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87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87화
고개를 젓는 호현의 모습에 명인이 주위를 한 번 보고는 전음을 보냈다.
-그럼 듣기만 하십시오. 장문인께서 호현 학사께 보내는 물건입니다.
명인이 품에서 태극음양경 사본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호현이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호현의 말에 명인이 급히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모습에 호현이 입을 다물자 명인이 말을 이었다.
-장문인께서 보시고 훗날 무당에 돌려주라 말하셨습니다.
명인의 말에 호현이 태극음양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태극음양경을 보고 있자니 운학이 떠올랐다.
‘신선 어르신…….’
호현이 운학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고 있을 때 명인이 말을 이었다.
-무당에서 나온 책, 그것도 태극과 음양이라는 이름을 담은 것이라면 사람들이 욕심을 낼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태극음양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명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호현이 문득 품에서 태극권의 비급을 꺼내 들었다.
무당을 하산하는 이상 무당의 물건을 가지고 내려갈 수는 없는 것이다.
호현이 꺼낸 태극권 비급에 잠시 얼굴에 놀람이 어렸던 명인이 그것을 받아 품에 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호현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호현에게 포권을 한 명인이 경공을 시전해 빠르게 사라졌다.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사라지는 명인의 모습에 잠시 멍하니 있던 호현이 태극음양경을 보다가 품에 집어넣었다.
“스승님이 기다리시겠구나.”
작게 중얼거린 호현이 죽대 선생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무당산을 내려온 일행들이 오진이 머무는 객잔에 도착한 시간은 날이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날이 늦어 오늘은 쉬고 내일 균현을 떠나기로 한 일행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현은 죽대 선생과 같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현이 무당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죽대 선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사들과 있었던 일을 가만히 듣고 있던 죽대 선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인배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다 문득 죽대 선생이 호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아주 큰 경험을 하였구나.”
“경험?”
“그렇다. 너와 나처럼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늘 소인배들의 질시와 모략에 시달리게 되어 있단다. 훗날 네가 만난 소인배들과의 일이 너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이 학사들과의 일을 떠올렸다.
‘좋은 경험이라……. 그러고 보니 학사들에게 풀어야 할 것이 있는데.’
자신을 핍박했던 학사들을 떠올리는 호현을 죽대 선생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품 안에 끼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몇 달 떨어져 있다 본 호현은 이제 다 큰 성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 호현이 언제 이리 컸다는 말인가. 이제는 일가를 이루어도 되겠구나.’
그 생각에 씁쓸한 기분과 함께 대견함을 느낀 죽대 선생의 머리에 제갈연이 떠올랐다.
‘제갈 가문의 여식만 아니라면 우리 현아와 잘 어울릴 터인데…….’
제갈세가가 단순한 무가라면 죽대 선생은 호현과 제갈연의 혼약을 허락했을 것이었다.
죽대 선생이 제갈세가와 호현의 혼약을 거절한 이유는, 제갈세가가 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죽대 선생이 황궁에 있을 때 제갈 성을 사용하는 관리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반 이상은 한 다리 건너 제갈세가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제갈세가이니 호현이 그 집과 연을 맺게 된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의 파벌 싸움에 끼이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죽대 선생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호현을 바라보던 죽대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현아와 함께 밖으로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혼처를 알아보아야겠구나.’
“산을 올랐더니 피곤하구나. 이만 물러가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호현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밖으로 나가자 죽대 선생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디 보자……. 분명 몇 년 전에 대암 그 친구가 손녀 자랑을 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대암은 죽대 선생의 오래된 지우 중 한 명으로 관직에 나간 적은 없지만, 유림에서는 알아주는 명사 중 한 명이었다.
가끔 지우들과 서신으로 교류를 했는데 그때 대암에게서 손녀딸을 자랑하는 내용의 서신을 받은 적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던 죽대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대암 그 친구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군.”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호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주다가 객잔 일층으로 내려왔다.
객잔 일층에 내려온 호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포권을 했다.
“명균 도장님.”
호현에게 다가온 사람은 바로 무당파의 명균이었다. 호현을 보며 미소 지은 명균이 객잔 밖을 가리켰다.
“호현 학사, 스승님께서 나를 보면 싫어할지 모르니 밖으로 나가시지요.”
명균이 앞장서 밖으로 나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객잔 밖에 있는 한 찻집은 밤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진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밤늦게 술을 걸치고 갈증을 풀기 위해 온 손님으로 약간 북적거리는 찻집의 빈자리를 찾아 앉은 명균이 호현이 앉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제가 잠시 문내의 일을 보는 사이에 하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인사도 없이 내려와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사제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을 하던 명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무당파에 와서, 그것도 장문인 앞에서 호랑말코와 도사 나부랭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후후후! 만약 이 일이 무림에 소문이 난다면 무당의 얼굴이 땅에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그런…….”
“농담입니다.”
미소를 지은 채 호현을 보던 명균이 말을 이었다.
“무당에서 지내셨던 일들, 호현 학사께 좋은 추억이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잊지 못할 기억들입니다.”
“잘됐군요. 무당도 호현 학사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말없이 호현을 보던 명균이 피식 웃으며 작은 주머니와 보따리를 내밀었다.
“만남은 길면 좋고 이별은 짧으면 좋다고 했던가요. 이건 호현 학사께서 놓고 가신 물건들과 그동안 호현 학사께서 본문에 일을 해주신 것에 대한 급여입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자신의 물건들을 놓고 왔는데 명균이 그것을 챙겨 온 모양이었다. 명균이 내미는 보따리와 주머니를 본 호현이 자신의 보따리만 받았다.
“무당에 제가 받은 것이 많은데 어찌 이런 것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물건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희는 호현 학사께 무당 뿌리라도 뽑아서 드려야 합니다.”
“그게 무슨?”
호현의 물음에 명균이 웃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깨달음을 주셨잖습니까. 그 깨달음에 대한 보상을 생각한다면……. 어휴! 저희 무당으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어찌 제가 드린 것이겠습니까. 다 그분들의 깨달음이 닿았기에…….”
“호현 학사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도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그래야 저희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호현이 주머니를 받자 명균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찻집 밖으로 나가던 명균이 지금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께서 유림에 계신 것은 알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무림인과 엮이게 될 일이 있을 것입니다. 혹 그들과 엮여 힘들거나 억울한 일이 생길 경우 어디 성, 어디 현이든 그 어디라도 정파라 불리는 문파가 있을 경우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제 이름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에 대한 보답은 명균이 할 것이라 하면 도와줄 것입니다.”
호현이 무당파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장로들에게 쩔쩔매는 명균의 모습을 많이 봐서 그렇지, 명균은 무림에서 명성과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차기 무당 장문인으로 내정이 되어 있는 자이자 현 무당칠검의 수좌가 바로 그이니 말이다. 그런 명균의 이름을 판다면 그 어떤 문파라도 호현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명균을 그저 사람 좋은 도사라고만 알고 있는 호현은 그가 한 배려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무림인과 엮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혹이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내일 일도 모르는 것이 사람인데 훗날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명균 도장의 이름을 몇 번 팔아 보겠습니다.”
농담처럼 웃으며 하는 호현의 말에 명균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정도에 어긋나는 일로 제 이름을 파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무량수불.”
도호를 외우며 찻집을 나서는 명균을 보던 호현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방헌으로 향하는 관도를 호현과 그 일행들이 가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오진이 모는 마차 옆에는 제갈현진과 호현들이 말에 탄 채 따르고 있었다.
말을 탈 줄 모르는 호현은 제갈현과 같은 말을 타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가던 죽대 선생이 슬쩍 휘장을 열었다.
펄럭!
휘장을 연 죽대 선생이 제갈현의 뒤에 타고 있는 호현을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이 굳어졌다.
‘쯔쯔쯔! 사내대장부가 말 하나 탈 줄 몰라 다른 자의 허리춤이나 잡고 있는 꼴이라니……. 내가 현아 녀석을 너무 오냐오냐 키웠구나. 내 저런 녀석을 다 컸다고 생각을 했으니……. 쯔쯔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죽대 선생이 휘장을 소리 나게 내렸다.
펄럭!
그런 죽대 선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현은 그 나름 진땀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제갈현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진법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진법은 저도 잘 모르는 분야인데 그건 왜?”
“저희 가문의 무공 중에 진법을 이용하는 수법과 검법, 그리고 보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현 학사의 고견을 듣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그런 것을 왜 학사인 나에게 묻느냐는 것입니다.’
제갈현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호현도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답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갈현이 묻는 것은 무공이 주류였으니 호현으로서는 마땅히 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 호현을 잠시 보던 제갈현이 슬며시 물었다.
“무당과 화산의 고수들이 호현 학사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들었습니다.”
제갈현의 말에 호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분들의 도가 높으셨기에 그런 것이지. 제가 가르침을 드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호현 학사께서 하신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셔도 상관없으시겠습니까?”
제갈현의 말에 호현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아! 제가 실수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이야기하지 못하는 제가 더 송구합니다.”
호현과 제갈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제갈현진은 마차 옆에 붙어서 죽대 선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르신,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제갈현진의 목소리에 죽대 선생이 휘장을 걷어 올려 고개를 내밀었다.
“조금 그렇군.”
“저기 보이는 찻집에서 요기나 하면서 조금 쉬었다 가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시게.”
죽대 선생의 허락에 제갈현진이 관도 한쪽에 있는 찻집으로 말을 몰았다.
관도 한쪽에 찻집은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곳이었다. 찻집 입구에 말을 메어 놓은 일행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다 할 지붕과 벽은 없었지만 안에는 이미 먼저 온 객들이 탁자 두 개를 차지한 채 차를 마시거나 찐빵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