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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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9화
은천검제
제139화
정상교 무리가 사파 떼거리를 줄줄이 끌어들인 이유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춘설난무를 저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파의 인물들이 겹겹이 둘러선 앞에서 일호살, 이호살, 삼호살이 기운을 펼쳐냈고, 수라항천대가 진득한 마기를 뿜어냈다.
“그렇게 감춰왔던 수라항천대를 이런 난장판에 모두 드러내다니.”
지켜보던 정동추가 분노와 함께 마천강기를 펼쳐내며 그의 장포가 서서히 부풀었다.
시작은 일호살과 이호살이었다.
그 두 사람이 번득 몸을 날려 진무린과 정동추를 향해 달려들었고, 뒤따라 삼호살과 수라항천대가 뛰어들었다.
동굴에서 세 걸음 앞이었다.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일호살을 맞았다. 그리고 시작은 은천검법이었다.
길게 선을 이으며 연달아 초식을 펼쳤는데 공동에서보다 월등히 속도가 빨랐다.
카앙! 캉! 쉬이익!
흔들리는 노리개를 본 고양이처럼 일호살은 양손을 날카롭게 휘두르며 진무린의 검에 대항했다.
일호살만이 아니었다.
수라항천대의 대주들이 대원들과 기운을 묶으며 진무린의 빈틈을 노렸다.
쉐엑! 쉑! 쉐에엑!
대주들이 찌르는 검을 피해 다리를 학처럼 세운 진무린은 연달아 세 개의 검법을 펼쳐 일호살의 목과 대주 둘의 심장을 노렸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등 뒤가 동굴이라 포위될 염려가 없었고, 그 안에 있는 섬도곤을 지키기 위해 신경을 분산할 이유도 없었다.
쉐에에엑! 카앙! 카가강!
진무린을 몰아치기 위해 일호살과 대주들이 목을 내놓다시피 달려들었으나 검이 그려낸 선은 유려하게 이어졌고, 지금은 섬전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쉬이익! 부응! 쉐에엑!
진무린이 적절하게 상대를 막아선 모양새라면, 정동추는 앞에 선 이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투로 매섭게 손을 휘둘렀다.
이호살이 달려들고 바로 삼호살이 합류했으며, 이어 수라항천대의 대주들이 빈틈을 노렸는데 조만간 죽거나 다치는 이가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결은 살벌했다.
쉐에엑! 퍼억! 퍼벅!
정동추에게 검을 내질렀던 대주 한 명이 팔꿈치와 겨드랑이를 찍히고 움찔한 순간이었다.
쉬익! 파응! 쉭! 파으응!
목을 끊기 위해 뻗은 정동추의 팔을 이호살과 삼호살이 악착같이 막아서며 대주는 위기를 벗어났다.
쉬익! 쉭! 쉭!
그러나 섬도곤에서 풀려난 정동추의 공격이 어찌나 매섭던지 이호살과 삼호살도 다급하게 몸을 빼낼 정도였다.
눈과 눈썹이 치켜 올라간 것은 물론이요, 눈 끝이 고리처럼 휘었고, 소매는 부풀었으며, 머리칼마저 귀 위로 들린 정동추는 방금 펼친 위력으로 그가 왜 마교의 교주인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쉐에엑! 카강! 카가강! 카앙!
진무린의 주변은 검광이 끊임없이 번쩍이고, 그 옆에서는 정동추라는 성난 호랑이를 상대로 이호살과 삼호살, 수라항천대가 번갈아 달려들었다.
**
광연살왕 표음환은 눈가를 좁히며 진무린을 살폈다.
당장 표음환이 가세한다 해도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진무린의 검에서 펼쳐지는 검법은 대단했다.
비단 검법만이 아니었다.
일호살과 수라항천대를 상대로 싸움을 끌어가는 모습은 가히 대종사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었다.
‘저것이 보물에서 나온 무공일까?’
홀로 떠올린 질문에 표음환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사파를 압도한다는 표음환이다.
고개 숙이기를 싫어해서 마등의 초빙조차 거절한 그가 보기에, 진무린의 무공은 하늘이 준 재능에 각고의 노력, 그리고 인연과 기연이 첩첩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진짜 실력이었다.
진무린이 뿜어내는 안정되고 강직한 기운이 그 증거였다. 정도 문파에서 오래 수련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중후함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동추가 보물의 무공을 얻었을까?
표음환은 픽하는 코웃음을 터트렸다.
진무린이 내는 기운이 안정적이라면 정동추가 뿜는 기운은 확실히 마공이었다.
마천강기이리라.
패도적이고, 웅혼한 힘을 뿜어내고 있으나 바닥에 깔린 마기를 감추지 못했으니 저 또한 보물에서 얻은 기운은 아니었다.
판단이 선 표음환이 항의하는 의미로 칠호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칠호살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정상교는 속이 타는 모양새였다.
**
섬도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정동추는 한 마리 성난 호랑이처럼 매서웠다.
쉬이이익! 퍼억! 콰드드득!
그는 마침내 대주 한 명의 목을 때렸고, 비틀거리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 팔꿈치를 반대 방향으로 부러트렸다.
쉬익! 퍼벅! 퍽!
“커윽!”
명치와 심장을 얻어맞은 대주 하나가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는데 정동추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쉬이이익! 콰응!
그는 기회를 노리고 들어온 이호살의 주먹을 무식할 정도로 우직하게 주먹으로 맞받았다.
마천강기를 최대로 담은 주먹의 위력은 대단해서 기운이 폭발하는 소리가 울렸고, 이어 이호살의 어깨가 뒤로 한 뼘가량 쭉 빠져나왔다.
쉬이익! 쉬익! 쉭! 쉭!
이호살을 돕기 위해 삼호살이 다급하게 달려들었으나 정동추가 연달아 휘두른 오른손을 넘지 못해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콰악!
“커흑!”
그리고 그 틈에 정동추는 이호살의 목을 움켜쥐었다.
마천강기가 왼손을 타고 온몸을 파고들자 호랑이에게 붙들린 개처럼 이호살은 축 늘어진 채 저항하지 못했다.
쉐에엑! 카앙! 쉐에엑! 쉑!
수라항천대 대주와 삼호살이 재차 달려들었으나 축 늘어진 이호살이 한쪽을 막아준 꼴이라 큰 득을 얻지는 못했다.
이호살이 죽게 생긴 것을 본 일호살이 정동추의 옆구리를 파고들 기회를 노렸다.
쉐에에에에엑!
그러나 진무린의 검이 목을 감아오는 바람에 상체를 크게 두 번이나 돌려서 위기를 빠져나왔다.
콰드드득!
마침내 정동추가 움켜쥔 왼손에 기운을 쏟으면서 이호살의 목뼈가 완벽하게 바스러는 소리가 터졌고, 그의 고개가 기괴하게 기울었다.
이호살의 목을 반으로 줄여버린 정동추는 고리눈을 돌려 정상교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정상교의 눈과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
은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른 명의 제자들과 나선 길이었다.
화산의 장로들과 원로들은 화산이 보물을 차지하기 하기 위해 나서는 것으로 오인하고 은혼을 배웅까지 했으나 그의 진짜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달이 떠올라 이마에 오른 시간이었다.
“잠시 쉬었다 마저 가겠다.”
“예, 장문인.”
그나마 강호 경험이 있는 제자들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 나머지는 이 기회를 통해 사람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인지를 익혀야 하는 수준이었다.
제자들을 돌아본 은혼은 하늘에 올라있는 초승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교를 방문해 죄를 묻겠다던 진무린이 교주를 지키며 농성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은혼은 솔직히 믿지 않았다.
이어 삼보 중 하나를 얻었다는 소문이 올라왔을 때는 오히려 조소를 그려낼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진 대협. 화산은 몰라도 나와 량아는 진 대협을 믿습니다. 교주를 보호한다면 반드시 그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말이다.
표충량을 등에 업고 흉수 셋을 만났을 때.
왼팔을 포기한 그 순간에 날아든 진무린을 잊지 못한다.
구정봉과 마선이절이 달려와 화산의 명예를 짓밟으려 할 때 목숨을 걸고 옆을 지켜주던 모습도 똑똑히 기억한다.
‘사부님. 제자는 협과 의를 위해 움직입니다. 혹여 제자가 잘못 판단한 것이어서 화산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벌을 받겠습니다.’
초승달은 말이 없었다.
대신 느닷없이 길게 늘어진 구름이 초승달 아래의 절반을 가렸다.
‘구름에 계십니까?’
이럴 때 청강 진인이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됐을까.
바보처럼 사부가 그리워진 은혼은 울컥 올라온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
**
쉬이익! 콰악!
정동추가 기회를 파고드는 삼호살의 목을 움켜쥐었을 때였다.
쉐에에에에에엑!
이전과 다르게 날카로운 검명이 두이산 중턱에 터져 나왔다.
주춤주춤, 놀란 눈으로 물러나던 일호살의 목에서 핏줄기가 쭉 뿜어져 나왔고, 대주 한 명과 대원 한 명 역시 비슷하게 피를 뿜으며 뒤로 널브러졌다.
콰드득!
그 직후에 느닷없이 찾아든 침묵을 깨고, 삼호살의 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털썩.
죽은 짐승을 던지는 사냥꾼처럼 삼호살을 내던진 정동추가 고개를 돌렸다.
초승달을 받아 윤곽이 또렷한 진무린은 검을 내린 자세로 앞을 막아선 정상교의 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놀랍다. 대단하다.
정동추가 보기에 같은 검법을 연달아 펼치는데 마교에서 수위를 차지한다는 일호살이 마지막에 목을 잘렸다.
그것만 해도 기가 찰 일인데, 숨겨 놓은 세력이라는 수라항천대의 대주와 대원 목이 함께 벌어졌다.
교주라는 직위를 걸고 장담하건대 진무린은 새로운 검법을 내지 않았다.
반대로 같은 검법을 오래 상대하다 보면 적응하게 된다.
그런데도 일호살과 수라항천대의 대주와 대원이 동시에 목이 잘렸으니 이는 분명 검을 휘두르는 사이 깨달음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아예 괴물이었구나.’
이제야 정동추는 궁도가 진정 염려하던 인물이 누구인지, 왜 자신을 끌어들여서라도 진무린을 쓰러트리려 했는지 이해했다.
싸움을 이끌던 일호살과 삼호살이 죽어 넘어졌고, 대주와 대원까지 목이 벌어지자 남은 수라항천대는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거리를 벌렸다.
침묵이 겨울 산을 뒤덮는 서리처럼 진무린과 정상교 무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앙상한 나무, 잡목조차 숨을 죽인 가운데 아직 식지 않은 일호살과 대주, 대원의 몸에서 피어오른 하얀 김이 지금 조금 전의 사투를 증명하고 있었다.
“출신이 어찌 되나?”
침묵을 깬 것은 표음환이었다.
그가 진무린에게 그답지 않게 점잖은 질문을 건넸다.
“광연살왕 따위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대꾸는 또 정동추가 냈다.
그는 뒷짐을 진 자세여서 한결 여유도 있었다.
“흥! 교도에게 당하는 교주가 큰소리를 다 치시는구려.”
“별 같잖은 놈이 대꾸를 다 하는구나. 오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네놈을 본교의 척살 대상에 올려줄 테니 어디 마음대로 지껄여봐라”
정동추의 한 마디에 낯빛이 바뀐 표음환이 대뜸 고개를 돌렸다.
‘이 일을 어찌 수습할 참이오?’
그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한 가지만 묻자. 너 같은 놈이 왜 본교의 행사에 개입하지?”
퍼뜩 고개를 돌린 표음환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삼보 중 하나를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소.”
“미친놈.”
사파의 인물들이 쭉 보는 앞에서 욕을 들어 그럴까.
표음환은 굴욕을 애써 삼키는 모양으로 인상을 일그러트린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진정 삼보 중 하나를 지니고 있지 않단 말씀이오?”
“가지고 있다면 네놈이 내게 달려들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그냥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정동추는 또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표현한답시고 말을 돌렸다.
표음환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선 사파의 인물들이 눈빛을 빛내는 것을 본 정동추가 눈가를 좁혔다.
“내가 보물을 소지했다고 누가 그러더냐?”
“교주가 아니라 그 옆의 젊은 친구가 지녔다는 소문이 온 강호에 파다하오. 솔직하게 말씀해 주면 내가 사실을 알려드리리다. 보물을 지니고 있소, 아니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내가 확인할 수 있게 양보하시겠소?”
말은 쉽다.
그러나 진무린과 정동추, 동굴 안을 먼저 샅샅이 뒤진 뒤에 이어 몸에 담긴 기운과 들고 있는 검까지 살펴보겠다는 것이어서, 대뜸 나온 표음환의 요구는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춘 것이 없다면 마다할 일도 아니잖소?”
표음환이 재차 요구를 전하자 뒤에 선 사파의 인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린은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누군가 헛소문을 퍼트렸고, 그 주인공이 진무린이란 사실을 말이다.
굴욕적인 몸수색을 당하고, 검과 몸뚱이를 내밀어 샅샅이 뒤진다고 이 일이 끝날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표음환이 돌아선다 해도, 다른 누군가가 같은 요구를 끝없이 해댈 것은 불을 본 것처럼 확실한 일이었다.
‘궁도.’
진무린은 이름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