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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1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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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1화

은천검제

제21화

 

계획한 것이 모두 어그러지는 하루였다.

귀혼곡과 승조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던 진무린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원예의 뒤에 앉았다.

피를 울컥 토해내는 것과 확연하게 느낄 정도로 소수음공이 기운이 뻗쳐 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주변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시선을 준 진무린은 원예의 목덜미 아래와 허리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상태는 급했다.

“푸훅!”

가라앉던 소수음공이 날뛰며 원예는 또다시 피를 토해냈다.

원예의 단전에 묵룡심법의 내공을 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진무린의 내공을 찾아오면 소수음공이 더 날뛰게 되고, 반대로 누르자면 오히려 묵룡심법의 내공을 더 담아야 한다.

글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뒷일을 걷잡기 어려워서 진무린은 잠시 손을 뗐다.

“루주. 이상하게 소수음공이 날뛰는데 이유를 알면 얼른 말해.”

“욱! 푸훅!”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와 아래로 검붉은 피가 흘렀다.

“소수음공을 누르면 단전을 막은 것처럼 내공을 잃은 상태가 될 테고, 반대로 모두 꺼내면 처음부터 수련을 다시 해야 해. 그러니까 짐작 가는 일을 어서 말해.”

진무린의 질문에도 원예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속해서 피를 토해내고 있으니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공자!”

“총관. 어떻게 해도 내공을 잃어. 그러니까 내가 함부로 결정할 문제가 아냐.”

급한 마음에 달려들었던 백섭광도 딱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진무린은 어떤 선택도 내리기 어려웠다.

막말로 진무린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버티거나 그동안 쌓은 내공을 잃어버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한다면 뭐라고 답을 하겠나.

“푸훅!”

또다시 피를 토해낸 원예가 진무린의 품에 안기는 것처럼 스르륵 무너졌다.

“루주!”

옆에서 지켜보던 설란이 달려들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변한 원예는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무리한 운기로 혈도가 엉망이다. 그런 상태여서 내가 담아둔 내공이 단전을 막은 상태고. 소수음공이 이렇게 날뛰는 건 조금 전에 단전을 풀어 놓은 탓이니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진무린은 원예의 어깨를 안 듯 팔을 뻗어 손목에 손가락을 얹었다.

“빨리 선택해. 단전을 막으면 앞으로 한동안은 내공을 절대 일으키지 못해.”

“기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혈도가 완치돼야 하니까 최소 다섯 해는 봐야지.”

질문을 건넸던 백섭광이 아픈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 하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그동안 쌓았던 소수음공의 내공을 모두 잃는다고 생각하면 돼.”

칼에 찔린 사람처럼 백섭광이 인상을 찌푸렸고, 설란은 울분을 참는 표정이었다.

“공자라면 어떤 방법을 택하시겠습니까?”

“잘못된 수련으로 몸이 상했어. 이런 상태에서 임독양맥을 타통하려 했으니 벽을 만난 거지. 만약 몸이 거부하지 않아서 임독양맥을 타통하려 했다면 죽거나 미치광이가 됐을지 몰라.”

원예의 손목을 통해 전해지는 상태는 심각했다.

“총관! 결정 못 하겠다면 내가 한다. 이대로 두어도 일각 안에 루주는 죽거나 미치광이가 돼. 그걸 바라나?”

“공자…….”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안타까운 얼굴로 백섭광이 입을 열었다.

“잘못된 수련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수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백섭광의 요청이 떨어진 직후였다.

설란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의자에 고개를 파묻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리 만드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죽거나 미치광이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

“더 망설이면 돌이키지 못한다. 부루주는 물러나.”

진무린의 지시에 설란은 원예를 붙들었던 팔을 떼어내며 얼굴을 감쌌다.

원예의 상체를 세운 진무린은 양손을 등에 대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소수음공이 마교에 건너가 소수마공이 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겠지 싶었다. 그만큼 원예의 몸에서 날뛰는 소수음공은 통제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진무린은 원예의 등에 붙인 왼손을 통해 기운이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진무린이 담았던 내공이 먼저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예 모든 일을 비틀기라도 한다는 양, 소수음공이 진무린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소수음공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갑갑한 우리를 빠져나온 들짐승처럼 진무린의 온몸을 헤집었다.

‘끄윽.’

진무린은 몸을 덮친 통증을 악착같이 견뎠다.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서 내공으로 대결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진무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꼴이라 심장, 혈도, 단전에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고, 이어 온몸을 칼로 찢는 듯한 통증이 진무린을 괴롭혔다.

여기에서 비명을 토해내면 또다시 기혈이 뒤엉켜 진무린과 원예 모두 중상을 입기 좋았다.

원예가 청강 이상의 고수였다면 진무린은 돌이키지 못했을 정도로 소수음공의 기운은 강렬했다.

‘끄으.’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혈도를 연결한 상태에서 강제로 손을 떼면 진무린은 무사해도 원예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었다.

악착같이 견딘 진무린의 이마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턱에 고일 때쯤 소수음공과 원예의 단전에 남아 있던 묵룡심법의 내공이 돌아왔다.

“루주를 눕혀.”

힘겹게 건넨 진무린의 지시에 백섭광과 설란이 빠르게 움직였다.

진무린은 가부좌를 하고 운기에 들었다.

손이 원예의 낯빛처럼 하얗게 변했는데 그마저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

 

은천문을 대표하는 무인 한 명을 꼽으라면 이야기가 갈린다.

사부 전도위와 제자 진무린 탓이었다.

혹자는 이미 진무린이 사부를 넘어섰으나 부러 실력을 감춘 것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연륜으로 따지나 경험으로 보나 전도위가 아직은 위라 여긴다.

둘을 꼽으라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무린과 전도위를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 그렇다.

두 사람 중 누가 등룡창천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은 모두 진무린이라고 꼽는다. 이는 재능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천문을 대표하는 무인 셋을 꼽으라면 어떨까?

이는 더 쉬워서 진무린과 전도위에 문주 임운령을 넣으면 끝나는 일이었다.

기품과 여유를 담은 중후한 인상, 젊었을 때 여심 꽤 흔들었을 듯한 외모, 적당한 체형에 뛰어난 언변까지, 임운령은 실로 은천문의 가주가 되기에 손색없는 인물이었다.

동이 터오는 때, 임운령은 가주의 집무실에서 은천문을 내려다보았다.

문주만 7층 전각을 사용한다.

그 외에 은천문을 구성하는 주요 7개 가문은 5층 전각을 사용하고, 딸린 나머지 가문은 3층 전각에 기거해서 은천문은 서열이 분명했다.

7층 전각을 둘러싼 담 안쪽의 내성이 ‘명부’, 외곽의 외성이 ‘표부’라 했는데 사람들은 편하게 내성과 외성으로 불렀다.

“칼춤을 추자면 얼마든지 받아줄 텐데 왜 아이들을 건드려?”

밝아오는 하루를 바라보던 임운령이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었을 때였다.

“찾으셨소?”

집무실로 중년을 넘어선 무인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전 사부. 일출이 보기 좋아 잠시 구경한 뒤에 앉을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또 무언가 힘겨운 결정을 하실 모양인가 보오?”

속을 알아주는 전도위의 질문에 임운령은 보기 좋은 미소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뒷짐을 진 자세로 저 멀리 산에서 피어나는 붉은빛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잠시 강호에 다녀올까 합니다.”

“결심이 서셨소?”

“등룡창천을 이룰 계기가 되라는 바람으로 내보냈더니 아예 죽이려 드는 모양입니다.”

“그런 일은 문주께서 하실 것이 아니라 나 같이 하릴없는 사람을 시켜야 하지 않소?”

말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강호에 나가 진무린을 보고 싶은 심정이 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문주께서 강호에 나서는 이유치고는 부족하지 싶은데 감춰놓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구려.”

“속이 보이십니까?”

고개를 숙여 가슴을 들여다보는 임운령을 보며 전도위가 가볍게 웃었다.

“정보가 왜곡돼서 올라오는 듯합니다.”

그런 뒤에 나온 임운령의 말에 전도위는 바로 웃음을 지웠다.

“의심 가는 곳은 두 곳입니다. 제가 밖으로 나간다 해도 전 사부가 두려워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약을 이용해 전 사부를 노릴 가능성은 그만큼 커집니다.”

“흠.”

“옥룡전패를 맡기고 나설까 합니다.”

임운령의 말에 전도위는 별소리를 다 들었다는 투로 웃었다.

“내부의 누군가가 반기를 든다면 목을 잘라놓고 기다리겠소. 그런 일에 문주께서 옥룡전패를 맡겨놓았다고 하면 제자들 보기 부끄러울 일이오.”

“제자들을 모두 믿기 어렵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짐작하고 있소.”

“그에 대한 대비도 있으십니까?”

“내 검이 대비책이 될 것이고, 이 몸이 본문을 지키는 방비가 될 것이오.”

준비했다가 내놓은 것처럼 오간 대화였다.

숨을 고르는 것처럼 두 사람은 둥그렇게 솟아난 붉은 태양을 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저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내부를 말씀하시는 게요? 아니면 외부요?”

“바깥에 있는 자들이야 터무니없는 강호일통과 피를 원할 테니 궁금한 것은 내부인입니다.”

“사람의 속을 어찌 알겠소만, 저들이 바라는 것이 본문이 아니겠소? 강호에 나가 호령하며 살고자 하는 데 힘은 모자라고, 결국 본문을 손에 넣어 나서고자 하는 게지요.”

“그렇다면 저와 전 사부, 그리고 잘난 제자가 몹시도 거슬리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문주께서 밖으로 나서시는 게 아니오?”

전도위의 대꾸는 막힘없이 참으로 시원했다.

“잘해주겠지요?”

“제자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분명하게 답해드릴 수 있소.”

궁금한 얼굴로 임운령이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강렬하게 달려드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전도위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25년 만에 등룡창천을 볼 것이고, 헛된 욕심을 부린 자는 그 초식에 모두 목숨을 잃을게요.”

전도위의 대꾸를 들은 임운령이 내내 막혔던 문제를 푼 것처럼 후련하게 미소 지었다.

“홀가분하게 다녀오겠습니다.”

“제자 놈을 보거든, 사부가 려아를 몹시 염려하더라고 전해주시오.”

“이를 말씀이십니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이미 올라온 새로운 하루의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넘어오도록 진무린은 운기를 풀지 못했다.

원예의 소수음공이 그만큼 억센 탓이었다.

다른 이의 내공을 흡수해 기운을 보강한다는 흡성대법을 익히지 않은 다음에야 원예의 소수음공을 진무린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운기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인데 소수음공은 이미 묵룡심법의 맛을 알아버린 아귀처럼 끈덕지게 매달렸다.

추측하기에는 원예의 단전에 묵룡심법의 내공이 담겨 있는 동안 동화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운기를 계속할수록 소수음공이 먹물처럼 진무린의 몸에 배어들어서 우선은 몸의 한 곳에 가둬두는 것이 현명할 지경이었다.

단전에 소수음공을 가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또 원체 자리 잡기를 심장 부근에 한 터라 진무린은 심와라 부르는 중단전에 몰아넣었다.

눈을 떴을 때 앞에 있는 두 사람은 원예와 설란이었다.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공자!”

“지금이 오전인가?”

“날이 밝고 반 시진쯤 지났어요.”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은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원예를 보았다.

아무리 잘못된 수련이라 할지라도 그동안 익혔던 것을 모두 잃었으니 그 참담함이 어떨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몸은?”

“기감은 그대로 있어서 기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어요. 오히려 참으로 오랜만에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요. 공자께서는요?”

“대강 수습했으니까 염려할 것은 없어. 그보다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으면 싶은데.”

“바로 올리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설란이 당황한 태도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밥을 달라는데 당황할 일이 뭐가 있을까.

“공자. 혹시 모르시는 듯해서 말씀드려요.”

진무린의 시선을 당긴 원예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움직여 바닥에 있던 동경을 들고 돌아왔다.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얼굴에 뭐가 묻었나?

원예가 내민 동경을 들여다본 진무린은 먼저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이어 픽 웃었으며, 마지막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경에 담긴 진무린의 얼굴은 분을 두껍게 바른 경극의 주인공처럼 하얀색이었다.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백면귀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었다.

몸에 이상은 없다.

그저 중단전에 소수음공의 기운을 가뒀을 뿐이다.

‘오늘 진인과 무림맹주를 뵙기로 했는데…….’

진무린은 길게 숨을 내쉬며 시선을 떨궜다.

시선에 들어온 손 역시 얼굴 못지않게 새하얀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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