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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37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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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37화

은천검제

제37화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화산의 제자 미온과 소철은 검을 든 채 부맹주 소강명이 구금된 별관의 앞에 서 있었다.

제자들을 이끄는 축에 속하는 두 사람이었다.

이런 시간에는 사제들에게 맡겨도 되련만, 청강을 익히 아는 두 사람은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이유는 더 있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진무린이 지붕에서 마등과 대결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엄청난 무위, 미온과 소철에게는 큰 아비뻘의 배분, 그것만으로도 고개가 숙어질 판인데 그는 또 화산의 청강을 할아비 대하듯 따르고 아낀다.

어찌 미온과 소철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이 진무린에게 반감이 있을 수 있겠나.

두 사람이 지키는 내내 소강명은 조용했다.

밖에서 있는 소란에 관해 물었고, 곽가가 잡혀 온 사실을 들은 뒤에는 방 안 침상 위에 가부좌로 앉아 움직임조차 없었다.

두 사람이 사명감으로 힘겹고 지루한 시간을 견딜 때였다.

“진 사숙을 뵙습니다.”

별관 앞쪽을 지키는 사제의 음성이 들렸다.

진무린이 오는가?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들어선 이가 진무린인 것을 알고는 얼른 손을 맞잡았다.

“제자 미온이 진 사숙을 뵙습니다.”

“고생들 많다.” 

“이런 일에 어찌 고생을 말씀하십니까?”

미온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이 안에 시선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때 가부좌로 계셨습니다.”

“잠시 만나고 나오겠다.”

“그리 알고 앞을 지키겠습니다.”

미온의 답을 들은 진무린이 방에 들어섰다.

바짝 긴장한 얼굴의 두 사람은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서 앞을 지켰다.

진무린이 들어섰을 때 소강명은 운기를 하는 사람처럼 가부좌로 눈을 감고 있었다.

운기하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위해가 된다.

그런데도 진무린은 탁자 앞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가 침상 옆에 두고 앉았다.

“적당히 합시다.”

건방진 말투였다.

그래서인지 감고 있는 소강명의 눈 끝이 씰룩했다.

“홍화루의 루주가 소수음공을 익혔고, 또 내가 그것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반노쌍복에게 들었을 테지요.”

눈을 감고 있는 소강명을 향해 진무린은 거침없이 말을 건넸다.

“귀식대법으로 몸을 숨긴 곽가를 데려다주면 천서유기를 주겠다고 했답니다. 풍령관의 구양강 관주를 아십니까?”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소강명을 지켜보던 진무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도맹의 부맹주께서 흑사련과 손을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혈교와 뜻을 나누었으니 그 과오를 감당하실 수 있겠소?”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를 부드득 깨문 소강명이 독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너는 무슨 근거로 나를 이리 모함하느냐!”

그의 고함은 작지 않았다.

“화산의 매화검수를 부른 장본인이 부맹주요. 설마 그것을 잊으셨소?”

“흑사련의 준동을 막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정도맹의 부맹주가 화산에 도움을 청한 것을 죄라 하느냐!”

“맹주 모르게 청을 넣었고.”

“상황이 급박해서 그랬다!”

“어디에, 어떤 상황이 그리 급했소?”

진무린의 거칠 것 없는 질문에 소강명은 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독하게 부릅뜬 눈으로 진무린을 노려보았다.

“매화검수의 동선을 몸을 감춘 마등만은 정확하게 알고 기다렸지. 출발 시간과 달려가는 장소를 모른다면 절대 기다리지 못할 장소에서. 이건 어찌 설명하시려오?”

“죽은 마등에게 물어봐라! 나는 모른다!”

“혈교의 인물인 곽가를 마주한 것은 설명을 하셨던가?”

“마등이 살아난 이유를 밝히려 했을 뿐이다. 모산의 인물인 줄 알고 만났을 뿐이지, 나는 결단코 그가 혈교의 인물인 줄 몰랐다.”

진무린은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이놈!”

“혈교의 수하도 아니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인 곽가를 정도맹의 부맹주가 몰랐다는 것이 우스워서 웃었소. 그게 변명이라 생각하시오?”

“나는 몰랐다!”

상체를 세운 진무린은 소강명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빤히 드러난 일을 몰랐다고 잡아떼면 다 될 줄 아시나 본데 내가 이곳을 나서는 대로 곽가에게 갈 생각입니다. 내 보기에 그는 목숨을 중히 여기는 눈치던데 어떤 답을 할지 기대됩니다.”

“어떤 수단으로 나를 모함한다 해도 나는 죄가 없다.”

“이틀 뒤에 비룡방의 호법과 공동의 자경이 비무를 벌입니다. 그 대결을 보겠다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상등에 몰려들었습니다.”

소강명은 함부로 대꾸하지 못한 채 진무린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부맹주와 약연 장로의 일을 비무 전에 알릴 참입니다. 그 뒤에 곽가가 나와 혈교의 인물임을 밝히면 참으로 볼 만하겠습니다.”

“어디 마음대로 해보려무나. 나는 네놈이 소수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밝힐 테니 그 뒤나 준비해 두어라.”

“실력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내 몸에는 소수음공이 없소. 또 하나.”

진무린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을 나가 곽가를 만난 뒤에 곧바로 귀혼곡으로 향할 참이오. 그곳에 있는 마교삼절을 이틀 뒤의 대결에 초대할 생각이니 그에 대한 준비도 해두시는 게 좋겠소.”

눈가를 좁힌 소강명이 고개를 비틀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승조표국을 누가 몰살시켰을까.”

소강명의 볼이 씰룩했다.

“그렇게 표물을 막으면 귀혼곡이 열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 짓이겠지. 설마 백면호리처럼 발 빠른 이가 있을까 방심한 탓에 득을 보지는 못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숨을 크게 내쉰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몸을 일으켰다.

“계속 모른다고 우기고 계십시오. 이틀 뒤에 수많은 이들 앞에서 증거가 나와도 부디 태도를 바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무린은 인사조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가십니까?”

“힘겨운 일을 맡겼다. 너무 원망치 마라.”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화산의 제자와 대화를 나눈 진무린의 기척이 멀어진 뒤였다.

침상에 앉았던 소강명이 창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 뒤에 그는 무언가를 씹는 사람처럼 입을 움찔거렸다.

 

**

 

진무린은 곽가를 향해 걷던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소강명을 방문했던 것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약연에게 연락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는 도중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승조표국의 몰살이 혹시 귀혼곡의 문을 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백면호리가 훌쩍 뛰어들며 시간을 끌었다.

기다리지 못해 귀혼곡을 습격한 것은 뜻밖에도 마교였다.

승조표국과 마교, 그리고 귀혼곡을 연결할 무언가가 필요한 때 불쑥 등장한 이름은 풍령관이었고.

‘뭔가 있는데?’

혈교, 구대문파 중 둘 이상, 은천문의 배신자, 풍령관, 마교, 이 연결고리의 하나만 정확하게 잡아채도 남은 것들은 줄줄이 파헤쳐질 텐데.

무언가 알 것도 같은데 가물거리기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 갑갑함이 진무린을 괴롭혔다.

곽가가 부인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진무린은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은 무엇보다 빠른 일 처리가 우선이었다.

곽가가 갇힌 장소에 도착한 진무린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마디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등소옥과 수하들, 그리고 하급 무인들이 도끼와 도, 검을 든 채 쭉 둘러싼 안에서 혈도 세 곳을 눌린 채 의자에 묶인 곽가의 모습은 그랬다.

발목 두 개와 오른손목에 감은 천은 피로 물들어 검게 변했고, 낯빛은 창백해서 안쓰러운 몰골이었다.

진무린의 단호한 성격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경험한 곽가는 시선이 마주치자 쭈뼛대는 눈치로 시선을 피했다.

“사매를 왜 납치했는지 대답하지 않겠지?”

질문이 이상했는지 곽가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혈도를 풀어주지 않는 한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부맹주와 어떤 관계인지, 만나서 무슨 의논을 했는지도 답하지 않을 테고?”

장한 것은 등소옥과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태도였다.

진무린이 이러는 데 이유가 있으리란 믿음에서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

“풍령관도 모른다고 우길 셈이니 물어봐야 소용없는 일이 되겠지?”

기가 죽은 곽가를 보며 진무린은 가볍게 웃었다.

“소가주.”

“예, 진 대협.”

“어려운 청이 있습니다.”

“말씀만 내려주십시오, 진 대협.”

다부진 어깨에 허리가 잘록한 등소옥이 사명감 짙은 음성으로 진무린의 말을 받았다.

“내가 내일 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곽가의 목을 잘라주십시오.”

“진 대협의 말씀을 무겁게 받았습니다. 소녀의 숨이 붙어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킬 것이고, 내일 이 시간에 진 대협께서 당도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저자의 목을 자르겠습니다.”

진무린이 듣기에는 참으로 듬직한 대꾸였다. 그러나 곽가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서 진무린을 찾았다.

“내가 가는 곳이 궁금해? 네놈이 수작을 부린 바람에 애꿎게 귀혼곡을 다녀와야 해. 가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지.”

곽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마교삼절을 상대해야 하거든. 그런 수고를 끼쳤으니 네놈은 목이 잘리는 것으로 갚아.”

진무린이 시선으로 가리키는 등소옥의 도끼를 확인한 곽가의 눈이 퍼뜩 뛰어올랐다.

“강호에는 많은 무인이 있다. 네놈들만 단호한 게 아니란 사실도 목이 잘리면서 배워.”

말을 하던 진무린은 상체를 숙여 곽가의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았다.

“사매는 내가 반드시 구한다. 네놈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상체를 세운 진무린을 향해 곽가가 미친 듯이 눈을 부라렸다.

혈도를 막아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그렇게 표현한 모양이었다.

“만약 내일 이전에 누구라도 이 자를 꺼내 가려는 이가 있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무기를 내십시오.”

“예, 진 대협!”

“혹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해서 다치거나 죽는 이가 나온다면 내가 반드시 복수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 자를 꺼내 가려 한다면 가장 먼저 목을 치고 여러분의 숫자만큼 칼질을 하십시오.”

“맡겨 주십시오, 진 대협!”

참으로 잔인한 지시를 더할 수 없이 사명감 가득한 표정으로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애타게 매달리는 곽가를 외면한 채 진무린은 밖으로 향했다.

 

**

 

약연은 마른 얼굴을 문지르며 자경을 보았다.

“부맹주께서 전음을 통해 전하신 내용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진무린은 내일 이 시간까지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그리고 누구라도 곽가를 꺼내려 들 때, 무조건 목을 치고 그곳을 지키는 숫자만큼 칼질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나섰습니다.”

약연이 예상하지 못했던 보고였던지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귀혼곡으로 간다 하지 않았더냐? 하루 만에 다녀올 길이 아닌데?”

“마교삼절을 상대할 텐데 그것이 억울해서라도 곽가의 목을 치고 보겠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흐음.”

약연은 신음처럼 숨을 내쉬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닙니까?”

자경이 넌지시 건넨 말에 약연은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정도맹의 품에 담긴 곽가의 목이 잘리거나 여러 토막이 난다면 혈교에서 뭐라 생각하겠느냐?”

그 뒤에 으르렁거리는 듯한 약연의 꾸지람이 튀어나왔다. 

“놈이 귀혼곡으로 달려가도 문제다. 마교삼절은 자세한 내막을 몰라. 가뜩이나 일을 크게 만들기 좋아하는 놈들이요, 정도맹이라면 이를 가는 족속이 마교이고, 그 대표 격인 자들이 마교삼절이다.”

말을 하던 약연이 조용하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노려보았다.

눈치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눈알을 굴린 자경이 조용하게 방을 나섰다가 잠시 뒤에 돌아왔다.

“사제들 다섯이 지붕을 지키고 있습니다.”

“흐음.”

습관이 된 것처럼 약연은 한숨을 또다시 내쉬었다.

“마교 놈들이 오면 걷잡기 어려워진다. 놈의 말대로 가뜩이나 구경꾼이 몰려든 상황이라 자칫하다가 우리와 점창은 오물을 뒤집어쓴 꼴이 돼.”

말을 마친 약연은 시선을 들었다.

“맹주는?”

“기운이 워낙 확실해서 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청강 진인은 계속 앞을 지키고?”

“문 앞에 서 계셔서 가산 앞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볼을 씰룩인 약연이 입술을 길게 내민 채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놈이 정말 출발했느냐인데.”

고민하던 약연이 침묵을 유지할 때였다.

“제자 문경입니다.”

밖에서 음성이 들리고 곧바로 문경이라는 제자가 안으로 들었다.

“홍화루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홍화루?”

“진무린이란 자가 홍화루에 들어간 이후에 셋이 하남으로 향하고 있어 제자 둘이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걸어간단 말이냐?”

“경공을 발휘하는데 둘을 데리고 가는 모양이라 빠른 속도는 아니었습니다.”

“맹주는?”

“분명 맹주의 기운이 거처에서 아직 강하게 풍기고, 그 앞을 여전히 청강 진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보고를 들은 약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나가서 맹주의 거처를 확인하되, 진무린이란 자의 방향이 바뀌거나 맹주가 움직이면 바로 알려다오.”

“사숙의 명을 받습니다.”

문경이란 제자가 나선 뒤였다.

“놈이 홍화루의 루주와 총관쯤을 데리고 귀혼곡으로 가는 것일지 모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교삼절조차 귀혼곡의 입구를 열지 못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그 둘이 필요한지 모르지.”

급하게 약연이 말을 이었다.

“소능산으로 가거라. 곽가가 숨어 있던 곳에 있으면 흑색 무복의 무인이 나타날 게다. 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리하면 남은 일은 풍령관의 책임이 되지.”

“진무린이란 자가 나타나면 뭐라 말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놈이 간 방향을 따라 움직이마. 혹시라도 놈이 방향을 바꾸었다면 내가 그를 막아서고 제자들을 보낼 테니 너는 얼른 몸을 빼면 되겠다. 만에 하나 들키는 일이 있으면 내 지시를 받아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경계를 섰다고 해. 풍령관의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발각되면 바로 검을 들어 그를 제거하고.”

독한 눈빛으로 약연이 내린 지시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자경은 익숙한 듯 답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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