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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8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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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8화

은천검제

제28화

 

비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호법은 맹주께서 주신 공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진무린은 철비완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황종관이 함께 듣기를 바라서 공력을 높였고, 실제로 그런 눈치였다. 눈이 흔들리는 철비완을 두고도 호통은커녕 묵묵히 기다리는 황종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탁한 기운은 심법의 고하와 다르니 수련 방법의 잘못에서 비롯되고, 부를 편처럼 사용하는 것은 호법께서 비룡방의 오의를 해석함에 한쪽으로 편중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철비완이 마른침을 삼켰다.

금강역사처럼 도를 든 황종관이 눈을 부라리는 앞이니 어떤 말인들 귀에 박히지 않을까.

[채찍을 도끼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끼에 채찍의 묘리를 얹는 것입니다. 내공을 상체와 팔에 집중한 탓에 보법과 신체의 유지에 드는 기운이 탁해집니다. 먼저 소주천을 하십시오.]

진무린의 전음이 끝나자 철비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맹주.”

“어디 도끼를 보여주게.”

황종관이 나직하게 요구한 뒤였다.

철비완은 얻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급히 손을 뿌렸다.

공력을 얻었고 탁한 맥을 뚫었다.

거기에 진무린의 조언에 이어 정도맹주와 비무까지, 비룡방과 철비완의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좋았는데,

카앙! 캉캉캉!

단 한 가지, 황종관의 도가 아쉬웠다.

깨달음을 얻으라는 이유로 배려한 비무 아니던가. 

그렇다면 철비완에 맞춰줄 만도 한데 황종관은 ‘네놈이 감히 내게 도끼를 휘둘러?’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거칠고 날카롭게 도를 휘둘렀다.

도와 부가 마주칠 때마다 불꽃이 탕탕 튀더니,

쉑! 쉐에엑! 쉑! 피릿!

날카로운 도광의 끝에서 철비완은 왼손 소매를 냉큼 잘리고 말았다.

지켜보던 등평과 등소옥이 ‘혹시 구대문파에 대든 것이 못마땅해 비무를 핑계로 죽이려는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 만큼 황종관의 도는 날카로웠다.

쉑! 피읏! 쉐엑! 쉑! 핏! 피잇!

연이어 황종관의 도가 허리를 접은 철비완의 장포 앞자락과 가슴 부위를 거칠게 가르면서 비무는 점점 더 살벌함을 더했다.

카앙! 캉! 쉐엑! 피잇! 카아앙!

도끼를 거칠게 밀어낸 도가 철비완의 어깨 부근 옷자락을 자르더니 곧바로 목덜미를 스쳤는데 이때 황종관은 흡사 철비완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용기와 도전 의식이야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렇더라도 실력의 고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철비완은 이내 머리카락이 베이는 위기를 맞았고, 이어 어깨와 겨드랑이, 허리, 팔뚝이 갈라지는 곤경에 빠졌다.

이게 진정 비무인가, 아니면 죽이기 위한 핑계인가.

지켜보던 이들이 진무린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황종관이 빛살보다 빠르게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직후였다.

쉐에에엑!

그의 도가 철비완의 상체를 사선으로 잘라낼 것처럼 섬뜩하게 번득였다.

철비완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한 수였다.

찰나의 순간에 삶을 내려놓는 것처럼 철비완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굳었다.

그 순간이었다.

진무린의 모습이 흐릿하게 철비완의 뒤에서 피어났다.

콰악! 휙!

철비완의 뒤에 나타난 진무린은 그의 목덜미를 당겨 황종관의 도에서 빠져나오게 했고,

휘익!

다시 그의 목덜미를 눌러 오른쪽 위로 들었다.

“철 호법! 보법을 이용하시오!”

쉐에에엑!

재차 파고드는 황종관의 도를 피해 진무린은 철비완의 왼편 어깨 뒤를 강하게 밀쳤다.

팽그르.

그 바람에 철비완은 오른편으로 한 바퀴를 돌아 도를 피했으나 앗, 하는 사이에 진무린의 앞에 도광이 번득였다.

철비완을 밀쳐낸 뒤에 달려드는 도광이어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비무 중에 사고가 터지나.

지켜보던 이들의 생각이 멈추는 순간에,

쉐에에엑.

몸을 뒤로 눕힌 진무린이 무릎의 힘만으로 버티며 유연하게 위기를 빠져나왔고,

“오!”

지켜보던 이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진무린의 동작이 불쾌했을까?

황종관은 도를 잡은 손목을 흔들었다.

휘리릿! 휘릿!

삽시간에 도 끝이 마치 뱀의 머리처럼 철비완을 향해 파고들었다.

“보법에 집중하시오!”

진무린은 철비완의 왼쪽 무릎 뒤를 오른발로 밀었다.

휘익!

조금 전 진무린이 보인 것과는 확연히 아쉬운 철판교의 수법으로 철비완이 몸을 뉘였다가 일어난 뒤에,

“일단악!”

진무린이 흔한 검법의 하나를 외쳤고,

부아-앙!

혼란한 중에도 철비완은 진무린의 말에 따라 도끼를 검처럼 수직으로 내리쳤다.

“종횡무변!”

터억!

다시 흔한 검법 하나를 외친 진무린이 이번엔 철비완의 왼쪽 어깨를 세차게 밀었다.

붓붓붓붓붓!

철비완이 마치 팽이처럼 돌며 도끼를 휘둘렀고,

“거웅귀산!”

보법을 외친 진무린이 상체를 기울여 그의 어깨를 잡아채는 순간에,

부으으-응!

철비완의 도끼 소리가 확연하게 바뀌었다.

“오!”

참으로 놀랍다. 그리고 소름 끼친다.

허공을 가르는 도끼 소리가 바뀌는가 싶더니 지금은 누군가 잘라먹은 것처럼 전혀 들리는 것이 없었다.

옷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갈라진 철비완이 다시 황종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아-앙! 캉캉캉캉캉캉캉!

그의 도끼가 황종관의 도와 부딪칠 때마다, 내공이 약한 정도맹의 무인들이 움찔했고, 마세호와 여섯 무인은 귀를 틀어막았는데 정작 철비완은 무아지경에 빠진 이처럼 먹먹한 얼굴로 도끼를 휘두를 뿐이었다.

빙그레 웃은 진무린이 황종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익.

황종관이 훌쩍 몸을 날려 물러났는데도 철비완은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양 매섭게 도끼를 휘둘렀다.

이때까지 그의 도끼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번쩍이기만 할 뿐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부-웅! 붕! 붕붕!

그리고 한순간, 그의 도끼가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앞은 황종관이요, 뒤는 진무린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철비완은 흡사 불문을 지키는 역사요,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의 모습이라, 늠름하고 강맹하기 비할 곳이 없었다.

철비완의 변한 모습을 지켜보던 등평과 등소옥이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부응!

짧게 도끼를 내리친 철비완이 멍한 얼굴로 물러나 있는 황종관을 보았다가 진무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 대협……. 내가 지금?”

“얻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부를 휘두르는 나를 밖에서 보았습니다. 내 부족함과 나아갈 길이 모두 보였는데 이것이,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진무린은 당황한 철비완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철 호법. 깨달음을 축하드립니다.”

“진 대협?”

당황하고, 놀랍고, 기쁘고, 고맙고, 이상하게 울컥한 철비완이 진무린을 부른 직후였다.

“이 사람이! 기껏 수고한 이 몸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황종관이 한 마디를 건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부족한 사람에게 어찌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철비완은 눈이 붉게 물든 채 손을 마주 잡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됐네. 자네의 모습을 보며 한 자루 도에 의지해 강호를 종횡하던 시절이 떠올라 좋았네. 부디 정도를 걷게.”

감격해서인지 몸을 세운 철비완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허허! 조금 더 지도할까 했더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오랜만에 목이 마르는구나. 진 대협, 술 한잔 할 텐가?”

“감사의 뜻으로 제가 구하겠습니다.”

“하하하하! 모처럼 통쾌하구나!”

황종관이 커다랗게 웃음을 토해낼 때 등소옥과 마세호, 여섯 명의 무인들이 달려와 황종관과 진무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 뒤에 그들은 더할 수 없이 기쁘고 고마운 얼굴로 철비완을 향해 포권을 보였다.

“철 숙부. 소녀가 숙부의 깨달음을 축하드려요.”

“철 호법. 마세호가 호법의 깨달음을 축하드립니다.”

“사제! 방주로, 사형으로, 사제의 깨달음을 축하하네!”

비룡방은 고난 뒤에 찾아온 행운을 더할 수 없는 감격으로 나누었다.

인사의 끝에서 철비완은 누더기가 된 옷차림을 급히 여민 뒤에 진무린을 향해 다시 깊게 읍을 올렸다.

“진 대협. 이 부족한 사람에게 베푼 은혜가 하해와 같아 살아서는 갚을 길이 없으나 죽어서 잊는 일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저 비무일 뿐입니다. 아직 시일이 남았으니 어려움이 그만큼인데 어찌 이리 고개를 숙이십니까?”

“나흘 뒤에 지닌 피를 모두 쏟아내고 죽는다 한들 이 은혜가 지워질 수 있겠습니까.”

진무린이 팔을 붙들어 일으키자 철비완은 바로 다시 황종관을 향해 몸을 숙였다.

“허어! 이러다가는 인사하느라 얻은 것을 잊게 생겼네. 가세! 우리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도움되는 일일세.”

황종관의 재촉에 진무린은 흑사련 지부를 나섰다.

아직 남은 해가 여운을 길게 늘어트리는 시간이었다.

“내 도를 피할 때 말일세. 하마터면 자네에게 연속해서 도를 내밀 뻔하지 않았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이 사람이?”

진무린의 뻔뻔한 대꾸를 황종관은 웃으며 받았다.

“모처럼 피가 끓었지.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비무를 한번 해보세.”

말을 하던 황종관이 생각난 것이 있다는 투로 진무린을 보았다.

“자네는 다른 이의 무공을 지도할 수 없다지 않았나?”

“문주께서 맹주의 말씀대로 임무를 맡아도 좋다는 허락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반가운 일일세. 잘됐네. 잘된 일이야.”

반가움을 표한 황종관은 임운령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본가에 급한 일이 있어 저도 짧게 뵈었습니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철 호법을 도운 것은 임무의 일환이지 개인적으로 무공을 지도하거나 조언한 것은 아니라 여겨주십시오.”

황종관이 기가 막힌 얼굴로 진무린을 보았다.

맹주의 거처가 보이는 골목에 들어선 뒤였다.

“아까 말일세. 소능산 방향에서 마교의 소수음공이 강하게 일어났었지. 자네라면 분명 알아챘을 것 같은데?”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이 있었다.

의심하는 투는 아니었다.

진무린이라면 당연히 그 기운을 알아차렸을 테고, 그래서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였다.

어떻게 답할까.

청강도 느꼈을지 모를 기운에 관해 거짓말로 늘어놓을까, 아니면 한편이 되었으니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진무린은 바로 마음을 굳혔다.

“맹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거처로 들어선 정문 앞에서 진무린이 입을 열었고, 걸음을 멈춘 황종관이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맹주!”

청강이 급한 걸음으로 진무린과 황종관을 향해 다가왔다.

“마침 진 대협도 계셨구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부맹주께서 오셨소. 게다가 공동의 약연 장로와 함께요.”

진무린을 힐끔 보았던 황종관이 다시 시선을 가져갔다.

“어디에 있습니까?”

“잠시 제자들을 돌아본다고 나섰으니 조만간 돌아올게요. 그런데 두 분이 남긴 말이 심상치 않소.”

“심상치 않다니요?”

“정도맹에 마교의 인물이 있으니 이를 발본색원하고 관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말이었소.”

황종관이 고개를 갸웃했는데 진무린은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오늘 마교의 기운이 폭발한 것은 아시오?”

“그러잖아도 그 이야기를 하며 오던 중이었습니다.”

“부맹주와 약연 장로는 그 장본인이 우리 사이에 있다 확신하는 눈치인데 노도는 그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었소이다.”

급하게 나온 내용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이 촉박할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진무린은 두 사람을 재촉했다.

“뭔가 짚이는 사람이 있나?”

“안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무린의 뜻을 받은 황종관과 청강이 함께 움직여 대청에 자리했다.

“무슨 말인지 이제 내놓게.”

“낮에 폭발했던 기운은 소수음공입니다.”

“소수음공? 그것은 예전의 명칭이니 지금은 소수마공이라 불러야 하지 않나?”

“그 소수음공을 운기했던 장본인이 바로 저입니다.”

황종관과 청강은 지금 들은 말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처럼 눈만 껌벅였다.

“그러니까 자네가 소수마공을 익혔다?”

황종관의 표정이 독하게 바뀌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진무린이 마교의 인물이라면 당장 청강은 물론이고, 황종관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곤경에 빠진다. 혹여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한들,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길은 없다.

“왜 대답을 못 해?”

으르렁대는 위협처럼 황종관의 질문이 나온 뒤였다.

“진 대협. 소수음공이라 하시면 혹시 그 천서유기에 있는 무공을 말씀하시오? 강호삼보 중 하나인 옥환을 찾는 데 필요한 무공이라는?”

이번엔 청강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질문을 내놓았다.

“소수음공이 맞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맹주. 우연히 얻은 소수음공을 녹이느라 기운이 폭발한 것이고, 맹세컨대 천서유기는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중요한 말을 왜 여태 안 했나?”

“거처에 들어서기 전에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바삐 오간 대화의 끝에서였다.

밖이 소란스럽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처로 몰려들었다.

“맹주. 마공을 익힌 계집을 잡아왔소.”

쉰 줄의 중년이 고개를 돌리자 무인 여럿이 세 사람을 끌고 들어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볼과 목덜미에 얻어맞은 자국이 분명한 데다 소매가 뜯어져 처참한 몰골의 원예와 백섭광, 설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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