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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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64화
은천검제
제64화
쿠으-응! 쿠으-응!
그사이, 충격은 더욱 커져서 지금은 마당의 나무들이 떨군 잎사귀가 주변에 흩날렸다.
“모 소저! 얼른 오라니까!”
“정아와 먼저 가세요! 진을 부수려는 힘으로 보건대 여기 있는 분들만으로 상대하기는 어려워요!”
백면호리가 불렀고, 모려원이 급히 답한 직후였다.
“저건 무공이 아니오!”
이안공자의 좌안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력이라면 진이 이리 울릴 수가 없소. 그러니 저건 도력을 이용한 술법이 분명하오! 이쪽은 내게 맡기고 모 소저도 우선 안으로 드시오!”
“도력이라 해도 촌민들이 상대하기에는 확실히 벅찬 기운이에요! 내가 도움될 거예요!”
모려원의 각오가 나온 직후였다.
요정을 안은 백면호리가 급하게 달려왔다.
“이안공자! 혹시 밖에서 술법을 부리는 것이 이 안에 영향을 미치나?”
쿠으-응! 쿠으으-응!
“진법이 버티는 한 어려울 게요. 지금 진법을 깨트리려는 이유도 밖에서는 술법을 부리기 어려워서가 아니겠소?”
“모 소저! 만약에 말이야, 만약이오, 만약! 지난번 삼도방에서처럼 술법에 모 소저가 검을 움직이면 이곳에서는 당해낼 이가 없어.”
백면호리는 결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진 대협이 온다니까. 그러니 지금은 모두 피해 시간을 버는 것이 최선이오.”
“진 대협이란 분이 그리 강하오?”
“진 대협이 이곳에 있다면 나는 죽어도 그의 뒤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무인이지!”
백면호리의 말이 끝난 직후에 이안공자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웅덩이 근처에 진법이 있고, 또 마지막으로 작은 진법을 설치한 동굴도 있소. 외부의 진법을 깨트릴 정도의 능력이라면 며칠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당장은 그리 피해 있는 것이 좋겠소!”
쿠우-웅! 쿠웅! 쿠드드등!
“이런! 모 소저!”
다급하게 매달리는 백면호리의 품에서 요정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알았어요!”
답을 들은 이안공자가 뛰었고, 그 뒤를 백면호리와 모려원이 따랐다.
**
입가와 수염을 닦은 운진이 만족한 얼굴로 탁자에서 물러나며 화려하지 않고, 길지 않은 식사가 끝났다.
“도를 구하며, 우화등선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반점의 요리 세 가지와 소면을 이리 탐하는 것을 보니 빈도는 아무래도 도통하기 어려울 듯하오.”
잘못 들으면 뻔뻔하게 느껴질 저 말이 운진의 본심이라, 진무린은 먼저 옅게 웃었다.
“문주께서는 반드시 도를 얻으실 것입니다.”
“죄 많은 빈도에게 어찌 그런 복이 있겠소? 그저 세상의 흉이 될 사제를 벌한 뒤에 모산을 바로잡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해야지요.”
넉넉한 표정으로 말을 늘어놓던 운진의 얼굴에 슬그머니 근심이 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모를 때야 겁 없이 나섰는데 이제 다시 경공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두려워 그렇소.”
진무린과 종무헌이 웃을 정도로 솔직한 운진의 염려였다.
“근처의 편안한 산에 들러 잠시 운기를 할 생각이니 그때까지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점에 오는 동안에도 그렇고, 이 안에서도 마주치는 이들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연유가 궁금합니다.”
진무린의 질문을 들은 운진이 주변을 둘러본 뒤에 상체를 슬쩍 기울였다.
“빈도가 그래도 도를 통하겠답시고 수행하지 않았겠소? 오가며 마주한 이에게서 때로 그의 과거나 미래가 보이는 듯하여 그를 확인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 것이라오.”
배도 충분히 채웠고, 궁금한 일들의 설명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 사람은 계산을 마친 뒤에 반점을 나섰다.
걸음을 막 옮겼을 때였다.
“진 대협. 세상에 무인이 있음을 모르는 이가 없고, 이미 검을 소지하셨는데 어찌 경공을 숨겨야 하오?”
아직 궁금한 것이 많은 운진이 또다시 질문을 내놓았다.
“지금 우리가 경공을 발휘하면 그 이야기가 족히 석 달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고, 거기에 살이 붙어 어떤 이야기로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아!”
반점을 나서 이각 가량을 걷는 사이에 운진은 참으로 많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때마다 진무린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자상하게 답을 주었다.
지나는 이가 없는 곳에 도착한 진무린은 곧장 오른편의 산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한 풀숲에 걸음을 멈추었다.
“사제와 저는 대략 반 시진 가량 운기를 할 참입니다. 문주께서는 휴식을 취하셔서 다음 걸음에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리다, 진 대협.”
마음은 급하나 그렇다고 운기를 거른 채 귀혼곡까지 달리는 것은 종무헌에게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운진을 부축한 탓이 컸다.
금창약을 꺼낸 종무헌이 진무린의 상처에 발라준 뒤에 두 사람은 가부좌로 앉았다.
어차피 진무린은 깊은 운기에 들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검은 기운을 운진이 보게 될 것이 염려돼서였다.
종무헌은 이미 운기에 들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사제의 곁에서 진무린은 모려원을 떠올렸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검으로 진무린마저 찔렀다.
그 심정이 오죽하겠나.
안타까운 숨을 내쉰 진무린은 눈을 감았다.
일주천 정도로 간단하게 운기할 생각이었고, 남은 시간 동안 등룡창천의 기운을 잘게 쪼개는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맞은편에서 목검을 옆으로 놓은 운진은 불진을 어깨에 걸친 자세로 명상에 드니 산속은 바로 새며 풀벌레 따위의 소리를 제외하곤 침묵을 되찾았다.
**
귀혼곡의 입구, 이송암관의 앞이었다.
양묘는 원형괘가 그려진 도사복 차림으로, 왼손에 잡은 불진을 어깨에 걸친 채 가부좌로 앉았다.
그의 뒤편 좌우에는 사선으로 각각 다섯 명의 도사들이 앉았는데 모두 앞에 앉은 도사의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친 자세였다.
“근나이리바. 섬만가리이. 옴선유선조.”
양묘가 진언을 중얼대듯 읊조린 직후였다.
세상을 가릴 듯 시커먼 연기가 그의 머리 위에 피어났고, 곧바로 거대한 도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옴난. 옴난, 옴난.”
양묘의 진언이 바뀌는 순간,
쿠-웅! 쿠아-앙!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도가 웅덩이 앞의 허공을 세차게 내리쳤다.
쿠아-앙!
도가 허공을 때릴 적이면, 물이 출렁이는 듯 세상이 흔들렸는데 아직은 견고한 모양으로 곧바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스르륵.
그렇게 허공을 때리던 도가 한순간, 검은 연기로 풀어져서는 허공에 녹아들었다.
“흠! 참으로 지독한 진이구나!”
가슴에 세웠던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내린 양묘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생로와 사로가 흔들렸으니 일각이면 이 진법도 무너지리라.”
뒤편에 있는 도사들을 격려한 그는 웅덩이 위편의 허공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흥! 무엇을 하고 있을꼬?”
혼잣말을 뱉어낸 그는 왼손 소매에 오른손을 넣어 부적을 꺼내고는 검지와 중지로 앞에 뿌렸다.
화르르르륵!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바닥에서 불길이 일더니 운기하는 진무린과 종무헌,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운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흠흐흐흐! 모산의 저 쓸모없는 물건과 나서봐야 네놈이 이곳에서 얻을 것은 비통함밖에 없을 것이다!”
코웃음을 날린 양묘가 생각난 것처럼 붉은 선이 생생하게 피어난 목을 쓰다듬을 때였다.
번득.
날카롭게 눈을 뜬 진무린이 이쪽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어떻게……?”
화르륵!
놀란 탓에 술법이 깨졌을까.
짧은 불길이 일어 세 사람의 모습을 삼켰다.
“무서운 놈! 지독한 놈!”
양묘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 진을 깨트리리라!”
그가 불진을 앞으로 떨친 후에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세우자 뒤편의 도사들이 앞사람의 어깨에 한쪽 팔을 올려놓았다.
**
진무린은 말없이 위쪽을 노려보았다.
등룡창천이 아니었다면 알아채기 어려웠을 미세한 기운이 한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흐음.’
강호는 넓고 그 안에 기인이사가 즐비하니 모산의 술법인들 어찌 허상이라고만 하겠나.
진무린은 급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아직 운기를 마치지 못한 종무헌을 살핀 진무린은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어째 그러고 있어?”
“대사형. 봄눈이 내리지 않아요.”
넉넉하게 웃는 진무린을 아직 앳된 모려원이 새초롬하게 노려보았다.
“이대로 진전이 없으면 강호에 나설 수가 없다고요. 대사형은 소매가 없는 강호에 나서고 싶으세요?”
“그래서야 되나? 검을 내어봐.”
대화의 끝에서 진무린이 권유했고, 모려원은 아직 고어조차 새기지 못한 검을 앞으로 내었다.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로움이다. 검을 믿어야 하고, 그 검이 너의 육신과 하나라는 신뢰가 없다면 절대로 봄눈은 피어나지 않는다.”
이미 모려원이 다 들었던 설명이었다.
“어디, 함께 해보자.”
스으응.
진무린은 고어가 새겨진 검을 들었다.
그런 뒤에 오른팔을 앞으로 내고는 왼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설산미풍! 눈 덮인 산에 작은 바람이 이니.”
검을 낸 진무린과 모려원이 짧게 검을 휘두르며 가볍게 앞으로 나섰다.
“양전춘래! 햇살이 봄소식을 알리는데!”
왼쪽 다리를 들며 검을 낸 두 사람은 손목을 흔들어 검광을 뿌려냈다.
햇살이 따듯한 날이었다.
미풍이 모려원의 머리칼을 흔들 때, 그 앞에서 검광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산불미동! 산은 움직이지 않아,”
진무린이 시구처럼 초식을 읊조린 직후였다.
모려원이 몸을 날려 높다랗게 떠올랐는데,
“춘설난무! 봄눈이 무성하도다!”
그녀의 뒤에서 진무린이 낭랑한 음성으로 초식을 외쳤다.
휘리리리리릭! 휘리릭!
아직은 아쉽다.
그러나 바닥에 내려서 모려원은 놀란 눈이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는데…….
“대사형.”
종무헌의 음성에 진무린은 시선을 들었다.
명상을 마쳤는지 운진 또한 눈을 뜨고 진무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기를 마쳤으니 출발하자.”
“예, 대사형.”
진무린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진 대협. 명상 중에 술법의 기운을 느낀 듯한데 혹시 짐작하시오?”
근심 어린 눈으로 종횡주를 바라본 운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저 역시 수상한 기운을 느꼈나 싶었는데 문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확신이 섭니다.”
“역시! 진 대협은 아셨구려.”
“술법의 기운이라 하시니 귀혼곡에 가는 길을 좀 더 서두를까 합니다.”
“그럽시다. 빈도가 최선을 다해 따를 것이오.”
옅게 웃는 진무린을 보며 운진은 볼이 불룩하도록 숨을 들이마신 후에 천천히 내쉬었다. 그 직후에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세우고는 주문을 외웠다.
휘이이이-익!
“으아아-! 진 대혀-업!”
아직 출발은 적응하지 못하여 튕기듯이 솟구친 운진이 진무린을 불렀고, 급하게 몸을 날린 진무린과 종무헌이 그의 좌우를 붙들었다.
**
콰드드-등! 드드드득!
가장 안쪽의 가옥을 지나 작은 둔덕에 있는 동굴이었다.
몸을 숨기며 바깥의 동향을 살피던 이안공자의 좌안이, “하아!” 하는 탄식을 쏟아냈다.
“뭐야? 왜?”
백면호리가 질문에 좌안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바깥의 진이 깨졌다고?”
“그런 것 같소.”
“헥! 그럼 이제 어쩌누?”
“중간 물웅덩이에 진이 하나 더 있으니 지켜봐야지요.”
대화를 마친 좌안이 동굴 안쪽을 돌아볼 때, 백면호리는 모려원을 살폈다.
부스럭. 부스럭.
그런 뒤에 그는 요정을 안고서 좀 더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술법이 작용하면 검을 휘두른다고 했던가?’
동굴로 달리기 직전에 백면호리가 했던 말을 떠올린 좌안은 백면호리의 동작을 짐작했다.
얍삽하기는 하지만, 강호에서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이리라.
이안공자는 모려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저. 이송암관의 진법이 깨진 듯하오. 중간의 진법은 더 약해서 바로 깨질 수 있는데 그리되면 이 근처로 바로 올게요.”
나직하게 건네는 말이었다.
“혹시라도 무인이 낸다는 기운이 있다면 그것을 거둬주시오.”
“알았어요.”
모려원이 답을 한 직후였다.
“이 근처에서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동굴 바로 아래에서 중년 남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중간의 진법을 벌써 깨트렸다고?
숨 막히는 긴장이 이어진 뒤였다.
“이곳입니다!”
다시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여러 명이 다가오는 듯 발걸음이 동굴 안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