 당연한 일이야!”
“그래도 싫네. 그럼 내가 사형들보다 위라는 말인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절대 안 되네!”
하지만 그가 방방 뜬다고 해서 한 번 결정된 일이 뒤집어질 리 없었다.
“잔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하게. 우리도 친구 덕 좀 보자고.”
“글쎄, 나는…….”
“백호당 역사상 최연소 대주가 되는 것이네. 무당의 이름을 날리는 일인데, 자네가 하지 않겠다면 장로님들이 가만있지 않을걸?”
철군영과 진현의 계속된 압박에 정은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사문의 어른들은 무당에 검성의 후예가 나왔다며 좋아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하기 싫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제길, 제기랄! 내가 언제 대주시켜 달라고 했냐고!’
그즈음, 그들과 이십여 장 떨어진 건물의 구석에서 한 사람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런 어수룩한 놈이 대주가 되다니! 말도 안 돼!’
정수였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새파란 놈이 대주가 되다니! 그것도 꼴 보기 싫은 놈이!
좌소천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정은마저 자신보다 앞서 간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정수의 눈에서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개새끼들, 어디 두고 보자!’
5
연일 계속되던 싸움이 멈춘 지 이틀째.
적막감이 화산 일대를 내리눌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폭풍전야!
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피의 폭풍이 몰아칠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피 마르는 긴장 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나흘째 되던 날. 화산에 머물고 있던 군웅들이 위가장으로 모여들었다.
“이걸 즉시 영풍산장의 공손양에게 전해라.”
제갈진문은 정첩당의 전령에게 서신 하나를 건넸다.
만약을 위한 대처였다.
천외천가와의 전쟁은 무림맹만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서로 손발이 맞아야 했다.
그런데 상주 공격은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영풍산장에 알리지도 않았잖은가 말이다.
영풍산장이 위남의 천외천가를 치고, 천외천가가 쳐들어온 것을 막아냈다는 것에 고무된 서두름이었다.
그는 그 점이 불안했다.
‘공손양, 그 젊은 친구라면 뭔가 적절한 대처를 취하겠지.’
* * *
상주 풍성보에 머물고 있는 공야황에게 무림맹의 움직임이 전해진 것은 그날 오후였다.
“훗, 화산에 있던 놈들이 내려왔단 말이지?”
“예, 해주. 위가장에 모인 숫자가 이천이 넘는다 합니다.”
“놈들이 위가장을 떠나면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놔두어라.”
뜻밖이라 생각했는지 은사와 유사가 고개를 쳐들었다.
공야황이 이유를 짧게 말했다.
“일일이 쫓아다니는 것도 귀찮아.”
처음으로 나온 세상은 넓었다. 며칠을 이동한 곳이 기껏해야 섬서의 일부라는 것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천하지존이 될 자신이 일일이 적을 쫓아다니며 싸운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었다. 하인이나 다름없는 천외천가가 할 일이지.
“안으로 불러들여서 한 번에 끝내 버려야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순우연에게 맡겨야겠어. 자잘한 일은 하인이 처리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은사의 입가로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알겠습니다, 해주.”
그때 공야황이 술잔을 잡아가며 물었다.
“그런데 종남에 있던 마사와 우암을 죽였다는 놈에 대해선 밝혀진 것이 있는가?”
“아직 확실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주.”
“작수를 친 놈은 도를 썼다던데?”
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공야황이 묻는 이유를 아는 까닭이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정보대로라면 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흐음, 그놈이 천소일 수도 있단 말이지?”
나직이 되묻는 공야황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생경함을 안겨주었던 자. 천소의 이름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에 열기가 일었다.
“예, 해주.”
“그런데 말이야. 순우연이 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걸 믿나?”
“예?”
은사가 고개를 치켜들며 반문했다. 유사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야황은 차가운 조소를 지은 채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천하에 그런 정도의 고수가 몇이나 될 거라 생각하는가? 셋? 넷? 순우연이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그럼 왜 순우연을 질책하지 않으신 겁니까?”
“나중을 위해서지. 결정적일 때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기 위해서 말이야.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할 하인의 기를 미리 꺾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후후후후.”
강하기만 하고 단순한 사람.
많은 사람들이 공야황을 그렇게 알고 있다. 심지어 순우연조차 그렇게 생각하며 공야황을 대한다.
하지만 그건 공야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천 년 만에 혈천마마공을 대성한 유일인이 바로 공야황이다.
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순우연이 공야황을 잘못 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짐작 가는 자라도 있습니까?”
유사의 물음에 공야황이 술잔을 내려놓고 입꼬리를 미미하게 비틀었다.
“잘 생각해 봐. 현재 강호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데, 그게 누군지.”
유사와 은사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럼……?”
공야황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비가 다시 채워놓은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신녀에 대한 것은 정말 모르는 것 같더군.”
흠칫한 은사가 공야황을 곁눈질했다.
다행히 신녀에 대한 말을 하면서도 바늘 끝만 한 흔들림도 없다.
‘신녀에 대해선 미련을 버리신 건가?’
아니라면 눈빛이 저렇듯 고요할 리가 없다.
그때 공야황이 술잔을 집어 들며 명을 내렸다.
“척발조에게 전해. 순우연의 계획을 승인한다고.”
“알겠습니다, 해주.”
고개를 숙이는 은사의 눈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공야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놈이 나타나면 신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지. 천하를 차지하고 그 계집도 차지한다. 나 공야황 곁에 어울리는 여자는 그 계집뿐이야.’
공야황은 붉어진 눈으로 술잔을 목구멍 안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