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46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46화
은천검제
제46화
보우는 이어 그의 사제 보광, 무당의 진섭자, 진호자를 소개했고, 마지막으로 아미의 조연명과 조성명을 대중에게 알렸다.
소개받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진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강호에 도사야 많다.
목검과 불진을 들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물론이요, 부적을 적어주는데 확실히 무당의 진섭자와 진호자는 그들과 다른 위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납이 여러 동도분들께 소개할 분은 화산의 검이라 불리는 청강 진인이시오.”
“우와아아아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함성이 관성변을 거칠게 휩쓸었다.
어렵고 힘겨운 이를 외면하지 않았던 일화들, 백발과 길게 늘어진 하얀 수염, 상등에 나타날 때 외쳤던 기다란 휘파람까지, 청강을 향한 함성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원예는 경극을 보는 사람처럼 관성변에 집중했고, 그 곁에서 진무린은 기운을 넓게 펼쳐 혹시라도 대결에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인사와 소개가 끝나고 보우는 내공이 담긴 잔잔한 음성으로 오늘 대결에 관해 설명했다.
“공동의 자경과 비룡방의 철 호법은 상대의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되며, 이 대결 이후에 앙금을 남겨서도 안 되오. 그럼 두 분은 앞으로 나오시오.”
보우가 승복의 소매를 늘어트리며 손을 내밀자 자경과 철비완이 깃발로 만들어놓은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진무린은 두 사람을 보며 입술 끝을 움직이며 웃었다.
사형이자 비룡방 방주인 등평을 위해 나선 철비완은 목숨을 내던진 모양으로 전의를 가득 담았는데 자경은 그런 모습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였다.
두 사람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마주 선 뒤였다.
보우가 주변을 둘러보자 정도맹의 무인들이 깃발을 옆으로 뉘여 거대한 사각의 공간을 만들었다.
“깃발 밖으로 나가는 경우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패한 것으로 간주하겠소. 또한, 사술을 부리거나 암기를 사용할 시에도 패한 것이며, 노납이 직접 나설 수 있음을 명심하시오.”
자경에게 존대를 할 배분은 아니나 보우는 겸손한 어투로 경고를 전한 뒤에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철 호법의 승리를 장담하나요?”
그때 원예가 진무린에게 질문을 건넸다.
“소녀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요. 철 호법이 패할 거라 염려했다면 진 공자께서 이렇게 지켜보기만 할 리가 없겠지요.”
스스로 답을 찾은 원예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포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그런 뒤에 자경은 검을 꺼내 들었고, 철비완은 소매에서 늘어트린 도끼를 손에 잡았다.
지켜보는 이들 사이로 긴장이 빠르게 스친 다음이었다.
검결을 만든 왼손을 앞으로 낸 자경이 자세를 낮추자 철비완은 도끼를 허리 아래로 들고는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부우웅!
먼저 달려든 것은 철비완이었다.
오후의 햇살을 품어 번득이는 도끼와 검의 광채에 눌린 것처럼 지켜보던 이들은 숨소리조차 조심했다.
연달아 번쩍이는 철비완의 도끼를 보법으로 피한 자경이 화려하게 검을 내뻗은 직후였다.
“우와!”
크지 않은 함성이 나왔다.
자경의 검은 화려했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배운 검법이었고, 내공 또한 탄탄하게 다져서 검을 내미는 자세, 회수하는 동작, 몸을 돌려 다음 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한 폭의 그림처럼 화려했다.
카가가강! 카아앙!
그에 맞서 철비완은 몸에 밴 실력을 이용해 도끼를 휘두르는데 아쉬운 모습이 간혹 드러났다.
원예는 대결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대결이 이어질수록 자경의 검은 화려함을 더했고, 철비완은 아쉬움을 짙게 드러냈다.
“우-!”
지금은 궁지에 몰렸던 철비완이 상체를 뒤로 젖혀 몸을 빼내는 모습에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그만큼 위험해 보인 탓이었다.
대결을 보던 원예가 의아한 듯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괜찮겠어요?”
“철 호법을 염려하는 거라면 백 초 근처에서 바뀔 거다.”
“그건 왜 그렇죠?”
원예의 질문이 “와아-아!” 하는 함성에 묻혀 끝을 잘린 것처럼 들렸다.
“철 호법은 최근 깨달음을 얻었고, 기본을 다시 배웠지. 지금 그는 우직할 정도로 새롭게 배운 것들을 지키고 있으니 단순함이 화려함을 베는 대결이라 이해하면 된다.”
원예가 다시 시선을 관성변으로 돌렸다.
“지금부터 잘 봐 둬. 자경의 검이 조만간 바뀔 테니까.”
원예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한 뒤였다.
철비완의 머리에 검을 찔러 넣었던 자경이 느닷없이 훌쩍 뛰어올라 발을 뻗었고, 직후에 몸을 뒤틀어 내려섰다.
“지금부터다.”
진무린은 나직하게 말을 전했다.
확실히 자경은 검법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반쯤은 아예 허공에 떠 있다시피 몸을 날렸고, 심지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떠오르곤 했다.
“우!”
당황한 철비완이 왼쪽 어깨를 베이면서 놀란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나왔다.
다급하게 물러나 도끼로 앞을 막은 철비완이 떠오른 자경에 놀라 황급하게 몸을 굴렸다.
툭 하면 허공에 떠오르는 자경을 상대하다 보니 철비완은 마치 키 작은 아이가 어른을 상대로 도끼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철 호법의 왼발을 잘 봐.”
원예는 진무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대신 어지럽게 움직이는 철비완에게 좀 더 집중했다.
“철 호법은 지금껏 중심을 뒤에 둔 오른발에 실었지. 저 왼발에 중심이 옮겨가는 순간에 승패가 갈린다.”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진무린을 짧게 보았던 원예가 눈가를 좁혔다. 그 직후였다.
“우와아-아!”
한 번 떠올랐던 자경이 건곤세를 이용해 검으로 바닥을 찍는 동작으로 다시 튀어 오르자 그 순간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결은 자못 치열했다.
그 사이 철비완은 머리가 헝클어져 흩날렸고, 소매 한쪽을 잘릴 정도로 위험한 고비도 넘겼다.
제대로 배운 자경은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단정한 모습을 지키고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마치 천신과 지옥의 아수라가 벌이는 대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훌쩍 뛰어오른 자경이 다리를 앞과 뒤로 벌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쭉 뻗었다.
“우와!”
철비완이 황급히 세 걸음을 물러나는 것을 보며 자경은 머리를 앞으로 하고는 땅에 처박히는 사람처럼 곤두박질쳤다.
“지금이오, 철 호법!”
진무린이 혼잣말을 뱉어내는 순간이었다.
철비완이 중심을 앞으로 옮겼고,
파앗!
자경이 검으로 땅을 찍으며 솟구쳤다.
퍼러럭!
그 찰나에 중심을 앞으로 기울인 철비완이 먹이를 노리고 뛰어오르는 맹수처럼 뛰어올랐다.
몸을 뒤틀던 자경이 급히 철비완의 도끼를 검으로 막았으나,
퍼억!
철비완의 왼손을 막아내지는 못해 가슴을 제대로 얻어맞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자경이 힘겹게 일어나 검을 사선으로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기혈이 뒤틀린 모양으로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렸고, 자세마저 제대로 잡지 못했다.
자경이 무언가 지껄인 것처럼 입을 움직였다.
아마도 철비완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하게 말을 뱉은 모양이었다.
“뭐라 했는지 궁금해요.”
“죽여버리겠다는데?”
원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본 직후였다.
자경이 거세게 달려들다.
눈이 아릴 정도로 자경의 검이 번쩍이는 사이에서 철비완은 두 번이나 몸을 비틀었다.
“꺄아악!”
검에 목이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놀란 구경꾼의 처절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직후였다.
철비완은 진무린에게서 배운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뒤로 눕혀 검을 피했고, 이어 일단악으로 도끼를 휘둘러 자경을 밀어냈다.
‘다음은 종횡무변?’
진무린은 픽 웃었다.
깨달음을 얻을 당시 진무린이 가르친 그대로 자경을 상대하는 철비완을 보면서였다.
‘거웅귀산을 내시오, 철 호법!’
진무린의 생각을 들은 것처럼 철비완은 거웅귀산의 보법으로 자경을 따라잡았다.
놀란 자경이 황급히 몸을 트는 순간이었다.
소리조차 내지 않는 수법으로 철비완은 도끼를 휘둘렀다.
“오-!”
번득하며 움직인 도끼는 자경의 목덜미에 있었다.
진무린은 참으로 오랜만에 다른 이의 무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경을 상대할 수를 건네기는 했지만, 철비완이 저토록 잘해낼 거라 기대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아마도 열과 성을 다한 황종관의 가르침 덕분이리라.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두 사람은 물러나시오.”
내공을 담은 묵직한 보우의 음성이 울리며 삽시간에 그가 두 사람의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어디에서 저런 모습을 보았을까.
보우의 경지에 놀란 사람들이 대결을 보는 듯 함성을 질렀다.
철비완은 도끼를 수습해 다섯 걸음을 물러났는데 검을 축 늘어트린 자경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세를 수습하지 못했다.
목덜미를 베였는지 피가 흘러나왔는데 점혈을 해주는 보우의 손동작을 봐서는 큰 부상이 아닌 게 분명했다.
보우는 자경을 나직하게 꾸짖었고, 뒤늦게 자경은 검을 갈무리하고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동도분들께서 모두 보셨듯이 오늘 대결은 비룡방 철 호법의 승리로 끝내겠소.”
박수와 환호, 함성, 철비완을 칭찬하는 고함들을 끝으로 대결이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전에 돌아가자.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다.”
진무린은 원예에게 왼팔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내민 천을 붙들고 훌쩍 몸을 날렸다.
날 듯이 건너편 지붕에 도착한 진무린은 재차 몸을 솟구쳤다.
원예의 외포가 바람에 흩날리며 경쾌한 소리를 울릴 때 두 번째로 내려앉은 진무린은 마지막에 높다랗게 떠올랐다.
파란 가을 안에 빛나는 태양이 있었고, 저 아래로는 상등의 검은 기와지붕들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세 번째로 진무린이 내려선 곳은 홍화루의 3층 전각 지붕이었다.
퍼러럭.
진무린은 옆으로 눕듯이 몸을 기울인 뒤에 원예를 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삽시간에 달려왔고, 조금 전까지 대결을 지켜보던 원예는 지금 창 안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 서 있었다.
“내일부터 소능산의 사당을 다시 지을 거예요.”
대결이 끝난 뒤에 줄 것이 있다더니 아마도 사당을 다시 짓는 일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진무린이 사당을 다시 짓고자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고맙군. 그 정도면 오늘 대결에 데려간 정도는 되겠군.”
“공자께서는 본인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군요. 잠시만요.”
방 안쪽으로 움직였던 원예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를 가져와 창밖으로 내밀었다.
“오늘 대결을 보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것이에요.”
진무린은 시선만 내려 종이를 확인한 뒤에 원예를 보았다.
“풍령관에 대한 정보예요. 공자께서 관심을 두실 만한 것을 담았어요.”
“대결을 보여준 것치고는 너무 과한 보답인데?”
“안 받으시면 태우고요.”
하여간 지지 않는 성격하고는.
가볍게 웃은 진무린은 원예가 건네준 종이를 받았다.
아직 내용을 읽기 전이었다.
“공자. 풍령관의 관주 구양강은 숨겨놓은 아들이 있어요.”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영민한 공자께서 지금 드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네요.”
“숨겨놓은 아들이 있다는 말 아니었나?”
“맞아요. 풍령관의 관주는 구양강이에요.”
“그런데?”
진무린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원예가 생긋 웃었다.
“마교의 교주 정동추는 제자를 셋 거두었지요. 그중 막내의 이름을 혹시 아시나요?”
“구정봉?”
진무린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멍한 얼굴로 원예를 보았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의 매듭 하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무린의 표정을 본 원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는 축객령처럼 창문을 닫았다.
관성변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나왔다.
맹주 황종관이 철비완의 승리를 공식 발표한 모양이었다.
진무린은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전에 도착할 생각으로 소능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원예는 허튼소리를 할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가 굳이 풍령관주를 언급하고 다시 마교의 제자를 들먹였다면, 구양강의 아들이 구정봉이란 말이 된다.
홍화루에서 소능산까지, 진무린에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오래된 사당 앞에 도착한 진무린은 먼저 원예가 건네준 작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글자 수는 많지 않았는데 내용은 놀라웠다.
풍령관주 구양강이 유가장의 둘째 유은방을 농락하여 아들을 얻은 뒤에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에 있었다.
‘공자. 천서유기는 유가장에 있어요.’
마지막 구절을 읽은 진무린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홍화루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멋진 핑계기는 한데.’
이 정도 정보를 그냥 주기는 뭐했을 테니 굳이 대결을 보게 도와달라고 청했던 모양이었다.
마등이 마교의 폭렬공을 알고 있는 실마리가 풍령관의 관주 구양강이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한다.
혈교의 곽가를 구양강이 데려가려 했다는 것으로 봐서 그가 부맹주, 약연이 얽혀 있는 이번 일의 중심에 있는 것도 알 법했다.
그런데 귀혼곡에 있으리라 짐작한 천서유기가 유가장에 있다니, 원예는 무엇을 노리고 이 내용을 전한 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우선은 급한 일을 정리한 뒤에 해결할 문제였다.
진무린은 천천히 소능산을 걸어 내려갔다.
이쯤이면 황종관과 청강도 거처를 향해 움직였을 테고, 엇비슷하게 도착할 게 분명했다.
하나씩 해결한다.
우선 부맹주 소강명과 약연, 곽가, 풍령관의 수하를 해결하고, 다음으로 사매 모려원을 찾아 움직일 생각이었다.
걷는 길에서 진무린은 처음으로 강호에 피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는 말을 실감했다.
풍령관의 관주가 끝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의 꼬투리가 아닐까 하는 좋지 않은 짐작도 들었다.
‘얼마든지.’
진무린은 가볍게 웃었다.
사매를 찾아 나선 길에서 거치적거리는 인간들, 그와 관련된 인간들의 목을 모조리 잘라줄 생각이라 겁이 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진무린이 소능산을 막 내려섰을 때였다.
고개를 돌린 진무린의 앞으로 청년 한 명이 불쑥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