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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3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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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5화

은천검제

제135화

 

수라항천진이 펼쳐진 이후로 승기는 급격하게 정상교 쪽으로 흘러갔다.

당장만 해도 섬도곤은 연달아 날아든 검을 피해 몸을 비틀었으나 결국 두 번째 검에 옆구리를 베이고 말았다.

섬도곤은 휘청이며 중심을 잃었고, 그 와중에도 몸을 세우려 비틀거렸다.

누구라도 검을 휘두르면 그의 목을 벨 수 있는 위급한 순간이었다.

기회를 노린 것은 칠호살과 수라항천 대원의 두 명이었다.

쉐에에엑! 쉐엑!

두 사람이 피할 틈 없이 목과 심장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는데 걸린 것은 교주의 오른손이었다.

카카앙! 쉬이익! 퍼억!

칠호살은 득달같이 몸을 빼냈고, 수라항천대원 하나의 머리통이 정동추의 손에 박살 나며 섬도곤은 죽음을 피했다.

쉐엑! 쉑!

그러나 그 틈에 정동추는 일호살과 이호살의 검에 왼편 어깨를 두 번이나 베였다.

섬도곤을 지키지 않았다면 절대 맞지 않았을 검이었다.

강호에서 은천문과 함께 단일 세력으로 가장 강하다는 마교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교주 자리가 무엇이기에 자식이 수하들을 시켜 아비의 목을 노릴까.

비틀대는 섬도곤을 오른팔로 끌어안은 정동추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지가 서글퍼서였는지, 아니면 자식이 칼을 들이대는 현실을 원망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둘러싼 이들은 정동추에게 짧은 여유도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여러 개의 검이 그의 몸 곳곳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날카롭게 날아드는 검 하나를 부러트린 정동추가 급하게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오른팔에 섬도곤을 안았고, 왼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의 어깨를 일호살의 검이 제대로 파고들었다.

휘이익!

정동추가 휘두른 왼손을 피해 일호살이 겨우 몸만 빼냈다.

왼편 어깨를 관통한 검이 그대로 박힌 상태에서 수라항천진이 범위를 좁히며 정동추를 압박했다.

그때였다.

내내 지켜보던 정상교가 옆에 있던 수하에게서 검을 받아들고 진을 향해 걸었다.

이때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어떡해서든 제자를 지키려는 아비를 향해 그에게서 배운 마천강기를 담아 목을 자르기 위해서.

“문주. 더는 못 참겠습니다. 제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합니다.”

혼잣말을 뱉어낸 진무린이 피식 웃으며 검을 잡았다.

‘무림공적 아니라 세상없는 죄인이 된다 해도 더는 못 보겠다!’

그런 직후에 진무린은 발을 굴렀다.

배운 대로 내공을 수발해라.

일부러 상단전을 열려고 애쓸 필요 없다.

손에 익은 검이 자연스럽게 나가는 것처럼 등룡창천 역시 내공의 한 줄기요, 검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쏜살같이 날아간 진무린은 수라항천진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느긋하던 정상교가 화들짝 고개를 돌렸고, 뒤이어 마교의 모두가 허공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진무린은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에에에에에엑!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가슴에서 울었고, 눈부신 빛줄기는 세상 모든 것을 덮을 것처럼 강렬했다.

정상교는 아비를 죽이려던 칼을 미친 듯이 휘둘렀고, 정동추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은 일호살은 풍차 돌리듯 팔을 휘저었다.

힘겹게 왼팔을 들어 눈을 가린 정동추와 이미 늘어진 섬도곤만이 달랐을 뿐, 수라항천대의 대주는 물론이요, 빛줄기에 갇힌 대원들의 모습도 정상교, 일호살과 다르지 않았다.

휘이이이이-.

등룡창천의 기운과 마천강기, 수라항천진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이 뒤엉키며 거센 바람이 일었다.

바람결에 비처럼 날린 피가 얼어붙은 땅 위로 후두둑, 떨어진 다음이었다.

바닥에 내려선 진무린은 검을 내린 채 정동추와 섬도곤 앞을 지켰는데 주변에 서 있는 자 중에는 정상교만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 다른 이들은 처참한 지경이었다.

상처를 보면 그나마 이호살과 삼호살, 그리고 대주들이 지닌 바 실력대로 막아냈고, 일호살과 수라항천대 대원들은 아예 피투성이라고 할 정도였다.

기운을 거두면서 놀라움이 먼저 퍼졌고, 이어 당황스러움, 그리고 분노가 마치 줄을 선 것처럼 정상교의 얼굴에서 피어났다.

당장 그 누구보다 정상교와 일호살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자칫 잠시의 틈이라도 준다면 섬도곤은 말할 것 없고, 정동추마저 위험한 형국이었다.

“무슨 짓인가?”

“교주를 모셔갈까 합니다.”

“흐하하하.”

통쾌하게 웃고 싶었던 모양인데 기운이 빠진 정동추의 웃음은 나직하게 나왔다.

“본교에서는 목을 자르지 못해 저 난리들이고, 정도문파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나를 데려가겠다니 자네도 어지간히 무림공적이 돼 보고 싶었던 모양일세.”

기운 빠진 호랑이의 눈을 한 정동추의 말이었다.

“네놈이 진무린이란 자냐!”

그리고 뒤를 이어 정상교의 쩌렁, 하는 고함도 들렸다.

“보아라! 교주는 저자와 내통하여 본교를 농락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정도문파의 제자라는 놈이 이 싸움에 끼어들어 교주를 지킨단 말이냐!”

“이보게. 도와주려면 이놈만 데려가 주게. 시간을 끌면 되돌리기가 어려워.”

고함을 질러대는 정상교의 아래에서 나직한 정동추의 당부가 있었다.

“교주. 하나만 택하십시오. 아들의 죽음입니까, 제자의 구명입니까?”

정동추의 눈이 확인처럼 정상교를 보았다가 되돌아왔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들어주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을 들은 정동추가 진무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 정도의 실력이 되는가?’

그의 눈이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피투성이가 된 수라항천대가 진을 형성해서 기운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끈적한 마기가 그 증거였다.

“이런!”

“괜찮습니다. 지금 선택하셔도 됩니다.”

진무린이 권했을 때였다.

“어서 교주와 저 악적을 처단해라!”

정상교의 고함이 꽥 나왔다.

“정상교-오!”

진무린이 내공을 담아 부르자 천둥이 울린 것처럼 저 멀리에서 산이 커다랗게 따라 울었다.

“적어도 수장 자리를 노린다면 네놈이 나와!”

진무린의 도발에 대주들과 대원들이 눈이 돌아갔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교는 나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나까지 데려가 줄 수 있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자 놈을 살리고, 저놈의 목을 내가 자를 수 있게 이 자리를 피해 주게. 은혜는 나중에 갚음세.”

“빚을 받으려면 반드시 교주가 되셔야겠군요.”

“저놈의 목을 자르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은 내공을 일으켰다.

후아아악-.

진무린을 둘러싼 수라항천대원들을 향해 흙먼지가 둥그렇게 뿜어져 나갔고,

높다랗게 솟구친 진무린은 재차 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쉐에에에에에엑!

번쩍, 둘러선 이들을 향해 강렬한 빛이 다시 피어났다.

이미 무서움을 경험했던 정상교가 검을 급히 내밀었고, 일호살은 아예 뒤로 펄쩍 뛰었으며, 수라항천진은 위력을 풀어내고 각자 빛줄기를 막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익!

진무린은 몸을 날렸다.

왼팔로는 정동추의 옆구리를 잡았고, 오른팔에는 섬도곤을 대신 받았다.

“둘을 데리고는 멀리 못 간다! 그러니 반드시 놈을 찾아!”

정상교의 고함이 멀리에서 들렸다.

 

**

 

귀혼곡의 모두가 공터에 모였다.

평소라면 함께 식사하거나 술을 즐기는 장소였는데 오늘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종무헌과 요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쉐에엑! 쉐엑! 쉐에엑!

비무라고 들어서 구경이나 해보자고 모였는데 저토록 살벌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다.

죽이지야 않겠지.

그렇지만, 번득하는 검광이 요정의 목을 향해 날아가거나 허리를 가르기 위해 빛날 때마다 기인촌 촌민들은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끄으.”

백면호리의 입에서는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비무를 부탁했지, 딸자식의 명줄을 끊어달란 것이 아니잖은가 말이다.

쉐엑! 서걱!

“저, 저!”

지금도 그렇다.

요정이 팔을 급히 뒤틀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팔뚝째 잘려나갈 뻔하지 않았나.

쉑쉑쉑쉑쉑!

종무헌은 또 인정사정 두지 않은 채 요정의 발목을 자를 것처럼 검을 좌우로 휘둘렀다.

머리가 두 개인 독사처럼 검광이 요정의 좌우 발목 앞에서 번득여서 백면호리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나마 요정이 바닥을 미끄러지는 보법을 보이며 물러나는 신기를 펼쳐서 한시름을 놓을 때였다.

돌에 걸린 것처럼 요정의 발이 멈칫했고, 상체가 뒤로 기울었다.

쉐에엑!

좀 봐주지! 좀!

휘청이는 요정의 발목을 향해 종무헌의 검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렇게 꼭 아이의 발목을 잘라야 후련했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백면호리가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뻥긋거리는 순간이었다.

퍼러럭!

뒤로 몸을 접은 요정이 손을 바닥에 짚고서 파라락, 발을 내질러 종무헌의 턱을 노렸다.

거기까지였다.

쉐에에엑!

상체를 세운 종무헌이 검을 길게 그으며 비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걸 보다가는 내가 제명에 못 죽지. 필시 간이 오그라들어서 죽을 거야.”

백면호리의 혼잣말이 터져 나올 때, 요정은 종무헌을 향해 포권으로 인사를 올렸고, 지켜보던 기인촌의 촌민들은 박수로 두 사람의 비무를 치하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대사형이 오셨을 때 여쭤봐.”

“예, 종 숙부.”

진무린이 숙부라 하기로 했다는 말에 종무헌의 호칭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인사를 마친 요정이 조르르 백면호리를 향해 달려왔다.

“아빠!”

백면호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요정의 소매를 먼저 살폈다.

“에효.”

돌이켜 보면 백면호리가 경공으로 일가를 이루는데도 온갖 우여곡절이 담겼으니 요정이 고수가 되는 길이라고 어찌 쉬울 수가 있겠나.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또 묘해서 머리로는 아는데 내 새끼만은 좀 쉽게 고수가 되었으면 싶은 것이 백면호리의 심정이었다.

“고생하셨소, 종 소협.”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때 비무를 지켜보았던 운진이 종무헌을 다독였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나는 게요?”

“점심 먹은 후에 한 번쯤 더해도 될 것 같습니다. 봐서 강도를 조금 높여볼까 싶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화였다.

‘강도를 더 높인다고?“

그러나 그 끝에서 백면호리의 고개가 불쑥 올라왔다.

그의 바람은 어서 진무린이 귀혼곡으로 와 인간적인 가르침을 주었으면 하는 것밖에 없었다.

 

**

 

모려원은 오전 내내 고민했고, 다시 점심을 앞두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점소이와 시비가 바구니에 담아 가져다준 점심 때문이었다.

먹자니 뭔가 꿀리는 느낌이고, 거절하자니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선뜻 젓가락을 들기가 불편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술 반병과 만두 하나만 먹었다.

점심은 어쩔까.

살면서 먹는 것을 두고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은 처음이라 바구니를 보며 모려원은 실없이 웃었다.

막말로 하면 자존심도 상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진무린을 못 알아본 일을 원예도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도 화끈거렸다.

이 모습을 보면 대사형은 뭐라고 할까.

함께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모려원은 다짐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나중에 말이다.

진무린이 왜 밥을 안 먹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궁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으면 아침에 만두 하나만 먹은 것은 당연히 입맛이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다.

’맛은 있네.‘

별것이 다 불편하다.

요리를 입에 넣은 모려원은 은천문에서의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딱히 이성 간의 감정 따위 오간 적 없었다.

진무린은 늘 한발 앞섰고, 그 능력으로 모려원과 종무헌의 부족한 점을 남몰래 잡아주었는데 그것이 전부였다.

사람이 오래 보다 보면 정이 들기도 한다던데, 진무린은 그런 내색이나 눈빛을 보인 적도 없었다.

’내가 부족해서 그럴까?‘

원예의 고혹적인 눈매를 떠올린 모려원은 입에 담긴 요리를 정성 들여 오래도록 씹었다.

마음이 답답해서 그런가, 목이 말랐다.

술병을 집었던 모려원은 고개를 젓고는 물병으로 손을 뻗었다.

마교 교주를 따라간 진무린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마당에 엉뚱한 생각으로 술을 마시며 시간을 허비할 때는 아니었다.

밥 먹고! 운기하고! 검술도 좀 다듬고!

살펴보면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대사형. 괜찮으세요?‘

공연히 혼자 생각에 빠질 것이 아니라 은천문의 사매로 돌아가야 할 때고,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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