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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6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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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6화

은천검제

제26화

 

사당 앞을 지키던 임운령은 진심으로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사당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경고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임운령도 짐작하지 못했다.

진무린이 쏟아낸 소수음공의 기운이 어찌나 강한 지 오래된 사당에는 한겨울의 새벽처럼 서리가 앉았고, 그 위에서 하얀 김이 피어났다.

무언가 있구나.

사당을 지켜보며 임운령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느끼고 짐작했던 소수음공의 기운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강렬하게 터진 기운을 느끼자 분명 기연이나 깨달음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25년간 그토록 기다렸던 등룡창천을 얻지 못하면 어떠랴.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무공이요,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이제는 서리가 사라진 사당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임운령이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내가 이 자리를 지킨다.

그는 경고하듯 내공을 풀어냈다.

숨을 두 번쯤 내쉬었을까.

사당 뒤편 숲에서 중년 남자와 노인이 몸을 날려 임운령의 앞에 내려섰다.

도착한 이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사당을 살폈고, 이어 임운령에게 시선을 주었다.

“반노쌍복 선배이십니까?”

“우리를 아는가?”

중년인이 의외란 표정으로 임운령에게 반문했다.

“은천문의 문주 임운령이라 합니다.”

“은천문? 진무린이란 제자를 내보낸 은천문?”

불쑥 끼어든 노인을 중년은 꾸짖듯 보았다.

“강호의 후배로만 여겼을 뿐, 문주라 생각하지 못하여 실례가 있었소. 우리는 문주의 말씀대로 반노쌍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라오. 이쪽이 의제인 조보휘, 내가 양가의요.”

노인과 자신을 차례로 소개한 양가의가 답을 요구하는 투로 사당을 살폈다.

“본가의 제자가 운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배께서는 이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운기한다는데 다른 말을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소. 궁금한 것은 은천문의 제자가 왜 소수음공의 기운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오. 게다가 예사롭지 않으니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오.”

“말씀드리기 어려운 과정을 통해 소수음공을 얻었는데 그를 본문의 내공으로 녹이는 과정에 있습니다. 홍화루에서 제자를 보셨다고 들었고, 마등과 겨룬 뒤에도 한 번 뵈었다고 하였습니다.”

“홍화루? 아!”

고개를 갸웃했던 중년 양가의가 생각났다는 투로 눈빛을 빛냈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니 그 젊은 후배가 저기 있었군. 홍화루에서 보았을 때는 소수음공을 모른다, 답했었는데 이것 참 공교롭구려. 그렇다면 소수음공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그 답을 주시겠소?”

“무공에 관한 일은 어느 문파나 함부로 답을 드리지 않으며 이는 본문도 같습니다.”

답을 들은 양가의의 눈꼬리가 올라섰다.

“문주이고, 소수음공마저 알고 있으니 말을 돌리지 않겠소. 천서유기에 나오는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그 책을 보았거나 소유했다는 뜻이오. 혹시 은천문이 강호삼보를 탐하시는 게요?”

“보물을 노린다면 가뜩이나 시선이 몰린 상등에서 이리 기운을 뿜어내겠습니까?”

“그렇다면 제자라는 젊은 후배가 왜 소수음공을 모른다는 거짓말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운을 감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실 수 있소?”

양가의의 말투는 빚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추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표정마저 날카로워서 여차하면 검을 낼 수도 있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보게. 형님께서 이렇게 나서시면 막을 방법이 없어. 그러니 얼른 어디에서 소수음공을 얻었는지 말하게.”

거기에 조보휘가 장단을 맞추는데 지금까지와 달리 양가의는 그 말을 막거나 꾸짖는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왜 답이 없는가? 곤란하다면 기다리다가 제자라는 아이에게 직접 묻겠다.”

양가의가 낸 거친 말에 이번에는 임운령의 눈꼬리가 올라섰다.

“강호의 선배라 대접한 것뿐이오. 두 분이 문주인 내게 함부로 하대할 정도로 본문의 이름이 헐하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은천문의 이름에 우리가 고개 숙일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마등 따위와 달라.”

“반노쌍복이라 해서 이 몸이 주저하기를 기대하셨다면 그 또한 잘못된 생각이외다.”

서로의 눈을 똑바로 노려본 상태에서 오간 말이었다.

“그렇다면 천서유기가 은천문에 있느냐?”

“없다고 하면 믿으시겠소?”

양가의는 볼을 씰룩였고, 조보휘는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노려보는데 임운령은 무거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의 예의는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은 누가 검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노려보던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오래된 사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사당에 들어가 가부좌로 앉은 진무린은 가장 먼저 중단전을 틀어막았던 묵룡심법의 내공을 풀어냈다.

내내 갇혀 있던 소수음공의 기운이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진무린의 몸 전체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원체 다른 이의 기운이 이렇게 몸에 담기면 부작용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주화입마에 든다고 들었다.

그런데 소수음공은 달랐다.

내내 기다렸던 순간을 맞이한 듯 묵룡심법의 내공과 어울렸고 그렇게 몸 전체에 퍼졌다.

당장 느끼는 부작용이 없자 진무린은 천천히 운기를 시작했다.

강호에서 고수냐, 아니냐를 거론할 때 큰 기준을 임독양맥의 순환으로 잡는다.

소위 생사현관의 타통이었다.

하왕하칠살이 생사현관을 타통한 수준에서 아래쪽이고, 그 위로 가면 우중객과 피풍객, 설중객이 있으며 다시 더 고개를 높게 들면 청강 진인과 살아나기 전의 마등 정도를 찾겠다.

말이 좋아 생사현관의 타통이지 강호에서 그 정도면 바로 백 대 고수에 든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진무린은 생사현관을 뚫은 단계 중 최상위 수준이었다.

은천심법과 묵룡심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다른 이가 그저 검에 내공을 담는다면 진무린은 응축한 내공을 담을 정도의 고수였다.

진무린은 몸에 가득 퍼진 소수음공을 단전에 모을 생각으로 일주천을 시작했다.

단전에서 출발한 묵룡심법의 내공이 온몸을 돌아 다시 단전으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묵룡심법과 어울린 소수음공은 거부감 없이 진무린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순조로웠다.

걸리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단전에 소수음공이 담기면서부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뒤늦게 소멸될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소수음공이 들끓기 시작했고, 이어 폭주의 조짐까지 보였다.

단전에서 문제가 생기면 주화입마에 든다.

몸에 마비가 오거나 죽을 수 있다.

진무린은 급히 단전에 소수음공을 가두었다.

소수음공의 반응은 중단전에서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단박에 단전을 뚫고 나올 것처럼 날뛰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진무린은 소수음공을 제압하고자 더욱 강하게 묵룡심법의 기운으로 눌렀다.

소멸을 거부하며 버둥대는 소수음공과 그것을 누르는 진무린의 대결이었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소수음공의 기운에 검을 들이댈 것도 아니어서 진무린은 호흡을 고르는 데 집중하며 묵룡심법의 내공을 계속해서 단전에 몰아넣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르면 누를수록 강해지던 소수음공이 함께 죽겠다고 각오한 것처럼 단전에서 폭발했다.

진무린이 악착같이 호흡을 들이마실 때였다.

이번엔 몸 전체에서 묵룡심법의 기운이 폭발했고, 그 여파를 몰아 무서운 기세로 단전에 몰려들었다.

마치 소수음공의 반항을 더는 지켜볼 수 없는 묵룡심법의 응징처럼 느껴지는 현상이었다.

곧바로 과거 임독양맥을 뚫을 때처럼 진무린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이어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이렇게 끝인가?’

그 직후에 진무린은 숨결을 놓쳤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진무린은 아버지 진용선의 품에 있었다.

“특별한 기운의 일부를 상단전에 담아두었다. 중단전을 깨우지 못하면 소용없을 텐데 얻는다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지금 하는 말은 이 기운을 깨닫기 전까지는 떠올리지 못할 테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에서 시선을 내린 진용선이 잔잔하게 웃었다.

“등룡창천 역시 과정이더구나. 아비는 보았지만, 도달하지 못했다.”

눈을 끔벅이는 진무린의 머리를 진용선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부친의 모습을 뒤덮었고, 이어 보이는 모든 것이 다시 새하얗게 바뀌었다.

그 직후에 진무린은 다시 숨소리를 들었다.

이내 몸의 감각과 의식이 돌아왔으며 언제 문제가 있었냐는 투로 몸 안을 도는 내공은 편안했다.

진무린은 일주천을 마치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눈을 감고 있는 진무린은 보지 못했다.

안개처럼 사당 안을 가득 메운 검은 기운이 숨결을 따라 진무린에게 흡수되는 것을.

눈을 뜬 진무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소수음공이 무언가 큰 것을 남기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서운하다.

소수음공이 폭발하며 사라졌는데 몸 안에 변화가 전혀 없으니 솔직히 뭔가 손해 본 기분이었다.

혹시 몰라 중단전과 단전을 살핀 진무린은 마지막으로 손의 색을 확인한 뒤에 몸을 일으켰다.

사당을 나서자 가장 먼저 오후의 햇살이 달려들었고, 세 사람의 시선 또한 진무린을 향해 있었다.

‘소수음공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로구나.’

반노쌍복을 본 진무린은 먼저 임운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운기를 마쳤습니다.”

“사당에 절이라도 올리려무나.”

임운령이 의미심장하게 건넨 말이 있은 직후에,

그드등. 콰드드등.

벽이 흔들리던 사당이 외마디 비명 같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부러지고 꺾인 흙담 위로 지붕이 주저앉았고,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났다.

‘자리를 베풀어주셨는데 이리되었습니다. 조만간 새롭게 짓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진무린은 실제로 사당을 향해 양손을 마주 잡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또 보는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기운이 강하게 변화하던데?”

몸을 세운 진무린을 향해 수다스러운 조보휘의 질문이 달려들었다.

어떻게 답할까?

진무린이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두 분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것이 좋겠다. 전대의 고수분들로 양가의 선배, 조보휘 선배라 한다.”

임운령이 나서 시간을 벌어주었다.

“자, 인사도 마쳤으니 다시 묻겠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우연한 기회에 얻은 소수음공을 녹이러 들어갔노라 답했다. 괜찮으니 안에서 일어난 일 정도는 말씀드리려무나.”

조보휘가 재차 던진 질문에 임운령이 조언을 주었다.

“소수음공을 녹이는 과정에서 위기가 있었습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이 잘 마무리된 모양입니다.”

“그래? 위기를 넘겼다는 사람의 혈색이 지나치게 좋은 건 어찌 된 연유인가?”

“내공을 잃거나 단전을 다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소수음공이 폭발하듯 기운을 뿜어냈는데 그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보휘가 질문하는 동안, 중년의 양가의는 매서운 눈으로 진무린을 살피고 또 살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였다.

“내가 자네 몸을 살펴봐도 되겠나?”

마침내 양가의가 입을 열었다.

“선배. 혹여 혼자 있다 해도 무리한 요구인데 문주께서 지켜보시는 앞입니다.”

“감출 것이 없다면 거부할 일도 아니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몸을 살피는 것을 허락할 무인은 없습니다.”

진무린의 답이 건너간 뒤였다.

“내가 그 몸 하나 못 살펴볼 것 같으냐?”

양가의가 도발적인 질문을 건네고는 당장에라도 손을 뻗칠 것처럼 기운을 일으켰다.

“일에는 선후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소수음공을 찾는지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도 모자랄 일을 강압적으로 처리하시니 더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양가의는 당장 대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마음도 없어 보였다.

다부지게 올라가 있는 그의 눈꼬리와 진무린을 향한 강한 기운이 그 증거였다.

원한다면 붙어준다.

진무린은 물러서지 않았고, 양가의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임운령은 말리지 않았다.

거기에 맞은편의 조보휘는 명령을 기다리는 충복처럼 양가의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검을 뽑으면 누구든 피를 본다.

누군가는 죽을 수 있었다.

양가의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막상 달려들자니 전혀 기죽지 않는 진무린과 임운령이 께름칙하고, 이대로 돌아가자니 아쉬워서 당장은 망설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선배. 적당히 합시다.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 정도맹의 맹주까지 달려옵니다.”

침묵을 깨며 나선 것은 임운령이었다.

“경고하지만, 참는 것도 여기까지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시구려.”

다부진 임운령의 조언에 양가의는 입 끝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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