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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5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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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52화

은천검제

제152화

 

민가로 향하는 진무린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 지붕에 있던 모려원이었다.

모려원이 매처럼 몸을 날렸으나 정동추를 받기는 어려웠다.

“섬도곤의 맞은편 방이 비었지?”

“예, 대사형.”

억지로 버티던 정동추가 민가에 도착하는 사이 혼절한 상태여서 마당에 내려선 진무린은 곧장 대청 안쪽의 방으로 움직였다.

“진 대협!”

대청 안에 있던 운진이 놀라 몸을 일으켰고, 정동추를 살피며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침상으로 달려간 모려원이 정동추를 받아 눕혔는데 한눈에도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이안공자를 불러줘.”

모려원이 뛰어나간 틈에 운진은 놀란 눈으로 진무린의 위아래를 살폈다.

“저는 다행히 견딜 만합니다.”

“하! 그나마 다행이오.”

마교 교주가 피투성이 상태에서 혼절한 채 실려 왔으니 운진의 놀란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진 대협.”

“교주를 살펴주십시오. 대라구환단을 넘긴 뒤로 혼절했습니다.”

모려원과 함께 건너온 이안공자는 침상으로 다가가 정동추를 살폈다.

그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그릇을 들었는데 그 안에 끈적이는 약이 가득 든 것으로 보아 이런 상황을 대비한 눈치였다.

“내상에 대라구환단보다 좋은 약재를 지니지 못했으니 우선 외상을 살피겠소.”

작은 칼로 이리저리 찢긴 소매를 시원하게 잘라낸 이안공자를 위해 모려원이 물과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치료가 진행되는 것을 본 진무린은 대청으로 나와 탁자에 앉았다.

최근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친 느낌이었다.

“진 대협.”

“문주께서 그걸 직접 가져오셨습니까?”

“손이 바쁜데 문주면 어떻고, 객이면 또 어떻소? 뜨거운 차를 드시면 조금이나마 도움 되지 않을까 해서 준비했소.”

진무린에게 무언가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던지 운진이 직접 차를 들고와 탁자에 놓아주었다.

“정말 괜찮으신 게요?”

“운기가 필요하기는 한데 급할 정도는 아닙니다.”

적당히 갈증도 오른 참이고, 운진의 성의가 고맙기도 해서 진무린은 그가 준비한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뜨거운 차를 넘기자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진무린은 시선을 돌려 정동추가 있는 방을 돌아보았다.

사령을 진무린이 이겼고, 궁도를 정동추가 쓰러트렸다.

예상보다 대단한 성과였는데 남은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진무린이 궁도를 도발한 것에는 구주의 대응과 능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면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벽계가 작정하고 진무린을 노렸다.

‘세 가지 중 하나겠지.’

벽계 역시 구주가 나서지 못하리란 짐작이 있었거나, 나선다 해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 두 가지요, 나머지 하나는 진무린이 그만큼 눈에 걸린다는 의미였다.

진무린이 두 번째로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문이 열리며 모려원이 대청으로 나섰다.

“교주께서는 어떠냐?”

“아직 의식은 없는데 호흡이 거칠지 않은 것으로 봐서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대사형은 정말 괜찮으세요?”

“기회를 봐서 운기를 잠시 할 필요는 있다만, 당장 급할 것은 없다.”

진무린이 답을 할 때, 모려원이 탁자에 앉았다.

“대사형? 왼쪽 이마에 상처가 있어요.”

진무린조차 잊고 있었던 상처였다.

손을 들어 매만졌는데 따끔하기보다는 쓰라린 느낌이 더 강했다.

“화상 같아요.”

고개를 기울인 모려원의 말에 진무린은 검광을 떠올렸다.

번쩍이며 날아든 사령의 검광은 진무린이 쏟아낸 검기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하후도, 궁도, 사령, 이제 고작 세 명을 상대했을 뿐인데 이후에 나올 적은 얼마나 대단할까.

물론 얻은 것도 있어서 등룡창천의 끝을 보았다.

글자 그대로 십이성의 대성을 눈앞에 두었는데 이것이 묵룡심법을 통한 등룡창천의 본 모습인지, 오행신위를 통해 얻은 기연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진무린은 무거운 심정으로 상등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정도맹은 맹주 황종관의 지휘 아래 모처럼 일사불란한 모습을 갖췄다.

구대문파의 속가 제자라고 어깨에 힘을 주던 이들이 고개를 숙였고, 비월단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맹주. 유가장에 모였던 사파의 무인들이 모두 흩어졌다는 보고입니다.”

“괜히 사파라 불리겠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유가장을 지키라 전해주게.”

적어도 겉모습은 그랬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진 질서는 언제고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힘으로 누른 것은 더 강한 것에 고개를 숙이는 탓이었다.

‘소림과 무당이 나서는 시점이겠지.’

곤륜이 침묵하는 것도 황종관은 부담스러웠다.

그들이 모략을 꾸미기보다는 힘으로 달려들기를 차라리 바랐다.

그는 정도맹을 지키며 기다렸다.

아미를 방문한 은혼이 어떤 답을 주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

 

날이 밝을 때쯤 정동추가 의식을 차렸다.

그는 침상에 기대 잠이 든 모려원을 향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에 모려원이 슬며시 잠에서 깨어났다.

“예서 뭐하는 게냐?”

“정신이 드세요? 언제 깨신 거예요?”

“한잠 자고 일어난 걸 가지고 호들갑은.”

어쩜 밤새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

모려원이 새침하게 노려보는 앞에서 정동추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왜 그러세요? 상처가 벌어지면 치료가 허사가 된다고요.”

“몸의 상처보다 운기가 급하다. 잔소리할 여유가 있거든 좀 잡아주든가.”

정동추 정도의 수준에서 운기가 급하다고 한다면 다른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운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마기가 피어날 거다. 견디기 힘들면 방을 나서되, 반 시진 가량만 방문 앞을 지켜다오.”

“편안하게 하세요.”

“네 대사형은?”

“소능산의 사당에 있겠다며 나섰어요.”

“후-. 괴물 같은 놈.”

대결의 과정이 궁금한 모려원이 눈을 반짝였는데 정동추는 피가 배어 나온 팔을 움직여 가부좌로 자세를 잡았다.

일각쯤 그가 호흡을 고른 뒤였다.

실제로 진득한 마기가 피어나 방 안을 메웠다.

과연 마교 교주라 할 만했다.

정동추가 피워내는 마기는 피 냄새처럼 역겹고, 차가운 진창에 빠진 듯 불쾌한 느낌이었다.

마기는 또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모려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정한 마기는 이런 것이구나.’

모려원은 느닷없이 검을 뽑아 정동추를 비롯한 누구라도 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운기를 하면 얼마든지 견딘다.

그러나 혹시라도 내상을 치유하는 정동추에게 해가 될까 해서 모려원은 호흡만 조절하며 자리를 지켰다.

이각쯤 지난 뒤였다.

정동추의 끈적한 마기가 더욱 진하게 피어올랐다.

‘후-.’

더는 견디기 어려운 모려원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흰자위 저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물결처럼 퍼져 총명한 눈을 온통 검게 물들였다.

‘운기를…….’

모려원은 검을 꼭 붙들고 몸에 지닌 내공을 끌어올렸다.

술법이 모두 풀린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모려원을 빨아들이는 기운은 마기가 아니라 분명 술법의 기운이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렇게 의식을 잃으면 진무린의 어깨를 찔렀던 것처럼 운기에 든 정동추의 심장을 찌를지 모른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려원이 정동추를 살해하면 뒷일은 아예 걷잡기조차 어렵다.

‘대사형!’

모려원은 스러지려는 의식을 붙들기 위해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끔찍한 고통이 먼저 느껴졌고, 이어 찝찔한 피 맛이 입안에 퍼지며 잠시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몸을 통제할 정도로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대사형!’

모려원이 턱없이 진무린을 부르며 악착같이 내공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후아아아악.

그녀의 단전에서 진무린이 전해준 공력이 삽시간에 일어났다.

불길처럼 뜨거운 공력이 먼저 모려원의 혼을 태울 것처럼 휩쓸었고, 이어 모든 것을 얼릴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해일처럼 달려들었다.

아득하게 정신이 멀어질 때였다.

“흐하하하! 버텨봐야 소용없다!”

의식의 저 너머에서 안대로 왼쪽 눈을 가린 노인이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계집이라 얕봤더니 은천문이 대단하긴 하구나! 그러나 본좌의 술법은 그 이상이다! 흐하하하하!”

주변이 흐릿한 가운데 노인은 모려원의 코에 닿을 것처럼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술법의 매개체가 마기인 것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냐? 안다고 해도 정도의 무인인 네가 어찌 마선의 단계를 넘어선 마기를 얻어 술법을 완전히 풀 수 있겠느냐.”

탐욕스러운 외눈을 번득인 노인이 혀를 길게 내밀어 모려원의 코를 핥았다.

“욕심이 난다만, 대업을 위해 보내주마. 그 어떤 술사가 달려들어도 마선의 경지를 넘은 마기를 얻지 못한다면 네년의 술법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더러운 입김을 모려원을 향해 길게 뿜었다.

“대업을 마친 뒤에 너를 품어주마. 그날이 참으로 기다려지는구나.”

안대를 한 노인이 재차 혀를 내밀 때였다.

다시금 뜨거운 기운이 훅 솟아나 그 모든 장면을 불태웠다.

산 채로 불에 타는 듯한 고통 뒤에 머리카락까지 꽁꽁 얼어붙는 것처럼 섬뜩한 냉기가 모려원을 움켜쥐었다.

후우우욱.

열기와 냉기는 멈추지 않았다.

교대로 단전에 들어갔다가 순서를 기다린 것처럼 튀어나와 모려원을 태우고 얼렸다.

하얗게 변했던 모려원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소능산이 떠올랐다.

‘대사형…….’

진무린이었다.

그가 상등이 내려다보이는 끝에 서서 검을 들고 묵룡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후아아악!

불처럼 뜨겁게,

찌이이잉!

빙궁의 정수처럼 차갑게,

쉐에에에엑!

검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진무린이 검을 펼치는 것인지, 모려원이 의식 속에서 검을 내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절벽에 선 이가 때론 진무린이었고, 어떤 때는 모려원이었다.

달라진 것도 있었다.

불처럼 일어났던 기운이 검을 따라 밖으로 향했고,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은 몸 전체를 정갈하게 감싼 채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이것이었어요, 대사형! 깨달았다고요!

묵룡검법이 진정 이런 것이던가.

누가 있어 이 검을 상대할 것인가.

깨달음을 얻은 모려원이 소름 끼칠 만큼 짜릿한 환희에 젖었을 때, 절벽에서 이쪽을 바라본 진무린이 웃었다.

왜 그랬을까.

“대사형.”

감정이 울컥 올라온 모려원은 주룩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직후였다.

“오래 산 것 같지 않은데 별것을 다 보는구나.”

괴팍한 정동추의 음성이 모려원을 깨웠다.

뭐지?

퍼뜩 눈을 뜬 모려원의 시선 앞에서 정동추는 침상에서 벗어나 방의 구석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진무린이 정동추의 곁에 있었다.

문 앞에 선 운진은 소매가 싹둑 잘렸고, 바깥출입을 자제하던 이안공자의 거대한 갓이 그 뒤에 있었다.

방은 엉망이었다.

침상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갈라졌고, 문은 완전히 부서졌으며, 탁자와 의자 또한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은천문은 원래 이런 식으로 수련하냐?”

“사매가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을 얻은 모양입니다.”

“네가 오지 않았다면 운기를 마치고 바로 죽을 뻔했어. 그리고 저건 뭐냐? 깨달음을 얻었는데 왜 너를 부르며 울어?”

당황한 모려원은 답을 구하는 것처럼 진무린을 보았다.

“완벽한 묵룡검법이었다.”

진무린은 환상 속에서 보았던 모습처럼 흐뭇해하는 눈빛이었다.

“사매의 중성을 축하한다.”

“중성이 저 정도면 대성할 때는 아예 모두 피해 있어야겠구나. 참 요란하다, 요란해.”

모려원이 반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게다가 정동추는 상체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교주. 죄송해요. 운기하시는 기운에 감화되었던 모양이에요.”

“다시는 내가 운기할 적에 곁에 있지 마라.”

툴툴거린 정동추가 침상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모려원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문주! 혈교의 수장이 혹시 안대를 했나요? 왼쪽 눈에요.”

“맞소, 모 소저.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게요?”

“그가 마기를 매체로 제게 술법을 발휘했어요.”

운진이 눈을 크게 뜬 뒤에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해요. 그가 제 코에 대고…, 말했어요!”

“오! 마기! 마기라 하셨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동추가 눈매를 치켜세운 앞이었다.

“여태 그를 잡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소. 그가 나타날 때면 마기를 이용했고, 노도가 술법을 발휘할 때면 마기가 없으니 매개체를 납타이만 사용해서 그런 것이오!”

얼마나 반가웠던지 운진은 손을 마주쳐 손뼉을 쳤다.

“이제 그를 잡을 수 있겠소!”

침상을 붙들며 기댄 정동추가 불편한 기색으로 운진과 모려원을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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