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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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62화
은천검제
제62화
떨리는 손으로 수자의 머리를 안아 든 운진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한 모양으로 상체를 앞뒤로 흔들었다.
“양묘, 이노-옴! 이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더냐! 도법과 술법이 어디 이런 짓에 쓰라고 있는 것이더냐-아!”
거친 말조차 안 해보던 이가 느닷없이 욕을 하면 아마 저리 어색한 느낌이리라.
“으아아-!”
이제 일곱 살쯤 된 수자의 볼을 양손으로 붙든 운진이 또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양묘! 이노-옴! 내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린 생명을 함부로 한 너를 결단코 그냥 두지 않으리라!”
부들부들 손을 떨던 운진의 기운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지금껏 풍기던 청명함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상명만큼이나 음험한 기운이 운진의 몸 전체에서 피어났다.
진무린이 눈가를 좁힌 직후였다.
“내 너희를 이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모산의 장문으로 반드시 파문 제자 양묘를 벌할 것이다!”
분통을 터트린 운진은 고개를 숙여 볼을 매만지던 수자의 눈과 귀에서 흘러나온 피를 빨아먹었다.
“양묘, 이- 노옴!”
그는 몸을 옮겨 옆에 쓰러진 다른 수자의 피를 핥다시피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처절하고 기괴한지 종무헌이 놀란 눈으로 진무린을 볼 정도였다.
진무린은 빠르게 문가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안을 지켜보던 도사들의 눈에 담긴 것은 공포였다. 그리고 그 진한 두려움 아래에 기대와 염려도 지니고 있었다.
‘술법의 한 종류구나!’
진무린이 다시 운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가장 안쪽에 쓰러진 수자의 피를 핥은 운진이 천천히 허리를 펴고는 몸을 돌렸다.
이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음험한 기운이 어찌나 강하던지 지켜보던 진무린마저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문주!”
“이 어린 것들을 살해하다니! 양묘 네놈이 그러고도 살기를 바랐더냐!”
진무린이 부르자, 운진은 뻘겋게 충혈된 눈과 피가 묻은 입을 움직이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사제!’
진무린은 종무헌을 향해 빠르게 눈짓을 전했다.
뜻을 이해한 종무헌이 조용하게 움직여 문 앞에 선 도사들을 막아선 다음이었다.
“죽어-라아!”
오른손을 왼쪽 소매에 넣었던 운진이 검지와 중지로 부적을 꺼내 뿌렸다.
처음에 보인 것은 뭉글뭉글한 검은 연기였다.
사악하고 음험한 기운이 진무린을 향해 훅 피어나더니,
쐐애애액!
독한 기운이 화살처럼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상체를 뒤로 젖힌 진무린은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는 듯 한 바퀴를 돌며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진무린이 휘두른 검에 맞은 기운이 벽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어린아이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잘려나간 부적이 바닥에 떨어졌다.
“문주! 정신을 차리시오!”
“악적! 네가 감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나를 희롱한단 말이냐!”
휘익!
운진은 다시 소매에 손을 넣어서는 두 장의 부적을 검지와 중지로 꺼내 뿌렸다.
후아아아악!
이번엔 보기에도 섬뜩한 죽은 여자와 남자가 진무린을 향해 엎어진 자세로 날아들었다.
“카아아-악!”
산발한 여자는 양손을 내밀어 진무린을 할퀴려 들었고,
“우와-악!”
분을 바른 듯 얼굴이 창백한 남자는 이를 드러낸 모습으로 진무린의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무린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검을 휘둘렀다.
묵룡검법의 전반 일초식, 등룡초풍의 수법이었다.
묵룡검법을 완성한 제자만이 검에 용을 새기니 이는 실로 은천문을 대표하는 검법이라!
용이 부르는 바람 소리가 일었고, 이어 은은한 금색이 피어나 기괴하게 날아드는 여자와 남자를 삼켰다.
“끄아아아-!”
“꺄아아아악!”
남녀의 처절한 비명이 들린 직후에,
휘이익! 퍼억!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챈 것처럼 벽으로 밀려난 운진이 거세게 부딪친 뒤에 엎어졌다.
“문주는 정신을 차리시오!”
묵룡심법의 내공을 담은 진무린의 꾸중이었다.
중후하기는 하늘을 대신하는 듯하고 강한 것으로는 천군의 기상이라, 이때 운진은 마치 신하가 군주를 뵙는 듯 무릎을 꿇은 자세로 놀란 얼굴을 들었다.
“진 대협?”
“문주! 비통한 심정이야 이해하나 남은 제자들을 살피어 속히 평정을 차리시오!”
진무린이 다시 묵룡심법을 담아 꾸짖음을 내린 직후였다.
운진의 눈빛이 온전하게 돌아왔고, 지독하게 풍기던 음험한 기운이 청량하게 바뀌었다.
“진 대협?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우선 몸을 일으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몸을 일으켜 입가를 닦은 그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소매를 살폈고, 이어서 쓰러진 수자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내가 결국 돌이키지 못할 술법을 부렸던가? 이를 어쩔까나.”
피 묻은 소매에서 고개를 든 운진은 이제야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진 대협. 이를 어찌해야 좋겠소?”
운진의 시선이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으나 진무린은 당장 아는 바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아-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쉰 운진이 이어 입을 열었다.
“일단 청양궁으로 자리를 옮기십시다. 그곳에서 말씀드리리다.”
허탈해하는 운진의 요청이 있을 때, 헉헉대며 일주문에서 달려온 서른 명의 도사들이 도착했다.
쓰러진 수자들을 보고, 이어 피 묻은 운진의 입가와 소매를 확인한 그들의 표정은 비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돌이키지 못할 일을 저질렀으니 이를 어쩔꼬.”
묘반각을 나서면서도 운진은 탄식을 멈추지 못했다.
모산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전각 두 개를 지나 청양궁에 들어선 운진은 먼저 중앙에 모신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에게 읍을 한 후에야 왼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진무린과 종무헌을 안내했다.
“이곳에 앉으시면 된다오.”
그가 참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권하는 동안, 어린 도사가 들어와 탁자에 차를 올려주었다.
수자를 갓 벗어난 어린 도사는 문주의 앞인데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진무린을 살피며 방을 나섰다. 운진이 평소에 어린 도사들을 얼마나 자애롭게 대했는가를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문주. 어찌 된 일입니까?”
“시간이 급하다는 진 대협을 앞에 두고 어찌 더 입을 다물겠소. 본파는 원래 주술과 부적술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오.”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건넨 말이었으나 실상은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었다.
“빈도의 조사부 되시는 민조 진인께서는 평소에도 애민하시어, 귀혼과 빙의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특히 주술에 치중하셨는데 그러던 중 놀라운 것을 발견하셨소이다.”
말을 하던 운진이 품에서 낡은 책자를 하나 꺼내었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누렇게 변한 모양새가 쉬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여기에 적힌 술법과 부적술이 참으로 놀라우나 한 가지 금제가 두려워 진인께서는 이것을 다시 봉하시었는데…….”
“펼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책을 펼쳐 보여주려던 운진이 진무린의 조언에 아차 하는 얼굴로 팔을 거두었다.
“죽은 자의 피를 삼켜 그의 한을 받는, 참으로 괴이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주술이 몇 가지 있었소.”
“그 술법을 양묘가 이었습니까?”
“민조 진인께서 봉인하신 것을 다시 열어낸 것이 내 사제 양묘였소. 그는 교활하게도 새로운 술법을 찾았노라고 내게 먼저 보여준 뒤에 함께 이것을 익혔고…….”
말하다 말고, 비통함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운진은 볼과 턱을 쓸었다.
“나 몰래 제자들을 꼬드겼소이다. 어느 정도 자신을 얻은 양묘가 모산을 차지하기 위해 나에게 달려들었으나 제자 육십의 희생이 있어 그를 물리칠 수 있었소이다.”
자꾸만 말이 중단되었으나 진무린은 묵묵하게 지켜볼 뿐, 재촉하지 않았다.
“그 일 이후로 양묘와 동조한 제자들을 모두 파문하여 내쫓았는데 불과 보름 전에 다시 찾아와 이리되었소.”
책자로 시선을 떨구었던 운진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본산을 지킬 예순을 잃었으니 이제는 양묘를 상대하기 어려웠고, 이기려면 금제된 술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어찌 도사가 되어 다른 이의 피를 삼킬 수 있겠소? 그런데도 수자들의 죽음에 분노하여 나 역시 경계를 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지 참담할 뿐이오.”
“이후에 다시는 사용하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금제된 술법은 동남의 피를 마셔야 하외다. 그리하면 첫 번째로 도력이 높아지고, 다음으로 아까 보셨듯이 환청을 보는 일이 사라진다오.”
“그렇다면 이미 그 술법을 행한 문주께서는 앞으로는 어찌 됩니까?”
“빈도가 발작할 때마다 진 대협이 눌러주든가, 아니라면 자결을 택해야지요. 배우기로는 무공으로는 금제된 술법을 누르기 어렵다 하였는데 강호는 참으로 넓고, 진 대협의 무공은 무섭고도 놀랍소.”
운진의 감탄과는 별개로 진무린은 복잡하게 꼬이는 사정에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 들은 사연에 모려원을 구할 방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또한 있었다.
“사매가 과거의 기억을 잃었습니다. 사매와 동행했던 세 사람이 모산의 술법을 사용하였으니 분명 양묘가 관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개를 든 운진은 눈가를 좁히며 진무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남일녀였습니다. 그들을 사매와 함께 상대하였는데, 사매가 급작스럽게 제게 검을 내고는 그 뒤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혹시 짐작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송구하오, 진 대협. 분명 양묘의 술법에 걸린 듯한데 직접 보기 전에는 뭐라 확답을 하기 어렵소.”
진무린의 질문에 운진이 미안한 얼굴로 답을 내놓았다.
“만약 양묘의 술법이라면 파훼할 방법이 있습니까?”
“진 대협! 내가 정신이 혼미할 때 주셨던 그 중후한 내공을 언제고 발휘하실 수 있소?”
“그 정도라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파훼할 수 있으리라 보오. 내가 파훼의 주문을 풀어낼 때 발작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것만 눌러준다면 가능하리다.”
참으로 기다리고 바라던 소식이었다.
“사매분은 어디에 계시오?”
“귀혼곡에 있습니다.”
이를 깨물었는지 볼을 씰룩인 운진이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빈도를 그곳에 데려가 주실 수 있겠소?”
이야말로 진무린이 바라던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러운 제안이어서 진무린은 함부로 답을 주지 못했다. 금제된 술법을 익힌 뒤라 혹시라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 까닭이었다.
“금제를 어겼으니 동남의 피를 마셔야 할 텐데 빈도는 절대 그런 악행을 저지르지 못한다오. 그러니 이참에 진 대협과 귀혼곡으로 향하며 이성을 잃을 때 도움을 받을까 하는 바람도 있소.”
진무린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운진은 솔직한 심정마저 전해주었다.
남은 걱정은 단 한 가지였다.
사람은 멍하니 생겼는데 운진은 제법 눈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모산에는 종횡주라는 부적이 있다오. 그걸 사용하면 진 대협과 종 소협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게요.”
“그런 것이 있다면 왜 이곳에 올라올 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평소에 지니고 다닐 필요는 느끼지 못했소. 게다가 산을 내려갈 때 상명이 함께 있어 더욱 드러내기 어려웠다오.”
경공도 해결되었다.
그런데도 운진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눈치였다.
“문주. 귀혼곡에 동행하는 일에 다른 바람이 있으십니까?”
“진 대협의 눈매는 매섭구려. 양묘를 찾아 그를 벌할 때 도움을 얻을까 하는 생각을 했소.”
염려하던 것에 비해 허탈할 정도로 솔직한 운진의 답이었다.
“오해하지 마시오. 앞서 말한 두 가지, 사매 분에게 걸린 술법을 파훼하는 것과 내 발작이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외다.”
천진난만한 건지, 아니면 속내를 감출 줄 모르는 것인지, 운진은 순박한 도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 강호에 나서본 적이 없다오. 민초의 삶을 모르는 내가 어찌 도를 제대로 깨닫겠소?”
턱없는 고백에 진무린은 그만 옅게 웃고 말았다.
“동행을 허락해 주시겠소?”
“문주가 자리를 비우면 이곳은 어찌 됩니까? 양묘가 재차 노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의 수족과 같은 상명을 진 대협이 물리쳤으니 당장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나는 맡은 바 일이 있습니다. 우선 사매를 만나 술법을 파훼하는 것까지는 동행할 수 있으나 이후에는 약속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진 대협. 양묘를 벌할 때까지만이라도 동행을 허락해 주시오. 말씀드렸듯이 그는 동남의 피를 계속 흡수해야 하는 터라 지금도 애꿎은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해하고 있음이 분명하외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린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 모려원에게 술법을 부린 자가 양묘라면 그를 벌하는 것은 진무린의 일이기도 했다.
그가 원흉이 아니더라도 모려원의 기억을 되찾아 준 운진의 바람을 들어주는 일이며,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우선 귀혼곡에 가서 사매를 만나보고 양묘의 행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진 대협.”
“사매의 기억을 찾기 위해 나서는 길입니다. 그리만 된다면 오히려 제가 고개 숙일 일이기도 합니다.”
“모산의 파문 제자가 저지른 악행을 바로잡는 일에 어찌 진 대협이 고개 숙이신다 하시오.”
동행하게 된 것이 반가운 운진 앞이었다.
‘사매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모려원을 떠올린 진무린은 내심 독한 생각을 떠올렸다.
죽을 인간들 여럿 나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