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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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74화
은천검제
제74화
화산 최고수 청강은 처음부터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연속해서 매화를 피워냈다.
그의 검은 과연 대단해서 반월의 날로 달려들던 복면인은 목이 달아날 뻔했고, 도를 든 자는 팔뚝을 길게 베였으며, 창을 든 자는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쉐엑! 쉑쉑! 쉑!
그렇더라도 복면인들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는데 고약한 것은 쉴 새 없이 무기들을 휘두르며 등에 매달린 표충량의 목과 가슴을 노린다는 점이었다.
품자로 청강을 둘러싼 복면인 셋은 수시로 움직이며 청강을 둘러쌌다. 그리고 그때마다 창을 든 자는 청강의 뒤에 자리해 표충량을 노렸다.
휘이이익! 휙휙!
창대가 흔들리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창날이 표충량을 노리는데 청강이 그를 막아내는 틈을 반월의 날과 도가 파고들었다.
쉑! 쉐엑! 휘릭! 휙!
청강은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에 “화산을 가벼이 여길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말을 멀리 던졌는데 진충무관에서 아직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였다.
그들에게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거나, 표충량이 달려온 직후에 몰살당했거나.
쉐에에엑!
날아든 창을 피해 상체를 숙인 청강이 왼편으로 상체를 크게 돌려 일어서며 훌쩍 위로 뛰어올랐다.
쉐에엑! 쉑쉑쉑쉑쉑쉐!
그가 지닌 내공을 쏟아부으며 검을 휘두르자 어두운 밤에 검광이 매화를 그려냈고, 허공에서 실로 은은한 향기마저 풍겼다.
청강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들이 진충무관을 노릴 이유는 없다.
있다면 청강이 방문한다는 그 이유 하나였다.
그러니 죄 없는 진충무관의 모든 이와 등에 매달린 표충량은 청강을 기다리고 반겼다는 이유 하나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꼴이다.
쉐엑! 쉑쉑쉑쉑쉑쉑!
검을 세차게 휘둘러 기선을 잡은 청강은 반월 형태의 복면인을 향해 매화를 그려냈다.
다시 말하지만, 청강은 화산의 최고수였다.
그가 이를 악물 정도로 독하게 그려낸 매화는 실로 매서워서 반월의 날로 막던 복면인은 목을 지키기 어려웠다.
쉐에엑!
매화를 그려낸 청강의 검이 복면인의 목을 가르려는 순간이었다.
후아아아악!
섬뜩한 기운이 폭발하는가 싶더니,
카아아앙!
반월검이 날아와 청강의 검을 세차게 때려냈다.
반월검을 든 복면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와 창을 든 복면인의 기운도 직전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지금껏 상대하며 짐작하지 못했던 엄청난 내공에 청강은 하마터면 비명을 토해낼 뻔했다.
‘폭렬공이구나!’
검을 들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른손목에 힘이 쭉 빠졌고, 심지어 엄지와 호구가 찢어진 것처럼 통증이 몰려들었다.
약속하던 바가 있었을까?
휘리리릭! 휘릭! 휘리리리릭!
놀랍게도 복면인의 도와 뒤에서 날아드는 창이 춘설난무의 초식을 그려냈다.
진무린이 펼쳤다면 청강은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진무린이 아니었고, 청강은 그나마 마등이 사용하는 폭렬공을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하아앗!”
등을 파고드는 창을 향해 눕다시피 허공에서 몸을 뒤로 젖힌 그는 거꾸로 한 바퀴를 돌아 창대를 밟고 몸을 세웠다.
“량아는 할아비의 검을 보아라!”
죽음을 각오한 청강의 외침은 낭랑했다.
쉐에엑! 쉑쉑쉑쉑!
그런 뒤에 그는 재차 반월의 날을 든 복면인을 향해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청강의 깨우침을 모두 담은 검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화려한 매화를 그렸다.
어설프게 피어난 춘설난무 속에서 매화는 또렷했고, 화려했으며, 유난히 아름다웠다.
쉐에엑! 쉐엑! 쉐엑!
마침내 반월의 날을 든 복면인의 머리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고, 이어 목이 잘렸다.
그 직후였다.
등을 파고드는 창을 피해 청강은 몸을 비틀었다.
퍼러러러럭!
그와 동시에 몸을 눕혀 팽이처럼 돈 청강은 도를 지닌 복면인을 향해 날았다.
쉐엑! 쉐에엑! 쉐엑!
허공을 뱅글뱅글 도는 그의 몸에서 또다시 검이 움직이며 매화를 그려냈다.
앞엣것과는 달리 송이는 부족했고, 화려함은 덜했으나 청강의 의지가 한껏 담긴 매화는 선명했다.
“끄윽!”
도를 든 복면인의 목과 가슴에 매화가 박히며 처음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직후였다.
쉐에에에엑!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창날이 날아들었다.
‘진 대협!’
청강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독하게 깨물었다.
각오했던 바다.
폭렬공을 발휘한 복면인 셋은 결단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이미 최악의 순간을 염두에 두었다.
“크흑!”
오른쪽 배로 들어와 왼쪽 옆구리로 나온 창의 끝을 움켜쥔 청강은 그대로 창을 잡아챘다.
쉐엑! 쉑! 쉐에엑!
그리고는 딸려오는 복면인의 머리와 목에 시리도록 차가운 매화를 그려냈다.
털썩!
복면인은 짚단처럼 뒤로 넘어갔고, 청강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우.”
숨을 내쉰 청강의 앞에서 복면인 셋은 각기 옆으로, 앞으로, 그리고 뒤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표충량이 등에서 내려서는 동안 청강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다리를 길게 펴고 앉은 청강의 오른쪽 배를 뚫고 들어간 창이 왼편 옆구리로 길게 나와 있어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마교의 폭렬공에 은천문의 춘설난무를 발휘하는 셋을 상대해야 하는 싸움이었고, 그 속에서 표충량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진인.”
표충량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도 청강의 왼손을 앙증맞은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통증을 줄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표충량은 그 작은 손으로 청강의 손을 꼭 쥐고서 부족하기 그지없는 내공을 전해 주려 애쓰고 있었다.
‘이 어린 것을 어찌할꼬.’
청강은 지금 겪었던 사투를 통해 세 가지를 짐작했다.
나타난 이들이 은천문의 무공을 사용했으니 청강의 죽음으로 얻으려 하는 것이 있을 테고, 다음으로 진충무관에는 살아 있는 자가 없을 것이며, 이대로 두면 눈앞에 있는 표충량은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비참하게 죽기 쉽다는 점이었다.
청강은 표충량의 뒤편에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보았다.
‘너희는 화산과 이 청강을 너무 우스이 보았다. 내 이 아이를 지키고 진 대협에게 진실을 전하리라.’
결심을 굳힌 청강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일으켰다.
이로써 그는 대라신선이 와도 돌이키지 못할 길에 들어섰으니 이제부터 하려는 말을 남길 목적에서였다.
기운을 일으킨 청강은 표충량을 보았다.
작은 아이가 아직 청강의 손을 꼭 쥐고 있으니 어찌 애처롭고 또한 기특하지 않으랴.
“량아는 할아비의 검을 다 보았더냐?”
“제자는 무서운 나머지 바보같이 두 번이나 눈을 감았습니다.”
“허허허. 두 번이면 나쁘지 않구나. 나쁘지 않아. 그런데 어째서 우는고?”
“진인께서 고통스러우실 것을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차마 죽을 것이 염려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표충량이 입을 다물었다.
“도사는 죽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어찌 된다고 배웠더냐?”
“신선이 되신다,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할아비는 이제 우화등선하여 우리 량아가 앞으로 어찌 성장하는지를 다 볼 참이구나.”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표충량이 청강을 보았다.
“할아비가 우화등선하기 전에 당부할 일이 있으니 너는 그 일을 해주겠느냐?”
“제자는 당연히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진인.”
“그렇다면 너는 이 길로 문서량의 입구에 있는 객잔으로 가거라. 가서 화산의 제자들을 불러 달라 당부해야 하느니라. 후에 화산의 제자를 보거든 지금 일을 설명하고, 은천문의 진무린 대협께 직접 전해야 하는 전갈이 있으니 기별을 넣어달라 하여라.”
“은천문의 진무린 대협이라 하셨습니까?”
“허허허. 과연 량아는 영특하구나.”
피가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삼키느라 청강의 상체가 움찔했다.
“진인!”
“괜찮다. 할아비는 우화등선할 것이니 이는 절대 슬픈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진무린 대협께 전할 말이 좀 길어서 서둘러 그를 외워야 할 것이다.”
가까스로 피를 삼킨 청강이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바람이 북에서 동으로 불 때면 매화는 설산에서 꽃을 피워 향을 남서로 피우는구나. 햇살은 봄과 다르지 않으나 땅은 한기를 피워내니 매화는 홀로 향기롭다. 바다에서 시작된 기운은 산을 타고 맥을 따라 흐르니 정상에 도달하여 평야를 달리는데…….”
그 뒤로도 청강은 책갈피 서너 장에 해당하는 시구 같은 말을 읊조린 후에 표충량을 보았다.
“단숨에 외우기 어려울 터, 다시 한 번 들려줄 테니 잘 기억해라. 다시 말하지만, 누가 묻더라도 절대 진무린 대협께만 전해야 하느니라.”
“예, 진인.”
그렇게 두 번 더 싯구를 읊은 청강은 마침내 마지막 기운까지 모두 소진해 더는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할아비가 우화등선하려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야 하는데 누구라도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가까이 오지 못한다.”
어린 표충량이 이별을 감지하고 눈물을 비처럼 쏟아냈다.
“할아비가 신선이 된다는데 어찌 그리 우는고? 어서 일어서. 그렇지 않으면 원시천존의 곁에 데려갈 학이 내려오지 못하여 할아비는 이 자리에서 죽는 것으로 끝날 일이다.”
“진인…….”
“할아비가 이리 죽으면 너를 못 봐. 우화등선하여 지켜볼 테니 어서 가려무나.”
몇 차례의 재촉에 쭈뼛거리던 표충량이 결국 몸을 일으켜 절을 올리고는 화산을 향해 움직였다.
“학이 내려오는구나! 돌아보면 할아비가 떨어지니 너는 좀 더 서둘러라!”
표충량이 조금 더 멀어진 뒤였다.
“진 대협. 이 늙은 도인의 청을 부디 살펴주시오…….”
최후의 숨결처럼 한 마디를 내놓은 청강은 마침내 고개를 떨궜다.
**
명허와 수인자가 들어가고 잠시 뒤에 운진이 흑사련 호북 지부를 나섰다.
“문주 덕분에 소란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진 대협. 술사의 사술이 어찌나 강하던지 진 대협이 안 계셨더라면 노도는 이미 죽었거나 혼을 빼앗기고 끝났을게요.”
감정을 정리하려는 것처럼 대문 안을 살핀 운진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혈교의 술법으로 보이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짐작하는 바를 전했다.
“혈교에 불세출의 인물이 있어 새롭게 떠오른다더니 아마도 무랍 존자가 직접 나선 것이 아닌가 싶소.”
“무랍 존자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진 대협.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술사가 빠져나갔음에도 저들의 움직임이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오. 이는 필시 강시술이 접목된 것이 아닌가 싶소.”
진무린은 ‘무랍 존자’라는 이름을 뇌리에 담았고, 강시술이란 말에 마교를 떠올렸다.
“저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술법의 기운을 먼저 제거한 뒤에 부적을 떼면 죽은 자로 돌아갈 것이오.”
진무린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미의 죽은 자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긋지긋한 구대문파의 권위와 맞설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은천문과 진무린이야 함부로 못 하겠으나 애꿎은 원망과 질타가 모산을 향하지는 않을까, 그 점도 염려되었다.
“진 대협. 일을 바로잡는 데 수를 쓰면 어떻겠소?”
“수를 쓰다니요?”
“노도에게 맡겨주면 저들을 통해 일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소.”
궁금해하는 진무린을 향해 운진이 바로 말을 이었다.
“이미 죽은 자들이 술법의 힘에 서 있는 게요. 저들은 노도가 의도한 바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으니 지금까지의 일을 그들 입을 통해 말하게 한 뒤에 죽은 자로 돌아가면 어떻겠소?”
“과거를 진술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노도가 지시한 대로 말하게 만드는 것이라오.”
원하는 대로 떠들게 만든다?
순박하기만 한 운진이 생각하기에는 과한 제안이었다.
“소림과 무당의 제자분들이 염려하는 바를 짐작해서 드리는 말씀이오. 혹여 이 일로 진 대협이 곤란하지는 않을지 그 점도 걱정되었소.”
“고민해 보겠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죽은 자를 또 이용한다는 께름칙함도 있는 터라, 진무린은 적당하게 답을 건넸다.
“문주. 이번 일을 알아볼 겸해서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함께 가셔도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듯이 강시술이 병행된 것으로 보이오. 노도가 자리를 비우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이곳에 있었으면 하오.”
“그럼 저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진 대협. 부적으로 저리 묶어둘 시간이 별로 없다오. 대략 하루에서 이틀 정도이니 그 점을 참고하시오.”
“기억해 두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진무린은 홍화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진무린이 중단전을 막힌 것은 상등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술사로 짐작되는 무랍 존자, 진무린의 중단전을 틀어막은 하후도, 그를 풀어준 엄소동까지, 그들에 관해 알 수 있는 두 곳, 원예와 암연 중 당장 가깝고 편한 곳은 두말할 나위 없이 홍화루였다.
걷는 길에서 진무린은 청강을 떠올렸다.
‘아무리 하후도와 무랍이라고 해도 정도맹에 달려들기는 어렵겠지.’
황종관과 함께 정도맹에 있을 테니 당장 위험하지는 않으리라.
진무린은 홍화루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