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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7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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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72화

은천검제

제72화

 

연절해수라는 거창한 별호를 지닌 장중남은 정도맹의 예비단 3조의 조장이었다.

청룡단, 백호단이 주요 임무를 맡는다면 금령단이라 불리는 예비단은 그때그때 질서 유지나 맹주의 급한 명령을 이행했다.

예비단 3조 조장 장중남은 정도맹의 맹주 황종관이 떠난 이후에 흑사련 호북 지부의 뒷정리와 백면호리를 추적하기 위해 나선 소림과 무당 제자들의 지원을 맡았다.

사실 별것 아닌 임무였다.

그저 흑사련 지부를 차지하고 앉아서 소림과 무당의 요청이 있을 때면 건량이나 기타 물품을 전해주면 되는 일이고, 특이사항을 정도맹의 비월단에 보고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편한 임무를 수행하던 장중남이 벼락을 맞은 꼴로 흑사련 호북 지부에 서 있었다.

냉기, 냉기, 이런 냉기가 있을까.

평소에도 단호하고 냉정한 조연명과 조성명이 느닷없이 돌아왔으니 각오야 했다지만, 지금 아미의 두 장로와 제자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정도문파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냉혹하고, 끈적하며, 소름 끼치는 수준이었다.

말도 없었다.

심지어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마저 거른 채 독한 눈으로 있는데 당최 죽은 자 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옴짝달싹하기 어려웠다.

“사태. 저녁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용기를 쥐어짠 장중남은 저녁을 맞아 슬그머니 질문을 넣었다.

‘아침과 점심을 걸렀으니 저녁을 준비하란 지시가 있으면 얼른 자리를 피해…….’

기대 가득하게 기다리던 장중남은 조연명과 시선이 마주한 순간 급히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검은 눈동자가 흰자위 사이에 떠 있는 것처럼 조연명의 눈은 살벌했고, 죽은 생선의 눈처럼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저녁은 되었다.”

“예, 사태.”

장중남이 얼른 답을 내며 나오는 숨을 감출 때였다.

흑사련 호북 지부로 소림과 무당의 제자들이 일제히 들어섰다.

‘살았다!’

장중남이 남몰래 기쁨을 토해낸 뒤였다.

“소림의 명허가 사태를 뵙습니다.”

백면호리를 추적하기 위해 나섰던 소림의 제자 명허가 앞으로 나섰다.

“너희는 물러가 휴식을 취해.”

“사태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숙께 말씀을 올려야 하는 처지라 한 가지를 여쭐까 합니다.”

이번에 조연명은 비둘기의 눈처럼 냉혹한 시선을 돌려 명허를 노려보았다.

이때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어찌나 음험하던지 소림과 무당의 제자들이 동시에 내공을 일으켰다.

“소림은 어른의 말을 무시하라 가르치느냐?”

울컥했으나 명허는 반장을 세운 뒤에 고개를 숙였다.

“행방이 묘연한 사태를 찾아 나섰던 길입니다. 이렇게 돌아오신 것이 기쁘기 그지없으나 제자는 사숙께 보고를 올려야 해서 여쭤보았던 것입니다.”

“그 점은 장로들이 오시면 직접 말할 테니 물러가.”

무언가 수상했다.

끈적하고 불쾌한 기운 역시 아미의 것은 아니었다.

무당의 제자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명허는 나직하게 숨을 내쉰 뒤에 고개를 숙였다.

조용하게 몸을 돌려 흑사련 호북 지부를 나선 명허는 가장 먼저 무당의 제자인 수인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역시 놀랐으며, 한편으로 의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저리 말씀하시니 사숙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릴 참이오.”

“무당 역시 같은 뜻입니다.”

의심스럽고 궁금한 점은 많았다.

그러나 감히 조연명의 언행을 입에 담기 어려운 두 사람은 각기 사제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이미 기울어진 해가 기와지붕의 끝에 걸린 시간이었다.

 

**

 

청강은 꼬박 하루를 걸어 섬서 아래쪽의 문서량에 들어섰다.

작은 도시인 문서량은 고만고만한 반점과 다점, 그리고 햇살에 따라 열었다가 닫는 상점들 몇 개가 전부였다. 

해가 이미 기울어 사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고, 다점은 곧 닥쳐올 어둠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머리를 위로 묶되 당기지 않아 여유로웠고, 낡았으되 깨끗한 도사복과 화려하지 않은 한 자루 검을 지닌 청강이 다점을 지나 좀 더 걸은 뒤였다.

“진인!”

저 건너편에서 앳된 동자 하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연통을 넣기는 했다만, 우리 량아가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찌 홀로 나와 있는고?”

“표충량이 진인을 뵙습니다.”

질문을 건넸는데 표충량은 얼른 인사를 올렸다.

제 딴에는 계속 연습했던 인사를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허허허! 그 사이 예법을 익힐 정도로 성장하였구나! 어디?”

진무린이 대견한 손자의 느낌이라면 표충량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증손주의 모습이라, 멀리 있던 할아비가 오랜만에 그립던 증손주를 보는 것처럼 청강은 작은 아이를 살폈다.

“공부는 늘었더냐?”

“심법에 발전이 없습니다.”

“저런! 총명한 량아가 발전이 없다니 어찌 된 일일꼬?”

앳된 아이의 깜찍한 대꾸에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청강은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애써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건넸다.

“제자가 부족한 탓입니다.”

“사부가 그리 말씀하더냐?”

“아닙니다. 제자가 판단하기로 그러합니다.”

깜찍한 말과 눈빛에 더는 참지 못하였다. 

그래서 청강은 오래된 수련의 무거움을 훌훌 벗어버린 듯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선 가서 사부를 뵙자꾸나. 그런 뒤에 이 할아비가 우리 량아의 공부를 살펴주마.”

“실망하시면 어쩔까요?”

초롱초롱한 눈에 아직 익지 않은 코와 입술, 풋내 가시지 않은 볼을 한 어린아이의 질문이었다. 

화산에서만 줄곧 살아 가족이라고는 모르던 청강에게 진무린과 표충량은 그야말로 말년을 축복하는 선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정말 혼자 나왔어?”

“무관 앞에 나와 계신데 제자는 진인이 일찍 뵙고 싶어 달렸습니다.”

“그랬구나. 그랬어.”

나이 든 도사와 어린 소년이 함께 몸을 돌렸다.

“할아비가 와서 공연히 량아가 힘들지는 않은고?”

“제자는 진인이 오실 적만을 기다립니다.”

“어째 그런고?”

“음.”

표충량이 대꾸를 고민하듯 눈치를 살폈다.

“그냥 제자는 진인이 오시면 좋습니다.”

“흐허허허.”

유쾌한 길이었다.

그렇게 웃는 청강의 저 앞에 진충무관으로 향하는 언덕이 드러날 때였다.

청강은 걸음을 멈추었고, 곧바로 눈매를 날카롭게 바꾸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도를 기다린 의도가 불손하게 느껴지네. 혹여 기다리는 대상이 노도라면 이 아이는 그냥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나?”

대꾸는 없었다.

퍼러럭! 퍼러럭! 퍼러러럭!

대신 흑색의 두건과 무복으로 전신을 가린 세 명이 청강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휘릭!

한 명은 양손에 잡은 반월 모양의 날을 가슴 앞에 들었고, 가운데 인물은 도를, 그리고 바라보아서 오른편의 흑의인은 창을 옆으로 뉘인 채였다.

청강의 요청에 대한 세 명의 답은 나타난 모습으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량아야. 할아비의 등에 오르려무나.”

아무리 무관의 아이라 해도 아직 어리기만 한 표충량이었다. 놀란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청강은 익힌 내공을 손바닥을 통해 전해주었다. 

그의 웅혼한 내공이 따스한 기운으로 변해 몸을 감싸자 표충량은 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진인?”

“그래. 할아비가 오늘은 우리 량아에게 그동안 익힌 검을 보일 참이구나. 등에 있을 수 있겠느냐?”

기특하게도 표충량은 굳은 얼굴을 하고도 “예, 진인.”하고 답을 내었다.

청강이 아이의 손을 잡아 가볍게 당기자 작은 몸이 훌쩍 허공에 떠서는 마치 끈으로 당기듯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표충량의 손이 청강의 목을 감싼 후였다.

스으응.

청강은 반평생을 함께한 검을 꺼내 그 끝으로 삼 보 앞을 가리켰다.

“강호에 피 냄새가 진하더니 화산을 가벼이 여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가 깊은 내공을 운용하자 넉넉한 음성임에도 말소리는 손으로 던진 것처럼 멀리 이어졌다.

 

**

 

진무린은 어둠이 내려앉은 직후에 호북의 상등에 도착했다.

마등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발전한 진무린이었다.

상등을 지나 흑사련 호북 지부를 향해 걸으며 진무린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악한 기운 때문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음험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데 억지로 표현하자면 마치 죽은 자의 몸에서 나는 악취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따르던 운진의 반응은 호북 지부를 앞에 둔 골목에서 나왔다.

“진 대협.”

움찔한 그가 걸음을 멈춘 뒤에 진무린을 불렀다.

“사기요. 죽은 자의 기운이 근처에 가득하니 이는 필시 강시술을 발휘한 것이 틀림없소.”

운진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는 다시 진무린에게 시선을 가져왔다.

“배우기로 사람을 되살리는 것에는 모두 네 가지의 방법이 있으니 그 첫 번째는 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잠시 숨이 끊겼던 육신을 되돌리는 것이요.”

운진은 마치 책을 읽듯이 아는 바를 술술 풀어냈다.

“두 번째는 이미 빠져나간 영을 불러들이는 일이며, 세 번째는 다른 이의 혼을 집어넣는 것이며, 네 번째는 구천으로 향한 이의 몸만 살리는 것이외다.”

진무린이 무겁게 지켜보는 앞에서 운진은 흑사련 호북 지부를 돌아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안에서 풍기는 기운은 틀림없이 네 번째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몸은 이미 죽었으나 강시술을 발휘한 이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근처에 술법을 발휘하는 자가 분명 있을 것이오.”

지금 운진은 세상이 신기해 질문하던 순박한 도사가 아니라 술법에 정통한 모산의 문주로 그에 걸맞은 위엄 가득한 모습이었다.

“가까이 갔다가 저 사기를 맞게 된다면 돌이키기 어려운 해를 당한다오. 물론, 진 대협은 지닌 무공이 있어 그를 피할지 모르나 근처에 있는 이들은 반드시 혼이 흔들릴 것이며, 심한 경우에는 죽음을 피하기 어렵소.”

진무린은 슬며시 기운을 뿌려 흑사련 호북 지부 안을 살폈다.

음험하고 사악한 기운 앞에 정도맹의 무인 서넛이 붙어 있었고, 건물을 통틀면 대략 스물가량의 인원이 있었다.

“저들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강시라고 보시는 것이 맞소. 노도가 부적을 이마에 붙이면 활동을 멈출 텐데, 그렇더라도 강시술을 부리는 술사를 잡아야 온전히 해결했다 할 것이오.”

“강시술사를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적을 붙여 놓은 강시들은 움직이지 못하니 다음으로 그들의 몸에 든 술법을 제거해 진정 죽은 자로 되돌리는 것이 끝이라오.”

진무린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대꾸하지 못했다.

아미의 장로와 제자들이었다.

진무린이 검을 들이대고 모산의 문주가 부적을 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강시임을 증명하면?

은천문이야 홀로 버거울 테니 당장 모산의 멸문을 외치며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자존심 강한 아미가 명망 높은 장로와 제자들이 술법에 당해 강시가 되었다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는 까닭이었다.

“문주. 조용히 처리할 방법은 없습니까? 저들의 처리를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말입니다.”

“부적을 붙이더라도 죽은 자로 돌리지 못하면 내내 노도가 붙어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데…….”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질문을 던졌고, 답을 듣는 와중에도 진무린은 계속 기운을 내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딱히 강시술을 부리는 술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술사가 근처에 있다고 하셨는데 잡히지 않습니다. 그를 찾을 방법은 없습니까?”

“노도가 강시들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소.”

진무린은 입술에 힘을 꾹 주고 흑사련 호북 지부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진무린은 운진을 막아서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직후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흑사련의 문으로 조연명과 조성명, 그리고 열 명의 아미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는 어째서 이곳까지 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조연명을 대하기 무섭게 진무린의 몸에서 내공이 솟아올랐다. 이는 의도한 바가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 결과였다.

조연명은 진무린의 뒤를 향해 시선을 주었는데 그 직후에 까만 동자가 새의 그것처럼 조그맣게 응축되었다.

“사악한 자와 동행하다니, 이는 정도의 무인이 할 바가 아니다. 그대는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뒤에 있는 자는 조성명에게 맡기라.”

진무린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연명을 상대하는 동안, 조성명과 제자들에게 부적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정도맹의 무인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조연명이 먼저 손을 쓴다면 오히려 설명이 쉬울 수도 있었다.

“진 대협.”

그때 등 뒤에서 운진의 음성이 들렸다.

“말을 하는 자가 바로 술사요. 아까 말씀드린 세 번째 방법으로 다른 이의 혼을 넣는 일인데, 술사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 자신이 죽은 자의 혼을 대신 차지하였소.”

빠르게 운진의 설명이 있은 뒤였다.

쨍하고 시선을 돌리는 조연명의 눈이 파랗게 빛났고,

“크흑!”

진무린의 뒤에서 운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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