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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14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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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14화

은천검제

제214화

 

진무린과 모려원에 대한 경계가 풀어진 모양이었다.

진무린이 만두를 뜯어 입으로 가져가는 사이 건너편 탁자에 앉은 세 사람이 나직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구대문파에서 어떤 분을 내보낼지 들은 바가 있소?”

“소림이나 무당만 해도 숨은 용과 범이 한둘이 아닐 텐데 쉽게 정할 수 있겠소? 막말로 그 두 문파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홉 자리를 모두 차지하는 것도 가능할 거요.”

“정도맹이 그렇게야 하겠소. 필시 규제를 두겠지요.”

세 사람의 목적지는 영웅대회가 열리는 정도맹이 분명했다.

구대문파의 제자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아홉 개의 관문 하나를 노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은천문이라는 곳도 참여한다고 보시오? 풍령관을 홀로 상대할 정도라면 가히 구대문파에 버금가는 실력이 아니겠소?”

“과장이 있다고 봅니다. 정도맹의 맹주가 지원해주었다는 말이 파다하게 퍼졌고, 화산이 직접 나선 것을 본 사람도 있소.”

모려원의 시선을 받은 진무린은 가볍게 웃었다.

저런 말에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진무린이 지키고자 하는 강호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저렇게 자유롭게 무인들이 왕래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일 테니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틈틈이 진무린과 모려원을 살폈다.

보기로는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눈치였는데 두 사람이 옅게 풍기는 기운에 눌려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눈치였다.

적당히 먹은 진무린은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만두를 여섯 개 싸다오.”

“두 분도 정도맹으로 가십니까?”

“우리는 일이 있어 섬서로 간단다.”

“예. 바로 준비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어느 객잔이나 만두는 아침나절에 늘 여유가 있는 터라 준비는 바로 끝났다.

진무린은 모려원과 함께 계산을 마쳤고, 점소이에게 동전을 집어주고는 길을 나섰다.

“처음으로 무공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 모려원은 고개를 돌려 확인처럼 객잔을 돌아보았다.

“객잔에 있는 무인들의 기운을 손에 담은 것처럼 읽었거든요. 전에 벽계의 인물이 소매를 그렇게 판단했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에요.”

모려원의 솔직한 고백을 들은 진무린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대사형은 이런 생각을 안 해 보셨어요?”

“할 틈이 없었지. 하후도를 만난 이후로 엄 대협을 시작으로 점점 더 강한 벽계의 인물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진무린이 겪은 지난 일을 떠올린 모양으로 모려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강해지는 것은 대결에서 이길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나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

“빤히 아는 이야기인데 오늘은 좀 더 실감하게 되네요.”

“사매의 경지라면 벽계의 인물 한 명은 감당할 거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객잔에 있는 모두를 반드시 이긴다고 여기지 마라. 방심하는 순간, 저 중 누군가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는 한 수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예, 대사형.”

진무린은 흐뭇한 얼굴로 모려원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실력이 늘어 자만하는 자가 있고, 경계를 삼아 더욱 발전하는 이가 있는데 사매가 후자인 것 같아서 그렇다.”

“아무렴 대사형이 계신데 방심하거나 자만할 수 있겠어요?”

대화의 끝에서 진무린과 모려원은 함께 웃었다.

“슬슬 경공을 펼쳐야 할까 보다. 자칫 사제가 먼저 본문에 당도하면 게으름을 피운 꼴이 돼서 어른들 뵙기가 곤란해진다.”

진무린의 말에 따라 모려원이 경공을 준비할 때였다.

“사매. 급작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한데 벽계의 일을 마무리 지으면 사숙을 따로 찾아뵐까 한다.”

진무린은 뜻밖의 말로 모려원의 시선을 붙들었다.

“사매의 뜻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진무린이 천천히 내밀어 붙잡는 손을 모려원은 거부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함께하겠노라 말씀드리고 혼례를 치르고 싶다.”

“대사형. 소매는 이미 답을 드렸다고 여겼어요.”

숨을 커다랗게 내쉰 진무린은 손을 당겨 모려원을 가볍게 안았고, 가슴에 묻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진무린과 모려원은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종무헌은 막힐 것 없이 달려 사흘 만에 상등에 도착했다.

그 사이 백초는 내내 종무헌의 어깨에 매달려서 지냈다.

종무헌은 곧장 홍화루로 향했다.

검을 든 데다 백초를 어깨에 올린 모습이라 오가는 이들이 돌아보기 좋았는데 당장 시선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점심을 막 지났을 때 종무헌은 홍화루의 문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종 소협.”

종무헌을 맞은 것은 백섭광이었다.

“대사형의 말씀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초량의 성치문 장주의 일이라면 제가 수일 내로 출발해 얼굴을 확인할 것입니다. 확인하는 대로 은천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량에서 홍화루로 곧장 달려온 길인데 이미 백섭광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진무린을 감시했나 싶은 생각에 종무헌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단박에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종 소협. 홍화루는 강호 최고의 정보 매매상입니다. 은천문의 암연과 유사한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강호 곳곳의 기루와 주점, 객잔에서 정보를 얻어 내용을 유추합니다.”

백섭광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종무헌을 달랬다.

“세 분이 초량의 성조전장에 들르신 일, 당시에 백초가 그곳에서 장주를 지목했던 일, 그리고 이후 돌아오신 과정을 보며 유추한 것이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진무린이 존중하는 곳 중 하나가 홍화루이고, 루주 원예는 귀혼곡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설명이 이치에 맞는 터라 종무헌은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백초는 어찌해야 합니까? 남은 고기를 모두 주었는데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섭광은 대답 전에 종무헌의 어깨에 매달린 백초를 먼저 보았다.

“백초가 종 소협을 선택한 것입니다. 앞으로 삼 년이 지나면 다시 향을 추적할 수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종무헌의 시선을 본 백섭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먼저 쫓아야 할 향을 맡게 하신 후에 말린 소고기를 주십시오. 그리하면 사흘 뒤에 그 향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 전에는 무얼 먹여야 합니까?”

“백초는 스스로 먹을 것을 찾습니다. 혹 종 소협께서 드시는 것을 달라고 조를 때도 있는데 편하게 대하시면 됩니다. 다만, 말린 소고기는 주지 마십시오. 그것을 먹게 되면 그 날부터 다시 삼 년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마른 소고기를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야 종 소협께서 관리하실 일입니다.”

먼 길을 온 종무헌을 여태 세워두고 나눈 대화였다.

“대사형의 말씀을 전했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혹여 차를 권할까 염려된다는 투로 종무헌은 양손을 마주 잡은 뒤에 곧바로 홍화루를 나섰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그대로 사라진 모습이어서 백섭광은 잠시 종무헌이 나간 문을 지켜보았다.

“인상이 검과 같더니 성격과 행동 또한 파고들 여지가 없는 무인이군.”

혼잣말로 종무헌을 평가한 총관 백섭광은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종무헌과의 대화를 원예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

 

은천문에 도착한 진무린과 모려원은 먼저 임운령을 찾았다.

문주가 사용하는 전각을 비운 임운령은 가문의 전각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지냈다.

“문주가 돼서 이리 방문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데도 그러는구나.”

임운령의 타박에도 진무린은 보기 좋은 미소만 내놓을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찾아오겠다는 뜻이냐?”

“이리해야 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허!”

기가 막혀 하는 임운령 앞에서 진무린은 얼른 화제를 바꿨다.

“의논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초량에서 있었던 일을 임운령에게 들려주었다.

“벽계가 그 정도라면 한두 해가 아닌 먼 미래를 계획했다고 봐야겠구나.”

“진법이 깨진 탓에 그들 역시 나이를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후계를 키우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운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가 태상을 쓰러트린 것을 익히 알 테니 그들 또한 문주를 능가할 제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다.”

“삼 개월 뒤에 모산의 문주께서 술법을 발휘하면 세 명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그 점을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구나.”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 임운령은 입술에 힘을 준 채 잠시 시간을 끌었다.

“괜찮다면 사저와 함께 의논해 보고 싶은데 문주의 뜻은 어떠냐?”

“저 역시 사고께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문주의 집무실에서 보자. 내가 사저께 가서 지금 들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려 보마. 두 시진쯤 뒤면 적당하겠지?”

“예, 사숙.”

대화를 마친 끝에서였다.

“문주.”

몸을 일으키려는 진무린을 임운령이 진지하게 불렀다.

“본 문에서 모르는 이가 없으니 이제 려아와 길일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진무린의 속을 읽었을까.

진무린이 입 끝에 미소를 그렸을 때였다.

임운령이 짓궂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살다가 너의 볼이 붉어지는 것을 다 보는구나.”

“사숙!”

모려원의 날 선 반응에도 임운령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이제 내가 운을 띄웠으니 문주도 좀 더 이 문제를 고민하겠지. 일단 두 시진 뒤에 급한 일을 의논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럼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진무린은 포권을 보인 뒤에 임운령의 거처를 나섰다.

문주의 전각을 향해 걷던 길이었다.

“사숙이 대사형과 제 마음을 보셨을까요?”

“어른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경험과 연륜이 있으시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지. 나는 저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한데?”

함께 걷는 모려원은 볼을 붉힌 채 대꾸하지 못했다.

“오늘, 내일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 사고를 뵙고 나서 천천히 의논하기로 하자.”

부드럽게 웃어준 진무린은 문주의 전각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고, 볼이 붉어진 모려원이 그 뒤를 따랐다.

 

**

 

두 시진 뒤였다.

이전에 임운령이 사용했고, 지금은 진무린이 사용하는 문주의 집무실에 진무린, 모려원, 임운령, 전도위, 양소소, 남굉모, 나탑사가 모였다.

상태가 위중했던 나탑사는 부상을 어느 정도 털어냈는데 남굉모가 보살핀 덕분인지 오히려 젊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었다.

진무린은 모인 일행에게 다시 한 번 초량에서의 일을 전했다.

“무헌이가 홍화루에 들렀다고 하니 초량의 성치문 장주에 관한 내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겠구나?”

“그렇습니다, 사고.”

“고민할 것이 무엇이 있어? 일단 성치문이란 놈의 목을 베고, 나머지 세 놈도 찾는 즉시 목을 갈라주면 될 일이다.”

“외조부는 어떻게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뭐라?”

통쾌하게 나섰던 남굉모를 양소소가 단박에 찍어눌렀다.

지켜보던 진무린과 다른 이들이 민망할 지경이었는데 나탑사만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성치문이야 이미 문주가 방문했으니 몸을 조심하더라도 남은 셋은 아직 자신들이 추적당할 거라고 여기지 않을 거잖아요. 그들을 지켜보면 남은 잔당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으세요?”

“흥!”

양소소의 의견에 남굉모는 단박에 코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스물이라 들었다. 맞느냐?”

“최소 그 정도라 여깁니다.”

진무린의 답을 들은 남굉모는 보란 듯이 양소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넷의 목을 가른다고 해도 아직 열여섯이 남는다. 그놈들의 목을 자르나 지켜보나 어디에선가 열여섯은 계속 음모를 꾸민다는 의미다.”

“그러니 지켜보아야지요. 그래서 연결 고리를 하나씩 찾아내야죠.”

“그놈들이 서로 연락하지 않으면?”

단박에 나온 남굉모의 질문에 양소소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성치문을 봐라. 초량이란 곳에서 십 년간 전장을 운영한 진짜 장주의 몸뚱이를 뒤집어썼지.”

“그야 확인해 봐야죠.”

“볼 것이 무엇이 있어? 만약 지금 내가 달려가 성치문의 목을 자른 뒤에 이놈이 벽계의 후인이었다고 외친들 누가 믿어주겠냐?”

양소소는 두 번째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더 할 게다. 당장 성치문만 해도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인데 그놈들이 혹여 민심을 사게 된다면 목을 자르는 일이 더욱 어려워져.”

“외조부의 말씀이 일리가 있으니 그렇다면 조용히 처리해야죠.”

“놈들이 벽계의 무공을 지녔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정면에서 달려들지 않고 사람들 틈으로 피하면 어찌 조용히 해결해? 당장 성치문만 해도 초량의 한복판으로 도주하면 어찌할 테냐? 평판 좋은 전장의 장주를 은천문이 나서서 목을 자른 것으로 보일 텐데.”

양소소가 의견을 묻는 의미의 눈으로 임운령과 전도위를 돌아보았다.

“문주의 의견대로 강호를 일통하겠다는 무리는 언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외조부의 말씀대로 발견하는 즉시 해결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먼저 임운령이 의견을 내놓았고,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하면 최소한 지켜보며 추적하고 있다는 경고를 전하는 효과는 얻을 것 같습니다.”

전도위가 비슷한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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