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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61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은천검제 161화

은천검제

제161화

 

진무린은 모려원과 함께 대청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어 간다니 마음이 무겁네.”

“시간이 그만큼 촉박합니다. 돌아올 때는 보물 두 가지를 얻어오겠습니다. 맹주께서는 구관을 어떻게 배분할지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황종관에게 단단하게 뜻을 밝힌 진무린은 이어 정동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명분 따위 따질 것 없다. 강자가 되었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라.”

그 직후에 정동추다운 조언이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무린이 몸을 돌리자 고개를 숙여 보인 모려원이 그 뒤를 따랐다.

“확실히 진 대협의 눈빛이 바뀌었는데 이유가 진정 지난밤 때문이라 여기시오?”

“맹주께서는 저 아이를 아직 모르시는구려. 은천문과 양소소가 위험에 빠졌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 지켜보기 조마조마했었소. 저 녀석은 지금 나선 길에서 두 가지를 노리는 게요.”

이번 만남에서 황종관은 새삼 정동추가 무서운 인물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무공도 그렇지만, 강호의 판도와 사람을 읽는 능력이 이리 뛰어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저 아이는 벽계의 인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먼저 나선 게요. 그 기회를 통해 사매라는 아이의 무공을 살펴주고, 다음으로 은천문으로 달리겠지.”

합락궁으로 향한다고 했는데?

눈가를 좁히던 황종관은 퍼뜩 깨닫는 것이 있었다.

“합락궁으로 향하는 길에 은천문이 있소?”

“정확한 장소를 알지는 못하나 분명 그럴 게요.”

정동추는 확신에 가득 차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놈은 도대체 언제까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게야.”

그는 독기 가득한 한마디를 던지며 섬도곤이 누워 있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백면호리와 운진, 요정이 홍화루로 향한 터라 마당에 홀로 선 황종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동추를 설득해 우선 유가장의 보물을 가져와야 하고, 영웅대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구관에 들어갈 인물을 선정할지, 방법도 논의해야 했다.

 

**

 

민가를 나선 진무린은 빠른 걸음으로 상등을 벗어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사매. 출발하고 두 시진 안으로 벽계의 인물들이 나타날 거다.”

진무린은 먼저 모려원에게 예상하는 바를 알려주었다.

“마침 합락궁으로 향하는 방향이 본문과 겹치니 그쯤을 노리겠지. 나와 사매를 쓰러트린 후에 본문으로 가서 힘을 보태고 싶을 테니까.”

모려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처럼 진무린은 설명을 전해주었다.

“나는 사매가 그들과의 결전을 통해 등룡창천을 대성하길 바란다.”

“최선을 다할게요, 대사형.”

“힘겨울 싸움이다. 어쩌면 최악을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

최후를 각오한 것처럼 모려원은 진무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에게 최악의 순간을 전해주는 것이 더 좋겠지.”

모려원의 시선을 받은 진무린이 의지를 전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 산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키는 한이 있어도 더는 시간을 끌기 어려웠다.

“경공을 펼칠 참이다.”

“예, 대사형.”

답을 진무린이 곧바로 몸을 날렸고, 모려원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

 

임운령과 전도위는 동시에 은천문의 입구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도착하기 무섭게 경계를 지휘하던 제자가 달려왔다.

“일곱 명입니다. 현재는 진법을 살피는 모양새입니다.”

“가보자.”

뒤늦게 달려온 제자들이 지정된 장소를 지키며 은천문의 입구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임운령과 전도위는 진법의 바로 앞까지 움직였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으나 반대로 진법 안에서는 바깥을 훤히 보았다.

진법의 바깥에 서 있는 자들은 들은 바대로 모두 일곱 명이었다.

“흠.”

주변을 살피는 일곱 명을 차례로 둘러본 임운령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은천문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고작 일곱이 달려왔다면 저 숫자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들에게 서열이 있는 모양으로 가운데 선 한 명을 중심으로 여섯이 둥글게 퍼져 진의 약점을 파악하려 눈초리를 빛내고 있었다.

한순간이었다.

임운령이 바라보기에 왼편에 있던 자가 중앙으로 움직여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직후였다.

중앙에 선 자가 정면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번득.

그가 강렬하게 눈빛을 빛내며 임운령과 전도위가 서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안쪽에서 지켜보고 있으리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저들이 언제까지 저러고 있으리라 보십니까?”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노려보았으니 이미 진의 구조를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겠소. 저들의 무위를 짐작하기 어려우나 약점을 찾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리라 보오.”

임운령의 질문에 전도위가 의견을 건넸다.

그토록 믿던 입구의 진법이 반나절 만에 풀리리라는 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전도위 역시 저들이 그 정도로 강하다고 느꼈다는 점이었다.

“문주께서 누구를 상대하실지 정해주시면 대책을 세우기 훨씬 수월하리라 보오.”

“전 사부께서 중앙에 선 자를 맡아주십시오. 저는 조금 전에 진의 구조를 파악한 인물을 감당하겠습니다.”

문주가 되어 가장 강한 자를 전도위에게 맡기는 것이 어쩌면 비겁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임운령은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 모두 버리고 은천문의 안위를 먼저 챙겼고, 그 심정과 각오를 이해한 전도위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뜻을 전한 임운령은 몸을 돌려 제자들이 대기한 곳으로 움직였다.

“본문의 제자들은 들어라.”

임운령의 음성은 크지 않았으나 은은하게 울려 모여든 제자들 모두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본문을 지키는 진법을 반나절 만에 뚫을 정도로 다가온 적들은 만만치 않다. 나와 전 사부께서 한 명씩을 감당할 텐데, 그렇더라도 다섯이 남는다.”

임운령은 눈빛을 빛내는 제자들을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모두 돌아보았다.

“어려운 싸움이다. 그러나 강호에 터를 잡고 살며 어찌 편하기만을 바랄 것이냐. 하물며 저들은 강호일통을 노리는 자들로 어차피 본문의 검을 비켜 가지 못할 자들이었다.”

나직하게 말을 한 임운령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본문을 노리는 적들이 저 앞에 있다. 두렵다고 고개 숙일까?”

제자들 몇몇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검법이 유출되었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저들이 꾸민 모략이었다. 그렇게 약점을 잡혔으니 모두 무릎을 꿇고 저들에게 자비를 빌어볼까?”

제자들 절반 이상이 고개를 저었다.

“검을 낼 때 옆에 동료가 있음을 믿어라. 나와 전 사부가 가장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라. 지치고 힘들 때,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옆에 동료가 있음을 잊지 마라.”

감정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이를 꽉 깨문 제자들의 눈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본문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살아남은 동료가 증명할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살아남을 본문의 제자를 위해 싸울 테니 너희는 본문의 명예를 위해 싸워다오.”

임운령이 말이 끝난 뒤였다.

“문주의 명을 받습니다!”

피가 끓어오른 제자들의 다부진 답이 은천문을 뒤덮었다.

 

**

 

날다시피 경공을 펼치는 진무린을 따르며 모려원은 전에 없이 내공이 폭주했다.

마치 단전에 불을 피워서 내공을 팔팔 끓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어찌나 그 정도가 심한지 주화입마에 든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 시진을 너끈히 달린 뒤였다.

야트막한 산을 넘어 메마른 벌판이 펼쳐진 곳에 도착한 진무린은 몸을 빠르게 솟구쳤다가 팽이처럼 돌아내리며 경공을 멈추었다.

워낙 빠르게 달린 참이었다.

진무린처럼 속도를 줄이지 못한 모려원은 공중제비를 세 번이나 돌고서야 속도를 줄였고,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틀어 바닥에 내려섰다.

보기에는 모려원이 훨씬 화려했으나 실제로는 진무린과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사매는 운기해라.”

두 시진은 달려야 한다고 했는데 진무린은 이미 적을 앞에 둔 것처럼 무겁고 냉정한 눈빛이었다.

고개를 숙여 보인 모려원은 황량한 벌판을 앞에 두고 진무린의 뒤에서 바로 바닥에 앉아 내공을 조절했다.

“묵룡심법을 익혔고, 생사현관이 타통하고 갈무리하지 못했다. 알지 못하던 기운을 몸에 두는 것은 다스리지 못한 말을 타는 것과 같다. 한 시진이다, 사매. 그 안에 기운을 다스려야 벽계를 감당한다.”

진무린의 의도는 분명했다.

달려오는 동안 모려원의 변화를 알아챘고, 기운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 시진의 여유를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려원은 바로 내공을 일으켜 운기에 들었다.

한낮이었다.

정수리에 올라온 태양이 계절이 바뀐 만큼 뜨거운 기운을 담았고, 그 열기를 시샘하는 것처럼 바람은 냉기를 뿌리려 몸부림쳤다.

진무린은 모려원을 보호하는 자세로 서서 매섭게 앞을 노려보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비가 오기 전에 부는 눅눅한 바람처럼 벽계의 기운이 진무린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야 이런 기운을 뿜어낼 수 있을까.

위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뿜은 것이 아니라 달려오느라 쏘아낸 기운의 여운인 것이 분명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자가 반드시 갈 것입니다.’

진무린은 은천문과 임운령, 전도위,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며 이를 굳게 물었다.

 

**

 

다시 달린 엄소동은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양소소가 보기에 실로 놀라운 경공이어서 나무들이 홱홱 뒤로 달려갔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적이면 새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산의 중턱에 내려앉은 뒤에야 양소소는 은천문이 멀지 않음을 알아챘다.

“벽계가 가까이 있네. 잠시 기운을 정리할 여유가 필요해 멈춘 것일세.”

아직 은천문까지는 엄소동의 경공으로도 반 시진가량 더 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을 느꼈다면 벽계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일까?

“자네는 이곳에 있게.”

양소소의 생각을 자르고 엄소동의 말이 들렸다.

“제가 도움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손명은 벽계에서도 중간에 속한 인물일세. 그가 여섯을 이끌었다면 오늘 은천문이 비록 이름을 지킨다 해도 살아남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네.”

비록 본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엄소동은 이런 일에 과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벽계가 그토록 강한가?

엄소동이 저리 표현할 정도로?

양소소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근처에 벽계의 인물이 있나요?”

“저들은 반 시진 바깥에 있네. 그들이 이토록 강렬하게 기운을 뿌리는 것을 보면 은천문의 진법을 부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는 뜻이지.”

“운기를 하세요.”

“지금 하고 있네.”

놀랄 일의 연속이었고,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양소소는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엄소동의 운기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배려였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함께 가겠어요. 이곳에 남아 문도의 피가 흐르는 것을 외면할 바엔 죽음을 맞더라도 본문에서 쓰러지겠어요.”

양소소가 다부진 의견을 건넸으나 엄소동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운기 중이어서 그런지, 무시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

 

진무린은 시시각각 변하는 모려원의 상태를 모두 알았다.

심지어 기운을 뻗어 길을 잡아주기도 했는데 이는 공력을 전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동화되는 특성 덕분이기도 했다.

영특한 만큼 모려원은 잘해내고 있었다.

들끓는 단전을 단숨에 가라앉혔고, 넘치는 기운을 중단전으로 이끌었으며, 이어 상단전을 통해 내보냈다.

진무린이 묵빛 기운이라면 모려원은 미약하나 아지랑이처럼 투명한 기운을 뿜어냈다.

저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검기를 발현한다.

호흡을 고르던 진무린은 먼 하늘을 향해 피식 웃었다.

세상이 어찌 순탄하기를 바랄까.

더는 시간을 줄 수 없다는 것처럼 엄청난 기운이 해일처럼 진무린과 모려원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운기를 서둘러 마친 모려원이 몸을 일으켰다.

“이것이 벽계인가요?”

앞을 노려본 채로 진무린은 고개만 끄덕였다.

“사매가 그려낸 용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일 테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말을 마친 진무린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다정한 눈빛과 마지막인 것처럼 애잔한 미소를 담아 모려원을 돌아보았다.

“사매를 이 위기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았다. 사매가 없는 세상이 내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사매 역시 그러리라 믿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의 저 끝에서 네 사람의 모습이 빛살처럼 빠르게 달려올 때, 

“함께할 거예요, 대사형. 소매는 언제라도 대사형과 함께할 거예요.”

모려원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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