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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63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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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63화

은천검제

제63화

 

종횡주라는 부적은 윗면과 아래쪽에 끈을 달아 놓아서 그것을 발목에 묶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마흔 살쯤 되는 도사에게 모산을 당부한 운진은 계단을 향해 선 뒤에 발목에 부적을 매달았다. 

“출발해도 되겠소?”

그는 허리에 목검을 걸었고, 왼손에 든 불진을 어깨에 걸쳐  도사의 풍모를 갖추었는데 출발을 앞두고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뭔가 수상한 모습이었다.

“혹시 이전에 종횡주를 사용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진 대협. 이번이 처음이외다.”

진무린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쉴 때 혹여라도 떼놓고 갈 것이 염려되는 것처럼 운진이 대뜸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들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가 주문을 마친 직후였다.

후아-악!

“어? 어? 아아-악!”

그의 몸이 자결을 위해 뛰어내린 이처럼 계단 아래를 향해 훌쩍 날았다.

“사제!”

진무린과 종무헌이 동시에 몸을 날려 운진의 양팔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필시 계단 아래로 떨어져 명을 다했을 것이 분명했다.

모산의 능력인지, 부적의 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무린은 운진의 몸에서 내공과는 다른 묘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문주! 힘을 조절하십시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이기며 진무린이 소리쳤고,

“원시천존!”

운진은 엉뚱한 답을 내놓을 뿐, 속도와 방향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진무린은 운진이 뿜어내는 기운이 익숙한 것을 알아채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술법을 사용할 때처럼 도력을 가라앉히십시오! 내게 뿜어낸 술법의 처음과 두 번째가 달랐으니 문주는 분명 도력을 조절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터억! 

진무린과 종무헌이 바위를 밟으며 몸을 솟구친 뒤였다.

운진이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튀어나가던 그의 속도가 확실히 줄었다.

“되오! 진 대협! 도력으로 속도를……! 아-악!”

아래로 뚝 떨어지는 운진을 진무린과 종무헌이 얼른 잡아채며 나무 위를 밟고 솟구쳤다.

“말씀하시는 순간 도력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당분간은 도력을 발휘하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운진이 앞을 노려보았다.

아직 공포를 떨어내지 못한 모양으로 아래를 볼 때마다 기운이 흔들렸고, 어디를 밟아야 할지 몰라 도력을 조절한다고 해도 그 운용이 중구난방이었다.

“저 앞의 나무를 밟을 참입니다!”

“알았-! 으아!”

답을 하다가 집중력이 떨어져 도력이 흔들렸고,

“원시천조-온! 으!”

바위를 밟고 낭떠러지 위를 건널 때면 운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아래로 떨어지곤 했다.

차라리 도력을 모른다면 아예 양쪽 팔을 잡고 달리련만, 도력이 들쭉날쭉, 경공을 발휘했다가 뚝 떨어졌다가 하니 숫제 부적을 거두는 편이 쉽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제!”

진무린은 종무헌에게 건너편의 널찍한 바위를 가리켰다.

“문주! 저 앞의 바위에 도착하면 술법을 멈추십시오!”

그렇게 두어 번 나무의 끝을 밟은 뒤에 세 사람은 그곳에 올라섰다. 다행히 운진은 알아듣기 어려운 외마디 주문으로 종횡주의 술법을 풀어냈다.

“후아-아!”

그런 뒤에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커다란 숨을 토해냈다.

“진 대협! 이리 허공을 날아다니다니! 무인의 능력이란 참으로 대단하외다! 경외롭기만 하외다!”

“종횡주의 위력과 문주의 도력 역시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니오. 아니에요. 아까 절벽 아래를 보았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운진을 바라보며 진무린과 종무헌이 동시에 웃고 말았다.

순진무구한 도사 운진이 양묘라는 파문 사제를 정리하겠다며 나선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나온 웃음이었다.

이런 사람이 또 어린 수자들의 죽음을 보고는 피를 핥아가며 금제된 술법을 꺼내 들 정도로 분노한다.

진무린의 시선 앞에서 운진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며 치를 떨었다. 

“진 대협. 이대로 귀혼곡으로 달릴 참이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점심나절에는 객잔에 잠시 들를까 합니다. 사제와 나는 운기를 해야 하기에 휴식도 필요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란 얼굴로 운진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삼도방은 연일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금방 돌아갈 줄 알았던 화호검 곽동문과 무심창 고섭량, 무정검 금남조가 아예 눌러앉듯이 머물며 연일 장삼도와 비무를 하였는데 이 또한 작은 기연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나.

게다가 장설군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찾고 있어서 당장은 더 바랄 것이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

 

한 시진을 달리는 동안 운진은 그나마 도력의 조절이 나아졌고, 미숙하기는 하나 원하는 지점을 밟으며 탄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헉! 허억!”

그러나 그가 경공을 위해 쏟아붓는 도력의 한계와 육신의 피로는 어쩌지 못해 숨소리가 무척이나 가빴다.

“사제!”

진무린은 그때쯤 종무헌을 불러 눈짓으로 산 아래를 가리켰다.

“문주!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세 사람의 옷자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그렇게 떨어진 세 사람은 커다란 나무의 끝을 밟으며 솟구치는 수법으로 속도를 줄인 뒤에 마침내 바닥에 내려섰다. 

바로 앞에 관도가 펼쳐진 산의 아래 부근이었다.

“하아! 부적과 도력을 이용한다고 하여 경공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가 보오.”

눈이 푹 꺼진 데다, 볼까지 쑥 들어간 운진이 지친 기색으로 진무린을 바라보았다.

“저 앞의 관도에 나서면 오가는 이가 있을 터라 객잔까지는 걸어갈까 합니다.”

“빈도는 진 대협의 뜻에 올곧이 따를 것이오.”

짧은 대화를 마친 세 사람은 산을 내려서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행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운진은 제법 도력 높은 도사의 풍모요, 진무린과 종무헌은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라 행인 중에는 고개 숙여 예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객잔에 다가갈수록 마주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운진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살폈고, 간혹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렇게 일행은 반점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쇼!”

단층 건물인 반점은 꽤 넓었음에도 빈자리가 몇 되지 않았다. 

점심 한 끼 해결하자고 들른 곳이다.

“이쪽이 어떠십니까?”

가릴 것이 없어서 진무린은 점소이가 가리킨 중앙 부근의 빈 탁자에 자리 잡았다. 

세 사람이 앉기 무섭게 찻주전자를 놓아준 점소이가 주문을 바라는 시선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삼피사와 앙금전발채, 호랄탕, 그리고 교면합락 세 그릇을 주게.”

“술은 어쩌시겠습니까?”

진무린의 시선을 받은 운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술은 되었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점소이가 물러나자 운진은 좀 더 여유 있게 반점 안을 살폈다.

넉넉한 차림의 상인이 있는가 하면, 급하게 요기를 하려는 이들이 있었고, 검과 곤봉, 혹은 커다란 쇠뭉치가 달린 작은 단봉을 올려놓은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이 주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얼굴로 운진이 상체를 기울였다.

“진 대협, 저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두는 듯한데 어찌 된 연유인지 짐작하시오?”

“반점이나 객잔에 들면 출신을 살피게 됩니다. 혹여 무림공적은 아닌지, 공을 세울 기회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검을 들거나 도사 복장이면 더욱 시선을 받게 되는 터라 앞으로 이런 일이 잦을 것입니다.”

“아!”

강호에 처음 나온 운진이 무언가를 배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마주치면 인사를 위해 다가올지 모릅니다. 또는 그것을 빌미로 언짢은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실 때는 그 점을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한 이는 다가오지 않고, 다가오는 이는 선하지 않다. 진 대협이 설명해 준 것이 바로 그 이치구려.”

나이 든 도사가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야 강호에 처음 나섰으니 세상이 얼마나 새삼스러울 것인가.

그의 전부였던 모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운진은 심지어 앉아있는 의자와 앞에 놓인 탁자마저 새로운 모양이었다.

“종 소협은 원래 그리 과묵하시오?”

“그렇습니다.”

그런 뒤에 운진이 건넨 질문을 종무헌이 한마디 대꾸로 받았다. 

“특히나 대사형을 모실 때면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미안한 모양으로 종무헌이 그답지 않게 변명을 내놓았다.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외다. 빈도는 그 우애를 이루지 못해 사제를 파문하였고, 그것으로 모자라 제자를 육십이나 희생했으며, 금일 새벽에는 어린 수자들을 억울하게 잃지 않았소.”

“양묘의 악행이 어찌 문주의 잘못이겠습니까?”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라 하였소. 도문에 든 자가 급히 채우려 욕심내는 일은 수행을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니, 문주가 되어 사제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내 잘못이라오.”

진무린의 다독임을 운진이 부끄럽고 참담한 얼굴로 받았다.

“그는 지금도 어린 생명들을 범하여 그 피를 마시고 있을 터, 이번에 진 대협의 도움을 받아 모산을 바로잡으면 품에 둔 이 괴이한 술법서를 파기할 참이오.”

운진은 책자가 있을 가슴 부위를 손으로 다독였다.

잠시 침묵이 있었으나 다행히 점소이가 주문했던 요리들을 가져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섬서를 대표할 만한 요리들입니다.”

“진 대협 덕분에 빈도의 입이 호사를 누리는구려! 고맙소, 진 대협.”

“문주께서 그리 인사하실 일은 아닙니다. 사제도 들자.”

“감사합니다, 대사형.”

그렇게 세 사람은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운진은 강한 향이 부담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잠시 뒤에 나온 교면합락을 반갑게 받아들었다.

“아직은 면이 반가운 것을 보면 가히 음식도 적응이 필요한 모양이오.”

“편히 드시면 됩니다.”

“고맙소, 진 대협.”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운진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고, 면을 입에 넣은 뒤에 놀란 듯 고개를 드는 그의 순박함이 또한 보기에 좋았다.

 

**

 

새로운 손님을 위한 음식이 준비되었다.

“오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래서 나는 잘 먹어야 한다니까.”

뻔뻔한 백면호리가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고, 그 옆에서 모려원도 모처럼 요리를 입에 넣었다.

“이것 좀 먹어봐. 노반이 자랑하는 자과다.”

기인촌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정은 촌민들이 권해주는 요리들을 입에 넣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백면호리가 몸을 세웠다.

“공자는 음식을 안 드나?”

“모처럼 객을 맞아 이곳 촌민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심정 올시다.”

좌안과 우안이 동시에 웃은 뒤에 모려원과 요정을 각각 돌아보았다. 

볼 때마다 참으로 편리하구나 싶은 모습이었다.

요리는 흠잡을 바 없이 맛있고,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여서 웃음과 소란이 멈추지 않았다.

“공자! 정아가 당분간 이곳에 머문다 하셨습니까?”

“그리되었다네.”

“잘된 일입니다. 반가운 일이에요. 내 요리를 잔뜩 만들어 정아를 배불리 먹일 참입니다.”

“이런! 노반이 저리 나섰으니 예쁜 정아가 뚱뚱보가 되겠구나!”

“와하하하하!”

이안공자의 감탄에 모두가 웃으니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쿠우-웅!

거인이 발을 내디디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쿠웅! 쿠우-웅!

진동은 연달아 있었다. 그 바람에 탁자 위의 접시가 부딪쳤고, 국물이 요동쳤으며, 음식들이 그릇 밖으로 튀었다.

“뭐야 이건 또!”

“침입자가 있는 모양이오!”

“무슨 침입자가 줄 서서 와?”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

이미 백면호리는 한번 겪었다.

촌민들이 바쁘게 안쪽으로 뛰었고, 백면호리는 급히 요정을 안아 들었다.

그러나 모려원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침입자가 오면 이송암관! 거 왜 내가 바위 두들긴 곳, 그곳에 걸리는데 진법을 억지로 깨려고 들면 저렇지!”

쿠우-웅! 쿠웅! 쿠우-웅!

“침입자요?”

“모 소저! 입구에 진을 펼쳐놓아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소. 그런데 누군가 진을 알아보고 강제로 부수는 모양이외다!”

촌민들을 지휘하던 이안공자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모 소저!”

요정을 안은 백면호리가 급하게 불렀으나 모려원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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