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8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82화
은천검제
제82화
아무리 전전대 고수라고 해도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주먹을 편히 내지르도록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마침내 등룡창천의 기운을 끌어낸 진무린은 갈마천을 향해 검을 거세게 내리쳤다.
쉐에에에엑!
“우아아악!”
놀란 갈마천이 왼 주먹으로 진무린의 검을 받았다.
카으응!
그의 왼쪽 주먹을 감싼 기운과 검이 마주치며 쇳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고,
쉐에에에엑! 부으으응!
틈을 주지 않고 재차 날아간 진무린의 검을 향해 갈마천이 오른 주먹을 뻗었다.
퍼윽!
두 가닥으로 갈라진 갈마천의 권풍이 진무린의 좌우 흙을 거칠게 두들겼을 때,
피윳!
검은 그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날카롭게 베고 지났다.
멋지게 기선을 잡았다.
그러나 갈마천은 과연 오래 묵은 노물이요, 전전대를 휘저은 고수였다.
어깻죽지를 베었음에도 그는 내뻗었던 오른손 주먹을 당겨 흡의 기운으로 진무린의 상체를 당겼다.
놀라운 한 수에 진무린의 상체가 휘청였는데,
부으응!
갈마천은 그런 진무린을 향해 왼손 주먹으로 세 개의 기운이 겹친 고적삼권을,
부아아아앙!
당겼던 오른손 주먹을 다시 내질러 여섯 개의 기운을 재차 쏟아냈다.
중심이 흔들린 진무린의 눈과 주먹을 내지른 갈마천의 눈이 스치듯 마주친 직후였다.
이번엔 진무린의 뒷덜미를 누가 당긴 것처럼 몸이 뒤로 밀려났다.
쉐에에에엑!
몸을 뺀 진무린은 하늘을 가르는 유성의 모양으로 갈마천의 왼 주먹이 뿜은 기운을 베고, 이어 천지경단의 초식으로 오른 주먹의 기운을 베었다.
이때 진무린의 앞에 열십자의 섬광이 서릴 정도로 검이 무섭고 두렵게 움직였는데,
후아아악!
갈마천은 뻗은 두 개의 권풍을 빠르게 당겼다.
이는 또한 진무린이 기다렸던 기회라,
쉐에에엑!
진무린은 빨려드는 상체를 이용해 섬전검법으로 그의 권풍을 가르고 심장을 노렸다.
노괴는 무섭다.
이름을 떨친 데는 이유도 있었다.
“이노옴!”
갈마천은 외마디와 함께 검에 갈라진 그의 권풍을 끌어당겼다.
퍼억! 퍽!
두 갈래로 갈라져 돌아온 권풍이 진무린의 등을 거칠게 두들겼고,
파아앗!
진무린의 검은 그의 심장 근처를 파고들어 왼쪽 겨드랑이를 통해 나왔다.
이 정도면 양패구상이었다.
진무린은 뽑아낸 검을 바닥에 찍어 몸을 버텼고, 주춤대며 물러난 갈마천은 벌어진 왼쪽 가슴을 움켜쥐듯 감쌌다.
그나마 갈마천이 회수하는 권풍이었기에 망정이지, 내뿜은 주먹의 기운이었다면 아마 진무린은 서 있기조차 어려웠을 일이었다.
‘젠장!’
진무린은 속으로 욕을 터트렸다.
선인의 경지를 넘어 자연의 기운과 동화한다는 화경을 깨달았는데 그 직후에 갈마천의 수법에 당했으니 분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심정이기도 했다.
내공의 경지란 기운을 담는 것에 불과하지 목숨을 건 대결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경지는 아니라는 교훈을 제대로 얻은 셈이었다.
“푸훅!”
내공으로 충격을 이기려던 진무린이 피를 토해냈는데, 그 절호의 기회에도 가슴이 갈라진 갈마천은 달려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어진 왼쪽 가슴을 꽉 움켜쥔 그의 오른손 사이에서 줄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 살을 살도록 내 몸뚱이를 가른 것은 네놈이 처음이니 과연 소문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벌어져 피를 줄줄 흘리는 상처에서 시선을 든 갈마천이 진무린을 향해 광기 넘치는 눈빛을 빛냈다.
“이놈아! 이리 강할 거라면 좀 더 일찍 태어나서 내가 팔팔할 때 상대했다면 오죽 좋았겠냐. 그랬다면 내 주먹에 확실히 죽었을 텐데.”
“내겐 지켜야 할 이들이 있으니 먼저 가시구려.”
“캬흐흐흐흐.”
피가 줄줄 흘러 그의 단삼을 적시고 바닥에 떨어지는데도 갈마천은 넉넉하게 웃었다.
“아이야. 세상은 참으로 불평등해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 이도 있단다. 네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네놈이 그리 애정한다는 사매조차 네가 죽기를 바라.”
“푸훗!”
그의 말끝에 담긴 뜻이 언짢아서 진무린은 입에 고여있던 피를 거칠게 뱉어냈다.
진무린의 그 모습이 갈마천의 비위를 거슬렀던 모양이었다.
“모산 따위가 그리 어려운 술법을 쓸 수 있다더냐? 네놈의 사매 년은 혈라마들이 매달렸더니라. 악착같이 버티던 사매 년이 기특하기는 하다만, 결국 술법에 걸리고 말았지.”
옆구리가 갈라진 것이 분했고, 진무린이 대놓고 피를 뱉어내는 모습이 못마땅해서였을까.
갈마천은 어떡해서든 진무린을 화나게 하고 말겠다는 투로 말을 마구 뱉어냈다.
“우습지 않으냐? 술법이 발동하면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캬흐흐흐.”
“말씀 다 하셨으면 이제 가실 준비를 하시오. 내 사매를 함부로 입에 담으셨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심장을 갈라드리리다.”
진무린의 눈빛과 표정이 독해지는 것을 보며 갈마천은 오히려 고소하고 흡족한 얼굴이었다.
“내게 아직 아홉 개의 주먹이 남았다. 어디 노부의 구권을 받아보아라!”
가슴을 움켜쥔 피 젖은 갈마천의 오른손이 꿈틀했다.
진무린이 피하지 않았으면 하는 욕망이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는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선배는 모르는 게 있소.”
“등룡창천을 얻은 묵룡검법이 무섭다는 것쯤 안다.”
“나는 애초에 피한다는 걸 모르오. 그러니 그 유치한 말장난 그만하고 얼른 오시오. 단칼에 심장을 갈라드릴 테니!”
“이놈이 끝까지!”
외마디를 지른 갈마천이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모아 단박에 앞으로 밀었다.
피시시시시!
내공을 운기하는 데다, 양팔을 모아 내미는 바람에 그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확실히 죽음을 각오한 한 수였다.
“이제 뒈져라!”
부으으으응! 부으으으응!
그의 가슴에서 피어난 피보라를 뚫고 나온 핏빛 권풍이 진무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에 맞서는 것처럼 진무린의 몸에서 묵빛 기운이 들불처럼 피어났다.
피할 마음 없다.
내공이 우위 따위 없어도 어려움을 두고 피할 생각 따위 진무린은 애초에 없었다.
쉐에에에에엑!
있는 대로 끌어올린 내공에 의지한 섬전이 권풍을 뚫고 갈마천의 심장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우아아악!”
전전대 고수는 백 살을 살며 쌓은 무수한 경험이 있고,
“이익!”
진무린은 새로이 얻은 경지를 담은 등룡검법이 있었다.
분명 두 개의 권풍이었다.
퍼억!
그중 하나에 얻어맞은 진무린의 왼쪽 어깨가 뒤틀렸고,
피윳!
섬전처럼 날아간 검이 급히 뒤튼 갈마천의 심장을 사선으로 꿰뚫었으며,
퍼윽!
사라졌던 권풍이 어느 틈에 돌아와 진무린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때렸다.
갈마천의 심장에 검을 박은 상태에서 그의 권풍이 어깻죽지를 때리는 바람에 진무린의 오른팔이 앞으로 쭉 더 나갔다.
“푸하악!”
심장을 찔렸던 갈마천이 재차 검이 파고들자 거칠게 피를 뿜어냈다.
“네놈은 정말 우직하구나.”
얼굴과 얼굴이 한 뼘 사이에 있었는데 갈마천은 일그러진 표정 위로 웃음을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검을 뽑아라.”
이 검을 뽑으면 바로 죽고, 뽑지 않아도 잠시 뒤에 갈마천은 죽는다.
아홉 개의 권을 받으라는 장담과 달리 왼 주먹은 권풍을 내었고, 오른 주먹으로는 회전의 묘리로 진무린의 뒤를 때렸으니, 차라리 두 주먹을 모아 심장을 노린 것만 못한 꼴이었다.
그의 성명절기 고적구권을 펼치고도 떳떳하지 못했던 노고수는 회한이 가득 남은 눈빛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억지로 웃으려던 갈마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핏!
진무린이 검을 뽑자 갈마천은 뻣뻣하게 굳은 채 뒤로 넘어가 털썩, 쓰러졌다.
길게 숨을 내쉰 진무린은 지쳤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며칠에 걸친 운기를 마치기 무섭게 다시 소주천을 해야 하는 탓이었다.
확실한 교훈도 얻었다.
경지가 오른다고 해서 만만한 상대는 없다.
내공의 우위는 단지 이득일 뿐, 목숨을 건 대결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은 검이고, 주먹이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을 갈마천을 통해 분명하게 깨달았다.
**
화창한 날에 원고성은 은천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뒷짐을 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은천문은 요철(凹凸)의 형태로 담을 둘러 외성과 내성을 구분하였는데 입구와 외성, 내성에 각각 세 개의 진을 설치해서, 비록 방문한 경험이 있는 외부인이라 해도 홀로 들어올 수 없는 방비를 갖췄다.
묵묵하게 은천문을 내려다보던 원고성이 슬쩍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 직후였다.
바로 뒤 나무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처럼 장 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쁜 사람을 불러서 안 됐네.”
“암연을 이끄셨던 분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말씀은 거둬주십시오.”
장 노대의 능숙한 대꾸에 원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와 함께한 것이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가네. 요즘은 어떤가? 자네가 가장 바쁠 듯한데?”
“본문은 늘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이번에도 필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야지.”
넉넉한 대화를 나눈 원고성이 앞에 펼쳐진 은천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번 보게.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몸을 감춘 듯 우리가 일생을 보낸 곳일세. 이대로라면 다음 대도, 그다음 대도 엄청난 잠재력을 이리 가두며 세월을 보내겠지.”
장 노대는 입을 다문 채 묵묵하니 원고성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등룡창천을 얻었음에도 기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칠주야 동안 연락이 없었네. 이는 본문에 반기를 든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번에도 장 노대는 대꾸가 없었다.
그의 침묵을 확인하는 것처럼 원고성이 천천히 상체를 뒤로 돌렸다.
“혹여 기별이 있더라도 자네가 알아서 덮게.”
초겨울치고는 날씨가 포근해서 마치 봄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토록 외면했던 세상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어. 과거의 뒤안길에 함께 들어가 죽음을 택할지, 변화하는 미래에 합류해 번영과 부귀영화를 누릴지는 순전히 자네가 판단할 몫이네.”
“어찌할 계획이십니까?”
“강호에 나서야지.”
“그렇다면 굳이 보고를 숨길 일이 없지 않습니까?”
앞을 바라보던 원고성이 가볍게 웃었다.
“몇 개 가문이 나서는 것은 의미가 없다네. 강호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진정한 변신이지. 자네는 내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들었으리라 믿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이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원고성의 말에 담긴 결과가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잘 판단하게.”
원고성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햇살이 눈부시게 세상을 밝히는 틈을 타고 뒤에 서 있던 장 노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좋구나!”
햇살 받은 은천문의 모습이 좋다는 것인지, 장 노대와 나눈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인지, 원고성은 내용을 알기 어려운 감탄을 뱉어냈다.
**
운진은 벌써 8일이 넘도록 백섭광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번화한 상등을 구경하며 지냈고, 밤이면 홀로 방 안에서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가 진무린을 기다려 보겠다며 다짐한 기간 열흘이 얼추 다 채워지고 있었다.
명상을 마친 운진은 깊어가는 밤을 즐기는 것처럼 마당에 나와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무린은 역경에 쉽게 쓰러질 인물이 아니었다.
영웅의 기상을 지녔고, 대인의 풍모를 갖췄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점잖은 인품마저 보인다.
“어디 계시오? 노도는 모산으로 향하면 되겠소만, 진 대협의 안위가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외다.”
하늘에 피어난 초승달을 보며 운진은 나직하게 진무린을 찾았다.
피의 술법은 양묘가 귀혼곡에 구금되며 어느 정도 걱정을 덜었다.
모산은 이후 술법을 금할 테니 운진 이후로 도를 닦는 청정도량으로 거듭나리라.
이 모든 것이 진무린의 덕분인데 정작 당사자가 행방불명되어 연락이 끊겼으니 참으로 답답할 일이었다.
“어디 계시오, 진 대협? 노도가 이리 걱정하고 있다오.”
운진이 갑갑한 심정을 재차 털어놓은 직후였다.
“심려를 끼쳤습니다.”
환청처럼 그의 뒤에서 진무린의 음성이 들렸다.
홱 돌아선 운진은 몇 번이나 진무린의 위아래를 살폈다.
“진 대협?”
“사정이 있어 바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운진은 날 듯이 달려가 진무린의 손을 잡았고, 위아래를 살폈다.
“무탈하신 게요?”
“그렇습니다.”
답을 들은 운진은 아이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