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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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55화
은천검제
제155화
정동추가 나직하게 신음을 뱉을 정도로 기괴한 장면이었다.
하늘에 피어난 납타이의 머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뒤편에 앉은 진무린과 정동추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놈이 감히 내 술법을 풀겠다고 대항한단 말이냐!”
그는 네 개의 깃발 안을 향해 외눈을 빛냈다.
“문주의 술법이 신묘하구나.”
정동추가 감탄을 쏟아낸 직후였다.
“어떻게 마기를 얻었는지는 모르나, 술법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납타이의 목소리가 와릉와릉 울렸다.
“납타이! 너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운진의 당찬 대꾸를 들은 그의 외눈이 꿈틀했을 때,
“마기를 부탁드리오!”
납타이가 들으란 듯한 운진의 요구가 있었다.
아무렴, 운진이 납타이에게 눌려서야 되겠나.
지켜보던 진무린과 정동추의 심정은 같았다.
“오냐.”
그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정동추는 엄청난 마기를 민가의 마당에 뿜어냈다.
“이런 마기라니? 이것이 어찌 된……! 교주라도 있단 말이냐!”
납타이가 놀란 뒤였다.
술법에 붙잡힌 것처럼 그가 아래로 내려오며 어깨, 가슴, 이어 몸 전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이때 깃발은 미친 듯이 펄럭였고, 바닥에 깔린 연기는 여전히 모려원을 뒤덮었는데 또 진무린과 정동추가 있는 바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이럴 수는 없다! 모산의 술법 따위가!”
놀란 고함을 지르던 납타이가 마침내 운진의 앞까지 내려섰다. 원래의 크기로 바뀐 그는 깃발 안쪽 운진의 바로 앞에 있었다.
‘위험하다!’
진무린이 몸을 번쩍 일으켜 검을 꺼내 들었고, 부상이 심한 정동추마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놈!”
납타이가 오른손을 높게 치켜들 때, 운진은 뜻밖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각오한 눈빛이었고, 그만큼 처연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진 대협. 노도는 이렇게 사악한 술법을 없앨 것이오.’
‘문주!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달리 방법이 없었소.’
눈 깜짝할 사이에 오간 눈짓이었고, 납타이의 손은 이미 어깨 위로 올라가 있었다.
저 손이 운진을 해하면 납타이도 함께 죽을 것이 분명했다.
운진은 이미 각오한 일인데 납타이는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익!’
진무린은 삽시간에 기운을 끌어올렸고, 더 할 수 없이 빠르게 운진의 앞으로 움직였다.
쉐에에에엑!
그러면서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깃발 안으로 들어선 직후였다.
민가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세상이 온통 시커멓게 변했다.
똑같았다.
이전에 양묘가 만든 술법의 세계와 말이다.
운진은 무사한가? 납타이는?
진무린이 좌우를 돌아볼 때였다.
“이노-옴!”
저 앞에서 납타이의 모습이 피어났고,
“진 대협! 어쩌려고 이리하셨소?”
뒤편에서 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주! 납타이를 상대하는 것도, 사매의 기억을 되찾는 것도 중한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어찌 하나뿐인 목숨을 그리 가볍게 던지십니까!”
비록 운진에게 고함을 질렀으나, 진무린은 앞에 선 납타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만에 하나, 납타이가 후인을 남겼다면 그를 누가 상대하겠습니까! 모산이 바른길로 가도록 누가 인도할 것입니까!”
“진 대협. 노도는…….”
전에 없이 높은 진무린의 음성에 운진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흐하하! 술법의 세상에서 큰소리를 치다니. 네놈이 검으로는 당할 자가 없다고 해도 이곳에서는 한낱 작대기와 다를 바 없다.”
납타이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뱉어낸 조소에도 진무린은 호흡을 골랐다.
양묘가 만든 세상은 확실히 납타이의 말과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진무린이 내는 기운 안에 그가 분명하게 잡혀 있었다.
불과 금의 기운 덕인지, 아니면 등룡창천의 대성 덕분인지는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디 상대해 봐라.”
휘릭! 휘리리릭!
진무린이 검을 세차게 뿌린 직후였다.
술법의 세상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눈부신 빛줄기가 어둠 속에서 피어났다.
놀라고 당황한 납타이가 환영처럼 모습을 지우며 빛줄기를 피하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그의 기운이 잡히는 방향을 향해 검기를 뿌렸다.
콰으응!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오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왼편 앞쪽에서 환한 빛이 들어오며 민가의 일부가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어떻게……?”
납타이보다 운진이 더 놀란 것처럼 혼잣말을 냈으나 이때 진무린은 확실히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쉐에에에에엑!
진무린은 다시 한 번 기운을 끌어올린 뒤에 오른편 앞을 향해 검기를 뿌렸다.
콰으으응!
‘됐다!’
이번에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른쪽이 밝아지면서 앞쪽에 놓인 민가가 확실히 모습을 보였다.
역시!
좌측과 우측 앞에 세워둔 깃발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에 놓였는데 납타이는 그 사이 뒤편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확실히 사악한 면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느 틈에 손을 뻗어 핏빛 기운을 뿜어냈고, 그것으로 운진의 목을 동여맸다.
“문주를 해하면 너 역시 살아남지 못한다!”
“혼자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교활한 납타이는 확실히 운진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마. 네놈이 아끼는 문주도 살고, 나도 돌아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진 대협! 이자는 지금 모 소저의 기억을 매만지고 있소! 어서 이자를 베시오!”
“닥쳐라!”
운진의 바람을 납타이가 단숨에 잘라냈다.
검기를 뿌리고 싶었다.
납타이만 죽인다면 모든 것이 깔끔할 텐데 장애물처럼 운진이 가운데 있는 것이 문제였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진무린이 금의 기운을 바닥에 펼쳐 납타이를 담을 때였다.
와지끈! 우드득!
뒤편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뒤편 세상이 밝아지는 것과 동시에 손이 불쑥 파고들었다.
콰아악!
진무린은 물론이고, 운진마저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별것도 아닌 놈이!”
정동추였다.
“모산의 문주를 우습게 여긴단 말이냐!”
뒤편에 세워 놓은 등을 부수고 들어선 정동추가 납타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가 잡힌 상태에서 납타이가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화르르륵!
정동추의 손아귀에 있던 그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이어 납타이는 검은 새로 변신해 정동추의 뒤로 날았다.
가뜩이나 운진이 막아섰고, 그 뒤에 모려원이 있는 데다, 다시 정동추가 서 있어서 검기를 뿌리기 어려웠다.
진무린의 검을 피하는 것처럼 검은 새는 정동추의 뒤에서 낮게 날았다.
대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솟구친다.
그때를 노린다.
진무린이 기운을 뿜어내는 가운데 검은 새는 바닥을 치고 수직으로 솟구쳤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납타이가 민가의 지붕을 향해 솟구치려는 순간이었다.
콰자자작!
정면에 있던 창이 부서지며 섬도곤이 튀어 올랐다.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달려든 섬도곤은 눈 깜박할 사이에 검은 새의 머리를 오른손에, 날개와 몸통을 왼팔 사이에 낀 채 바닥에 떨어졌다.
“이이익!”
섬도곤이 이를 악물었고,
“끄아! 끄아아악!”
삽시간에 납타이의 섬뜩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르륵!
술법이 풀린 납타이의 머리를 섬도곤은 정말이지 악착같이 잡아 뽑았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목 안쪽의 뼈가 두 뼘쯤 붙은 채 납타이의 머리가 쑥 뽑혔다.
아직 부들거리는 몸뚱이는 목이 뽑힌 자리에서 피를 뿜어내고, 섬도곤의 손에 들린 납타이의 머리는 외눈을 껌벅이며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털썩.
납타이의 눈이 까무룩 뒤집힐 때, 가부좌로 앉았던 모려원이 모로 쓰러졌다.
**
몸을 숨겼던 종복들과 시비들이 나와 마당을 정리했고, 진무린은 모려원을 침상으로 옮겼으며, 섬도곤은 이안공자의 치료를 받는 것으로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다.
혹시 몰라 납타이의 머리와 몸에 부적을 붙여놓은 운진은 곧바로 모려원을 살폈다.
“노도가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으니 이제는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소.”
모려원이 침상을 차지하는 바람에 정동추는 대청에 앉아 있었다.
대청으로 나선 진무린과 운진은 정동추가 있는 탁자에 함께 앉았다.
공을 세우고도 풀이 죽어있는 운진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처럼 여린 심지에 어떻게 저토록 놀라운 술법을 익혔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이보게.”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정동추였다.
“강호에서 사는 이들은 목숨에 연연해서는 곤란하지. 그리하면 첫째로 비겁해지고, 다음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게 되거든. 실제로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이가 가장 부담스러운 것도 그 탓이고.”
정동추답지 않게 진중한 음성이었다.
“그렇더라도 말일세. 아예 함께 죽음을 예정하고 달려드는 적은 두렵지 않네. 그가 원하는 최후의 계획이 죽음이라면 그것이 어긋났을 때, 내놓을 것이 없거든.”
마교 교주인 정동추가 진무린마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올곧은 조언을 내놓고 있었다.
“두렵고 어려운 순간이야 누구에게나 있지. 그럴 때는 이 친구에게 기대게. 이 넓은 강호에서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힘겨운 순간에 손을 내밀 이가 되기 때문일세.”
“교주의 말씀을 깊이 새기겠소.”
운진의 답이 떨어지자 정동추가 눈가를 좁히며 묘한 미소를 그려냈다.
“혈교는 이제 정리된 건가?”
“노도가 홀로 가도 혈교는 얼마든지 감당할 것이라 짐작하외다.”
“그들이 무공을 익혔을 수도 있잖은가.”
“혈교가 발휘하는 무공은 노도가 지닌 부적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게요.”
그렇군, 하는 것처럼 정동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그는 단박에 바뀐 눈빛으로 섬도곤이 있는 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리 힘을 쓸 수 있는 놈이 여태 누워 꾀를 부렸다니. 내가 제자 놈을 너무 안일하게 다루었던 모양이군.”
상처가 벌어져 피투성이가 된 섬도곤을 보았으면서도 정동추는 참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혈교까지 정리한 꼴이니 이제 방에 있는 아이만 일어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잠시 살피고 오겠습니다.”
이미 정동추가 좋은 말을 한 터였다.
굳이 운진에게 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진무린은 몸을 일으켜 방으로 향했다.
침상 한쪽에 있던 시비가 물러나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누워 있는 모려원의 모습이 진무린의 눈에 들어왔다.
시비가 물러난 자리로 움직인 진무린은 모려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공을 익힐 때 모려원은 이리 아름다운 모습과 총명한 눈매를 하고도 진무린만큼 발전하지 못해 갑갑해 했고, 종무헌에게 뒤처질 것을 염려해 검을 놓은 적이 없었다.
은천문이 배출한 최고의 여고수가 되리라는 짐작이 모려원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모려원이 지금은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미동도 없으셨습니다.”
모려원의 상태를 설명한 시비가 일이 있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로 방을 나섰다.
언젠가 일이 모두 끝나면 셋이서 함께 은천문으로 돌아가 그 언덕에 앉아 다시 웃을 날이 있겠지.
돌이켜 보면 행복한 날이었다.
가볍게 웃은 진무린이 과거의 모습을 떠올릴 때였다.
눈썹이 움직이는가 싶던 모려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대사형?”
“그래. 괜찮으냐?”
“납타이는요? 문주는 무사한가요?”
“납타이는 섬도곤이 확실히 처리했고, 문주도 무탈하시다.”
눈을 껌벅이던 모려원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
모려원이 상체를 급하게 드는 바람에 상체를 기울였던 진무린이 얼른 몸을 세웠다.
“생각나요, 대사형! 비룡방, 전중방, 그리고 귀혼곡에서의 일까지! 모든 것이요!”
모려원의 음성을 들은 모양인지 문이 열리며 정동추와 운진이 방으로 들어섰다.
“일어나자마자 참 요란스럽기도 하다.”
정동추의 말에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모려원은 바로 진무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대사형! 전중방이에요! 그곳이 벽계와 연결된 통로예요!”
그리고 놀랄 말을 꺼내놓았다.
“사매. 전중방은 실제로 있던 문파다. 그곳의 방주가 주화입마에 든 것도 사실이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암연이 두 번이나 세밀하게 조사를 마쳐서 이상이 없다고 했던 곳이기도 했다.
“진법이에요. 전중방에 진법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벽계와 연락하는 거예요.”
모려원은 확신에 찬 음성이었다.
“모 소저의 기억이 분명히 돌아온 것일 테니 전중방이야 진법을 확인하면 될 일이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소. 전중방의 제자들은 분명 양묘의 수하로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혈교와 양묘가 연결되었단 말씀이오?”
“그것까지는 알 길이 없어요. 제게 술법을 걸고 난 뒤에 납타이가 말했어요. 전중방에 진법이 있으니 그곳을 통해 하후도와 연락하면 되오. 이렇게요.”
운진이 고개를 돌려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 자리에 전중방의 제자 셋이 있었거든요. 너희는 끝까지 이 아이를 따라가 원하는 바를 가져오너라. 납타이가 전중방의 제자 셋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어요.”
그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