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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4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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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45화

은천검제

제145화

 

식사를 마친 진무린은 바로 반점을 나섰다.

산과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이각쯤 걷자 일반인은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진무린은 왼편의 산을 선택해 올랐다.

진무린이 느낀 마천강기는 바로 오행신위의 기운을 홀로 뿜어내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정상교는 휘감고, 강약을 조절하고, 집중하는 것까지는 이룬 단계였다.

만약, 그가 여러 가닥으로 나눈 기운의 성질마저 바꿀 수 있었다면 어제처럼 쉽게 승패를 가르지는 못했을 일이었다.

‘섬도곤에게 오행신위의 기운이 담겼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겠구나.’

정동추는 어렴풋이 진무린이 지금 느끼는 점을 깨달았을 테고 둔한 섬도곤을 위해 오행신위의 기운을 전해주었으리라.

산을 오른 진무린은 뒤로는 바위가 서 있고, 앞은 이소향을 내려다보는 장소에 도착해 가부좌로 앉았다.

그리고는 오행신위와의 대결을 복기하며 등룡창천의 기운을 나누는 데 집중했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독한 냉기가 담긴 겨울날이었다.

간혹 어깨나 상체를 움찔할 정도로 복기에 집중하는 진무린의 몸에서 서서히 묵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

 

정동추는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후에 대청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운진과 잠시 시간을 보낸 모려원이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건넨 질문이었다.

“죽여야 할 것들을 추리고 있었다.”

야식의 종류를 고른다는 투로 정동추는 덤덤하게 답을 내놓았다.

“듣자니 아미에게 강시술을 부린 모양인데 직접 하지는 않았을 테니 분명 누군가에게 비법을 전해주었겠지. 이참에 본교를 바로 세울 계획이다.”

마교 내부의 일을 모려원이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였다.

설란과 은향, 그리고 시비 둘을 거느린 원예가 마당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바로 정동추의 앞으로 와서 양손을 겹쳐 들었다.

“홍화루의 루주 원예가 교주를 뵙습니다.”

“워낙 소문이 자자해서 한 번쯤 보았으면 했다만, 이렇게 마주할 줄은 몰랐다.”

“일개 루주일 뿐입니다.”

“그렇긴 하지.”

엉뚱한 대꾸에 모려원이 고개를 돌렸는데 정동추는 교주의 위엄을 되찾은 양, 장난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제자 놈을 위한 배려와 지원은 훗날 기회가 되면 갚으마. 달리 할 말이 있느냐?”

“인사를 드리지 못해 급히 온 걸음입니다.”

“급히 왔다?”

“일이 있어 바로 찾아뵙지 못한 점은 송구합니다.”

“흠흐흐.”

살벌한 눈빛과 표정으로 정동추가 흘린 웃음이었다.

“혹시 내가 이곳을 또 방문한다면 그때는 게으름을 피우지 마라. 미천한 루주 따위가 바쁜 일을 핑계 댈 정도로 내가 허투루 보였다면 그 대가 역시 분명하게 받게 될 게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주.”

“아무튼, 이안공자와 장소를 배려해 준 것은 고맙다. 이만 가봐라.”

정동추의 차가운 축객령에 원예는 군소리 없이 양손을 겹쳐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루주.”

그리고 그 직후에 정동추가 원예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모려원이 눈치를 살피는 앞이었다.

“그만 가봐라.”

이게 무슨 일이지?

“교주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원예가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뒤에 몸을 돌렸다. 

그녀가 문을 나설 때까지 정동추는 매서운 표정을 풀지 않아서 대청과 마당에서는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긴장이 맴돌았다.

아무리 모려원이라도 해도 정색을 한 정동추에게 함부로 농을 걸기는 어려웠다.

도대체 왜 저러지?

그녀가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바라볼 때였다.

“정신 바싹 차려.”

“예?”

정동추가 예상 못 한 말을 툭 건넸다.

“혹시 또 대사형과의 애정을 말씀하시려는 거라면…….”

“일개 루주의 눈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불러 세웠던 것인데 그때도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소위 마교의 교주라는 내가 말이다.”

원예의 표정과 태도가 어땠지?

아까의 모습을 되새기는 모려원을 외면한 채 정동추는 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치욕을 견디는 것들은 무서울 이유가 없다. 치욕을 삼키는 것들도 두려울 바 없고. 그러나 말이다. 치욕을 차곡차곡 쌓는 부류는 절대 조심해라.”

무얼 보고 저렇게까지 무섭게 평가할까?

냉정함? 차가움? 아니면 다시 불러세웠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교주를 대했던 태도 때문에?

“홍화루라.”

생각이 복잡한 모려원의 옆에서 정동추가 무언가 담긴 듯한 혼잣말을 흘렸다.

 

**

 

정도맹으로 돌아온 황종관은 먼저 비월단의 부단주를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단주는?”

“아직 두이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끌려온 섬서지부장을 확인한 터라 부단주는 전에 없이 조심하는 태도로 황종관에게 보고했다.

“맹으로 긴급하게 돌아오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해가 뜨기 전까지다.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척살령을 내릴 테니 그렇게 준비해.”

“예?”

반문하는 부단주를 향해 황종관이 부리부리한 눈을 들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고맙네. 보고할 사안이 있나?”

“유가장에 사파의 인물들 백여 명이 모였다는 보고입니다.”

황종관은 주저하지 않았다.

“부관!”

“예, 맹주!”

섬서지부장의 팔을 자른 효과는 대단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도맹의 모든 것이 팽팽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청룡단을 소집해서 유가장으로 출발하라 일러라. 반 시진 안에 전원 출발하되 소집에 불참한 자는 명단을 제출하도록.”

“청룡단 전원입니까?”

황종관의 눈이 꿈틀한 직후였다.

“바로 시행하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부관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자네도 나가 봐. 그리고 부단주.”

“예, 맹주.”

“내일 해가 뜰 때까지 부단주는 맹을 나설 수 없다.”

황종관의 지시에 부단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단주가 돌아오면 함께 내게 오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보고를 하게 된다면 부단주가 직접 해주게.”

“알겠습니다, 맹주.”

“지시를 깜박 잊어서 맹을 나서다가 내가 부리는 가신에게 걸리면 서로 불편할 것이란 점을 절대 잊지 말게.”

“예, 맹주.”

급하게 튀어나가는 부단주의 뒷모습을 보며 황종관은 피식 웃었다.

진즉 이렇게 나설 것을.

곤륜이 오겠지만, 빤한 죄를 덮고 우기려 든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반드시 무인 황종관을 만나게 된다.

속이 후련해서 그는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

 

산 너머로 해가 내려앉는 가운데 진무린은 진한 묵빛 기운에 싸여 있었다.

기연이란 이런 것인가.

오행신위의 기운을 되새기던 진무린은 문득 솟구친 감각을 붙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먼저 올라온 기운은 삼각사의 내단이 뿜어내던 열기였다.

의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처럼 뜨거운 기운이 훅 솟구치더니 세상을 온통 태울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다음은 설경의 내단이 뿜어내는 냉기였다.

얼음처럼 차가운 설경의 내단을 통해 진무린은 다섯 가지 성질 중 가장 익히기 까다로운 금의 기운을 깨달았다.

세 번째는 가장 처음 먹었던 오선라미초의 기운으로 이는 오행 중 목에 비할 만한 기운이었다.

마지막은 만년설삼의 기운이었다.

열기와 냉기를 번갈아 일으키는 만년설삼을 통해 진무린은 마침내 기운을 전환하는 계기를 얻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어느새 촘촘히 뜬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석상처럼 가부좌로 앉아 있던 진무린은 길게 숨을 내쉰 뒤에 눈을 떴다.

진무린은 먼저 하얗게 서리가 내린 바닥에 꿇어앉아 양소소가 있는 방향을 향해 세 번의 절을 올렸다.

내단 덕분에 다섯 가지 기운에 대한 감을 얻었고, 성취 또한 확실하게 손에 쥘 수 있었다.

“사고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자 진무린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은천문의 제자로 남을 것입니다.”

진무린은 하늘에 한 번, 땅에 한 번, 만물에 한 번, 모두 세 번의 절을 더 올린 뒤에 몸을 일으켰다.

이전이 육(六)의 단계였다면 몸을 일으킨 지금은 능히 십(十)을 이뤘다고 자부할 만한 성취여서 마침내 등룡창천을 대성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

 

천하의 정동추가 흥미롭고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이안공자는 주저하지 않고 숯불에 담겨 있던 인두를 들었다.

치이이익.

살이 타들어 가며 피어난 연기와 노릿한 냄새가 역겨울 만도 하련만, 정동추는 ‘이런 것이 있었어?’ 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몸 곳곳이 갈라지고 찢어져 있었는데 이안공자는 어떤 곳은 그냥 지나치고 또 어떤 부위는 집요할 정도로 인두를 여러 차례 가져갔다.

향이 두 개쯤 탈 시간이 지난 뒤에 마침내 이안공자는 시술을 마치고 침상에서 물러났다.

“고생했네.”

“할 바를 했을 뿐입니다.”

“시술이 아주 흥미롭더군. 그런데 치료하지 않은 상처는 어떤 의미인가?”

“염증이 심하지 않아 자연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곳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대라구환단의 효능이라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동추는 품에 손을 넣어 역시나 환약이 쌓인 기름종이를 꺼냈다.

“이것은 대라구환단만은 못하더라도 죽은 사람을 하루쯤 연명시킨다는 본교의 구환단일세. 무공을 익히는 자가 섭취하면 반 갑자의 공력을 얻는다고 하던데 확인해 보지는 못했네.”

큰 갓을 쓴 이안공자가 얼른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받아.”

“교주께서 주시는 것이나 한 일에 비해 너무도 큰 상입니다. 혹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저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귀물입니다.”

“저놈의 명이야 하늘에 매인 일이니 고민할 것이 없지. 이리 수고해 준 것에 대한 인사라고 치지. 내가 손에 뭘 들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오래 이러고 있어야 하나?”

정동추의 눈꼬리가 바뀌려 하자 이안공자가 공손하게 손을 내밀어 구환단을 받았다.

 

**

 

궁도는 태상의 앞에 엎드려 진무린과의 대화를 전했다.

“호오. 자네 혼자 말고 넷, 다섯이 달려들어라?”

태상의 첫 번째 반응은 흥미와 호기심이었다.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태상.”

“이런 발칙한 물건이 있나?”

탄식을 쏟아낸 태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소문을 퍼트려서 얻은 것은 없고, 공연히 놈의 이름만 드높인 꼴이군.”

“도화선 하나만 제대로 준비한다면 강호는 분명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도화선이라? 알기 쉽게 말해 보게.”

“보물이 강호에 나왔다는 확신만 있다면 놈을 향한 의심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의견을 냈던 궁도가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조아렸다.

내내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던 태상의 눈빛이 어느 틈에 차갑게 변한 탓이었다.

“처음에는 놈을 궁지에 몰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강호를 혼란에 빠트릴 계략이라 하는군. 자네도 하후도와 같이 앞뒤가 점점 어수선해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송구합니다.”

이럴 때 태상은 무섭다.

세상을 울릴 만한 무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빛이 갑자기 변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엉뚱한 물건 때문에 다시 오랜 세월을 침묵하느냐, 아니면 구주와 전면전을 각오하느냐의 싸움만 남았군.”

태상의 혼잣말에 궁도는 고개만 조아렸다.

“뭐라 해도 시작은 진무린이란 엉뚱한 물건일 테고?”

어떤 결정을 내릴까?

궁도가 바닥에 시선을 내린 채 숨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자네더러 넷을 데려가라면 누구를 택하겠나?”

마음을 굳힌 듯한 태상의 질문이 있었다.

“사령이라면 놈의 목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

“그 물건을 잡는 데 사령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태상께서 원하시는 것이 놈의 목이 아니라 혹시라도 나설지 모를 구주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드린 요청이었습니다.”

“흠흐흐.”

재미있다는 투로 태상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웃음 끝에서 그의 눈이 뾰족하게 올라섰다.

“사령에게 내 명을 전하게.”

“청을 들어주신 보답으로 반드시 놈의 목을 올리겠나이다.”

“그래야 할 걸세.”

무언가 이어졌을 듯한 뒷말을 태상은 꺼내지 않았다.

“언제 출발하겠나?”

“사방신과의 의논을 위해 하루쯤 뒤에 나서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게.”

손을 들어 문을 가리키는 태상에게 궁도는 깊게 상체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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