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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9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은천검제 9화

은천검제

제9화

 

진무린이 돌아보았고, 앉아 있던 셋이 일어서면서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멀찍이 떨어진 탁자에 앉았던 객들이 달아나듯 움직였고, 오가던 이들이 근처의 다점으로 뛰어들거나 건물의 기둥에 몸을 숨기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왔는지 말해.”

세 놈의 실력이 어찌나 허술한지 비룡방에서 만났던 마세호 홀로 셋을 감당할 정도였다.

“어디서 왔는지 고하라는 소리가 안 들려?”

질문을 던진 놈이 좌우를 돌아보았다.

과시하려는 의도에 저놈이 왜 버티는지 알겠냐는 의미를 담은 동작이었다.

“흑사련 호북지부는 문을 닫지 않았나?”

“뭐라?”

세 놈의 낯빛이 단숨에 변했다.

이놈들을 죽이는 것과 적당하게 두들기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마등을 더 화나게 할까?

진무린이 잠시 고민할 때였다.

채앵! 챙! 채앵!

세 놈이 꽹과리를 때리는 것만큼이나 요란스럽게 도를 꺼내 들었다.

소리 내는 연습을 했나 싶을 정도로 기막힌 출도 솜씨에 진무린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지막 경고다! 네놈의 출신과 이름을…….”

“시끄럽다.”

떠들던 놈이 딸꾹질이 나온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진무린의 기세에 눌린 탓이었다.

이것들을 죽이면 당장 이곳이 너무 소란스러워질 테니 적당히 다루는 것이 좋겠다.

진무린은 가볍게 내공을 펼쳐 세 놈을 짓눌렀다.

“꺼윽.”

비명을 듣자 역시나 나직하게 한숨이 나왔는데 고개를 세운 진무린은 가운데 있는 놈에게 집중했다.

“흑사련의 호북지부는 문을 닫았다. 네놈들은 뭐지?”

“설중객께서 오신다고 하여 기다리던 중입니다.”

망설임 없이 답이 나왔다.

설중객의 이름을 팔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답을 하는 놈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래? 설중객이 이리 온단 말이지?”

“설중객을 아십니까?”

“알지.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던 참인데.”

세 놈의 얼굴에 흐뭇한 기색과 안도의 낯빛이 흐른 직후였다.

“내가 우중객의 목을 갈랐거든.”

진무린이 설명을 덧붙이기 무섭게 세 놈은 목이 막힌 얼굴로 눈만 껌벅였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잠시 뒤에 호북지부로 가겠다. 그때까지 남아 있는 놈이 있다면 반드시 죽는다.”

진무린은 내공을 직전보다 강하게 뿜어냈다.

“끄윽.”

“컥.”

“왜 대답이 없어?”

“알……. 알겠습…니다. 끄윽. 끅.”

“너희 셋은 오늘 중으로 이곳 상등을 벗어나라.”

“예, 대…협. 꺼윽.”

답을 들은 진무린은 내공을 거뒀다.

조금 전의 거친 모습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세 놈은 상체를 깊게 떨군 채 목을 매만지며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일각쯤 뒤다. 명심해라. 남은 놈은 모조리 죽는다.”

진무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로를 돌아본 셋이 도를 손에 든 모습으로 급하게 뛰었다.

놈들이 사라지자 지켜보던 이들이 진무린을 힐끔거렸고, 입을 가린 채 소곤댔다.

차라리 잘됐다.

이렇게 마등을 긁어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진무린은 세 놈이 있던 옆의 탁자에 앉아 호북 상등의 한적한 거리를 지켜보았다.

소식이 전해지면 떼거리로 달려올 수 있고, 호북지부에서 몸을 웅크리고 결전을 준비할 수 있으며, 지원을 요청한다는 명분으로 몸을 감출지 모른다.

죽든, 살든, 선택은 놈들의 몫이었다.

탁자에 앉은 진무린에게 객잔의 노반인 듯한 인물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석 잔의 술을 마시고 싶소.”

“어떤 술로 하시겠습니까?”

마흔이 넘어 보이는 퉁퉁한 노반을 향해 진무린은 시선을 들었다.

“노반.”

“예, 대협.”

“술은 노반이 정하는 것으로 할 텐데, 미약이나 산공독 따위의 약을 타는 것은 거절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노반이 안도하는 얼굴로 객잔 안으로 움직였다.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청명한 기운이 숨을 통해 몸을 가득 메우는 가을날이었다.

은천문에 있었다면 사매, 사제와 함께 웃으련만, 현실은 호북의 상등에서 석 잔 술을 주문해놓고 피 냄새 풍기는 호북지부를 방문하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는 꼴이었다.

객잔에서 노반이 다시 나왔다.

작은 단지와 주문하지 않은 마라황과를 진무린 앞에 놓아준 노반은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객잔 안으로 사라졌다.

진무린은 첫 잔을 채웠다.

은천검법, 섬전검법을 스무 살에 이루었고, 5년 뒤에 ‘묵룡검법’을 얻었다.

오래도록 은천문이 고대하던 초식을 이룰 기재라 기대하는데 정작 ‘등룡창천’은 수련이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라 들었다.

은천문 25년의 소망이 진무린에게 달렸다.

비록 이름이 알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진무린을 내보내겠다며 나선 문주에게 등룡창천은 어떤 의미일까.

진무린은 잔을 들어 담긴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목을 후끈하게 달군 술이 가슴을 뜨겁게 했고, 이어 숨결에 향을 남겼다.

두 번째 잔을 채우려던 진무린의 눈에 세 사람이 들어왔다.

이 객잔에 마가 낀 것인지, 사람의 의도가 겹치고 겹쳐 마가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모르는데 하여간 내키지 않는 일이 연속으로 생기는 것만은 분명했다.

두 번째 잔을 채울 때 세 사람이 진무린이 앉은 탁자 앞에 도착했다.

“앉아도 될까요?”

“홍화루의 루주가 앉기에는 초라하지 않을까?”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어요.”

원예가 맞은편에 앉자 총관 백섭광과 호위인 듯한 무인이 좌우를 받치고 섰다.

“마음이 바뀐 것 같지는 않고?”

“궁금한 것이 있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주변에 있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고 가능한 한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하라는 문주의 바람이 잠깐 사이에 모조리 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상관없다.

청강을 지키자는 의도이니.

두 번째 잔을 비워낸 진무린은 세 번째로 잔을 채웠다.

“공자께서는 본녀에게 정말 매력을 느끼지 못했나요?”

치켜뜨듯 시선을 든 진무린 앞에서 원예는 우스울 정도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두 번째였어요. 그런 냉정한 눈은.”

“고작 그게 궁금해서 홍화루의 루주가 이런 곳을 찾았나?”

“공자께는 고작일지 몰라도 본녀에게는 삶이 걸린 일이에요.”

“흑사련을 도와 다른 이를 죽이는데 일조한 루주의 삶이 내가 냉정하게 본 것에 달렸다?”

“강호에 웃음을 파는 여인들을 대표하는 몸이니까요. 이런 본녀에게 매력이 없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죠.”

픽 웃은 진무린은 세 번째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본문에 사매가 있다. 루주보다 백 배쯤 아름답지.”

원예의 눈이 서늘한 느낌으로 빛났다.

“웃을 때면 비교할 수조차 없이 선하고.”

“본녀는 어떤 느낌이죠?”

“뭔가 감춘 눈이지.”

“아름다움을 물은 거예요.”

“뭔가를 감춘 눈은 아름다울 수 없어.”

“미에 대해 많이 아시는군요?”

“그래서 이렇게 물으러 오지 않았나?”

볼을 씰룩한 원예가 화를 억누르는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흑사련에 정보를 주지 않겠다면 본녀와 홍화루를 지켜줄 수 있나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한 잔 더 마실까, 말까.

“흑사련주가 두렵나요?”

“루주.”

“말씀하세요.”

왜 그런지 진무린을 화나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원예의 눈에 가득했다.

술은 여기까지다.

“흑사련과 잡은 손을 뗀다면 루주와 홍화루를 지켜주겠다.”

“어찌 믿죠?”

“선택은 루주의 몫이지.”

찡그릴 때, 갸웃할 때, 웃을 때, 심지어 입가에 조소를 그리는 움직임 하나에도 원예는 매력을 담을 줄 알았다.

그런 그녀가 차가운 낯빛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공자는 정말 본녀에게 관심이 없군요.”

굳이 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진무린의 침묵을 확인한 원예가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무례하게 찾아뵈었으니 헛걸음하지 않게 도움을 드리죠. 흑사련 호북지부는 지금쯤 텅 비었을 거예요.”

빠르다. 확실히 홍화루의 원예는 정보를 얻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진무린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련주에게 직접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자의 말씀도 건넸어요. 련주를 마주한 뒤에도 그런 여유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어깨를 들어 보인 진무린을 둔 채 찬바람을 날리며 원예가 돌아섰다.

궁금했다.

마등에게 말을 전했다는 것을 알리러 왔을까, 아니면 정말 차가운 눈초리에 자존심 상해서 온 걸까.

둘 중 하나는 핑계일 것 같은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 진무린은 알기 어려웠다.

이 좋은 날, 청강 같은 이와 마주하거나 사매, 사제와 함께 무공을 논하면 얼마나 좋겠나.

얼른 와라.

진무린은 그림으로 본 마등을 떠올리며 그의 등장을 바랐다.

 

**

 

화산에 돌아온 청강은 수제자이자 화산을 책임진 장문 은혼에게서 정도맹으로 열두 제자를 파견했다는 말을 들었다.

놀란 청강은 그 자리에서 급히 몸을 돌렸고, 은혼의 명을 받은 일대 제자 여섯이 청강을 따라붙었다.

청강과 일대 제자의 차이는 감추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가 벌어졌고, 마침내 보이지 않을 거리로 뒤처졌다.

어지간하면 제자들을 챙길 만도 한데 그만큼 청강은 절박하게 달렸다.

“아아!”

경공을 멈추고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청강은 오랜 세월 도를 닦은 것이 무색하게 비통한 심정을 토해냈다.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내공을 담은 그의 비통한 외침에 나무가 떨었고, 놀란 새와 산짐승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청강의 외침이 산을 울린 뒤에 여섯 명의 일대 제자가 내려섰는데 그들의 반응 역시 청강과 다르지 않았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매화검수 열두 명이 실 끊어진 연처럼 굵은 가지에 가슴이 뚫린 모습으로 나무에 걸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으랴.

작은 바람은 피에 젖은 그들의 옷을 날리고, 큰바람은 몸뚱이를 흔드는데 그럴 때면 새하얗게 변한 열두 명의 고개가 억울함을 항변하듯 좌우로 끄덕였다.

“제자들을 받아라.”

훌쩍 몸을 날린 청강은 단박에 검을 뽑아 휘둘렀다.

검광이 번득이며 아래로 떨어지는 매화검수들을 여섯 명의 일대 제자들이 받았다.

“하아.”

바닥에 뉘인 열둘을 보며 청강은 다시금 분을 이기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너희 둘은 장문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고 이들을 수습할 제자들과 함께 오너라.”

“예, 사숙조.”

일대 제자 둘이 급히 달렸다.

“이를 어찌할꼬. 이 아까운 녀석들을 어찌해야 할꼬.”

코 흘릴 때부터 보았던 제자들이다.

목검을 들 때 들떴던 모습, 진검을 들고 대견하게 형과 식을 보이던 때가 어제처럼 또렷한데, 오늘 그 열둘이 이리 비참한 모습으로 눈앞에 있었다.

몸을 숙인 청강은 차갑게 식은 열두 제자의 손과 팔을 매만지며 탄식을 그치지 못했다.

암중세력이 있음을 염려했다.

정도맹의 내부에도 간 자가 있으리라 짐작했었다.

비룡방의 일을 아는 청강은 그래서 열두 제자의 안위를 염려해 달렸던 것인데 너무 늦은 모양이었다.

“마등!”

열두 제자의 몸에 남은 도의 흔적을 보며 청강은 흑사련주 마등의 이름을 불렀다.

거칠고 깊게 가르는 상흔은 마등이 지닌 도법의 특징이었다.

은혜는 잊힐지언정 원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냉정을 억지로 끌어낸 청강은 몸을 일으켰다.

“정도맹의 누가 지원을 요청했더냐?”

“부맹주께서 직접 서찰을 보내신 것이라 들었습니다.”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청강은 정도맹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매화검수를 직접 지정했더냐?”

“송구합니다, 사숙조. 제자는 깊은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너희가 잘못한 일이 무에가 있느냐.”

이성을 되찾은 청강은 두어 번 숨을 골랐다.

“나는 이 길로 정도맹으로 향할 테니 너희는 장문인이 도착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라.”

일대 제자 넷이 고개를 숙이기 무섭게 퍼러럭 옷깃이 휘날리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든 이들 앞에 청강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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