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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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65화
은천검제
제65화
“흠허허허!”
만족한 웃음이 곧바로 들렸다.
“보기에는 절벽이다만, 이것은 눈속임일 터. 이토록 진을 설치하다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너희는 서둘러 술법을 준비해.”
“예, 진인!”
바깥에서 양묘의 지시와 그에 대한 도사들의 답이 커다랗게 울렸다.
좌안은 사리판단이 빨랐다.
백면호리가 뒤로 빠져나가는 것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모려원을 찾았다.
‘소저. 정말 술법을 발동하면 검을 냅니까?’
‘확실치는 않아요. 그러나 제가 도움을 주신 분의 어깨를 찌른 뒤에 기절한 일도 분명 있어요.’
소리를 거의 내지 않은 채 입술로 읽은 대화였다.
고개를 끄덕인 좌안은 손짓으로 섭성을 불렀다.
섭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온 뒤였다.
‘모 소저. 저들의 술법이 염려되는 상황이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먼저 성이로 하여금 벽력의 기운을 넣을 것이고, 다음으로 우안을 시켜 모 소저의 혈도를 짚을 생각이오. 괜찮겠소?’
시간이 급하다고 느꼈는지 좌안의 입 모양이 무척 빠르게 움직였다.
‘알았어요.’
‘고맙소, 모 소저.’
답을 들은 좌안은 고개를 돌려 우안을 보았다.
‘맡겨둬.’
우안의 답이 나오고 숨 한 번 쉴 여유가 지난 다음이었다.
“바리나. 움사마리. 도이나. 차기라.”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동굴 바깥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직후에 몸을 움찔한 모려원이 급히 고개를 돌려 좌안을 보았다.
‘사실이었구나!’
놀란 좌안의 앞에서 모려원이 눈을 부릅떴다.
두려운 광경이었다.
그녀의 눈 안에서 뭉글뭉글 피어난 시커먼 연기가 눈동자 전체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둘러!’
섭성은 곧바로 모려원의 목 뒤에 손을 올렸다.
좌안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지지지지지직.
듣기조차 섬뜩한 소리가 동굴 안을 나직하게 울렸다.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밖에서 펼쳐지는 술법에 대항하며, 한편으로는 섭성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이다.
이를 악문 채 고통을 견디던 모려원의 코에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그녀의 외포 앞자락을 적셨다.
그럼에도 부족했던가.
홰액!
모려원이 이안공자의 좌안을 향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었다.
‘점혈을 하세요!’
바라는 것은 알아들었다.
망설일 일도 아니었다.
우안이 오른손을 내밀어 검지와 중지로 모려원의 목덜미의 혈도를 찍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안공자의 몸이 희한한 모습으로 떨었다.
섭성이 뿌리는 벽력의 기운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때쯤 밖에서 들리던 그 거북한 주문이 뚝 끊겼다.
술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는 얼굴로 섭성이 손을 내려놓았고, 아직 코피를 흘리고는 있지만, 모려원은 그나마 수월해진 얼굴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흥! 제법 버티는 모양이다만, 언제까지 견디는지 보자!”
밖의 대화를 들은 모려원이 굳은 얼굴로 좌안을 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렇게 해도 못 견디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려원의 질문이 나온 직후였다.
“바리나. 움사마리. 도이나. 차기라.”
술법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치 주문에 연결된 것처럼 모려원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성아! 어서!’
좌안이 급한 얼굴로 재촉하여, 섭성이 곧바로 벽력의 기운을 뿜어내니, 앞으로 떨군 모려원의 고개가 안쓰럽게 떨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던지 지켜보던 이안공자는 물론이요, 백면호리와 촌민들이 함께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검을 뽑아! 그리고 옆에 있는 것들의 목을 자르면 너의 임무가 끝나!’
모려원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떨었다.
머릿속에서 지시가 떠오른 직후에 살육이라는 잔인한 행위가 짜릿한 쾌감처럼 그녀를 충동질한 까닭이었다.
모려원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엇을 하느냐! 어서 그곳에 있는 자들의 목을 자르고 나와 함께 나설 일이다! 목을 자를 때마다 더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을 느끼리라!’
‘난 살인마가 아냐!’
모려원은 고개를 급하게 좌우로 저었다.
‘진 대협! 견딜 수 있게! 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간절하게 진무린을 떠올렸다.
그가 온다고 들었다.
약속한 일이니 그는 반드시 이곳에 도착하리라.
‘진 대협! 이 고통은 진 대협께 검을 낸 벌이라 여길게요! 그렇더라도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고통을 이겨내려 고개를 떨면서도 모려원은 간절한 바람을 놓지 않았다.
목덜미를 통해 들어온 벽력의 기운은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변했고, 숨을 쉴 때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그리고 한순간, 그녀는 아득한 공간 너머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목을 자르는 것이 너의 임무요, 사명이다!’
홰액!
모려원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 직후에 온통 검게 물들어 있던 그녀의 눈에서 음험한 광채가 피어났다.
‘죽인다! 모두 죽여버린다!’
그 순간이었다.
작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움켜쥔 주먹을 잡았다.
떨리는 그녀의 시선 앞에 요정이 있었다.
‘언니!’
벽력의 기운이 전달될 테니 이 작은 아이 역시 말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우리라.
울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가 벽력의 고통이 아니라 모려원의 모습이 애처로운 눈을 하고서 주먹만 한 눈물을 흘렸다.
‘언니! 제발요!’
모려원의 눈에서 피가 섞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털썩!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
진무린은 두 시진이 가깝도록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허억! 헉헉!”
운진은 이미 도력을 다 소진한 데다 육체마저 지쳐 헐떡였고, 종무헌마저 낯빛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는데 진무린은 무거운 얼굴로 경공을 멈추지 않았다.
“사제는 나의 왼편으로 옮겨라!”
바위를 밟고 뛰어오르며 진무린이 내린 지시였다.
종무헌이 왼편으로 움직이자 진무린이 중앙이고, 오른편에 운진이 달렸다.
‘대사형!’
종무헌이 놀란 심정으로 진무린을 살폈다.
방향을 바꾸기 무섭게 진무린에게서 웅혼한 기운이 넘어오는데 종무헌은 단숨에 피로가 사라지며 몸 전체에 기운이 가득했다.
“오오-!”
내용을 모르는 운진이 놀라움과 감탄을 터트렸다.
진무린이 그에게도 기운을 전한 것이 분명했다.
‘사저가 위험하구나.’
종무헌은 이를 악물었다.
운기 중에 옅은 기운을 느꼈다더니 진무린은 짐작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말이다.
두 시진을 함께 달렸다. 그러고도 이토록 웅혼한 기운을 종무헌과 운진에게 전하고 나면 진무린은 더욱 힘겨움을 견뎌내야 하지 않는가.
가뜩이나 어깨를 뚫리는 부상을 입은 진무린이었다.
이럴 때 짐이 되다니.
종무헌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표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반드시 도움되는 사제가 되리라.
묵룡심법을 깨우칠 재능이 없다면, 은천심법을 바다처럼 넓고 깊게 수련해서라도 대사형에게 도움되리라.
“오! 진 대협! 이것이 혹시 내공을 전한 것이오?”
속없는 운진의 감탄을 들은 종무헌의 눈썹이 매섭게 치솟았다.
내공이 아니라 도력을 갖춘 운진을 저토록 기운 내게 하기 위해 진무린은 대꾸조차 못 하고 있었다.
**
좌안이 손짓으로 백면호리의 시선을 당겨갔다.
모려원에게 덜컥 다가선 요정을 따라 어쩔 수 없이 이안공자의 곁에 있던 참이었다.
‘왜? 뭐?’
‘경공을 발휘할 수 있소?’
‘그야 뭐…….’
‘모 소저를 데리고 나서시오.’
백면호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상체를 세웠다.
‘동굴 안쪽으로 출구가 있소. 물론 나가기 무섭게 저들에게 걸리기는 하겠지만, 경공이라면 알아주는 수준 아니오?’
‘내가 왜?’
백면호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저었다.
‘모 소저를 업은 데다 정아까지? 안 돼! 그 상태로는 고수들을 떨구기 어려워.’
‘정아를 두고 가시오.’
좌안의 의견이 나온 직후에 백면호리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모 소저가 혼절한 바람에 시간을 벌었지만, 저들은 반드시 더 강한 술법을 쓸게요. 그때가 되면 둘 중 하나요. 우리가 죽거나, 모 소저가 희생되거나.’
좌안이 입 모양으로 속삭였고, 우안이 그 말에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위험하오. 그러니 모 소저를 데리고 빠져나가 진 대협이란 분이 올 때까지만 숨어 계시오.’
말이야 맞다.
‘저들이 모 소저를 노리는 듯하니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견딜게요. 그런데 진 대협이란 분이 정말 오긴 오는 거요?’
‘온다니까! 그 출신이 원래 약속을 무겁게 여겨!’
대꾸를 건넨 백면호리가 입맛을 다셨다.
‘아니면 정아를 데리고 나서시오. 다음 술법에 모 소저가 검을 내면 여기 있는 모두는 어차피 죽소.’
어쩔까.
백면호리는 바닥에 쓰러진 모려원과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요정을 바라본 뒤에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부적을 태울 참이니 그에 맞게 준비해라!”
동굴 바깥에서 독기 가득한 지시가 들려오는 마당이었다.
‘가면 어디로 가?’
‘짐작 가는 곳 없으시오? 진 대협이 오면 저들이 해결된다니 그때까지만 몸을 숨길 곳이면 되지 않겠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던 백면호리가 혹시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디요? 짐작 가시는 곳이?’
‘나만 아는 게 낫지.’
그건 또 그렇다.
좌안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바깥에서 주문을 읊조리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꿈틀!
모려원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본 백면호리가 냉큼 요정을 안아 들었다.
‘진 대협이라는 분이 올 때까지 모 소저와 피해 있을 테니까 여기 이안공자 말 잘 듣고 있어.’
눈물이 그득한 요정을 품에 안은 백면호리가 각오를 다진 눈빛으로 모려원을 바라보았다.
**
내공은 확실히 도력과 다르다.
진무린이 전해주는 내공 덕분에 운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공을 전해주는 것은 발휘하는 것과 또 다르다.
막말로 열을 전하면 하나쯤 받는 것이 내공 아니던가.
선인의 경지라 하나 두 사람에게 내공을 퍼붓던 진무린은 결국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종무헌의 근심 가득한 눈빛을 진무린이 어찌 모를 수 있으랴.
그렇더라도 모려원을 향해 달리고 달리던 진무린은 결국 왼편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실수가 나올 정도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사제! 잠시 쉬어가겠다!”
“예. 대사형!”
진무린과 종무헌은 독수리나 쉴 법한 절벽 중간의 널찍한 바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
바람이 기다랗게 숨을 토해내는 운진과 진무린, 종무헌을 잡아채며 달려들었다.
운기에 앞서 잠시 호흡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진무린은 무심한 눈으로 절벽 아래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았다.
보기에도 경이로운 저 풍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나선 길이었다.
흑사련, 마등 따위 자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진짜 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놀라울 정도로 강했으며, 하후도, 엄소동과 같이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사매를 찾았다고는 하나 빠른 적의 대응에 허덕이는 꼴이었다.
“대사형.”
숨이 가쁜 종무헌이 서둘러 금창약과 헝겊을 들고 와 어깨를 살펴주었다.
“진 대협. 혹시 빈도가 모르는 것이 있소?”
아래쪽이 무서운 것처럼 벽에 앉은 운진은 이제야 진무린이 무리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문주께서 미세한 기운이 술법이라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확실히 술법 같기는 했소. 그 기운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까 염려되어 되도록 멀리 떨어지시려는 게요?”
“술법의 기운이 우리를 살핀 것이 아닌가 싶어 그렇습니다. 양묘가 우리를 살필 수 있다면, 귀혼곡에 몸을 감춘 사매 역시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아. 그렇구려. 그래요, 진 대협! 빈도의 판단이 짧고 배려가 부족했소, 이 부족한 사람을 용서하시오.”
“문주께서 그리하실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무리해서 달려오는 동안, 묵묵히 견뎌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감사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그렇다면 급한 길에서 이리 멈춘 이유가 운기를 하시기 위함이 아니오?”
“숨을 골랐으니 이제부터 잠시 시간을 보낼까 합니다.”
“그렇다면 어서. 어서 운기에 드시오. 빈도도 명상을 통해 할 수 있는 한 도력을 채워보리다.”
사양할 처지가 아니어서 진무린과 종무헌은 절벽에 붙어 운기를 시작했다.
당연하게 운진은 그 옆에서 명상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