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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89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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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89화

은천검제

제89화

 

뿔피리 소리와 함께 강렬한 마기가 계곡의 끝에서 솟구치더니 곧장 진무린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숫자는 오십여 명이었는데 살기와 마기는 이백 명을 합친 것만큼이나 강하고 진득했다.

진무린이 팔관교 아래를 빠르게 살피는 순간이었다.

“네놈이 감히 곁눈질을 한단 말이냐!”

하후도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판관필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의 팔과 손목을 따라 기묘하게 뒤틀린 판관필이 날아들고, 이어 상단전의 기운은 진무린을 옭아맸다.

쉑! 카각! 쉐엑! 카가각!

판관필은 검과 같은 형태로 움직였고,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이단봉의 모습으로 꺾였으며, 삽시간에 연검처럼 부드럽게 휘어 진무린의 급소를 노렸다.

변화는 끝이 없고, 현란하며, 종잡기 어려웠다.

전날 은천수호검을 본 것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하늘의 배려였을까.

그 변화의 끝을 짐작하는 진무린은 빈 곳을 찾아 몸을 빼냈고, 비슷한 변화로 하후도의 틈을 파고들었다.

진무린은 견딜 만했다.

그러나 당장 새로 달려드는 오십 명을 상대해야 할 화산과 아미, 은천문의 제자들이 염려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 하!”

혈승을 상대한 아미의 현절과 제자들이 무랍을 포위하며 결정적인 한 수를 노렸고, 그 주변을 화산이 지키는 형태였다.

위기였다.

“가라!”

그나마 혈승의 술법이 없는 틈을 노리고 날아간 운진의 부적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진무린 일행에게는 더할 수 없는 도움이 되었다.

구양강의 잠력대법을 상대하는 임운령은 손을 빼내기 어려웠다.

쉑! 쉐엑! 카앙! 쉑쉑!

이런 순간에 달려드는 새로운 오십 명의 적은 확실히 강했다.

그들이 달려들며 화산의 제자들과 은천문의 제자들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이대로 밀리면 삽시간에 줄줄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무린은 이를 악물고 지닌 내공을 모두 뿜어냈다.

“하아-앗!”

팔관교의 외줄을 밟고 솟구친 진무린은 먼저 하후도를 향해 춘설난무를 펼쳤다.

휘리리릭!

섬뜩한 빛줄기가 하후도를 덮으며 팔관교가 갈기갈기 찢기듯 끊어졌다.

사람은 날개가 없으니 아래로 떨어진다.

난간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하후도의 다리를 노리며 진무린이 검을 휘둘렀고, 하후도는 급히 판관필을 휘감았다.

카각!

하후도가 풍령관의 본채를 향해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그를 따라잡는 것처럼 난간을 밟았던 진무린은 단박에 아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상단전이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직 기운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대로 두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터라 진무린은 독한 각오로 묵룡심법의 기운을 뿜어냈다.

우우우우우우웅.

묵빛 기운이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을 때,

휘리리릭! 휘리리리리릭!

진무린은 거칠 것 없이 춘설난무를 뿌렸다.

묵빛 기운이 오십 명의 적을 가두었고, 상단전을 통해 뻗어 나간 기운은 그들의 위치를 짐작했다.

그 속에서 진무린의 검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났다.

“오오-!”

놀란 운진의 외침이 터질 정도로 밝은 눈발이 오십 명을 향해 휘날렸다.

화려해 보이나 실상은 죽음을 뿌리는 눈발이었다.

검광이 휩쓴 직후에 잔인한 피보라가 주변에서 자욱하게 피어났다.

검이 직접 닿지 않았으니 이는 검기라 할 만했다.

처음 검의 기운을 사용한 탓에 속이 울컥했으나 진무린은 멈추지 않았다.

너희 따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찌 마교를 상대할 것이며, 뒤에 숨은 암중세력을 어찌 궤멸하랴.

오너라! 피를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피하지 않겠다!

우우우우우우웅.

진무린의 심정을 알아챈 검이 분노와 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묵빛 기운을 널따랗게 펼쳐낸 다음이었다.

진무린은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화산의 제자들을 둘러싼 적들을 향해 높다랗게 떠올랐다.

보아라!

이것은 은천문의 검이다!

이를 악문 진무린은 재차 묵룡심법의 기운을 끌어올려 검에 담았다.

쉐에에엑! 카가가각! 카가각!

묵빛 기운에 갇힌 서른 명 중 스물가량이 들고 있던 검과 함께 목이 갈라졌고, 나머지 열은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이익!”

울컥 올라온 피를 꿀꺽 삼킨 진무린은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다시 솟구쳤다.

엄청난 위용이었다.

아미와 화산을 노리던 적들과 은천문의 제자들을 향해 달려들던 적들마저 멍한 얼굴로 진무린을 지켜볼 정도였다.

우우우우우웅.

웅혼한 검명이 풍령관 앞에 커다랗게 울렸고,

휘리리리리릭!

높다랗게 떠서 해를 등진 진무린이 현란하게 검을 휘둘렀다.

눈부시게 빛나는 검광이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눈발처럼 스무 명을 뒤덮었다.

검을 휘두른 진무린은 피를 뿜어내는 스무 명의 위에서 두 번이나 몸을 비튼 뒤에 건너편에 내려섰다.

바람도 숨을 죽인 듯, 모든 것이 고요한 가운데 진무린은 시선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홀로 검을 휘둘러 백 명에 가까운 적의 목과 가슴을 갈라 바닥에 쓰러트리니 지켜보는 이들의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었다.

물론 진무린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등룡창천과 상단전의 깨달음을 대성한 것은 아니어서 울컥 올라온 핏물을 남모르게 삼켰다.

약점을 본 하후도가 곧바로 달려들 것이 염려된 탓이었다.

침묵의 틈을 타고 훌쩍 몸을 날린 무랍이 하후도의 옆에 선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로 진무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억지로 버텼다.

무랍마저 몸을 빼낸 참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구양강은 진무린의 상태가 의심스러운 눈치였다.

“흥! 요란하게 설치더니 기혈이 엉킨 모양이구나!”

한쪽으로 몸을 뺀 그가 하후도와 무랍이 들으란 듯이 내공을 담아 이죽거렸다.

밀릴 것 같으냐.

울렁이는 속을 꿀꺽 삼킨 진무린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풍령관은 마기를 익혀 스스로 살인귀가 되었고, 선한 이를 해하였으며, 본문에 암계를 펼친 것은 물론이고, 사술을 이용해 다른 이의 목숨과 정신을 해하였으니 나는 풍령관을 용서할 수 없다.”

“네놈이 무신이라도 된다더냐!”

분노한 구양강의 고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차 빠르게 진무린을 훑었다.

분명 기혈이 엉킨 듯한데 지금 말하는 태도는 또 당당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상태였다.

“구양강. 내 검을 받을 자신이 있다면 나서라.”

나직하나 참으로 당당한 진무린의 말이 나오자 구양강은 볼을 씰룩했으나 감히 달려들지는 못했다.

주변에 서 있는 풍령관의 수하들은 대략 서른 남짓이었다.

새롭게 달려온 적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널브러졌고, 그 외에 백 칠십이 넘는 적들이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데 그 너머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진무린은 거대한 산이요, 세상이 주는 풍파에 맞선 신룡이었다.

어떻게 할 테냐, 구 관주?

당당하게 서서 검을 늘어트린 진무린이 구양강의 답을 기다릴 때였다.

진무린이 달려들지 않는 모습이 수상하다고 여겼을까.

지금까지 지켜보던 하후도가 움직였고, 무랍마저 금빛을 번쩍이며 훌쩍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은 아직 멀쩡한 팔관교를 한 번 밟은 후에 새처럼 구양강의 근처에 내려섰다.

이전에 대항조차 못 했을 정도로 강했던 하후도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상단전의 기운을 뻗어 진무린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추하다, 하후도.’

진무린은 기가 막힌 심정으로 하후도를 노려보며, 상단전을 막았다. 그리고는 등룡창천의 수법을 보이지 않게 펼쳐 하후도의 기운을 경계했다.

이제 어쩔 테냐, 하후도?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였다.

“네놈이 구 관주에게 나서라 하였으니 이 몸이 잠시 기다려주마.”

예상하지 못했던 하후도의 말이 나왔다.

“구 관주. 이놈은 지금 엉킨 기혈을 감추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게요. 그러니 놈의 목을 잘라 풍령관의 이름을 드높이시오.”

“호오.”

무랍이 감탄을 터트리는 옆에서 구양강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진무린을 살폈다.

‘고맙다, 하후도.’

당장 하후도가 달려들 것이 염려되어 구양강을 자극했던 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구양강을 먼저 없앤다면 무랍은 아미가 충분히 감당할 테니 임운령과 함께 하후도를 저지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진무린은 입가에 비웃음을 담은 뒤에 구양강을 향했다.

“기혈이 엉켰다는 데도 망설인단 말이냐? 그렇게 내가 두렵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라. 팔 두 개를 끊어내는 것으로 기회를 주마.”

진무린의 도발이었다.

“어린놈이 참으로 광오하구나! 네놈이 광가신의도법을 견식한 뒤에도 건방진 세 치 혀를 계속 놀리는지 보겠다.”

반응은 바로 있었다.

쉐에엑.

그는 도를 사선으로 그어 날카로운 소리를 떨쳐내고는 진무린의 앞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올라간 눈꼬리, 구부러진 코끝, 움푹 팬 볼까지, 강퍅한 인상에 독기를 가득 담은 그가 장포자락을 잡아 허리에 꽂고 진무린을 노려보았다.

오냐.

바라던 바다.

너와 무랍의 목을 한 번에 가를 참이다.

화산과 아미, 임운령과 운진, 그리고 각 문파의 살아남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아미의 장문인께서는 무랍이 도주하지 않도록 그에게서 시선을 놓지 마십시오.”

진무린은 일부러 현절에게 당부를 건넸다.

혹시라도 무랍이 몸을 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다짐이었다.

“크허허. 참으로 오만한 자가 아닌가. 본승이 무엇이 두려워 너 따위를 피해 도주한단 말이냐. 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먼저 관주의 도에서 살아남아 봐라.”

무랍이 같잖다는 투로 대꾸를 뱉어내며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구양강과 무랍의 목을 한 번에 자를 기회가 준비되었다.

진무린은 임운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자가 관주를 상대하고자 합니다.”

“이미 관주가 너에게 도를 내었는데 다른 말을 할 것이 있느냐. 주저하지 말고 본문의 위용을 보여라.”

자연스럽게 대꾸했으나 임운령의 검을 든 자세도 그렇거니와 눈빛은 언제고 달려들 태세임이 분명했다.

옆에 선 운진 역시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결을 고한 진무린은 몸을 돌리고 구양강에 맞섰다.

이 틈에도 하후도는 연신 진무린의 상단전을 통해 상태를 확인하려 애썼다.

‘네놈이 상단전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기혈이 엉킨 탓이렷다? 구양강을 상대로 한 번은 상단전을 열겠지?’

그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그려졌다.

진무린이 상단전을 여는 순간에 하후도가 기로 파고든다면 뜻을 이루기는커녕 구양강의 도에 몸뚱이가 갈라질 위험도 컸다.

어차피 한 수에 무랍까지 베려면 상단전을 열어야 한다.

진무린은 이를 지그시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단 한 번이다.’

묵룡심법과 등룡창천으로 버티다가 상단전을 여는 순간, 하후도의 기를 밀어내며 단숨에 구양강과 무랍의 목을 벤다.

진무린이 숨을 내쉬며 묵룡심법의 기운을 검에 담는 순간이었다.

호흡의 끝을 자르는 것처럼 구양강이 달려들었다.

쉐에엑! 쉬익! 쉐에엑! 

그의 도는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기괴하다 느낄 정도로 변화가 많았다.

카앙! 캉! 쉐엑!

먼저 세 번의 도를 피한 진무린은 이어 그의 도를 밀쳐내고는 묵룡검법의 초식을 이용해 허리를 베었다.

팽이처럼 몸을 돌려 빠져나간 구양강이 탄력을 이용해 오른손을 뻗으니 삽시간에 진무린의 목 앞에 그의 도가 있었다.

진무린이 상체를 뒤로 젖힌 순간이었다.

후아아악! 쉐에에엑!

잠력을 터트린 구양강의 도가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

아미 제자 중 한 명의 비명이 터질 때였다.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도 진무린은 누군가 목덜미를 당긴 것처럼 그대로 쭉 물러났다.

승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투로 구양강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쉐엑! 쉑! 카앙! 쉑!

누가 봐도 진무린이 밀리는 양상이었다.

하후도의 말대로 기혈이 엉켰나?

현절과 은혼, 운진은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쉐엑! 캉! 카아앙!

구양강은 광가신의도법을 펼치는 틈틈이 잠력을 터트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혹은 강하게 도를 휘둘렀고, 그때마다 진무린은 은천검법과 묵룡검법을 운용하여 그를 상대했다.

때론 꽹과리 소리처럼 요란하게 검과 도가 부딪쳤고, 검에 놀란 구양강이 펄쩍 뒤로 몸을 빼냈다면, 진무린은 팽이처럼 몸을 돌려 도를 피했다.

눈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검과 도는 어지럽게 번득였고, 수시로 부딪쳤다.

은혼과 현절이 겨우 알아챌 정도였으니 화산과 아미의 제자들은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것으로 겨우 검과 도의 움직임을 확인할 정도였다.

무섭고 날카로운 공방이 꽤 이어지는 도중이었다.

쉐엑! 쉑!

구양강이 열십자로 휘두른 도를 피한 진무린이 몸을 허공으로 비틀어 멀찍이 내려섰다.

뭐지? 왜 이런 거지?

지켜보는 이들이 좌우를 둘러볼 때였다.

“크하하. 꽤 놀란 모양이구나!”

번득이는 눈빛의 진무린을 향해 구양강의 야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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