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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33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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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3화

은천검제

제133화

 

진무린이 자리한 산의 중턱으로 올라온 이는 뜻밖에도 장 노대였다.

암연의 수장이라 외부인의 눈에 띄는 것을 극히 조심하던 그가 다른 사람 아닌 마교 교주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이유가 있겠지.’

진무린은 의아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장 노대를 맞았다.

“노대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교주가 계신 자리에서 진 대협을 불러내는 것이 결례라 생각되어 이리 나섰습니다.”

말은 쉽게 했으나 장 노대가 마교 교주 앞에 나서려면 문주 임운령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을 테고.

진무린은 정동추에게 고개를 돌렸다.

“교주. 본문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장 노대라 합니다.”

“암연의 수장이라는 분이군. 늘 궁금했는데 별호나 이름은 없나?”

“암연은 직급에 상관없이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어서 저도 알지 못합니다.”

“흠.”

정동추가 시선을 돌릴 때 섬도곤이 퍼뜩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정동추일세. 이 녀석은 내 첫 번째 제자 섬도곤이라 하고.”

“은천문의 장 노대라 합니다.”

장 노대는 정동추와 섬도곤에게 차례로 포권을 보이며 인사했다.

무슨 일로 왔냐는 따위의 질문을 진무린은 건네지 않았다. 문주의 허락까지 받았을 장 노대가 이 자리에 나섰다면 반드시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란 확신에서였다.

“진 대협. 혹시 삼보를 얻기 위해 움직이십니까?”

인사를 마친 장 노대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는 진무린의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유가장으로 향하시는 길이라면 이쯤에서 돌아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동추 앞에서 장 노대는 막힘이 없었다.

“첫 번째로 유가장은 얼마 전부터 마교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진 대협께서 마교의 소속인 유가장을 방문해 천서유기를 얻으신다면 이는 정도맹에서 무림공적으로 지정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됩니다.”

천서유기를 얻는 일을 쉽게 말하더니 이런 속내가 있었어?

진무린이 기가 막힌 심정으로 숨을 내쉴 때였다.

“본교가 그동안 얌전하기는 했던 모양이군. 감히 내 앞에서 마교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보면.”

정동추는 전혀 엉뚱한 대꾸를 내놓았다.

“교주께서는 속히 마교로 향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아드님께서 교주와 진 대협, 그리고 옆에 있는 대제자를 마교의 척결 대상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매섭던 정동추의 눈 끝이 독하게 올라섰다.

“장로들과 마선이절, 오행신위 등, 마교의 핵심 인물을 제거한 진 대협에게 강호삼보를 건네려는 것은 교주가 이미 마교를 지킬 마음이 없는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본교에도 간세가 있었나 보군. 내가 잡아낸 암연은 그 간세로부터 정보를 받아가려던 놈이었고.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주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으나 제대로 얻어맞은 꼴인데?”

“그보다는 척살령을 받은 마교의 인물들이 이곳을 향해 출발할 테니 그 일을 먼저 염려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동추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혹시 궁도라는 자가 아들놈에게 접근했나?”

“그 부분까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른 걸 묻지. 아들놈이 마천강기를 대성했던가?”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들놈을 위해 주화입마에 들기까지 했는데 축출 대상이 되었다라? 정동추의 꼴이 우습게 됐군.”

정동추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을 비꼬는 것처럼 이죽거렸다.

“삼보를 찾는 일은 다 틀린 것 같고. 우선 본교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잠시 멍했던 호랑이가 독이 오른 것처럼 그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본교를 정리한 뒤에 다시 보세.”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들놈의 머리가 뽑혀 나오는 것을 볼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지 딱히 어려울 것 없는 일일세. 그럼 먼저 가네.”

몸을 돌리려던 정동추가 멈칫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놈이 삼보를 얻으려 들면 무조건 죽이게.”

그의 음성과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놈이 내게 반기를 들었다면 짐작 가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 편협하고 속 좁은 놈이 마천강기 이상의 힘마저 얻으면 반드시 강호일통을 하겠답시고 날뛸 걸세. 그러니 그 전에 자네가 손을 쓰게.”

진무린의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가 걸음을 옮기자, 섬도곤이 아쉬운 얼굴로 뒤를 따랐다.

아차 싶었던 모양이었다.

몇 걸음을 걷던 섬도곤이 급하게 몸을 돌려 공손하게 포권을 보였다.

두 사람이 멀어진 다음이었다.

“교주 앞에 장 노대가 직접 나선 것은 암연의 제자가 잡혔던 것에 대한 대응이라 보았습니다. 맞습니까?”

“문주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진무린이 생각하던 바를 꺼냈고, 장 노대가 순순히 받아들였다.

“노대. 단지 삼보에 관한 일 때문에 아비를 죽이려 나섰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진 대협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힘을 얻었습니다. 또한, 와병 중이라는 말이 교주에 대한 존경심을 무너트린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무린의 시선을 받은 장 노대가 말을 이었다.

“마교는 어떤 이유에서든 강한 자를 숭상하며, 협상은 힘없는 자들이 하는 것이라 멸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진 대협과 동행하는 교주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일어났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교주는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과정을 위해 와병 중이라 했다는데 왜 아들이 반기를 들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마천강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잠시 몸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기를 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껏 소교주로 정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참 어리석다.

강호 전체를 삼키려는 적이 이를 드러내는 마당에 부친의 등에 칼을 꽂아가면서까지 소교주가 되어야 하는 건가.

진무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동추의 아들 정상교를 떠올리며 표정을 가라앉혔다.

하긴, 은천문만 해도 불과 얼마 전 백승과 원고성 장로를 정리한 일이 있으니 어찌 보면 비슷한 모양새일 수도 있겠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래 하려던 일을 계속해야지요.”

“하려던 일이시라면?”

“마교에 찾아갈까 합니다.”

놀라리라 짐작했던 장 노대의 반응은 뜻밖에도 느긋한 미소였다.

“문주께서도 그러리라 짐작하셨습니다.”

“문주께서요?”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장 노대가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어서 진무린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녀석이 늘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은 또 깊은 터라, 이참에 마교를 노릴 게요. 그것이 함께 다닌 교주를 돕는 일이고, 강호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을 한편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오.”

임운령을 흉내 낸 장 노대의 말투에 진무린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마교를 찾기 전에 먼저 화산과 아미에 도움을 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장 노대가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제가 알아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을 주십시오.”

“골육상잔이 벌어진 마교의 일에서 한 걸음 물러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그에 휘말리는 것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교주가 무너지면 마교가 강호일통에 나설 텐데 그 정도까지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교주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 그 안에서 끝날 일이고, 아들인 정상교가 득세하면 어차피 부딪칠 일입니다. 만약, 진 대협께서 정상교를 죽이게 되면 마교도의 입장에서는 소교주를 죽인 꼴이 되니 이는 오히려 교주의 입지를 줄이는 모양새가 됩니다.”

장 노대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어서 진무린은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 노대의 조언을 깊게 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대.”

“외람된 말씀을 그리 받아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주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은 흉내 내는 일 없이 바로 전하겠습니다.”

떠오른 태양이 이마쯤 오른 시간이었다.

얼어붙은 산과 들판, 마른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웅크린 가운데 장 노대는 임운령이 전하라는 말을 꺼냈다.

“혹 짧은 틈이 생긴다면 잠시 몸을 감추고 그동안 익힌 것들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문주께서 그렇게 전해달라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얻어 손에 익힐 시간이 부족했었던가.

진무린은 은천문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보다 진무린을 아끼고, 배려한 조언이어서 문득 그곳에 있을 임운령과 전도위가 그리운 까닭이었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잘해왔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지 마라. 그리고 원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라.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제자가 그 말씀을 깊게 담았노라 꼭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 대협.”

대강 대화가 끝났다.

암연은 이름을 알지 못한다. 외부에서 만날 때면 절대 식사나 술을 함께할 수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동행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아침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은 어쩐지 서운했다.

“진 대협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대. 저는 여유를 두고 움직이겠습니다. 혹여 제가 조용한 곳에 있을 때 밖에 일이 있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진무린과 인사를 나눈 장 노대가 산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불씨를 잃은 모닥불이 이따금 부는 바람에 회백색 재를 뿌리는 동안, 진무린은 장 노대가 내려간 길을 지켜보았다.

 

**

 

정동추와 섬도곤은 오래 달리지 못했다.

고작 한 시진 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얼어붙은 산기슭을 가로막은 흑룡대와 마주친 까닭이었다.

“교주를 뵙습니다.”

걸음을 멈춘 정동추는 오십에 달하는 흑룡대와 대주 조야진을 빙 둘러보았다.

흑룡대는 교주의 친위대 성격이라 그들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머리에 뒤집어쓴 두건 위의 ‘용’이라는 글자를 정동추가 직접 써줄 정도로 관심을 두었던 수하들이었다.

“긴말하기 싫다. 원하는 것이 죽음이냐?”

“교주. 아드님을 교주로 임명하시고 물러나십시오. 그리하면 제가 교주를 따르겠습니다.”

“흐하하하.”

비장한 음성으로 조야진이 뜻을 밝혔으나 정동추는 오히려 통쾌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개떼가 내게 고개 숙이라 요구할 줄은 몰랐다. 오냐. 네놈들의 목을 모조리 뽑아 버릇없이 군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마.”

“이미 본교에서 칠호살이 움직였습니다. 교주께서 아무리 마천강기를 발휘하신다 하더라도 오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건방진 놈.”

차갑게 말을 던진 정동추가 오른손을 뒤집어서 중지를 강하게 튕겼다.

펄럭, 소리를 내며 조야진이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는데 그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한 흑룡대원 하나가 멀찍이 날아가 널브러졌다.

“꼴도 보기 싫다. 모두 치워라.”

“예!”

정동추가 뒷짐을 지며 지시하자 섬도곤이 앞으로 나섰다.

챙챙, 소리가 요란하게 흑룡대가 도를 꺼내 들었는데 그걸 빤히 보고도 섬도곤은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목표는 가장 앞에 있던 흑룡대의 대주 조야진이었다.

“이런!”

쉐에엑! 카앙!

조야진이 휘두른 도를 왼손으로 때려낸 섬도곤은 오른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섬도곤은 조야진의 어깨를 왼쪽 품에 감싸고 오른팔로 목을 휘감았다.

그 상태에서 하얗게 눈이 뒤집힌 섬도곤이 앞을 노려보는 바람에 흑룡대는 움찔거리며 달려들지 못했다. 

“이익!”

“끄아! 끄아아아!”

살아있는 사람의 생목을 뜯어내는 잔인한 광경이었다.

벌어진 목에서 튄 피가 얼굴과 목덜미, 상체를 적시는데 섬도곤은 천천히 목을 잡아 뽑았다.

비명이 그치는 것이 어쩌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툭!

섬도곤은 먼저 왼팔에 잡혔던 조야진의 몸뚱이를 던졌고, 이어 오른팔로 그의 목과 살점이 묻은 척추를 길게 들었다.

아직 뜨거운 피에서 김이 올라왔고, 몸뚱이가 꿈틀거렸으며, 머리는 이리저리 기괴하게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이때 흑룡대는 모두 알았다.

조야진은 분명 섬도곤이 내뿜는 오행신위의 다섯 기운에 묶여서 평소의 무공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머리가 뽑혔다.

오행신위의 다섯 기운을 한 사람이 뿜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다는 그 기운을 섬도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교주께 대들다니!”

피를 뒤집어쓴 섬도곤이 오른손에 들었던 조야진의 머리를 앞에 툭 던진 뒤에 발로 밟았다.

콰드득.

마교의 흑룡대마저 몸서리를 칠 만큼 처참한 광경을 연출한 섬도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앞을 노려볼 때였다.

“멈춰라!”

저 멀리에서 고함이 들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었을 때 높다랗게 솟구치는 일곱 명이 보였고, 숫자를 확인할 때쯤 바닥에 내려섰다.

“교주를 뵙소.”

내려선 일곱 명은 섬도곤과 처참하게 망가진 조야진을 확인한 뒤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교주께서는 꼭 피를 보셔야 하겠소?”

“헛소리 말고 부서진 조야진의 머리통이나 잘 봐둬. 그것이 잠시 뒤에 있을 너희 일곱 늙은이의 모습이다.”

정동추의 차가운 음성이 나오기 무섭게 칠호살의 일곱 명은 동시에 내공을 일으켜 주변을 뒤덮었다.

놀랍게도 칠호살의 내공에는 마천강기가 담겨 있었다.

“개 같은 늙은것들이 마천강기를 피우다니. 못난 아들놈이 그걸 미끼로 꼬드긴 모양이지?”

침을 뱉는 것처럼 말을 던진 정동추의 눈꼬리 끝이 아래로 구부러졌다.

휘이이이이-.

그가 마천강기를 피워 올리자 장포가 부풀어 올랐고, 머리칼 끝이 위로 치솟았으며, 눈매가 한층 더 구부러졌다. 

마교 교주 정동추가 진심으로 분노했을 때 나온다는 고리눈이었다.

고리눈을 한 교주를 보거든 목을 붙들고 뛰어라.

정동추가 교주가 된 이후로 마교에서 전해지는 교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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