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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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61화
은천검제
제61화
달이 기울 때 운기를 마친 진무린과 종무헌은 그 길로 경공을 발휘해 여명이 밝기 직전 모산에 당도했다.
안개처럼 바닥에 퍼진 어둠이 넘실대는 앞에서 은은한 빛이 기암괴석을 품은 모산의 풍광을 두 사람 앞에 펼쳐놓았다.
도가라 들었다.
그런데도 모산의 입구에는 사찰에서나 봄 직한 일주문이 오십 보 간격으로 세 개 서 있었다. 어찌 보면 경건하고 또 다르게 보면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진무린은 먼저 기운을 옅게 풀어냈다.
‘이것들이.’
일주문 뒤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전중방 제자와 같은 기운이었다.
진무린은 눈매를 날카롭게 빛낸 뒤에 입을 열었다.
“모산은 어찌 객을 이리 대하느냐!”
내공을 실은 묵직한 음성이 어둠을 때리기 무섭게,
“크윽!”
첫 번째 일주문 뒤에서 가슴을 움켜쥔 도사 두 명이 허공을 찢고 나오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시자는 어떤 사유로 모산에 이리 무례하시오?”
“객의 방문을 알고도 숨어있으며 무례를 입에 담는단 말이냐!”
“본산은 당분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였으니 다음에 개방하거든 그때 다시 찾아주시오.”
도사의 대꾸를 들은 진무린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사제는 검을 들어 아직 몸을 숨긴 자들을 불러내라.”
진무린의 명이었다.
스으응!
종무헌은 단숨에 검을 꺼내 들었고,
쉐에에에엑!
모산을 가를 듯이 세차게 내리그었다.
“커흑!”
“컥!”
“크헉!”
놀라운 일이었다.
세 개의 일주문은 변함이 없건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일주문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졌다.
모두 이십여 명에 가까운 도사들이 역시나 가슴을 움켜쥔 채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시자의 무례함이 지나치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도사 중 한 명이 원망 가득한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내 사매에게 흉악한 술법을 걸어놓고도 사죄할 줄 모르고, 두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아직 숨어 기회를 노린다면 모산은 이미 도를 닦는 곳이라 여기기 어렵다.”
진무린의 꾸지람에 누구도 대꾸가 없었다.
여명을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침묵이 흐른 뒤였다.
진무린은 검을 꺼내 들었다.
“내 인내는 여기까지다. 모산은 오늘 강호에서 사라지리라.”
말을 마친 진무린이 걸음을 옮겼고, 성난 호랑이처럼 눈썹을 치켜세운 종무헌이 검을 오른쪽으로 내려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첫 번째 일주문을 지날 때였다.
“삼언중고, 화인경성, 은중각진.”
도사들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가슴 앞에 세우고는 중얼거리듯 주문을 외웠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는가 싶더니,
화르륵! 화륵! 화르르륵! 화륵!
진무린과 종무헌을 둘러싸듯 두 길 높이의 허공에서 횃불이 피어났다.
“사제는 무얼 하느냐!”
진무린의 외침이 떨어진 직후에,
“예, 대사형!”
종무헌의 다부진 답이 있었고,
퍼러러럭! 쉐에에에에엑!
공중으로 솟구친 종무헌이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횃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맑은 산에 핀 흐드러진 꽃이라, 종무헌이 청산만화의 수법을 펼치자 불빛을 받은 그의 검이 횃불 주변에서 요란하게 빛났다.
검을 빠르게 회수한 종무헌이 바닥에 내려선 직후였다.
“크헉!”
“컥!”
“크아악!”
비명이 먼저 터졌고, 이어서 횃불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으며, 다음으로 달빛과 함께 일주문 주변의 풍광이 돌아왔다.
가슴과 목을 움켜쥐고 널브러진 도사들을 뒤로하고 진무린과 종무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일주문을 지난 직후였다.
“원시천존.”
또다시 어둠을 찢는 것처럼 바로 앞의 공간을 뚫고 십여 명의 늙은 도사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시자는 걸음을 멈추시오.”
진무린은 걸음을 멈추고 무거운 표정으로 중앙에 선 늙은 도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뜻밖에도 중앙의 늙은 도사는 청강과 같이 청량한 느낌이 풍겨온 까닭이었다.
“모산의 장문 직을 맡고 있는 운진이라 하외다.”
“진무린이오. 이쪽은 내 사제로 종무헌이라 하오.”
진무린은 우선 운진을 존중해 이름을 밝혔고, 종무헌을 소개했다.
‘무언가 내막이 있구나.’
운진은 청량하나 그의 주변에 있는 기운은 여전히 사악했다.
진무린은 시선을 앞으로 돌려 운진을 바라보았다.
진무린의 턱에 걸릴 정도의 신장에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머리를 어찌나 위로 올려 묶었는지 실제로 코가 말처럼 길쭉하게 보였다.
“진 대협.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오. 모산은 그대의 사매를 농락한 적이 없소.”
“장문. 석관평의 삼도방에서 이미 모산의 제자 셋이 술법을 부려 나를 노린 적이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리 단언하십니까?”
운진은 부인하고 진무린은 추궁하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뻔뻔하게 나와야 맞을 텐데 고작 한 마디 질문에 운진은 확실히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직후였다.
세 개의 일주문을 통하는 길옆에서 서른 명 정도의 도사들이 불진과 검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을 찢는 것처럼 등장한 앞과는 달리 그들은 숨긴 몸을 드러내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진무린은 새롭게 나타난 서른 명의 도사들을 먼저 살폈다.
그들의 기운은 확실히 맑고 청명했는데 확실히 운진의 곁에 선 열한 명의 도사들은 음험한 기운을 풍겼다.
‘파벌이겠지?’
운진의 난처한 표정, 나타난 도사들의 두 가지 다른 기운을 느낀 진무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문. 혹시 어제, 오늘 중 목에 붉은 줄이 생긴 도사가 있습니까?”
진무린의 질문에 대한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 운진은 난처한 기색이 더욱 짙어졌고, 반면에 곁에 선 열한 명의 도사들은 음험한 기운을 아예 대놓고 뿜어냈다.
저토록 기운을 감추지 않는다면 뒤는 불을 본 것처럼 뻔한 일이었다.
“목에 붉은 줄이 생긴 도사가 있다면 그를 만나겠습니다.”
“흥!”
역시나 운진의 곁에 선 도사 한 명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터트리며 나섰다.
“제자 몇을 물리쳤다고 너무 교만하지 않은가!”
“도사께서는 도호가 어찌 되시오?”
“상명이라 한다.”
답을 들은 진무린은 먼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옅은 미소를 그려냈다.
“상명 진인. 백향초로 변신했던 도사를 알고 있는가?”
“답을 듣고 싶다면 우리가 부리는 술법을 이겨내야 하리라.”
말을 마친 상명은 더 볼 것 없다는 투로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었고, 왼손 손바닥을 펴 그 위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세웠다.
“그런 술법이 나와 사제에게 통하지 않음을 보았을 텐데?”
“너희 두 사람은 세 개의 일주문을 지난 순간에 이미 우리가 만들어낸 사로에 들어섰으니 이제는 살아서 답을 듣기는 어렵다!”
상명의 한마디가 신호인 양, 곁에 있던 열 명의 도사들이 같은 모습으로 손가락을 세웠다.
그들이 중얼거리듯 주문을 외운 직후였다.
첫 번째 일주문에서 겪었던 것과 똑같이 세상 모든 것을 삼킨 듯 주변이 어둠에 휩싸였고, 모두 열한 개의 횃불이 두 길 높이에 떠올랐다.
웅얼웅얼.
알아듣지 못하는 주문이 주변을 휩쓸었고, 그 직후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끈적하고 진한 어둠이 진무린과 종무헌을 가두었으며, 횃불이 거칠게 떠올랐다.
“각오는 되었느냐?”
상명의 입김에 밀린 것처럼 횃불이 말소리를 따라 진무린과 종무헌을 향해 밀려들었다.
사로에 들었다고?
진무린은 가볍게 웃었다.
이미 풀어낸 기운이 상명과 남은 열 명의 도사들을 확인하고 있는 터라 이까짓 술법은 진무린의 상대가 아니었다.
“사매에게 술법을 행한 놈이 네놈이냐?”
“으하하하! 참으로 배짱이 대단하구나! 네놈에게는 애석한 일이겠다만,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화르륵! 화륵! 화르륵! 화르륵!
상명의 말소리에 따라 불꽃이 진무린과 종무헌을 향해 거칠게 휘날렸다.
“졸개 따위를 상대하느라 허비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너는 죽어라!”
“건방진 놈! 끝까지…….”
상명의 말과 함께 불꽃이 부르르 떨리는 순간이었다.
“사제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부어라!”
종무헌에게 비풍강우의 초식을 지시한 진무린이 단전에 담긴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퍼러러럭!
종무헌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는 순간에,
쐐에에에에에엑!
진무린은 정면의 횃불을 향해 검을 세차게 내리그었다.
꽈르르릉!
진무린의 검이 상명과 도사들이 형성한 술법을 부수는 순간이었다.
휘리리릭! 휘릭! 휘리리리릭!
종무헌의 검이 만들어낸 바람과 비가 열 개의 횃불을 노리고 어둠을 휘저었다.
종무헌이 진무린의 뒤로 내려선 직후였다.
퍼억! 퍽! 퍼억!
허공에 떠 있던 횃불이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고, 곧바로 밝아진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끄윽!”
이마의 한중간부터 코와 입, 턱, 그리고 가슴까지 붉은 줄이 길게 피어난 상명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비틀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사로에 들기 전에 너희가 먼저 묵빛 기운 안에 담겼다.”
진무린의 대꾸가 끝난 직후였다.
열 명의 도사들이 먼저 쓰러졌고, 이마에서 가슴까지 이어진 선을 타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상명이, 털썩 소리를 내며 피범벅의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원시천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본 운진이 두려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제자들은 나서지 마라.”
불진과 검을 들고 움찔대는 서른 명의 도사들에게 명을 내린 그가 놀라는 시선으로 진무린을 찾았다.
확실히 운진과 주변을 지키는 서른 명은 기운이 청명했다. 그리고 운진은 진무린이 서른 명을 마저 쓰러트릴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문은 놀라지 마십시오. 일주문을 지키던 이들과 상명에게서 사악한 기운을 느껴 단호하게 대했을 뿐입니다.”
진무린을 살핀 운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배려에 감사하오, 진 대협. 진 대협 덕분에 빈도와 이곳의 제자들은 위기를 넘겼으나 이로써 모산은 명맥을 잇기 어렵게 됐으니 그것이 애석할 뿐이외다.”
고개를 돌려 모산을 바라본 운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 대협. 이들은 양묘라는 도호를 사용하는 본산의 파문 제자를 따르는 무리외다. 양묘가 본산의 어린 제자들에게 악독한 술법을 걸어놓아 나 역시 어찌할 방법이 없었소.”
힘없는 장문의 설움이 운진의 눈에 그대로 피어나 있었다.
“양묘라는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안산이요. 이미 이들의 죽음을 알았을 테니 진 대협이 아무리 서둘러 달려간다고 해도 양묘는 이미 몸을 숨긴 뒤일 것이오. 또한, 본산의 어린 제자들 역시 무사치 못할게요.”
처연한 표정의 운진을 본 진무린은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어린 제자들이 위기에 빠졌다면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선 달려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말이다.
“장문. 이럴 것이 아니라 올라가서 제자들을 살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와주시겠소, 진 대협?”
“도움이 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진무린은 검을 수습한 후에 곧바로 모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역시나 검을 수습한 종무헌과 운진이 따랐다.
왜 걷고 있지?
운진과 그 제자들은 오로지 도만 닦았는지 서둘러 달리는, 딱 그 수준이었다.
“서두르십시오!”
“빈도가 경공을 익히지 못하였소.”
세상에 이런 장문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제와 함께 잠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진무린은 종무헌에게 눈짓을 건네고는 운진의 양쪽 팔을 하나씩 붙들었다.
펄러러러러럭!
“원시천존……!”
놀란 운진의 음성이 터져 나올 때, 해가 떠오르며 한순간 날이 밝았고, 모산을 향해 옷자락을 펄럭이며 날 듯이 나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바위와 경사를 피해 굽이굽이 이어진 돌계단이 도관의 운치를 살리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한 때였다.
진무린과 종무헌은 불쑥 나온 바위와 기울어진 나무를 밟으며, 모산의 정상을 향해 아예 일직선으로 향했다.
휘이이이익!
나무의 끝을 밟아 몸을 솟구치면 아래는 끝없는 낭떠러지라!
“원시천존……!”
그럴 때마다 운진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퍼러럭!
하늘에서 내려선 도사와 신장처럼 세 사람이 모산의 청양궁 앞에 떨어져 내렸다.
놀란 모산의 제자들이 분분히 나왔다가 문주를 향해 예를 표하는 앞에서 운진은 급하게 청양궁의 오른쪽을 돌아 묘반각이라 적힌 건물로 뛰어들었다.
벌컥!
급하게 문을 열고 뛰어들었던 그는,
“으아-아!”
아이가 터트린 것처럼 유치하게 들리는, 하지만 처절하기 그지없는 비명을 토해냈다.
“이 불쌍한 아이들을……! 어쩔꼬! 이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찌할꼬!”
그를 따라 묘반각에 든 진무린과 종무헌은 무섭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수자들을 보았다.
도사가 되기 위해 도관에 들었으나 아직 정식으로 도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대략 여섯 살에서 많아야 열세 살일 아이들이 눈과 귀, 그리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