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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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50화
은천검제
제150화
민가로 돌아온 진무린과 모려원은 준비된 저녁을 먹었다.
“대청 문을 닫으면 그 갓을 벗어도 되지 않겠나. 모르는 것도 아닌데 굳이 피할 것이 무엇이 있어?”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해 나중에 먹겠다는 이안공자를 정동추가 불렀다. 워낙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 없는 마교의 성향에 사람을 가리지 않는 정동추의 성격이 드러난 행동이었다.
고집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정동추였다.
게다가 모려원과 운진은 이미 그의 참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마침내 식탁으로 다가온 이안공자가 갓을 벗었는데 정동추는 입술을 한번 내민 것이 전부였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술을 권하고 싶은데 두 잔을 주는 것이 맞겠지?”
그는 농까지 곁들이며 실제로 두 잔의 술을 이안공자에게 권했다.
“혈교로 향한다는데 만약 납타이란 놈이 그곳에 없으면 어찌 되오?”
정동추는 이어 운진에게 질문을 건넸다.
“근거지를 멸하는 것은 이후 후계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이오. 납타이는 절대 우리의 방문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오.”
납득한 모양으로 정동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함께하는 저녁이었다.
마교 교주, 모산의 문주, 귀혼곡의 이안공자까지, 모두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어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 신기할 정도였고, 벽계라는 적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자리였다.
“너는 좋겠다?”
“무슨 말씀이세요?”
“혈교로 가는 길이 제법 멀지 않으냐? 잘해 봐.”
짓궂은 말에 모려원이 뾰족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는데 상대는 정동추였다.
“공력과 검술을 배울 수 있어서 좋겠다는 뜻인데 너는 다른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는 말 한마디로 모려원을 궁지에 몰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모려원이 새침한 눈으로 정동추를 흘겼을 때였다.
집채만 한 물결이 덮치는 것처럼 거대한 기운이 민가를 휩쓸었다.
‘궁도!’
요리를 집던 진무린이 멈칫했고, 이어 정동추가 매서운 눈으로 소능산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간발의 차이로 모려원이 시선을 돌렸는데 꽤 놀란 눈치였다.
“대사형?”
“궁도라는 놈이냐? 참으로 엄청나구나.”
모려원이 놀라 부르고, 정동추가 감탄을 토해낼 정도로 소능산에서 풍겨오는 기운은 대단하고 놀라웠다.
기운은 멈추지 않았다.
백 일 장마 끝에 범람하는 황하처럼 계속해서 민가를 쓸어댔다.
진무린은 내공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혈교를 찾아 나서기 전에 나타났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엄청난 기운으로 봐서 일행이 있는 모양인데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구주, 당신들은 어떻게 할 테냐.
원예와 이안공자, 만약 이번에 구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그래도 구주가 마지막 희망이라 말할 수 있느냐.
진무린은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저런 기운을 상대한다는데 혼자 보낼 수야 없지. 가자. 마천강기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검을 드는 진무린 앞에서 정동추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모려원 역시 나서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묵룡검법을 대성했다고 해도 위태로운 자리에 설익은 수준으로 나서기는 어려웠다.
“사매! 문주와 이안공자, 그리고 섬도곤을 부탁한다.”
“예, 대사형.”
모려원이 답을 했을 때, 진무린과 정동추가 동시에 일어섰다.
“정녕 궁도가 저 정도냐?”
“혼자가 아닙니다. 아마도 조력자와 함께 온 것 같습니다.”
고리처럼 휘어진 눈꼬리를 하고 정동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진무린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진무린이 먼저 대청을 나섰고, 뒤질세라 정동추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곧바로 경공을 펼쳐 담장을 찬 뒤에 소능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저는 지붕에 있을게요. 이안공자께서는 환자를 살펴주시고, 문주께서는 대청을 벗어나지 마세요.”
“알았소, 모 소저.”
두 사람에게 당부한 모려원은 대청을 나서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
민가의 지붕을 밟으며 달려간 진무린과 정동추는 곧바로 소능산의 사당 앞에 내려섰다.
궁도는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눈썹이 옅고, 눈매가 뱀과 닮아서 궁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강렬하게 뿜어지던 기운은 사라졌다. 그러나 위압감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도주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거칠 것 없이 나타날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너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궁도가 토해낸 감탄이 땅에 닿기도 전이었다.
“홀로 나서지도 못하는 위인이 대단한 척 입은 잘도 놀리는군.”
거칠 것 없는 정동추의 대꾸가 있었다.
“이분은 본계에서 사령이라는 직책을 맡은 분이오. 진무린의 목을 취하기 위해 나서주셨으니 교주는 바라는 대로 이 몸이 상대해 드리리다.”
사령은 진무린과 비슷한 신장이었다.
그는 검을 든 왼손까지 돌려 뒷짐을 졌는데 작은 눈동자로 진무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작은 눈에 잠시 이채가 흘렀다.
“궁 위장에게 말은 들었다만, 덧없이 죽이기에는 재질이 참으로 아깝다. 내 직책을 걸고 너에게 영화와 부귀를 장담하마. 우리를 위해 일할 마음이 없느냐?”
눈썹만큼이나 독한 느낌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벽계는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진무린의 반문에 사령의 작은 눈동자가 꿈틀했다.
“구주의 눈치를 살피는 분들이 보장하는 부귀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이들을 억압해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내겐 의미가 없습니다.”
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정동추가 ‘그럼, 그렇지.’하는 투로 입가에 미소를 달았다.
“생각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이곳에서 소란스럽게 굴기는 서로 곤란한 일이어서 근처로 자리를 옮길까 한다. 어떠냐?”
“여기까지 달려와 물러설 이유는 없습니다.”
매섭게 진무린을 노려본 사령이 훌쩍 사당을 밟고 몸을 날렸다.
이어 궁도와 진무린, 정동추가 비슷하게 경공을 펼쳤다.
대략 일각쯤 달렸다.
상등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산과 산 사이에 놓인 돌밭에 사령이 내려섰다.
진무린과 사령, 정동추와 궁도가 대치했다.
“나는 판관필을 사용할 텐데 교주는 무엇으로 하시겠소?”
“손에 뭘 드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이 두 손으로 상대하지.”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가는지 보겠소.”
“좋을 대로 하게.”
정동추의 변함없는 태도가 거슬렸는지 궁도가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진무린은 검을 먼저 꺼냈다.
그 직후에 새롭게 깨달은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사령은 눈가를 좁혔고, 궁도는 퍼뜩 놀란 눈으로 진무린을 살폈으며, 정동추는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하는 표정이었다.
“자신할 만했구나. 궁 위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니? 강호의 무공이 이리 발전했던가?”
놀라움과 감탄을 토해낸 사령이 방심하지 않은 태도로 검을 꺼내 들었다.
이미 하후도를 통해 벽계의 무공을 경험했던 진무린이었다.
하지만 뿜어나오는 기운의 결은 같으나 하후도와 눈앞에 선 사령은 하늘과 땅이라 할 만큼 차이가 있었다.
대결을 앞두고 정동추 또한 마천강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소매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고, 이어 어깨에 늘어져 있던 머리칼이 성난 범의 수염처럼 귀 높이로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진무린도 익히 아는 바였다.
후아아악.
그러나 정동추는 마천강기를 재차 폭발시키며 걷잡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교주!’
진무린의 놀란 시선 앞에서 정동추는 마천강기에 이어 잠력대법을 시행한 것이 분명했다.
궁도를 반드시 쓰러트리겠다는 각오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잠력대법이 가져올 부작용을 생각하면 이미 정동추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과 같았다.
돌이키기는 늦었다.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한 시라도 서둘러 사령을 쓰러트리고 정동추의 잠력대법을 가라앉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진무린은 눈빛을 가라앉히고 사령에 집중했다.
불의 기운이 일어나 솟구쳤고, 금의 기운이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다.
더는 여유를 부리기 어려웠는지 뱀처럼 차가운 눈동자를 굴린 사령이 검을 꺼내 들었다.
네 사람을 중심으로 작은 돌들이 바깥을 향해 굴러나갔고, 크고 작은 회오리가 일어나 무릎과 허리 근처에서 사라졌다.
각자 지닌 기운으로 싸우는 것이 하나요, 검을 이용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어느 것으로든 승기를 잡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사령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 역시 한 가닥이 아니었다.
후아아아악!
기운을 강하게 뿜어낸 진무린은 삽시간에 사령의 앞으로 움직였다.
쉐에엑! 카앙! 쉐엑! 카앙! 쉐엑!
어둠에서 검이 허공을 갈랐고, 그때마다 충돌음이 터졌다.
진무린의 강한 눈빛과 뱀을 연상시키는 사령의 눈빛이 상대의 허점을 찾아 번득였고, 빛나는 검의 이면에서는 두 사람의 기운이 치열하게 맞붙어 틈을 노렸다.
잡는다! 잡고 만다!
진무린은 화의 기운을 뿜고, 금의 기운을 끌어올려 사령을 묶으려 애썼다.
감히!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사령의 기운은 마치 칼과 도, 창과 활처럼 진무린을 파고들었다.
여러 가지 기운을 사령은 확실히 능숙하게 운용했다.
때론 날카롭고, 때론 묵직하며, 그 직후에는 숨 돌릴 틈조차 없을 만큼 빠르게 진무린을 찌르고 들어왔다.
쉐에엑! 카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고, 내공과 내공이 맞붙을 때마다 쿠응, 하는 소리를 토해냈다.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을 이을 여유 따위 없었다.
번득하고 눈앞에서 빛나는 사령의 검을 피해 상체를 젖힌 진무린은 그 상태에서 발을 뻗어 상대의 명치를 노렸다.
몸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검을 뿌렸고, 다시 옆구리를 파고드는 사령의 검을 막았다.
상등의 근처인 것도 잊었고, 옆에서 정동추와 궁도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할 만큼 사령의 무위는 대단했다.
실낱같은 틈이라도 보이면 그 순간 죽는다.
현실이 그렇다고 방어만 할까.
그와 반대로 진무린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기운을 펼쳐 사령의 검과 기운 사이에 틈을 만들어야 했다.
쉑쉑쉑! 휘리리릿!
사령의 얼굴을 세 번이나 노렸던 진무린이 기운을 한껏 뿜으며 검 끝을 흔들었다.
등룡창천의 기운이 검을 타고 봄날에 휘날리는 눈발처럼 검기를 피워냈다.
사령의 얼굴 바로 앞이었다.
쉐에에에에엑!
사령은 검을 크게 휘두르는 것으로 빛나는 검기들을 감쌌고, 오른편을 향해 뿌렸다.
파박! 파바바바박!
바닥이 파이며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검기를 감아 다른 곳으로 뿌리는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다.
사령의 내공은 그만큼 대단했고, 춘설난무로 어쩌지 못할 만큼 검은 정교했다.
쉐에에에엑!
진무린 역시 그가 춘설난무에 쓰러지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사령이 검기를 막아내는 그 짧은 틈에 섬전검법과 묵룡검법을 이을 여유를 얻었다.
쉑! 카각! 쉐에에엑! 카가가각!
진무린이 검을 휘두르는 방향을 따라 바닥에 길게 선이 파이고, 나뭇가지가 잘려 떨어졌다.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섬전검법과 묵룡검법의 초식을 잇는 내내 빈틈없이 검기를 뿌렸다.
카가각! 쉑! 카각!
검날이 맞부딪쳐 갈릴 때마다 불꽃이 연달아 피어났다.
쉐에에엑!
그리고 불꽃 틈을 파고드는 것처럼 진무린은 검을 찔러 넣었다.
쉐에엑! 쉐에엑!
진무린이 검을 피해 사령이 몸을 돌린 직후였다.
쉐에엑!
그가 짧게 검을 휘둘렀는데 그 중간에서 번쩍, 검광이 피어올랐다.
눈으로 확인하는가 싶은 순간에 검광은 이미 진무린의 눈앞에 있었다.
생각이 아니라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처럼 진무린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그런데도 진무린의 이마 왼쪽이 뜨끔했다.
상처를 살필 틈은 없었다.
쉐에엑!
다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번쩍하는 검광이 사령의 검에서 피어났다.
파바박!
진무린은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그의 검광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휘리리릭!
그러면서도 사령의 검광을 향해 다시 춘설난무를 쏟아부었다.
최소한의 틈을 만들어주리라.
쉐에에엑!
그러나 진무린의 예상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귀를 찢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춘설난무를 두 조각으로 가르며 검광이 날아들었다.
‘이익!’
진무린은 이를 악물었다.
나름 노림수라 던졌던 춘설난무의 검광이 사령의 검광을 감춰준 꼴이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오냐!’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득달같이 검을 휘둘러 사령이 만든 검광을 때렸다.
콰응! 콰자작!
왼편으로 날아간 검광이 땅을 움푹 팠고, 흙과 작은 돌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이대로 밀려도 죽는다.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등룡창천의 기운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세차게 휘두르는 검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