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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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41화
은천검제
제41화
내내 죽이려 들던 이가 뱉은 기가 막힌 질문에 대한 진무린의 대꾸는 가벼운 웃음이었다.
“네놈의 건방진 입을 반드시 찢어주마!”
씹듯이 한마디를 뱉어낸 소인걸이 최후를 각오한 모양으로 거칠고 강맹한 기운을 사정없이 뿜어냈다.
제자들과 수하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잠시의 틈을 이용해 항천압지의 진법을 제대로 펼쳐 진무린을 압박했고, 그 틈을 이용해 소인걸이 승리하기를 바랐다.
예전이라면 여기까지 버티기도 어려웠을 진법을 상대로 진무린은 내공을 뿜어냈다.
보인다.
느껴진다.
저들의 기운과 진법에 흐르는 기운 모두가!
어느 곳이 허점이고, 어떤 곳이 강하게 힘이 모이는지조차 손에 잡히듯 진무린에게 세세히 느껴졌다.
왼발을 구부린 진무린의 검이 앞을 때리는가 싶더니 오른쪽에서 번쩍였다.
휘릭! 카앙! 캉! 휘리리릭!
그와 동시에 줄로 당긴 듯 솟구친 진무린은 수하의 머리를 걷어차고는 다시 내려섬과 동시에 앞과 뒤, 좌와 옆을 빠르게 찔렀다.
“하아!”
마교의 수하들이 함께 기합을 지르고는 검과 도, 활의 순서로 진무린을 노렸다.
쉐에에엑! 피이잇!
그러나 궁지에 몰리기는커녕 진무린은 중간에 선 금소적의 제자를 베었고,
쉐엑! 피윳!
연달아 도를 든 소인걸의 제자 목을 갈랐다.
어떤 춤사위가 저리 화려할 수 있을까.
자세를 낮춰 적의 아래를 베고, 불쑥 몸을 세워 허리를 뒤로 젖히는 진무린은 마치 검무를 뿌려내는 검사의 모습이었다.
“끄아-!”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가 뿜어지며 황색 햇살 아래로 잔인한 무지개가 그려지는 것만 아니라면, 학처럼 고고한 진무린의 모습은 완벽한 무희와 같았다.
진무린이 화려한 느낌이라면 소인걸은 악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와아악!”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핏빛처럼 붉게 물든 눈으로 도를 내리치는데 언제 위로 들렸는지 모를 정도로 연달아 진무린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쉐엑! 쉐엑! 쉐엑!
그러나 진무린은 또 무섭게 떨어지는 도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또 어느 틈에 검을 내어 소인걸의 미간을 찔렀다.
카아아-앙!
소인걸이 급히 도를 휘저어 진무린의 검을 막아낸 뒤였다.
우우우웅!
주변을 흔들 정도로 진무린의 검이 크게 울었다.
“본문의 무공을 보고 싶다 했더냐!”
소인걸에게 외마디를 던진 진무린이 조금 전 그를 흉내 내듯 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쉐에에엑! 카아앙!
엄청난 충돌음이었다.
소인걸이 진무린의 검을 막는 순간에 살아남은 마교의 수하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밀렸고, 그 바람에 항천압지가 완전히 깨졌다.
쉐에에엑! 카아앙!
두 번째 내리친 진무린의 검을 소인걸이 막으면서 두 사람의 고하는 여실히 드러났다.
쉐에에엑! 캐아아앙!
소인걸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가 찢어져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는데 그 직후에 그의 도가 흔들렸다.
쉐에에엑!
얼핏 보기에는 잔인한 광경이었다.
하얀 머리가 산발이 될 정도로 다급하게 소인걸이 도를 드는데 진무린은 한점 흐트러짐 없이 검을 내리치는 모습이 말이다.
휘익! 캐아아앙!
도가 깨진 것이 분명한 소리가 들리더니 더는 팔을 들지 못한 소인걸이 놀라고 황당한 표정으로 진무린을 바라보았다.
쉐에에에에엑!
이번엔 내리친 진무린의 검을 막아선 것은 없었다.
“이것이……. 은천문의 검이냐?”
“마교의 고수라 하여 예우한 것이다.”
“흐허허. 커허흑!”
뒤로 넘어가는 소인걸의 이마에서부터 단전까지 길게 이어진 선을 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휘리리릭!
그 순간, 진무린이 검을 요란하게 털어내자 살아남은 성자형과 수하 댓 명이 뒤로 물러났다.
“너희는 돌아가라.”
검을 넣은 진무린이 날카롭게 노려보자 성자형이 볼을 씰룩한 뒤에 뒤로 물러났다.
우르르.
그리고 그들은 사부와 동료의 시체를 남기고 앞쪽의 산을 향해 달렸다.
명분을 따질 것 없이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마교삼절을 속절없이 쓰러트릴 만큼 무공이 늘었고, 항천압지조차 무난하게 상대할 정도라는 확신을 얻은 대결이었다.
진무린은 쓰러진 마교삼절을 차례로 보았다.
저들이 휘두르는 무기, 기운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알며 싸웠으니 결과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식을 잊으려 해서 잊은 것이 아니라 적을 상대하는데 구태여 형과 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했다.
대결을 복기한 진무린은 이송암관을 향해 검집으로 바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곳에 시체를 두고 돌아서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원예의 당부를 알리는 것이 좋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
저녁나절에나 도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소림과 무당에서 각 두 명, 아미에서 세 명, 모두 일곱 명의 장로는 점심을 먹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맹주의 거처로 들어섰다.
정도맹 무인의 전갈을 받은 황종관은 청강과 함께 입구로 향했고, 곧바로 일곱 명의 고수와 마주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소, 맹주.”
“오랜만에 뵙소, 진인.”
“노도가 게으른 탓이외다. 먼 길에 피곤하실 텐데 노도는 이리 얼굴을 뵌 것이 반가우니 아직 도를 얻으려면 먼 모양이오.”
황종관에 이어 청강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동행한 제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적당한 곳을 마련하라 이르겠습니다. 우선 이쪽으로 드십시오.”
황종관은 세 문파의 제자들이 쉴 곳을 마련하라 정도맹의 무인에게 지시했고, 이어 일곱 명을 대청으로 안내했다.
일행이 자리에 앉아 차를 몇 모금 나눈 뒤였다.
“오는 내내 놀라운 소식이 그치지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소림의 보우가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감출 것 없고, 숨길 이유는 더더욱 없어서 황종관은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렇게 모여 주셨으니 저녁을 먹기 전에 마등을 화장하고, 이어 부맹주와 약연 장로, 자경을 어떻게 벌할지에 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황종관의 제안을 들은 소림의 보우는 먼저 나직한 숨을 내었다.
“이번 일은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소. 증인이 두 번 모두 진무린이란 분이고, 혈교의 곽가와 풍령관의 수하를 잡은 것도 그가 직접 한 일이니 다른 증인이 없는 상황이라 그렇소.”
“곽가를 처음 상대할 때는 본인과 청강 진인이 현장에 있었고, 풍령관의 수하를 붙든 것은 진 대협의 계획대로 틈을 보인 덕분입니다.”
“맹주께서 대협이라 칭할 정도요?”
“마교삼절을 홀로 상대하겠다며 달려가는 수준입니다.”
“무공이 높다 해서 모두 대협은 아니라 보오.”
보우의 대꾸를 들은 황종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새롭게 들어온 일곱을 돌아보았다.
일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구대문파의 구성원을 함부로 벌해서는 안 된다는 고약한 결속력은 분명하게 풍겼다.
“대사. 그렇다면 어찌 처리했으면 하십니까?”
“조금 전에 도착한 우리가 무엇을 알겠소? 그러나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저리 구금해 놓으면 작게는 위축되어 내일 대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나아가 억울함을 항변할 기회가 없으니 이 점을 맹주께서 고려해주시오.”
속은 이미 보았다.
누가 뭐라 해도 구대문파는 특별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을 보우가 확실하게 밝혔고, 남은 여섯 명은 침묵으로 그에 동조하고 있었다.
청강이 근심스레 지켜보는 앞에서 황종관은 가볍게 웃었다.
지난 세월, 강호의 평화를 위해 애썼다고 생각했더니 이 자리에서 느끼기에는 구대문파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꼭두각시로 지냈다는 생각에서였다.
“죄를 지어도 구대문파는 예외라는 말씀이십니까?”
황종관의 질문에 아미의 장로가 눈빛을 바꾸었다.
“도주하지 않음을 우리 일곱이 증명하면 되지 않겠소?”
“구금된 상태에서도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풀어준 이후에 부맹주와 약연 장로가 혈교나 풍령관과 의논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맹주. 갑자기 이리 나오시니 당황스럽소만, 점창과 공동의 이름이 가볍지 않아요. 아무렴 속한 문파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그 두 분이 하겠소?”
황종관은 둘러앉은 이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였다.
“나선 김에 빈니가 한 말씀 더 올릴까 합니다. 맹주의 뜻은 충분히 알겠으나 이리 달려온 우리의 얼굴을 봐서 두 분과 자경의 구금을 풀어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미의 여승 조연명이 손을 가슴 앞에 세우고 청을 건넸다.
얼굴을 봐서라는 말이 나온 이상, 청을 거절하면 가뜩이나 자존심 강한 아미파의 체면을 무시한 것이 된다.
“노도 역시 드릴 말씀이 있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황종관의 옆에서 청강이 입을 열었다.
“부맹주는 맹주께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본파의 매화검수를 불렀고, 그 동선에 느닷없이 마등이 나타나 처참하게 살해되었소.”
“마등이 그런 일을 행했다고 본 자가 있습니까?”
“내가 현장을 직접 살폈는데 마등이 지닌 도법이 분명하외다.”
보우의 질문에 청강이 확신을 담아 답했다.
감히 청강에게는 낯을 붉히지 못하는 터라 보우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부맹주와 약연 장로, 자경은 혈교, 풍령관 등과 결탁해 정도문파를 위협한 것이니, 그들을 처벌해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오히려 점창과 공동의 체면을 위한 길이라 믿소.”
전에 없이 강경한 청강의 말이라 일곱은 함부로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이 불쾌함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대화를 지켜보던 황종관은 진무린을 떠올렸다.
이들은 썩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대우만 받을 줄 알았지, 무공은 진무린의 아래요, 마등이 날뛸 때는 목을 걸고 나서는 기백조차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이번 일을 반드시 제대로 처리할 생각이외다. 만약 소림과 무당, 아미의 여러분께서 도저히 내 처리방법을 받아들이실 수 없다면 이제는 맹주의 직을 내려놓겠소.”
이 정도로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아미가 퍼뜩 날카로운 시선을 들었고, 소림과 무당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맹주께서 우리를 겁박하시는 겝니까?”
“명망이 높은 일곱 분을 홀로 겁박할 수 있겠소?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로 느껴지오.”
“맹주!”
“말씀하십시오.”
아미의 조연명이 날카롭게 불렀고, 황종관은 양보하지 않았다.
“지금껏 부드럽게 유지되던 정도맹에 왜 갑자기 풍파를 일으키시는지 모르겠군요.”
“죄지은 자를 벌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일곱이 보장한다 하지 않습니까?”
“도주가 문제가 아니라 답했습니다. 이미 구금된 상태에서 전음으로 풍령관에 연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본인과 여기 진인께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워낙 다부진 황종관의 태도에 조연명도 더는 말을 내지 못했다.
“아직 시간이 있소. 맹주의 뜻을 잘 알았으니 잠시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합시다. 우리가 부맹주와 약연 장로를 만나는 것은 괜찮겠소?”
차마 저것까지 안 된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청강을 슬쩍 돌아본 황종관이, “편한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을 건넸다.
“곽가와 풍령관의 수하는 어디에 있소?”
“뒤편에 함께 두었고, 비룡방의 소가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노고도 위로할 겸 그들도 한번 둘러보리다.”
“그 역시 편할 대로 하십시오.”
보우가 끌어낸 어색한 마무리였다.
“잠시 뒤에 뵙겠소.”
손을 가슴 앞에 세워 인사한 보우를 따라 내내 침묵했던 무당이 움직였고, 찬바람을 쌩 일으키며 아미가 그 뒤를 따랐다.
“이거 참. 난감하구려.”
일곱 명이 거처를 나서자 청강이 내놓은 독백이었다.
황종관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들이 반감을 품을까 말하지 못했지만, 이 꼴을 보면 진무린은 반드시 부맹주 소강명과 약연의 목을 베겠다고 나설 것이 분명했다.
진무린은 한다. 주저할 사람이 아니다.
황종관이 본 눈빛은 분명 그랬다.
그래서 일곱이 나간 문을 바라보는 황종관의 표정은 어둡고 무거웠다.
**
진무린이 두 번째로 바위를 두드린 뒤였다.
묘한 감각이 간질이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을 때, 바위 위에 백면호리와 어린 남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 대협?”
백면호리가 놀라 앞을 돌아보았고, 아이는 더 놀란 얼굴이었다.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마교삼절이 제자와 수하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홍화루의 루주가 부탁해서 달려온 길이니까 안에 그렇게 전해줘.”
“마교삼절을 혼자 해결했다? 그런 거라고?”
진무린의 시선을 받은 백면호리가 딴청을 피웠다.
발목을 자를지 모를 진무린의 기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여기는 섭성이라고 하지. 이곳에 사는 아인데 벽력어 아나? 벽력어? 그런 힘을 낸다네.”
어떡해서든 섭성 앞에서 체면을 차리고 싶은지 백면호리의 말투가 이상했다.
“섭성이에요.”
“반갑다. 진무린이라 한다. 나는 이만 가볼 테니까 안에 말씀드리고, 혹시 모르니 밖으로 나올 때 다른 길이 있다면 그쪽을 이용하는 게 좋다고 말씀드려.”
“예, 대협.”
고개를 끄덕여준 진무린은 몸을 돌렸다.
“그냥 가…나?”
턱없이 붙드는 백면호리의 질문에 진무린은 팔을 한 번 들어주고 곧장 몸을 날렸다.
“거, 사람이 어째 정이 좀 없어.”
“지금 하늘을 날은 거죠?”
“뭐야, 저 정도는 나도 해!”
섭성의 시선을 받은 백면호리가 말끝을 흐렸다.
“하기는 하는데, 저건 좀 심하게 빠르기는 하다. 며칠 사이에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뭔지 알 길이 있나.”
경공으로 뒤져본 적이 없는 백면호리의 감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