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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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8화
은천검제
제18화
마등의 도가 진무린의 검을 맞받아치는 순간이었다.
카각카각카각카각!
마치 도를 갉아먹는 것처럼 진무린의 검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간 검이 마등의 목을 노렸다.
쉐에엑!
화들짝 목을 뒤트는 마등을 향해 진무린은 빛살처럼 빠르게 다가섰다.
어찌나 빠른지 진무린의 잔영이 남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놈의 눈이 묻고 있었다.
놀라서, 당황해서, 그리고 믿지 못해서 나온 질문이었다.
쉐에엑! 쉑! 쉑! 쉑! 쉐에에엑!
“오오-!”
진무린을 향한 청강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무릎을 구부리는가 싶은 순간에 서 있고, 번득하면 떠올라 있으며, 앗 하고 놀란 마등이 상체를 젖히는 순간이면 다리를 찌른다.
번쩍이는 진무린의 검을 피해 커다란 덩치의 마등이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였는데 한계는 있었다.
쉐엑! 피잇! 쉑! 피윳! 쉐에엑! 피이잇!
“커흑!”
콰작! 콰자자작!
뒤로 물러나던 마등이 기울어진 기와 아래로 밀려난 뒤에 급히 몸을 굴러 검을 빠져나갔다.
달빛 영롱한 가을밤이었다.
지붕의 꼭대기에 선 진무린은 검을 오른쪽 아래로 내린 채 일어서는 마등을 내려다보았다.
마등을 기다린다는 깃발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는데 그 끝에서 몸을 일으키는 마등은 눈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분한 모양이었다.
억울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게도 호북지부 주변의 기와 위로 사람들이 올라와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데 크게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광경을 놓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마등은 그 시선 앞에서 이리 당하는 것이 분통 터진 얼굴이었다.
“으아아아-!”
드드드드드득.
그의 고함에 기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완벽하게 죽음을 각오한 폭렬공이었다.
저렇게 잠력마저 폭발시킨 마등은 이 대결에서 승리한다 해도 절대 돌이키지 못한다.
다시 살아날 자신이 있다는 거냐?
진무린은 픽 웃으며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얼음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마등을 향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상체가 피로 물든 진무린과 왼편 목덜미, 어깨, 가슴을 깊게 베인 마등의 대결이었다.
기와를 타고 내려가는 진무린을 향해 마등이 몸을 웅크렸다.
쉐에에엑! 부으으응!
번득 검과 도가 달빛을 받으며 허공을 갈랐고,
콰가가강!
검과 도가 부딪친 직후에 밟고 있던 주변의 기와가 사방으로 날았다.
부으응! 쉐에엑! 카각카각카각!
도를 잡아먹은 진무린의 검이 마등의 눈 아래를 사정없이 갈랐다.
“끄아아-!”
마등의 비명과 동시에,
쉐에엑!
진무린의 검이 날카롭게 날았다.
마등이 상체를 젖히지 않았다면 필시 목이 갈라졌을 매서운 한 수였다.
지켜보던 청강이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낼 때였다.
진무린은 또다시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마등의 위로 솟구쳤다.
‘말도 안 돼…….’
상체를 젖혔던 마등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진무린을 보았고,
쉐에에엑!
진무린은 기와를 배경으로 몸을 젖힌 마등을 내려다보았다.
부탁이다, 마등.
또 살아와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얼마든지.
이토록 사악한 수법을 동원하는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 모두 목을 잘라버릴 때까지.
쉐에엑! 피윳!
“커흐-윽!”
위에서 길게 내리찍은 진무린의 검이 마등의 왼쪽 어깨에 손잡이를 남기고 모두 박혔다.
“끄윽. 꺽.”
피를 울컥 토해내면서도 마등은 진무린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반드시…….”
“얼마든지 살아서 나타나.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죽여줄 테니까.”
마등의 폭렬공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검을 박아 넣었는데도 쓰러지지 않은 채 버티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익!”
진무린은 있는 힘껏 검의 손잡이를 아래로 찍어 눌렀다.
“끄아아아-!”
어깨에 박힌 검이 몸을 관통해 허리에 닿았는데도 마등은 믿기 어려운 힘을 뿜어냈다.
그 직후였다.
터억!
마등의 오른손이 진무린의 손목을 붙들었고, 왼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마등의 내공이 검과 손을 통해 진무린에게 달려드는 것을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진무린과 마등의 내공을 동시에 받은 묵룡검이 거친 울음을 토해냈고,
콰자자작. 자가각.
발아래 놓인 기와들이 금가거나 부서져 나갔다.
“진 대협!”
단박에 뒤로 날아온 청강은 진무린과 마등이 내공으로 연결된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는 손을 들었다가 멈칫한 뒤에 오히려 고개를 돌렸다.
“제자들은 주변을 경계해라! 누구도 지붕 위로 올라와서는 안 되느니!”
“명을 받았습니다!”
현명한 청강의 판단이요, 지시였다.
화산의 제자 열 명이 검을 뽑아 든 채 주변을 경계했고, 청강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듯 진무린의 뒤에서 검을 든 채 지켜보았다.
묵룡심법의 내공과 잠력마저 터트린 폭렬공의 대결이었다.
“커흑.”
비명을 토해낸 마등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검법의 대결이 아니라 내공의 대결이었다.
끊임없이 기운을 불어넣어 서로의 맥을 차지해가며 단전을 노리는 싸움이었다.
“푸훅!”
결국, 기혈이 흔들린 진무린도 피를 토해냈다.
말릴 방법조차 없는 대결을 지켜보며 청강이 미간을 좁혔다.
두 사람이 똑같이 내공을 줄이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난다.
진무린과 마등을 합한 것보다 내공이 월등한 사람만이 둘을 떼어낼 수 있어서, 어설프게 청강이 손을 내밀면 그는 반드시 죽고, 진무린과 마등은 어찌 될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심장과 명치를 파고드는 바람에 진무린은 이를 악물었다.
‘죽인다! 아니어도 최소한 함께 죽는다!’
마등의 눈이 바로 앞에서 진무린을 향해 번득이고 있었다.
말 같은 소리를 해!
너는 다시 태어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나는 문주와 사부를 잃게 돼.
행방불명된 사매도 어찌 될지 모르고.
‘끄으.’
진무린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악착같이 삼켰다.
청강 진인이 나무에 걸릴 수도 있는데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진무린의 각오는 그랬다.
그러나 폭렬공을 이용한 마등의 내공을 이기는 것은 각오와는 다른 문제인 모양이었다.
‘크흑.’
검과 마등의 손을 통해 들어온 폭렬공이 진무린의 오른쪽을 천천히 파고들었다.
‘은천문? 너도 별수 없지? 나는 다시 태어나면 그만이다.’
마등의 눈이 웃고 있었다.
이 대결에서 이긴다 해도 검이 제대로 박혀 살아남지 못할 것을 뻔히 아는 놈이 야비한 웃음을 보였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오냐.’
진무린은 재차 이를 악물었다.
다시는 살아날 수 없도록 만들어주마.
잠력이 네놈에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뒷일?
당장 너 같은 놈에게 죽을 정도의 수준으로 무슨 뒷일?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지는 거야!’
진무린이 잠력을 일으키려 내공을 운용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마등의 몸에 박혀있던 묵룡검이 처절한 울음을 토해냈고,
“커허-억!”
곧바로 마등이 비명과 함께 덩어리진 피를 토해냈다.
뭐냐?
진무린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 바로 그때였다.
마등의 몸에 박혀있는 검의 손잡이 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직후,
털썩.
마등이 진무린 앞에 무릎을 꿇고는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어찌 보면 살려달라 매달리는 모양이요, 달리 보면 잘못을 사죄하는 형상이었다.
“무슨 수법이냐…….”
진무린의 허리에 기댄 마등이 힘겹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걸 뭐라고 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기운인지 진무린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나.
“빌어먹을…….”
콰자작. 그드득. 그드드득.
외마디 욕을 남긴 마등이 기와에 엎어진 뒤에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진무린이 놓지 않은 검이 자연스레 빠져나왔는데 그때 아슬아슬하게 지붕의 끝에 걸쳐졌던 마등이 마침내 아래로 뚝 떨어졌다.
털써-억!
“진 대협!”
청강이 주저앉은 진무린의 상체를 안았다.
“진인. 제자들을 시켜 마등의 시체를 반드시 지키라 일러주십시오.”
“그러리다!”
진무린의 청을 들은 청강이 고개를 돌렸다.
“제자 넷은 내려가 마등의 몸뚱이를 지켜라. 죽었다고 방심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검을 사용해도 좋다.”
답을 한 제자 넷이 아래로 내려간 뒤에 청강은 품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품 안에 은천환이 있습니다. 그리고 송구하지만, 호법을 부탁드립니다.”
“진 대협. 마등을 제거한 참이오. 괜찮으니 지붕 말고 잠시 안심할 수 있는 곳, 다른 이의 눈을 피할 만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오.”
진무린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소능산의 오래된 사당을 떠올렸는데 거리가 제법 있어서 만약 마등의 몸을 노린 자가 들이닥친다면 청강이 돌아오기에도 불리한 것이 염려되었다.
“진인. 홍화루의 3층 전각으로 갈까 합니다.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시오.”
청강은 먼저 진무린의 품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입에 물려주었고, 이어 어깨를 받쳐 일으킨 뒤에 홍화루를 향해 움직였다.
“화산의 원수를 진 대협이 상대하셨으니 노도는 참으로 얼굴을 들기 어렵소.”
고작 한 마디를 마쳤는데 진무린은 홍화루의 3층 전각에 도착해 있었다.
“공자!”
원예는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어지간한 지붕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는 마당이고,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던 밤이라 내다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상황이었다.
청강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수고를 통해 진무린을 옮겼고, 이어 원예와 설란, 백섭광이 나서 거대한 의자에 눕혔다.
“노도는 지붕에 있겠소.”
“수고를 끼쳤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긴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우선 몸을 살피시구려.”
말을 마친 청강이 훌쩍 창을 통해 빠져나갔다.
“공자! 공자!”
원예가 부르는 소리, 백섭광이 무언가를 지시하는 음성을 들으며 진무린은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
눈부신 날.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단단한 부친의 품이었다.
바람이 일렁일 때면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뻗어 나오곤 했는데 진용선의 다리에 앉은 진무린은 그 시간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좋구나.”
말의 의미도 알지 못할 나이였다.
“재능은 무섭다. 다른 이들이 너에게 바라는 일들이 많아지지.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도 그만큼 늘어날 테고.”
고개를 돌린 진무린을 향해 진용선은 넉넉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금강석도, 야명주도 아닌 진무린을 바라보는 눈빛인데 말이다.
“어떤 일을 하든 네가 행복하다고 느낄 일을 해. 그것이 선량한 이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네가 행복한 삶을 살아.”
그 깊은 뜻을 알기에 진무린은 워낙 어린 나이였다.
“출발할 시간입니다.”
“그런가.”
자리에서 일어선 진용선은 태양을 향해 진무린을 번쩍 들었다.
“나는 너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마지막에 웃어주던 진용선의 모습이 칼로 새기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
“공자!”
어렴풋이 눈을 뜬 진무린의 시선에 흐릿한 원예의 모습이 들어왔다.
“좀 더 누워 계세요.”
“진인께서는?”
억지로 몸을 일으킨 진무린은 상체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체에 천을 감아서 몸에 딱 붙는 상의를 입은 모양새였다.
“점심까지 보내드렸고,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벌써 날이 밝았고, 점심마저 지난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에 맹주께서 오신다 하셨습니다.”
고개를 돌린 진무린을 향해 원예가 말을 이었다.
“진인께서 알려주신 내용이에요. 총관이 전해 듣고 왔고요.”
“마등은?”
“특별할 일은 전혀 없었어요.”
원예의 답을 듣고서야 진무린은 마음을 놓았다.
“운기를 해야겠다.”
“괜찮겠어요?”
“내공을 살피는 게 급해.”
먼저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고 싶었다.
다음으로는 어젯밤에 마등을 상대하며 보았던 검은 기운을 찾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또 한 가지.
마등은 은천문의 무공을 감추기는커녕 대놓고 사용했다.
진무린을 죽여서 유출된 사실을 감추겠다는 각오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마등을 보낸 이들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필시 진무린을 제거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이 일을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려 나설 게 분명했다.
사매의 실종, 은천문 무공의 유출, 진무린을 죽이려는 의도까지, 모든 정황을 봐서 지금은 몸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했다.
“총관이 아래에 있고, 부루주와 제가 지켜드리지요. 급하면 진인께 도움을 요청할 테니 이곳에서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해요. 흑사련의 호북지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어서 움직이기도 불편하고요.”
“부탁해.”
말을 마친 진무린은 의자에 가부좌로 앉아 손을 모았다.
거대한 의자라 이상했더니 이렇게 침상으로 사용하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