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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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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화

은천검제

제2화

 

완연하게 기울어진 태양이 하루를 정리하려는 시간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틈에서 진무린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소가주이십니까?”

“네, 맞아요. 제가 등소옥이에요.”

“흑사련의 셋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은 용기에 감탄해서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진무린은 등소옥과 포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하왕하칠살의 이름이 뇌리에 떠도는 이들에게는 그저 철없는 두 사람으로 보이기 좋았다.

“누가 그러던가, 그 하왕하칠살이 내일쯤 본 방에 도착한다는 언급 말일세.”

“본 문에 정보조직이 있어 그를 통해 들었습니다.”

“허어.”

진무린은 철비완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걱정되겠다.

막막하기도 할 테고.

이런 이들이 호북 안평의 주인 행세를 할 정도로 그동안 강호는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고, 그만큼 지금의 정도맹은 나약했다.

답답한 심정의 진무린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이런! 정신이 없어 할 바를 못했소.”

방주 등평이 나서 마세호를 제외한 여섯의 무인을 차례로 소개했다.

인사가 끝난 뒤였다.

“사제가 우리 진 소협께 객청을 안내해드리게.”

등평은 진무린을 챙기며 나섰다.

“마침 저녁을 함께하려던 참이었소. 진 소협은 괜찮으시오?”

“하왕하칠살 외에도 이곳으로 향하는 인물이 있을지 모르니 저녁은 간단하게 했으면 합니다.”

“누가 또 온다고 보시오?”

놀란 등평이 고개를 내밀며 던진 질문이었다.

“하왕하칠살이 오는 것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그 외에도 혹시 근처에 있는 이들이 올지 모르니 저는 지붕에 있을까 합니다.”

근심 어린 이들의 고개가 다 함께 본청의 지붕으로 향했다.

“도움을 주고자 온 분을 어찌 지붕에 계시게 하겠소? 여기 사제와 내가 있고, 부족하나 딸자식이 익힌 재주가 있소. 수하들의 숫자도 제법 되니 진 소협은 객청에 머물며 잠시라도 여독을 풀도록 하시오.”

등평의 반응으로 봐서는 진무린을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내일 하왕하칠살이 도착한다는 마당에 굳이 외면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진 소협의 의견을 받아서 저녁은 객청으로 준비하겠소.”

“감사합니다.”

대강 자리를 정리한 진무린은 철비완의 안내를 받으며 객청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상황을 지켜보았던 태양이 저 멀리 산의 꼭대기로 기울어질 때였다.

등평은 책상에 놓인 추굉의 머리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자가 정말 추굉이 맞을까요?”

등소옥의 질문에 등평은 답을 하지 못했다.

상황 참 우습게 됐다.

책상 위에서 곱게 눈을 감은 이 머리가 추굉이 아니라면 이틀 뒤에 그가 온다는 말이고, 정말 추굉이라면 내일 하왕하칠살이 온다.

어찌해도 죽을 길이라.

한 가닥 희망은 추굉의 목을 잘랐다는 진무린 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린 등평을 따라 등소옥은 객청으로 연결된 문을 바라보았다.

진무린은 솔직히 잘 생겼다.

무엇보다 반듯하게 서 있을 때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수의 풍모가 보이기도 했다.

은천문이라, 처음 들었다.

과연 추굉의 목을 자르고, 하왕하칠살을 가볍게 말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을까.

그런 사람이 여태 강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만 들어가자. 이 물건을 치워라.”

입술 끝을 뒤틀며 생각에 잠겼던 등소옥에게 등평의 지시가 떨어졌다.

 

**

 

호북의 상등에 도착한 우중객 반서득은 곧바로 흑사련 호북지부의 건물로 들어섰다.

“누구십니까?”

“죽고 싶으냐?”

검은 무복을 입은 흑사련 수하 하나가 앞을 막았다가 흠칫 놀란 눈으로 반서득을 살폈다.

멀쩡한 날씨에 어깨에 두른 짚단, 눌러쓴 대나무 갓, 그리고 그 아래로 길게 찢어진 눈과 얇디얇은 입술까지.

“소인이 결례를 범했습니다!”

“귀찮다. 저쪽으로 물러나서 내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안으로 들이지 마라.”

“예!”

마등의 왼팔이라 일컫는 우중객 반서득을 호북의 말단이 언제 직접 보았겠나. 말이나 들었는데 그나마 그걸 기억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얼른 물러난 수하를 지나친 반서득은 호북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흠.”

사방에 흩어져 쓰러진 것은 흑사련의 수하들이었다.

73명이라 들었다.

그 많은 인원과 추굉이 한 사람에게 당했다니.

눈빛을 가라앉힌 반서득은 가장 먼저 앞쪽에 쓰러진 수하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이거 봐?

심장을 제대로 뚫렸다.

심지어 얼마나 빠르게 찔렀는지 상처는 딱 검면의 넓이만큼 간결했다.

찌른 상태에서 조금도 방향을 틀지 않은 채 검을 뽑아야 이렇게 깔끔한 상처가 남는다.

이 정도는 물론 반서득도 가능한 경지였다.

그러나 73명에 추굉을 더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급하게 다른 적을 상대하자면 아무래도 검이 비틀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상처가 넓어진다.

넘어진 수하의 몸뚱이를 건너간 반서득은 부채꼴처럼 쓰러진 넷을 살폈다.

“기가 막히는군.”

넷은 모두 목이 벌어져 죽었다.

키가 다르고 체형이 다른데 목을 자른 흔적이 일정하니 참으로 놀라운 솜씨였다.

이 각에 걸쳐 꼼꼼하게 상황을 살핀 반서득은 중앙에 쓰러진 추굉의 시신을 향해 움직였다.

한 자루 도를 손처럼 사용하는 추굉은 목이 잘려 뒤로 크게 누웠다.

‘마등의 눈에 들고자 그토록 버둥대더니.’

반서득은 추굉의 몸에서 네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천천히 호북지부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시작한 모양인데.”

상황을 되짚는 것처럼 반서득은 검을 꺼내 들고는 왼발을 뒤로 빼냈다.

“가장 먼저 달려든 저놈의 심장을 찔렀고.”

그는 검을 뒤로 돌려 쭉 내밀었다.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지는 수하의 모습이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어 우르르 달려든 네놈의 목을 갈랐으며.”

쉐엑.

반서득이 검을 휘두르자 목을 움켜쥔 수하 넷이 부채꼴로 쓰러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달려드는 추굉의 도를 밀쳐낸 뒤에 저쪽으로 날았는데.”

펄쩍 몸을 날린 반서득은 쓰러진 수하 사이로 가뿐하게 내려앉았다.

“여기에서 다시 심장을 뚫었고, 이어 검을 막은 뒤에 이놈들을 단숨에 해치웠다?”

그렇게 혼잣말을 뱉어가며 반서득은 쓰러진 수하들 사이를 누볐다.

“그리고 마지막에 추굉과 일대일로 마주 서서 단 두 수만에 목을 잘랐다는 거지?”

비틀비틀 물러난 추굉의 몸뚱이가 바닥에 크게 자빠지는 광경을 보는 것처럼 반서득은 시선을 천천히 움직였다.

“흠.”

다시 말한다.

반서득도 이 모두를 죽일 실력쯤 갖췄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그리고 고통 없이 보내는 검을 구사하라면 그건 어렵다.

게다가 처음 보는 검법이었다.

마등의 왼팔이라는 그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 나이를 살아오도록 이런 검법을 본 적은 없었다.

“스물 후반이라 했는데.”

반서득은 호북지부의 입구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같은 사파라 마등과의 대결이 처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진 사람이 수하가 되는 방식이어서 서로 굳이 죽일 것까지는 없었다. 더구나 마등의 재능을 익히 알아챈 반서득이 고개를 숙인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놈은 다르다.

반서득은 일생일대에 가장 무서운 적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래서 련주가 나를 보낸 건가?’

마등은 하왕하칠살을 비룡방에 보내놓고도 또다시 반서득에게 현장을 반드시 확인하라 지시했다.

그의 천부적인 감각이 무언가를 느껴서였을 텐데, 실제로 현장을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반서득조차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었다.

놈이 과연 비룡방에 있을까.

하등 중요하지도 않은 비룡방 따위를 지킬 이유는 없었다.

그것도 정도맹과 구대문파마저 흑사련에 밀리는 이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서득은 죽은 수하들과 목 없는 추굉의 시신을 다시 살폈다.

그런 뒤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잘라 머리를 가져갔다.

찾을 자신 있으면 오란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일일이 찾아다니기 번거로우니 와라?”

혼잣말을 뱉은 반서득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가주마. 가서 추굉의 머리를 찾고, 더불어 네놈의 목을 잘라 련주에게 바쳐주마.”

독한 눈빛으로 웃은 반서득이 몸을 훌쩍 날렸다.

그는 단박에 담장을 차고 솟구쳤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앞쪽 기와지붕 위를 달렸다.

 

**

 

말과 달리 객청에 준비된 저녁상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일곱 명의 무인과 했던 약속이 걸렸는지 등평과 철비완, 등소옥이 함께했는데 제대로 차린 상임에도 술을 권하지는 않았다.

질문은 뜨문뜨문 진무린에게 집중되었다.

“은천문은 근거가 어디요?”

“섬서에 있습니다. 진법으로 지키는 터라 자세한 위치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사문과 무공을 밝히지 않는 진무린에게 물을 것은 별로 없었다.

대화가 뜨문뜨문 이어진 이유였다.

“섬서라면 화산파가 자리한 곳이 아니오?”

“그 덕분에 화산파와는 교류가 있었습니다. 청강 진인께서 간혹 방문하셨는데 때로는 동행이 있을 적도 있었습니다.”

“구대문파의 고수겠지요?”

진무린은 가벼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첫인상이 변하지는 않았다.

젊고, 빈틈없으며, 날카로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등평은 물론이고, 철비완과 일곱의 무인들은 진무린을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풍모가 그리 만들었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처럼 진무린에게서는 고수의 풍모가 일어나는데 한 번 그것을 느끼자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 의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지금은 어떤 검법으로 추굉을 상대했는지가 궁금하니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

“진 소협. 우리는 돈에 팔려 다니는 무인들 올시다.”

무공이라면 죽고 못 사는 이들이 무인이고, 고수를 만날 기회를 누구보다 바라는 일곱이었다.

그들의 바람을 대신해서 기회를 엿보던 마세호가 진무린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 하왕하칠살이 온다니 우리는 그야말로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염치없지만, 혹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작은 가르침이라도 내려주실 것은 없겠소?”

일곱은 긴장한 표정으로 진무린을 바라보았고, 등평과 철비완, 등소옥은 궁금한 얼굴로 답을 기다렸다.

“바람은 이해하나 본문의 규정이 있어 그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하왕하칠살은 저 혼자 상대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진무린의 답은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공손하게 고개 숙였던 마세호의 눈에 퍼뜩 불쾌한 기색이 올랐고, 함께 있던 여섯은 무시당했다고 여겼는지 단박에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 따위의 검은 필요 없다는 뜻이오?”

“그렇다기보다는 굳이 나서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오?”

상황이 돌변하자 등평이 두 팔을 내밀었다.

“마 대협. 너무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무시당한 것으로 따지면 등평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등평이 만류하자 마세호도 더는 나서지 못했다.

불편한 기운이 탁자를 넘실거릴 때였다.

객청의 안팎에 걸어놓은 등불에 의지해 총관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방주! 귀빈이 오셨습니다!”

죽을 고비를 앞둔 마당에 귀빈?

“서둘러 나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절절매는 총관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누구신데 그러나?”

“화산의 청강 진인이라 하십니다.”

“뭐라!”

등평과 철비완, 등소옥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일곱의 무인들이 뒤따르듯 몸을 일으켰다.

섬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청강이다.

실력만 그런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비룡방의 등평이 그를 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막막할 정도인데 그 장본인 청강이 직접 호북의 안평 비룡방을 찾았단다.

“어디 계신가?”

“서기가 이리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결례가!”

급히 등평이 몸을 빼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서기가 공손한 태도로 들어서고, 그 뒤에 머리칼과 수염이 하얀 도사가 검을 들고는 뒤따랐다.

소매에 그려진 수북한 매화 송이, 화산파를 상징하는 검, 의심할 바 없는 화산의 검수였다.

“방주. 화산의 청강 진인을 모셨습니다.”

서기가 아뢴 다음이었다.

“진 대협!”

청강이, 섬서 3대 고수이자 화산을 대표한다는 그 청강이 진무린을 대협이라 불렀다.

대협이라는 호칭도 놀라운데, 심지어 청강은 그립던 이를 만난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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