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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36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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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36화

은천검제

제36화

 

맹주의 거처에 있던 진무린은 백섭광의 방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원예 모르게 움직일 위인이 아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원예와 불편하게 헤어진 일도 있었다. 자존심 강한 원예가 이리 급하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을까.

진무린은 황종관과 청강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거처를 나섰다.

“무슨 일이지?”

“진 공자. 잠시 조용한 곳으로 옮기셨으면 합니다.”

맹주 거처 앞에서 기다리던 백섭광의 요청이었다.

“짐작하는 장소가 있다면 앞장서.”

“예, 공자.”

진무린은 백섭광을 따라 걸었다.

야밤이라도 지나치는 이들이 진무린을 보고는 몸을 움츠렸는데 상등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간 백섭광은 곧게 뻗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꽤 기다란 골목의 앞쪽은 막혀 있었고, 왼편은 길게 담으로 이루어졌으며, 오른편에는 대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장원에 볼일이 없는 사람은 이 긴 골목에 들어설 이유가 없다. 그러니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하기 좋았고, 들어선 이를 감시하기에 최적의 구조였다.

백섭광은 주저하지 않은 채 오른편의 장원으로 들어섰다.

장원 안쪽 구조는 넓은 공간에 작은 건물이 두 개, 온통 꽃과 나무로 꾸민 정원에 정자 두 개가 전부였다.

백섭광은 곧장 첫 번째의 정자로 향했다.

“앉으십시오, 공자.”

진무린이 자리에 앉자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시비가 차를 가져다주고는 작은 건물로 모습을 감추었다.

“루주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건물이 작은 데다 루주의 개인 공간이라 안으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을 설명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이렇게 찾은 이유를 듣고 싶은데?”

진무린의 요구에 백섭광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귀혼곡에 마교의 장로 셋이 침입했습니다. 마검 금소적, 마도 소인걸, 마궁 염환이 제자와 수하들을 이끌었다 들었습니다.”

귀혼곡 아니라 어지간한 정도의 문파라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진무린의 표정을 살핀 백섭광이 말을 이었다.

“아직 귀혼곡의 입구를 뚫지 못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마치 철수한 것처럼 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약재를 구하기 위해 나와야 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백면호리가 나설 때면 진법을 풀게 됩니다.”

“나를 찾은 이유는?”

“공자께서 강호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청을 하나 들어주신다고 하여 그것에 기댈까 합니다.”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혼곡을 노리는 마교의 인물을 상대하는 것은 강호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단지 걸리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명분이요, 두 번째는 상대해야 할 인물들의 수준이었다.

“마교에서 느닷없이 귀혼곡을 노리는 이유는?”

“필시 귀혼곡에 천서유기가 있다고 판단해 침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인한 내용인가?”

“추측만 할 뿐입니다.”

“아무리 마교의 행사라 해도 내가 무작정 달려가 귀혼곡에서 물러나라고 하기는 어려워. 명분이 필요한데.”

“그 점까지는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를 알 수 있는 답변이었다.

명분은 물론이고, 앞뒤 정황조차 따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진무린이 우선 달려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백섭광의 답변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귀혼곡에는 이안공자가 있어 의술에 정통합니다. 특이한 약초와 강호에서 보기 힘든 기인들도 있습니다. 귀혼곡이 공자께 속한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백섭광의 의견을 들은 진무린은 기가 막힌 심정을 웃음으로 대신했다.

“마교에 그리 말하면 온 강호에 말이 퍼진다. 이후에 어떤 이유로든 귀혼곡이 강호에 얽히게 되면 내 책임이 되지. 또 천서유기를 지녔다는 오해를 사게 되고.”

“귀혼곡에는 천서유기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믿지 않아. 당장 마교삼절이 침입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 추측한다지 않았나.”

대꾸할 말이 없는지 백섭광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교삼절이 몸을 숨겼다면 시일이 촉박할 텐데 여유는?”

“약재는 그리 급하지 않으나 백면호리가 언제 나설지가 문제입니다. 그가 나서는 길에 귀혼곡의 촌민이 약재를 구하러 함께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검을 들고 사는 세상에서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교삼절과 제자, 그리고 수하들을 진무린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새로운 경지를 보았다고 하나 아직 손에 익지 않은 무공으로 상대하기에 마교삼절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귀혼곡 안쪽의 방비는?”

이번 질문에 백섭광은 쭈뼛대며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입구가 부서져 있다면 안쪽의 대응이 어떨까를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다. 염려된다면 답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안애와 기인촌민들이 거처하는 중간에 물웅덩이가 있습니다. 그곳에 별도의 진법이 설치되었고, 마지막으로 거처 바로 뒤에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도 진법을 설치했습니다.”

“그 정도면 안심해도 될 것 같은데?”

“입구의 진법이 방어라면 뒤에 두 곳은 눈속임 수준입니다. 진법 안에 설치하는 또 다른 진법은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입구를 통하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을 테고?”

“당연한 말씀입니다.”

어둠이 깔린 원예의 개인 공간에서 진무린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 달려가더라도 꼬박 하루가 걸릴 거리였다.

세상사는 참 묘하다.

귀혼곡에서 출발한 소수음공이 진무린에게 담기더니 돌고 돌아서 결국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마교를 상대하는 것으로 시작해 또 어떤 인과 연이 진무린에게 매달릴지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면호리가 들어설 때는 마교의 인물들이 없었다는 건데?”

“루주 역시 그 점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백면호리가 들어설 당시에 그들이 있었다면 반드시 귀혼곡은 크게 당했을 것입니다.”

“천서유기를 노렸으리란 짐작도 당장은 확인된 것이 아니고.”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은 마음을 굳혔다.

“오늘 곽가를 찾아낸 일은 알고 있을 테니 다른 말 하지 않겠다. 내게 하루의 시간이 필요해.”

“그리 전하겠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급하나 진 대협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루주 역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이만 일어나지.”

“저는 여기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게 좋아.”

홀로 장원을 나선 진무린은 맹주의 거처를 향해 걸었다.

풍령관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귀혼곡마저 진무린을 찾는 격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고민할 것 없다.

‘순서대로 가자.’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마주하듯 굳은 걸음으로 움직인 진무린은 곧바로 황종관의 거처를 향해 들어섰다.

이미 소수음공과 관련해 귀혼곡의 내막을 털어놓은 참이었다. 거기에 한편이라 여긴 터여서 진무린은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백섭광의 요구를 있는 대로 전했다.

“흠.”

황종관의 첫 반응은 묵직한 한숨이었다.

“자네의 어깨에 짐이 너무 많이 걸리는군.”

“미안하오, 진 대협. 노도가 강호에 나서게 하는 바람에 이리 복잡한 일에 말려들었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소.”

진무린은 청강을 향해 작게 웃은 뒤에 입을 열었다.

“저는 마치 외조부를 뵙는 것처럼 좋아서 언제 오실지 기다리곤 했습니다.”

“진 대협이 노도를 말씀이오?”

“그래서 이번에 청을 주셨을 때 반가웠습니다. 진인께서도 저를 허투루 생각하지 않으셨구나 싶어서요.”

“허허.”

뭔가 가슴에서 울컥한 청강이 내놓은 웃음이었다.

감동, 기쁨, 미안함, 고마움이 그의 애잔한 웃음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자네에게 청을 해야겠구먼. 그리하면 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해 줄 것이 아닌가?”

“맹주의 청은 아직 고민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끼, 이 사람! 어찌 사람을 이리 차별하나!”

깊어가는 밤의 길목에서 세 사람은 모처럼 크게 웃었다.

일이 힘겨우면 어떠랴.

이리 의지할 누군가를 만났고, 또 아껴주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인데.

한바탕 웃음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제 약연 장로의 문제를 해결해야지?”

황종관이 진무린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까 말씀드린 계획을 수정할까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약연 장로가 움직이리라는 예상은 곽가를 제거해서 입을 다물게 하거나 풍령관에 연락해 다른 음모를 꾸미리라는 것의 두 가지였습니다.”

“그랬지.”

“저를 의식해서 신중하게 기회를 엿볼 텐데 그를 좀 더 조급하게 만들까 합니다.”

청강을 슬쩍 바라본 황종관이 얼른 시선을 가져왔다.

“곽가에게 들른 뒤에 제가 귀혼곡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곽가가 뭔가를 털어놓은 것처럼 행동한 뒤에 출발하면 그도 더는 신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그의 이목에 걸리지 않고 미행할 분이 이곳에는 맹주와 진인밖에 안 계시니 두 분이 애써주셔야 합니다.”

“흠. 만약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가 곽가와 연루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공동조차 그를 변호하지 못합니다.”

황종관이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진인은 어찌해야 하는가?”

“맹주께서는 비룡방의 철비완 호법을 불러 공력을 넣어주십시오.”

“그런 다음은?”

계획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으나 황종관은 반문하지 않은 채 진무린의 설명을 재촉했다.

“진인께서 호법을 서십시오. 약연 장로의 수준이라면 두 분의 기운을 충분히 읽을 테니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충분히 알 것입니다.”

“그리하면 맹주와 노도가 묶이게 될 텐데 진 대협의 다음 수가 어찌 될지 참으로 궁금하오.”

청강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자네는 참으로 무섭군.”

독백 같은 황종관의 감탄이 나왔다.

“맹주께서 짐작하시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노도에게 어서 설명을 좀 주시구려.”

진무린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 황종관이 입을 열었다.

“저 친구가 분명 비룡방의 호법에게 공력을 주라 하였습니다. 이전에 했던 것과 다르게 벌모세수를 시켜줄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황종관의 말에 귀 기울이던 청강이 퍼뜩 놀라는 얼굴로 상체를 세웠다.

“그렇구려. 그 정도의 공력을 담으리라 나도 짐작하지 못했으니 약연 장로야 더 하겠지요. 그렇다면 그는 잠시나마 철 호법을 맹주로 오인할 수도 있겠소.”

청강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께서 별다른 인연 없는 자에게 벌모세수를 시킬 공력을 사용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할 테고, 게다가 노도가 계속 지켜서고 있음을 안다면 확실히 마음을 놓을 수 있겠소.”

“그 덕분에 비룡방에 느닷없는 고수가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공력을 그리 사용하면 당분간 저는 도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합니다.”

기가 막힌 표정의 황종관이 심정을 드러낸 뒤였다.

무언가가 아쉬운 듯 청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진 대협. 약연 장로는 허술한 사람이 아니외다. 진 대협이 떠났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게요.”

“믿게 해야지요.”

“어떻게 말이오?”

“부맹주가 구금되어 있습니다.”

또다시 상체를 세운 청강이 눈을 끔벅이며 시선을 돌렸는데 황종관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

 

공동의 약연은 침울한 표정으로 방 안의 탁자에 자리했다.

점창의 소강명은 맹주금패의 위력에 눌려 구금되었다는 핑계나 있지.

약연은 제자들 앞에서 새파랗게 어린 진무린의 기에 눌려 피를 토했으니 저속한 표현으로 개망신을 당한 꼴이었다.

“멍청한 인간.”

약연이 턱없이 거친 말을 뱉은 직후였다.

“자경입니다.”

밖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리며 문이 열렸다.

들어선 제자는 철비완과의 대결을 앞둔 자경이었다.

“맹주는 비룡방의 호법을 불러 공력을 전해주고, 그 앞을 청강 진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놈은?”

“조금 전에 부맹주의 거처에 들었습니다. 화산의 미온 도장이 앞을 지키고 있어 무슨 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입맛을 다신 약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놈이 나서기 무섭게 부맹주께 내용을 듣고 바로 오너라. 또 놈을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바로 달려오고. 공연히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답을 마친 자경이 밖으로 나간 뒤에도 약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냐.”

대신 그는 나직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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