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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13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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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13화

은천검제

제213화

 

진무린은 앞에 펼쳐진 고을을 진중하게 바라보았다.

백초가 상체를 세우고 좌우를 번갈아 둘러보는 것을 보면 원예를 살해하려던 벽계의 인물이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중방에서 추적할 때를 고려하면 충분히 느껴져야 할 벽계의 기운이 말이다.

놀라운 것은 백초의 반응이었다.

영물은 다른 건지 백초는 진무린을 한번 돌아본 뒤에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였다.

진무린 일행이 걷는 것과 비슷하게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대사형. 백초가 너무 눈에 띄는데 어떻게 하죠?”

고을의 앞으로 펼쳐진 밭에서 모려원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얀 담비도 신기할 지경인데 무인 세 사람이 뒤를 따르면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리를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진무린이 뭐라 대답하기 전이었다.

몸을 돌린 백초가 대뜸 종무헌의 발을 타고 위로 올라 어깨에 앞발을 걸고 매달렸다.

“방향을 모르겠어?”

종무헌이 친근하게 질문을 건넨 직후였다.

밭이 끝나는 고을 안쪽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네요. 저 사람들을 피했던 건가 봐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진무린은 고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초행이라 그런데 이곳의 이름이 어찌 됩니까?”

“초량이라 합니다. 부성호가 유명하니 그곳에 들르시면 풍광을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진무린 일행이 든 검을 본 농부 일행은 공손한 태도였다.

강호 유람을 나온 무인으로 판단한 듯한 답도 있었다.

이때 백초는 마치 특이한 애완동물처럼 종무헌의 어깨에 얌전하게 있어 농부들의 시선을 잠시 끌었을 뿐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일행은 곧장 길을 따라 초량의 안으로 들어섰다.

넓게 이어진 가옥과 전각들을 지난 일행이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찌익. 찍.

낮게 운 백초가 어깨에서 왼편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사제. 백초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 봐.”

“예, 대사형.”

진무린의 판단은 정확했다.

백초는 수시로 어깨에 매달린 채 상체를 틀었고, 순간 길이 막힌 곳이 나오곤 했으나 가장 가까운 골목을 선택하면 이어 방향을 잡아주곤 했다.

반 시진 가량 백초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 뒤였다.

어깨에서 팔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 백초가 ‘성조전장’이라 쓰인 문 아래로 뛰어들었다.

“저게 뭐야?”

안쪽에서 놀란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진무린 일행은 곧바로 전장의 문을 들어섰다.

찌이익! 찌익!

작은 마당 앞에 건물이 서 있는 구조였다.

뒤채로 연결된 듯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고, 열린 대청에 책상을 두어 서기가 종이와 붓을 놓고 대기했으며, 그 뒤에 중년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백초는 그 뒤 의자에 앉은 중년 남자 앞에서 매섭게 상체를 세우고 있었다.

“사제. 백초를 수습해.”

“예, 대사형.”

종무헌이 다가가자 백초는 더욱 요란하게 울음을 터트렸고,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됐다. 됐어. 그만.”

자세를 낮춘 종무헌이 다독이자 곧장 어깨로 오른 백초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중년 남자를 향해 연신 이를 드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빠르게 살핀 내부는 여느 전장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진무린의 기운에도 벽계의 인물은 잡히지 않았다.

찌익. 찍. 찍.

백초는 분명 무슨 일이냐고 묻는 중년 남자를 가리키는데 갑갑하게도 그는 어떤 기운도 내비치지 않았다.

“진무린이라 합니다. 이쪽은 제 사매와 사제입니다.”

모려원과 종무헌이 이름을 밝힌 다음이었다.

“성조전장을 운영하는 성치문이라 하외다. 전표가 있으시다면 바로 처리해드릴 테니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성치문은 양손을 마주 잡아 흔들며 진무린 일행을 대했다.

원예나 백섭광이 함께 왔다면 지금 앞에 선 인물이 침입자인가를 바로 알았을 텐데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장주. 궁금한 것이 있어 무례한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이곳에서 전장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초량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장을 차린 것은 십 년이 조금 넘습니다. 신용 때문이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본 장원에서 발행한 전표는 강호 그 어느 전장에서도 모두 취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진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손을 넣어 전표를 석 장 꺼냈다.

“이것을 사용하기 편하게 열 냥짜리로 나누어 주시겠소?”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전표를 받아든 장주 성치문은 금액을 확인한 뒤에 긴장해서 기다리는 서기에게 전했다.

백초는 계속 중년 남자를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고, 진무린 일행은 무겁게 서 있어서 전장에는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다.

소란에 나왔던 시비와 하인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는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는 사이에 서기가 세 장의 전표를 서른 장으로 바꾸어 나타났다.

“비용이 어찌 됩니까?”

“전표를 나눈 것에 어찌 비용을 말씀하십니까? 앞으로 성조전장을 이용해주십사 하는 바람만 전해드렸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표를 확인한 진무린은 양손을 가볍게 잡고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모려원과 종무헌이 당연하게 뒤따랐는데 백초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억울한 모양으로 연신 작은 울음을 터트렸다.

“초량의 입구로 다시 가자.”

진무린은 기운을 펼친 채 걸었다.

초량 전체를 확인할 것이 아니어서 특별하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구불구불 왔던 길을 똑바로 걷자 시간도 훨씬 줄어서 성조전장을 찾는 것의 반 정도 만에 다시 야트막한 곳에 도착했다.

“백초에게 남은 고기를 줘.”

“예, 대사형.”

진무린의 지시에 종무헌은 두말하지 않고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안에 있던 두 덩이의 고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람쥐처럼 움직인 백초가 고기를 움켜쥐고 급하게 먹는 동안, 진무린은 성조전장이 있는 방향에 줄곧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소매가 보아도 백초는 분명 장주를 지적하고 있었어요.”

“금제를 이용했겠지. 암연을 불러다오.”

진무린의 지시를 받은 모려원이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초량을 향해 뿜었다.

등룡창천을 이룬 터라 과거 마등을 상대할 때의 진무린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였다.

“암연이 감시하게 하고, 우리는 따로 이곳에서 잠시 지켜보자. 또 홍화루에 연락해서 장주를 확인할 필요도 있겠다.”

“루주나 총관은 알아볼 테니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겠네요. 면구를 사용했을 것에 대비해 백면호리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진무린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형?”

그때 모려원이 진무린을 부르며 뒤를 가리켰다.

분명 추적이 끝나면 남은 고기를 모두 먹고 사라질 거라던 백초가 종무헌의 어깨에 다시 올라가 귀와 목덜미에 주둥이를 대며 애교를 부렸다.

“이별이 아쉬워 그런가 보다. 잠시 달래줘.”

백초를 보내는 것이 아쉬운 모양으로 종무헌이 오른팔을 들어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였다.

“문주를 뵙습니다.”

뒤편에서 쉰이 넘어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궁금한 것이 있어 암연의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문주께서는 편히 말씀 주십시오.”

“성조전장이 이곳에 설립된 지 얼마나 됩니까?”

“근 십 년 이상 되었고, 내내 안정적이었습니다.”

“장주의 인물평은 어떻습니까?”

“성조전장의 장주 성치문은 어려운 이들을 도울 줄 알고, 탐욕이 적어 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하던 인물입니다.”

암연의 평가가 이 정도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최근에 성조전장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는지 알고자 합니다. 사소한 것이어도 상관없으니 장주의 외출이나 평소와 다른 모습이 있었는지 알아봐 주시고, 오늘 이후로 출입하는 자들까지 모두 살펴봐 주셨으면 합니다.”

진무린의 지시가 내려간 다음이었다.

“초량의 암연이 그 정도로 움직이자면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문주께서 그 점을 허락해주십시오.”

“편한 대로 하십시오.”

“다른 점은 없으십니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확인하는 대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양손을 맞잡은 초로의 노인이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벽계는 먼 훗날을 노리는구나.”

진무린은 초량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말을 꺼냈다.

“아무리 모습을 감춘다고 해도 장주는 무언가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까요? 당장 백초를 따라 대사형과 소매, 사제가 찾아갔었는데요.”

“지켜보면 알겠지.”

내내 종무헌에게 애교를 떨던 백초는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으로 발밑에 내려가 몸을 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운진 문주가 삼 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 모르겠다. 저들이 금제까지 이용해 모습을 감춘 상태에서 셋을 찾아낸다면 나머지 열일곱 명은 더욱 흔적을 지울 테니 말이다.”

“운진 문주가 찾아내는 세 사람은 지켜본다고 해도 그들이 서로 연락하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지켜볼 수도 없을 테고요.”

“뜻밖에도 긴 싸움이 되겠지.”

진무린은 종무헌의 발아래에서 잠이 든 백초를 잠시 돌아보았다.

“언제고 강호를 손에 넣겠다는 무리들은 있었다. 한때는 마교가 그랬고, 최근에는 흑사련이 또한 그랬지. 벽계의 수하들이 또 그런 부류로 남았다고 보면 되겠지.”

“이럴 게 아니라 소매가 가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할 것을 준비해 올게요.”

“소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종무헌이 앞으로 나서자 백초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사제는 백초에게 묶인 것 같은데? 그렇게 함께 객잔에 들르면 말이 돌 테니 내가 다녀오는 것이 편해.”

“그리해라.”

진무린까지 나서 허락하자 종무헌은 송구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저 녀석은 먹을 것을 더 주지 않아도 될까?”

“두 덩이나 먹었으니 잠시 지켜보죠. 배가 고파지면 떠날지도 모르고요.”

진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려원이 초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모려원이 돌아와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고, 어둠이 내리도록 초량에서 벽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무공을 완전히 감춘 성치문을 붙들어 추궁하거나, 아니면 돌아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어둠이 짙어지며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밝은 달이 떠오른 다음이었다.

“사제는 상등의 홍화루에 들러 오늘 일을 전해주고 루주와 총관이 장주의 얼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다오. 강요할 것은 아니다. 그때까지 백초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처분을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예, 대사형.”

진무린은 마음을 굳히고 몸을 일으켰다.

“사매는 나와 함께 본문으로 돌아가자. 어른들께 내용을 고하고 현명한 대처법을 찾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진무린을 따라 모려원과 종무헌이 몸을 일으켰다.

남겨질 것이 염려된 것처럼 종무헌의 어깨에 올라가 매달린 백초가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에 먼저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사제는 본문에서 보자.”

“예, 대사형.”

포권을 보이는 종무헌을 두고 진무린과 모려원은 은천문으로 향해 몸을 움직였다.

바쁘게 달릴 일은 없어서 진무린은 느긋하게 경공을 펼쳤고, 모려원은 넉넉하게 보조를 맞췄다.

지난 세월을 반성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무공을 버렸을까?

나무를 밟고 달리면서 진무린은 가볍게 웃었다.

십 년 전에 전장을 열었던 진짜 성치문은 지금쯤 어딘가에 죽어 있을 테고, 저들은 거죽만 뒤집어쓴 모습일 테니 새 삶을 살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 해도 용서할 것은 아니었다.

암연이 지켜보고 있다.

움직임이 있다면, 누군가를 만난다면, 진무린이 소식을 듣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

 

날이 밝았을 때 모려원과 함께 운기한 진무린은 객잔을 찾아 걸었다.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숨 막히게 급할 것도 없는 터라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햇살이 아직 세상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 터라 길가에 서 있는 나뭇잎에 습기가 그대로 남은 시간이었다.

객잔으로 향하던 모려원이 진무린을 돌아보았다.

무공을 익힌 사람 특유의 기운이 객잔에서 가득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수준이 뛰어난 사람들은 딱히 없으니 알지 못하는 무리가 객잔을 차지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진무린과 함께이고, 모려원 또한 등룡창천의 대성을 앞둔 참이라 두려울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은 덤덤하게 객잔으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과장된 몸짓으로 두 사람을 안내한 점소이가 비어 있는 두 개의 탁자로 안내했다.

안에 있는 이들의 복색과 무기는 각양각색이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죽과 만두를 부탁한다.”

“바로 올리겠습니다!”

무인의 숫자에 주눅 들었어야 할 점소이는 어쩐지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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