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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9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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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9화

은천검제

제29화

 

점창 출신의 부맹주와 공동의 약연 뒤로 대략 열다섯 명의 제자들이 섰다. 그중에는 등평의 볼을 검으로 벤 장본인 자경도 있었다.

점창과 공동의 제자들이 어깨를 잡아 무릎을 꿇리는 순간에도 원예와 설란, 백섭광은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들 나름으로는 진무린을 지켜주고 싶어 그런 모양이었다.

깊은 사연까지는 모른다.

머리가 둘인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귀혼곡을 지키려 애쓴 원예를 보며 진무린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맹주. 저들과 함께 본맹에서 활동한 마인이 있는데 알고 계시오?”

등평만큼이나 덩치가 있는 부맹주의 질문이었다.

진무린은 바닥에 꿇어앉은 세 사람에게서 야비한 표정의 부맹주에게 시선을 들었다.

그는 확신을 담은 눈으로 진무린을 보고 있었다.

부맹주의 다부진 질문에도 황종관과 청강 역시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소수마공 따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 역시 바닥에 꿇어앉은 홍화루의 세 사람처럼 우선은 진무린을 지키겠다는 심정인 모양이었다.

“저들이 누구요?”

“그보다는 맹주의 곁에 있는 마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소?”

“저들이 누구냐고 물었소.”

황종관은 단호했다.

그의 태도가 이상했던지 부맹주는 먼저 눈가를 좁혔고, 이어 입을 열었다.

“아실 것도 같은데 굳이 질문하시니 답을 드리겠소. 홍화루의 루주와 부루주, 총관이오.”

“저들이 마인이란 증거가 있소?”

“저 계집은 소수마공을 익혔소이다. 맹주께서 루주라는 계집의 완맥을 한 번만 짚어보셔도 아실 일이오.”

말끝에서 부맹주는 시선을 들었다.

“그대가 은천문의 진무린이란 대협인가?”

이죽대는 음성이었다.

또한, 진무린을 곤경에 몰아넣었다는 만족함과 황종관, 청강이 도울 수 없으리라는 기대가 부맹주의 얼굴에 가득했다.

“뉘신데 저를 아십니까?”

“오호, 이런.”

부맹주가 이거 보라는 투로 주변을 둘러본 뒤에 시선을 가져왔다.

“본인은 정도맹의 부맹주를 맡고 있는 ‘소강명’이라 하네. 이분은 공동의 장로로 계시는 약연 진인이시고.”

오른손을 들어 약연을 가리킨 소강명이 옅게 웃었다.

“듣자 하니 명문정파의 배분을 강조했다던데 자네는 어째서 나와 약연 장로에게 예를 보이지 않는가?”

“처음엔 두 분을 몰라서 그랬고, 지금은 이미 말씀을 편하게 하셔서 따로 예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두 분과 저는 배분이 같으니 굳이 고개를 숙일 관계는 아닙니다.”

“흥!”

진무린의 대꾸를 코웃음으로 받은 소강명이 표정을 독하게 바꾸었다.

“그대가 소수마공을 익혔는가?”

“아니오.”

진무린은 단박에 소강명의 질문에 답했다.

놀라서였을까.

황종관과 청강이 결국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나는 분명 익혔다고 들었네.”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크흠.”

아차 싶었는지 소강명은 헛기침과 함께 말을 바꿨다.

“그것까지 자네에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 자네가 소수마공을 익혔다면 어쩔 참인가?”

“맹주, 부맹주, 청강 진인, 약연 장로, 네 분이 돌아가며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확인했는데 내가 소수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실제로 소수마공을 익힌 적 없다.

소수음공을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그나마 이미 녹여버린 터라 꿀릴 것도 없었다.

예상과 빗나간 상황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원예를 내려다보았던 소강명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내가 자네의 완맥을 잡아 확인한 뒤에 소수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오해한 부분에 대해 사죄하지.”

“마인으로 오해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내공을 확인받는 것은 본문의 위신이 걸린 중대한 일입니다.”

“사과한다지 않는가.” 

진무린의 시선을 소강명은 피하지 않았다.

“내공을 점검해서 소수음공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부맹주의 한쪽 귀를 내놓으십시오.”

“뭐라?”

놀라 크게 뜬 소강명의 눈에 곧바로 분노가 올라왔다.

“그대가 감히 점창과 나를 능멸하느냐!”

“본문의 이름값이 구대문파에 뒤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귀 한쪽도 걸지 못하는 명분을 내세워 본문의 명예를 바닥에 떨어트리겠다는 자가 예우를 바란단 말인가!”

“이런 괘씸한!”

진무린의 대꾸에 놀라고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소강명은.

황종관과 청강을 비롯해 지켜보던 이들 모두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직후였다.

뒤에 서 있던 점창과 공동의 제자들이 진무린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 잘난 이름값에 기대 돼먹지 않은 짓을 하는 자들의 시선을 진무린은 확인하듯 돌아보았다.

“소수마공이 어쩌니 떠들 인물은 반노쌍복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맹주?”

질문을 받은 소강명의 눈알이 교활하게 움직이며 황종관을 살폈다.

“그들이 정작 찾는 것은 소수마공이 아니라 소수음공입니다. 그 이유가 강호삼보 중 옥환의 위치가 적혔다는 천서유기를 찾는 데 있고.”

상황이 바뀌었다.

황종관이 확인처럼 던진 시선을 약연이 외면하는 것이 그랬다.

“부맹주와 약연 장로는 어찌해서 천서유기를 찾는 반노쌍복과 연통하는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두 분 선배를 뵌 적이 없다!”

버럭 대꾸를 내놓은 소강명을 보며 진무린은 옅게 웃었다.

“그럼 내가 소수마공을 익혔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습니까?”

곤란한 소강명은 볼만 씰룩였다.

“이름도 댈 수 없는 이의 말만 듣고 감히 본문을 욕보이려 했다니, 점창은 본문이 그리 우습게 보였습니까?”

대꾸하지 못하는 소강명과 약연, 그 뒤에 선 제자들을 돌아본 진무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명문정파의 인물들이 소수음공과 소수마공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울 판국에 이제는 힘없는 이들을 이리 핍박했으니 만약 이들이 마인이 아니라면 그건 어찌 용서를 구하실 겁니까?”

“그대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소수음공을 익힌 자들이 아닌가!”

“정도맹은 강호의 세 가지 보물을 찾는 자를 무림공적으로 한다고 발표했지, 소수음공을 익혀서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크흠.”

헛기침을 토해낸 소강명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투로 황종관을 보았다.

“이곳에 온 세 사람이 소수마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이들을 핍박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시오.”

“맹주!”

“아니면 이들이 소수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밝히시든가.”

입술만 씰룩일 뿐, 소강명은 대꾸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잠시 고민한 뒤에 처리하겠소. 그리고 이곳의 세 사람은 정도맹의 이름으로 유감을 표하고, 피해 본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할 테니 그리 아시오.”

“맹주께서 끝내 본파와 공동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드실 참이란 말씀이오?”

“일을 바로잡는 게 어떻게 부끄러운 일이 되오?”

“다 들었소! 공동의 자경에게 교만하게 굴었던 비룡방을 싸고도는 것으로도 모자라 호법이란 자에게 무공을 가르쳤으니 이것이 본파와 공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씀이오?”

소강명의 대꾸에 황종관이 입술을 늘이며 웃었다.

“맹주의 직을 맡은 내가 부맹주께 행동을 지적받을 줄은 몰랐소. 부맹주께서는 점창과 공동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핍박하시겠다는 거요?” 

이런 배포와 강단이라니, 진무린이 내심 다시 볼 정도로 지금 황종관은 듬직한 모습이었다.

대강 정리되는 모양새였다.

소강명과 약연이 의도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다음으로 두 사람이 무력을 선택하기에는 부족한 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부맹주가 검을 꺼내 들기에 명분이 부족했다. 

“두 분은 제자들을 데리고 돌아가시오.”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소강명이 몇 차례 거친 숨을 내쉰 뒤에 몸을 돌렸다.

부맹주와 장로가 물러서는데 제자들에게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늑대를 따르는 이리 떼처럼 약연과 제자들이 움직이면서 맹주의 거처에 침묵이 찾아왔다.

“일어날 수 있겠나.”

황종관의 질문을 받은 세 사람이 복잡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일이 이리된 것에 유감을 표하는 바이네. 천서유기와 관련해 소수음공을 익힌 점은 나중에 따로 설명할 시간을 갖도록 하지. 사람을 붙여줄 테니 우선 돌아가 있게.”

“맹주의 분명한 처리에 감사드려요.”

대표로 인사한 원예가 그제야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분함, 억울함,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아쉬움, 염려까지, 그녀의 눈이 표정만큼이나 복잡했다.

“밖에 있느냐!”

“예, 맹주!”

가슴에 정도맹의 표식을 붙인 무인이 급히 들어왔다.

“여기 세 분을 홍화루로 모시고,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더 생기지 않도록 사람을 근처에 두어라. 본맹을 포함해 누구라도 무인이 홍화루에 들어가면 지체없이 내게 알리는 것을 잊지 마라.”

“명을 받았습니다.”

황종관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한 세 사람이 돌아가고 남은 셋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려앉는 어색함이 싫은 것처럼 황종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늘이 자네를 돕는 모양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리되었으니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네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 않나.”

잠시 불편했던 감정을 지우려는 황종관의 농 섞인 말이었다. 그 옆에서 청강은 이렇게 풀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못다 한 말씀을 마저 드릴까 합니다.”

“그러세.”

자리에 앉은 뒤에 진무린은 소수음공과 관련된 이야기를 황종관과 청강에게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귀혼곡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루주가 이안공자의 딸이라니 그것 또한 놀랍네.”

황종관이 감탄을 터트릴 때 진무린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뭔가?”

“승조표국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왕 말이 시작된 참이었다.

진무린은 승조표국의 약재를 쌌던 보자기가 풀렸었던 일과 그들이 몰살했다는 소식마저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반노쌍복이 그랬다고 보는가.”

“그들은 아닐 겁니다.”

“진 대협. 그렇다면 설마, 설마 점창과 공동이 그들을 살해했다고 보시는 게요?”

청강의 질문에 진무린은 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어떤 확신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때라 그랬다.

“제가 소수음공을 지녔음을 아는 이는 홍화루, 반노쌍복, 문주가 전부였습니다. 그중에서 부맹주와 손을 잡을 이는 반노쌍복밖에 없습니다. 우선 그곳에서 출발해 볼 생각입니다.”

“강호에 피바람이 부는 것이 확실한가 보오. 느닷없이 소수음공과 천서유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오.”

청강의 탄식이 나온 다음이었다.

“그 전에 자네에게 당부할 것이 있네.”

황종관이 묵직하게 말을 건넸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빠르게 알려주게. 자네는 어떻게 여길지 몰라도 나는 은천문이란 이름과 내가 보고 느낀 자네, 여기 진인의 신뢰를 믿고 목숨을 건 꼴이니 그럴 권리가 있다고 보네.”

“알겠습니다.”

“또한, 이는 나 개인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동 황가장, 그리고 화산과 청강 진인이 함께한다는 것도 잊지 말게.”

“그 또한 명심하겠습니다.”

진무린이 답을 건네자 황종관은 조카를 바라보는 삼촌처럼 미소 지었다.

“저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은 짐작하겠지?”

“강하게 나와주길 바랄 뿐입니다.”

“이런! 부맹주와 약연 장로의 꿈자리가 뒤숭숭하겠구나!”

황종관이 농담 끝에 웃음을 터트렸고, 짧은 오해는 더욱 돈독한 믿음을 끌어내며 끝을 맺었다.

“저녁을 드세.”

그 끝에서 진무린을 보내기 싫다는 얼굴로 황종관은 저녁을 제안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진무린은 두 사람과 함께 저녁을 함께했다.

“마등이 다시 살아난 이유에 관한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비월이 모두 나서 찾고 있다네. 조만간 소식이 있을 테니 그 또한 들어오는 대로 알려줌세.”

식사하는 내내 오간 대화는 역시 혼란스러운 강호에 관한 의논이었다.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만약 홍화루의 루주가 천서유기를 통해 옥환을 얻을 생각이라면 무림공적에 이름을 올려야 하네.”

“제가 알아보고 의논드리겠습니다.”

“조용하게 처리했으면 싶어.”

황종관이 당부를 전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조금 뒤에 홍화루에 들러볼 생각입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황종관과 청강이 진무린을 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내막은 어떨지 모르나 당장 맹주와 진인, 그리고 제가 저들의 눈에 걸린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오늘 있었던 일을 통해 저들은 맹주와 진인의 입장이 어떤지 확신했을 것입니다.”

“흠.”

“당장 눈에 보이는 도전도 그렇지만, 혹여 홀로 다니실 일이 있다면 주변을 살펴주십시오.”

“죽음이 두려우면 자리에서 물러나라 한 것과는 다른 말이로군?”

말꼬리를 잡는 듯한 대꾸였으나 황종관은 흐뭇한 눈으로 진무린를 지켜보고, 청강은 또 턱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세 사람이 진정한 한 편이 되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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