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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66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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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66화

은천검제

제66화

 

백 가지 얼굴과 경공으로 강호에 이름을 떨친 이가 백면호리다. 모려원을 업었다고 하나 경공을 펼치는 것은 자신 있다, 이 말이다.

’염병! 누굴 죽이려고!‘

그러나 동굴을 빠져나왔던 백면호리는 하마터면 꽥하고 나올 뻔한 고함을 이를 악물며 참아냈다.

‘이렇게 죽여서 자기들은 살겠다는 거야!’

불쑥 몸을 솟구친 곳이 동굴의 바로 위요, 도사들의 정면이라면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숫제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상황이었다.

휘익! 터더덕!

백면호리는 그동안의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진인!”

도사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때 그는 이미 이십여 걸음 앞을 달리고 있었다.

‘살았다!’

내심 기쁨을 감추며 백면호리가 방향을 뒤트는 순간이었다.

“어딜 가느냐!”

꽈르르릉!

엄청난 고함이 먼저 들렸고, 곧바로 백발의 도사가 수염과 도복 자락을 휘날리며 옆으로 따라붙었다.

홱! 휘익!

백면호리가 방향을 튼 뒤에 바위를 훌쩍 뛰어올랐는데,

“등에 있는 아이를 내려놓아라!”

백발의 도인은 여전히 사악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그의 곁을 따라붙고 있었다.

그뿐이랴?

도사가 소매에 오른손을 넣어 검지와 중지로 부적을 뿌리자,

화르르륵! 화륵!

“히엑!”

수백 마리의 뱀이 백면호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옆에서는 백발의 도사가, 앞에서는 뱀이 달려드는 형국이었다.

“이이-익!”

백면호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방향을 뒤트는 순간에,

“아이를 내놓아라!”

휘익! 화르르륵!

백발의 도사는 연속해서 부적을 날려 뱀을 불러냈다.

정말이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쌓은 도주 경험이 없었다면 필시 발을 물려 쓰러지고 말았을 일이었다.

“흐에엑!”

희한한 비명을 토한 백면호리는 나무를 밟는 동작으로 솟구쳐 앞에서 달려드는 뱀을 피했고,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이노-옴!”

바로 옆에서 달리며 고함을 지르는 백발의 도사를 보며, 백면호리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놈이 이거?’

소중한 물건을 도둑맞은 이들이 대개 저렇다.

쫓기는 하되, 행여나 백면호리가 그 물건을 파괴할까 두려워하여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사는 모려원을 반드시 살려서 데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어디 한번 보자!’

여유가 생긴 백면호리가 백발의 도사를 힐끔 보았을 때였다.

화아아악!

흰자위 하나 없이 검게 물든 도사의 눈이 백면호리의 눈을 파고들었다.

‘끅!’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내려놓아라!”

‘내가 왜!’

생각은 그런데 이상하게 백면호리는 속도를 줄였고, 거짓말처럼 웅덩이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달려! 달려야 한다고!’

“이제 아이를 내려놓아라.”

어느 틈에 앞을 막아선 백발의 도사는 뒷짐을 진 자세로 백면호리에게 지시를 내놓았다. 

그의 목에 선명하게 그려진 붉은 줄을 보면서 백면호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노-옴! 더 버티면 네놈은 백치가 되어 죽게 될 일이니 어서 아이를 내려놓아라!”

으르르릉!

백발 도사의 고함이 백면호리에게는 천둥이 울리는 듯 들렸다.

몸은 따르려 하고, 마음은 거부하고, 백면호리의 이마에서 솟아난 땀이 삽시간에 그의 얼굴을 적셨다. 그런데도 당장 그는 고개와 몸을 부들거리며 떨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미욱한 놈! 결국, 막다른 길을 택하는구나!”

도사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드는 것을 보며 백면호리는 요정을 떠올렸다. 

‘젠장! 천하의 백면호리가 서서 죽다니!’

어차피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정아야! 아비는 이렇게 간다!’

이렇게라도 버텨야 진무린이 나중에 무공이라도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겠나.

도사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할 때였다.

“잘 견뎠어.”

중후한 음성이 백면호리의 귀에 들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진무린의 내공은 참으로 대단해서 음성을 들은 직후에 백면호리는 퍼뜩 의도한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린 백면호리의 앞으로 세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진 대협!”

짧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은 이어 백면호리의 등에 업힌 모려원을 빠르게 살폈다.

“잠시만 내 뒤에 있어.”

“알았소, 진 대협!”

다른 곳에 가랄까 걱정인 백면호리였다.

그는 얼른 진무린의 뒤로 움직였는데 그때야 왜 굳이 뒤로 오라는 말을 했는지를 알았다. 

대략 열 명에 가까운 도사들이 웅덩이를 포위하듯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진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양묘에게 시선을 주었다.

“네가 백향초로 변신했던 장본인이냐?”

“흥! 모산의 저 쓸모없는 물건을 데려오면 나를 감당하리라 짐작한 모양인데 어림없다!”

양묘의 거만한 대꾸였다.

불쑥 눈썹을 치켜세우며 독하게 눈빛을 빛내는 종무헌 앞에서 양묘는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 따위가 진정한 술법을 이길 줄 아는 모양이다만!”

양묘가 급한 동작으로 왼쪽 소매에서 부적을 서너 장 꺼내 앞으로 뿌렸다.

쿠르르릉!

그의 술법은 참으로 놀라운 구석이 있어서 곧바로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사위를 어둡게 하더니 이어서 낙뢰가 번쩍였다.

“옴 바이라. 사마라. 두옴바리니.”

또한, 양묘를 따라 주변을 둘러싼 열 명의 도사가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세우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사악한 검은 연기가 피어나더니 그것들이 흉측한 방망이를 든 거대한 흉신악살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어쩔 셈이냐?

검게 연기로 피어난 흉신악살들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웅크렸고, 그 모습을 양묘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종무헌이 지시를 바라는 시선으로 보았고, 백면호리가 반걸음 뒤에 바싹 붙었으나 진무린은 움직임이 없었다.

“내 너를 파문하고 다시는 술법을 부리지 말라 경고하였는데 이리 흉악한 짓을 하고 다니니 네놈은 언제까지 모산을 욕보일 참이냐!”

반응은 운진에게서 먼저 나왔다.

홰액!

꾸지람을 토해낸 그는 소매를 떨쳐 열이나 되는 흉신악살들을 향해 부적을 날렸다.

쐐애액! 화르르륵!

그가 날린 부적은 화살처럼 날아 흉신악살에게 꽂힌 뒤에 거대한 불길로 변했다.

끄아-아!

고통 가득한 고함이 먼저 울렸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은 시커멓게 그을린 십여 장의 부적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오오-!”

속없는 백면호리가 감탄을 토해냈다가 양묘의 시선을 받고 얼른 진무린의 뒤에 고개를 숨겼다.

“감히!”

분한 얼굴의 양묘가 하늘을 뒤덮은 구름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양팔을 높게 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구물구물 하나로 뭉치는데,

“어림없다!”

운진 역시 양묘를 흉내 내듯 팔을 들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뒤에 나직하게 주문을 외웠다.

쿠르르릉! 쿠르릉!

두 사람의 도력이 부딪치듯 낙뢰가 번쩍였고, 묵직한 천둥소리가 울려 나왔다.

“오오-!”

속없는 백면호리의 탄성이 다시 터져 나왔는데 이때 하늘에서는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듯 휘돌고 있어서 가히 장관이라 할 만했다.

“흥!”

하늘을 향해 팔을 들었던 양묘가 거칠게 소매를 떨쳐 자세를 바로잡고는 운진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무언가 약점을 잡았을까?

술법이 막혔음에도 그는 야비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금서에 적힌 술법을 행했던 게로구나! 피를 머금었던 게야!”

“어린 생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으니, 너의 그 악독한 술법은 오늘로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늘에는 아직 시커먼 구름이 회오리치고 있어 웅덩이 주변이 어둑어둑했다.

“우하하하하!”

그 속에서 궁지에 몰린 것이 분명한 양묘가 통쾌한 웃음을 토해냈다.

“멍청한 위인아! 내가 시행한 술법을 받아들이는 데 제약이 있음을 몰랐단 말이냐? 내가 죽으면 너 역시 죽는다! 이제 알겠느냐?”

“내 이미 죽음을 각오했더니라!”

양묘의 비아냥에 숨 쉴 틈 없이 운진의 비장한 대꾸가 있었다.

‘그랬었구나.’

진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는 내내 세상의 일을 집요하게 묻더니 그는 출발할 때부터, 아니 수자들의 피를 핥을 때부터 이미 죽음을 각오했었던 모양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보는 세상의 일을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그랬으리라.

“진 대협.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오.”

시선이 마주치자 운진은 서글픈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술법서의 마지막에 분명 적혀 있었소. 피를 머금는 것은 죽은 자에게 씌운 술법을 취하는 것이니, 술법을 행한 자를 죽이면 함께 죽게 된다는 내용이외다.”

진무린을 향해 운진이 아프게 웃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양묘의 술법을 감당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마지막 방법이었소. 진 대협이 주신 배려와 은혜를 깊이 간직하리다. 내 평생 사부를 제하고는 처음 받아보는 온정이었소.”

운진의 각오를 들은 양묘가 설마 하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린 직후였다.

진무린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파문 제자를 벌하는 일에 어찌 문주의 죽음을 담보하십니까?”

“진 대협?”

“저자만 벌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론 살아 있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법입니다.”

스으응.

진무린은 주저하지 않고 검을 꺼내 들었다.

지켜보던 양묘가 도주하려는 모양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휘익! 휙! 

운진이 소매에서 부적을 꺼내 몸을 돌린 양묘의 앞으로 날렸고,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피어나 양묘의 앞을 막았다.

“네놈과 함께 죽어 모산의 악행을 끊을 참이다! 이후로 모산은 술법과 부적을 금하니 앞으로는 도를 구하는 도량으로 새로 태어날 일이다!”

“이 미친 인간이!”

휘익! 휙!

양묘는 운진이 피워낸 불길을 향해 부적을 날렸다.

“소용없는 일이다!”

운진의 고함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한 만큼 양묘의 부적은 운진이 만든 불길에 타서 재로 변하고 말았다.

도주를 멈춘 그가 천천히, 그리고 몹시 놀란 눈으로 다시 운진을 향해 섰다.

이후에 그의 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기가 서렸다.

“오냐! 그렇다면 내 반드시 너와 함께 죽으리라!”

양묘의 왼손이 오른손의 소매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억!”

술법보다 놀랍게도 진무린은 양묘의 앞에 있었다.

쉐엑!

그 직후에 검광이 번득였다.

툭!

거짓말 같은 장면이었다.

진무린이 번쩍 나타났고, 검광이 번득이더니 땅에 떨어진 양묘의 오른손이 억울하다는 투로 꿈틀거렸다.

“어떻게……?”

양묘는 아직 손목이 잘린 것을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긴, 종무헌이 놀랄 정도여서 뒤에 몸을 숨겼던 백면호리는 텅 빈 자신의 앞과 양묘 앞에 있는 진무린을 번갈아 보며 멍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술법이 있다면 검법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강호를 술법이 차지하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 보면 알 일이다.”

뿜는 것처럼 피를 쏟아내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던 양묘가 왼손을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엑!

또다시 검광이 번득인 뒤에, 툭 하고 그의 왼손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끄으-!”

이번에는 양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퍽! 퍼버버벅!

진무린은 검의 자루를 앞으로 내밀어 양묘의 양쪽 어깨와 팔꿈치 안쪽의 혈도를 눌러 피를 막았다.

“어찌 사람이 이리 악독하냐!”

양묘의 고함이 있은 직후에는,

퍽! 퍽퍽! 퍽!

칼자루로 그의 귀 아래와 가슴을 세차게 찍어 말문을 막고, 움직이지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남은 것은 도주할 기회를 엿보는 열 명의 도사들이었다.

진무린은 어쩌겠느냐는 투로 운진을 보았다.

“고맙소, 진 대협.”

운진은 전에 없이 다부진 눈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희의 악행은 이미 하늘에 닿아 용서할 구석이 없도다! 나는 너희를 벌해 모산이 앞으로도 술법과 부적에서 손을 떼는 계기로 삼으리라!”

말을 마친 운진은 왼손을 크게 떨친 후에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세우고 세 마디의 주문을 외웠다.

파아-악!

그가 세운 손가락 두 개에서 밝은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더니,

번쩍! 쒜애애액!

모두 열 가닥으로 나뉘어 둘러싼 도사들을 향해 떨어졌다.

“끄아-악!”

비명은 처절했고, 남은 것은 새카맣게 타서 죽은 열 명의 도사들이었다.

“우아-!”

백면호리가 두리번거릴 때 하늘에 모여 있던 시커먼 구름이 사라지며 밝은 빛이 다시 웅덩이 주변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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