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208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208화
은천검제
제208화
임운령과 전도위는 짧은 인사조차 뒤로 한 채 벽계의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쉐엑! 쉐에에엑!
은천문과 화산은 원래 무공의 격차가 있었다.
은천문의 제자들이 나설 틈도 없이 전도위는 진중탈구검을, 임운령은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펼쳐 압박했다.
일각이 지난 후였다.
두 자루의 검을 상대하던 중년 남자는 한순간에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카아앙! 카앙!
요란한 소리가 울린 뒤였다.
흐릿한 형태로 움직인 중년 남자가 삽시간에 우측 담벼락을 넘어 모습을 감췄다.
분하지만 결정적인 한 수를 낼 실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이리라.
벽계의 인물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던 임운령은 검을 거둔 뒤에 몸을 돌렸다.
“화산이 홀로 전중방을 지켜준 것에 감사드리오.”
화산의 공을 치켜세운 임운령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한쪽에서는 은천문의 제자들이 움직여 다친 화산의 매화검수를 돕고 있어서 전중방 안은 금방 안정을 찾았다.
은혼은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전했고, 임운령은 정동추의 도움을 이야기하면서 앞과 뒤가 어떻게 흐른 것인지도 대충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임운령과 전도위는 제자들의 보고에 움직여 전중방의 안쪽에 누운 장 노대를 발견했다.
기물에 묻은 피를 보았기에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막상 독에 중독된 채 차갑게 누운 장 노대를 보자 임운령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는 분입니까?”
“그렇지 않소. 다만, 외롭게 누워있는 것이 안쓰러워 그렇소.”
생각이 깊고, 암연의 존재를 짐작하는 은혼은 임운령의 답변을 이해하고는 모른 척 뒤로 물러났다.
‘독에 중독된 몸으로 손을 뜯으셨소?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웠을지 부족한 이 사람은 짐작도 못 하겠소.’
장 노대의 손을 잡았던 임운령은 헝클어진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다.
‘암연의 이름이라 마지막 길마저 이리 소홀하다오. 용서하시오, 노대. 본문에 돌아가면 이 몸이 할 수 있는 바를 다해 노대를 배웅하리다.’
임운령이 다시 장 노대의 손을 매만질 때였다.
드드득.
은천문의 제자들이 지키는 담이 흔들렸다.
“대결의 여파로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은혼이 바로 상태를 알아보았는데 당장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전도위는 먼저 은천문의 제자들을 모두 동원해 벽의 앞뒤로 세웠다.
“만에 하나, 담이 기운다면 힘으로 버텨서라도 문주가 돌아올 때까지 견뎌야 한다.”
“전 사부. 이 몸도 한쪽을 맡겠소.”
“장문인께서 그리해주신다면 제가 밖을 감당하겠습니다.”
제자들을 촘촘하게 세운 전도위가 밖으로 나서자 은혼이 안쪽의 자리를 지켰다.
**
묵룡검법을 수련하던 종무헌은 하늘이 흔들리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놀란 소리에 모려원이 민가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웠다.
“무슨 일이야?”
“하늘이 흔들리며 지평선이 일렁이는 것을 소제가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하늘에 공간이 생긴 이후에 진무린이 바깥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모려원은 진법의 입구에 무언가 충격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사제. 당부가 하나 있어.”
“말씀하십시오, 사저.”
“진법에 영향이 생긴 것이 분명해. 이후 하늘이 심하게 흔들리고 나면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그렇더라도 사제와 나는 남은 생을 이곳에서 보내게 될 거야.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내 앞에서 대사형을 원망하는 말을 내지 마.”
모려원이 답을 원하는 것처럼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소제 역시 대사형께서 죄책감을 품고 지내실 것이 염려될 뿐, 그런 마음 따위 품어본 적도 없고, 품지도 못합니다.”
종무헌이 대견하고 씩씩하게 답을 냈다.
크드드등!
그리고 이전보다 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이 흔들리더니 지평선이 물결처럼 커다랗게 일렁였다.
모려원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진법 안이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흔들린다고 두려울 것은 없었다.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 그 순간을 꿋꿋하게 맞이하기 위해 모려원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
진무린이 지나간 뒤편에서 나무들이 좌우로 거칠게 갈라졌고, 흙과 돌이 높다랗게 일어났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공력을 조절할 여유 따위 없었다.
밟았던 가지가 부러지고 바위가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는데 진무린은 이 길의 끝에서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속도를 더 끌어올렸다.
함께 달리는 정동추를 위해 공력마저 전해주는 참이었다.
사람이 지닌 기운에는 한계란 것이 분명해서 달리는 속도를 줄여야 했다.
기운이란 순환을 중요시하는 법이라 그 한계를 넘기면 기혈이 엉키고,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돌이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더 못 가겠다!”
진무린의 심정을 알아차린 정동추가 고함을 버럭 지르고는 경공을 풀어 뒤로 멀어졌다.
“천천히 갈 테니 먼저 가려무나! 운기라도 한 후에 뒤따르마!”
정동추의 배려를 익히 짐작했으나 진무린은 사양하지 않았다.
“뒤에 뵙겠습니다!”
콰직! 콰자작!
나무를 밟고 솟구친 진무린은 절벽 중간에 놓인 바위를 연달아 디디며 전중방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
결국, 바깥은 전도위와 제자들이, 안쪽은 은혼과 임운령이 달려들어 버티는 형국이었다.
드드드드득.
중간중간 금이 가기 시작한 담은 위쪽은 바깥으로, 중간은 안으로 기울어져 손으로 버티지 않았다면 이미 무너졌을 일이었다.
은천문 역시 진법 안에서 살아가는 문파였다.
손으로 붙잡고 있다고 하나 벽이 갈라지면 진법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드드드득!
“버티기만 해! 과한 힘을 주면 반대편으로 밀려들어 간다!”
말하지 않아도 은천문과 화산의 매화검수들이 양쪽에서 맞잡은 꼴이었다.
내공이 있어 기우는 담을 버티는 것은 할 만했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또, 이런 순간에 벽계의 인물이 나타나면 이 단순한 방법조차 포기해야 한다.
드드드드.
은천문과 화산의 정예가 무너지는 담에 매달린 모습이 우습게 보일 수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절박했다.
모려원과 종무헌이 영영 진법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탓이었다.
‘제발 서둘러라! 네 심성이라면 피를 토하듯 달릴 것을 안다만, 촌각이라도 일찍 당도해다오.’
은혼에게서 들은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 진무린이 이곳으로 향했는지, 언제 도착할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키라고 당부했으니 최선을 다해 버틸 뿐이었다.
드드드드드.
손에 느껴지는 진동에 임운령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
바깥의 피 말리는 심정과 달리 모려원과 종무헌은 우두커니 서서 흔들리는 하늘과 일렁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간혹 흐릿한 공간이 피어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는데 두 사람은 불행하게 그곳에서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다.
크드드드등!
이번은 소리가 제법 컸다.
해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평선이 높아졌다가 천천히 내려앉았고, 지축이 흔들렸는지 진동마저 분명하게 느껴졌다.
불꽃처럼 흐릿한 공간이 하늘 곳곳에서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모려원은 퍼뜩 암연의 기운을 쏘아내던 진무린을 떠올렸다.
어쩌면 마지막 인사는 전할지 모른다.
무탈하다고, 이곳은 염려하지 말라는 뜻을 알릴지도 모르고.
검을 들어 양손을 잡은 모려원은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힘껏 내뿜었다.
‘대사형. 소매는 잘 있어요. 각오도 단단해서 두렵지도 않아요.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모려원의 모습을 보며 짐작한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종무헌 또한 검을 앞으로 내고 양손을 잡은 뒤에 고개를 숙였다.
‘대사형. 소제는…….’
크드드드등!
‘마지막에 대사형을 못 뵌 것이 아쉬울 뿐, 이곳에서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무공을 익히며 은천문의 제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자세를 세운 종무헌은 모려원과 함께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쏘아냈다.
**
담을 붙들고 있던 임운령과 전도위의 눈이 번득하고 빛났다.
“전 사부!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분명하오! 이는 려아와 무헌이의 기운이오!”
담의 바깥과 안에서 주고받은 대화였다.
“진이 흔들리며 공간이 생긴 모양입니다!”
“답을 보낼 테니 힘을 실어 주시오!”
은천문의 제자들은 대화의 맥락을 단박에 이해했고, 은혼과 매화검수는 대강이나마 짐작했다.
곧바로 전도위와 임운령이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뿜어냈는데 은혼과 매화검수는 이렇게 약한 기운으로 무얼 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
모려원과 종무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보았다.
“사부님입니다!”
“전임 문주께서도 오셨어.”
이토록 선명한 기운이라니.
반대로 두 사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도위와 임운령의 기운이 넘어오는데 진무린의 기운은 없었다.
전중방에 진무린이 없다는 의미였다.
“사제. 그만.”
암연의 기운을 뿜어내려는 종무헌을 모려원이 말렸다.
“우리가 무탈하다는 것을 알려드렸으니 그것으로 충분해.”
“예, 사저.”
크드드드등!
하늘에서 투명한 공간이 피어나 범위를 점점 더 넓히더니 초록의 색마저 옅게 변했다.
민가가 흔들릴 정도로 지축이 울고 난 뒤에는 멀리 지평선이 한 길 이상 솟아 내려가지 않았다.
“세 가지 보물을 내가 지니고 있어서 대사형께서 곤란해지시는 건 아닌지 몰라.”
모든 것을 내려놓자 문득 세 가지 보물을 지녔다는 생각이 떠올라 모려원은 혼잣말을 내놓았다.
“사저. 세 가지 보물을 지니고 계신다면 힘을 얻어보십시오.”
그런데 종무헌이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공간을 통해 대사형께서 이곳을 벗어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소제는 아직 등룡창천을 깨우치지 못해 어려우나 사저는 세 가지 보물의 힘을 얻으시면 통과할지 모릅니다.”
급하게 나온 종무헌의 말을 들으며 모려원은 멍한 얼굴로 답을 내지 못했다.
영특한 모려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저! 시도해봐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공간이 어렴풋하기는 하나 하늘 전체로 퍼졌습니다. 등룡창천의 기운을 증폭하면 바깥으로 연결된 기운을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제는?”
“나가신다면 대사형과 함께 소제를 구할 방도를 찾아주십시오.”
모려원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뒤에 천천히 내쉬었다. 그런 뒤에 고개를 저었다.
“사저!”
“사제가 폭주했던 것을 기억하지? 만약 내가 여기에서 폭주한다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죽어야 끝나. 내가 이긴다면 사제를 죽이고, 미치광이가 돼서 떠돌 테지?”
“소제가 막아보겠습니다.”
모려원은 종무헌이 기특하다는 투로 웃었다.
“사제라면 혼자 나가겠어?”
“소제는 그리할 겁니다.”
“그리하면 대사형께서 나를 용서하지 않으실걸?”
종무헌의 애원에도 모려원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어느 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그러나 위기에 사제를 홀로 두고 빠져나가는 일을 모려원은 절대 선택할 수 없었다.
**
마침내 담이 무너져 내렸다.
마주 서 있는 은혼문의 제자들과 매화검수들이 공력을 이용해 같은 자리를 떠받치고 있으나 빈 곳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드드드득.
새로운 금이 갈 때마다 담이 부서져 내렸고, 그럴 때마다 위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드드드득!
무릎 부근의 담이 흔들리자 임운령이 발을 들어 밀었고, 맞은편에서 전도위가 같은 자세로 받아 버텼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담은 걷잡기 어려웠다.
매화검수와 은천문의 제자들마저 발을 들어 붙들었으나 그 역시 한계가 드러났다.
드드드득.
결국,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담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임운령은 고통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 아이들조차 구하지 못한단 말이냐!’
임운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순간이었다.
후아아아아악!
전중방의 우측 담을 타고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