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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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8화
18화
“여자는 먼저 누르는 사람이 임자다. 아직 안 눌렀으면 네 것이 아니다.”
“헉! 그, 그러니까… 그 누른다는 것이… 제가 패왕무고에서 봤던 춘화집에 나오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강무진의 말에 유운무가 가만히 강무진을 바라봤다. 강무진 역시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기를 바라면서 유운무를 바라봤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유운무는 이번에도 역시나 강무진의 기대를 저버렸다.
물어본 지 무려 반 시진이나 지나서야 강무진을 툭 쳤다. 그리고 살짝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동그랗게 만들더니 다른 손의 검지로 그곳에 몇 번이나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아닌가?
‘뭐야? 그게… 어? 가만 그, 그건…….’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강무진은 순간 유운무의 동작에서 뭔가 연상이 되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갛게 익은 홍시가 되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솟아올랐다.
“커헉!”
‘그, 그렇구나. 여자는 일단 눌러야 된다! 이건가? 좋았어. 빨리 일 끝내고 돌아가서 사매하고 소소를 상대로 해봐야겠다.’
두 사람이 그런 진지한 대화(?)를 하며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유운무가 갑자기 말에서 내리더니 말을 길 옆으로 끌고 가서 그곳에 묶어놓는 것이 아닌가?
강무진이 그것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운무가 자신의 말을 묶어놓은 곳을 가리켰다. 똑같이 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이유도 모른 채 일단 강무진은 유운무가 시키는 대로 말을 그곳에다 묶어놓고 유운무에게 갔다.
유운무는 잠시 말들을 보더니 아무래도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듯 말이 묶여 있는 곳과의 거리를 5장 정도 더 벌렸다. 그러자 강무진이 여전히 의아해하며 유운무를 따라가서 옆에 섰다.
그것을 보고 유운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쳤다.
“나오라!”
겨울 하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청명한 하늘이었다. 그 하늘로 유운무의 외침이 퍼져 나갔으나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이… 있습니까?”
그제야 강무진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유운무에게 묻자 유운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흡!”
이에 강무진은 등에 비스듬히 차고 있던 커다란 도를 재빨리 뽑아 들었다. 그리고 주의를 집중해서 사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강무진은 순간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내공을 끌어올려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니미, 아무것도 없구먼. 괜히…….’
이런 생각을 하던 강무진은 여태까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서생처럼 보이던 유운무의 모습이 순간 바뀐 것을 깨달았다.
기세를 일으키지도 않고 그저 검을 드리우고 서 있을 뿐인데도 마치 산과 같이 거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이 이 사람의 본모습인가? 가만! 대주님이 아직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 적이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척이 전혀 없……. 그렇구나. 살수(殺手)구나.’
강무진은 그 순간 패왕무고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최고의 살수들은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감출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수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근거리에서 당한다고 말이다.
강무진은 그런 책의 내용이 생각나자 다시 한 번 내공을 끌어올려 최대한 집중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기척도 잡아낼 수가 없었다.
‘쳇! 난 아직도 멀었군.’
강무진은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바짝 긴장했다. 손에 땀이 뱄다.
더구나 강호에 나와서 겪는 첫 실전이 아니던가?
그렇게 유운무와 강무진은 서로 등을 댄 채 한참이나 길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때 물건을 실은 수레 한 대가 느긋하게 길을 따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수레를 끄는 중년 사내는 길 한복판에 두 사람이 검과 도를 꺼내 들고 서 있자 순간 놀라서 수레를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그들을 보면서 그냥 지나가야 할지, 다시 돌아가야 할지 망설였다.
‘이 부근은 패왕성 때문에 산적이나 강도들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지?’
사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유운무와 강무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자 강무진이 유운무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하죠?”
잠시 그렇게 어색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다가 유운무가 수레를 끄는 사내에게 외쳤다.
“우리는 패왕성 사람이다. 조금 있으면 싸움이 날 테니 어서 지나가라!”
“헛! 아이고, 몰라봤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제야 수레를 끌던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며 재빨리 수레를 달려 그들을 지나쳐 갔다.
그렇게 몇 시진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강무진은 갈수록 힘이 들었다. 어디에서 공격이 올지 모른 채 무조건 기다리고만 있으려니 심력의 소모가 컸던 것이다.
“후욱, 후욱.”
그때 한 사내가 등에 봇짐을 지고 한 여인과 조그만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세 명이 일가족인 것 같았다.
“아빠, 저 사람들 왜 저러고 있어?”
여자 아이가 신기해 보인다는 듯 강무진과 유운무를 가리키며 묻자 아이의 아빠가 뭔가 싶어 아이가 가리키는 두 사람을 봤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여인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앞을 막아섰다.
사내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어떻게든 아이와 여인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것이 보였다.
그런 사내를 보면서 강무진은 슬쩍 유운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아까 유운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했다.
“우리는 패왕성 사람입니다. 조금 있으면 싸움이 날 겁니다. 빨리 여길 벗어나세요.”
강무진의 말에 아이의 아빠가 못 믿겠다는 듯 잠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곧 결심을 했는지 두 사람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조심조심 지나갔다.
그 뒤로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강무진은 그렇게 친절(?)하게 외쳐 주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해가 지고 어느새 주위에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니미,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야?’
강무진이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여태까지 꼼짝도 안 하고 있던 유운무가 드디어 검을 거두더니 말을 묶어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살수들이 이제야 갔나 보구나.”
강무진은 살수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살수들이 갔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유운무의 행동으로 보아 이제 더 이상의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이에 강무진은 허리와 어깨를 주무르며 그 커다란 도를 다시 등 뒤에 맸다. 그리고 유운무를 따라 말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자 어디에선가 두 개의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역시 보통이 아니군.”
“쉽지 않겠습니다.”
“일단 강서성을 벗어날 때까지는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절강성에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친다. 그분에게도 그렇게 알려라.”
“명!”
유운무와 한참을 같이 가던 강무진은 아까부터 생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었다.
“저기, 아까 저는 적들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요. 진짜로 적이 있었나요?”
강무진의 말에 유운무가 가만히 강무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강무진은 유운무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줄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한참 후에 유운무의 입이 열렸다.
“나도 적의 기척을 느낀 것은 한순간뿐이었다.”
“네? 그럼 그 후로는 적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는 거네요?”
강무진의 물음에 한참이나 있다가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살수는 그 존재를 알고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는 쉽게 덤비지 못한다.”
“……!”
유운무의 말에 강무진은 패왕무고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구나. 살수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면 반드시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나절도 넘게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으니 그들이 선뜻 덤벼들지 못했던 거야. 아마 지금도 그들은 우리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줬으니 쉽게 공격하지는 못하겠지. 대주님이 노린 것이 이것이었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강무진은 순간 옆에 있는 유운무가 여태까지와는 달리 뭔가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경험이라는 것은 책으로 익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길을 재촉해 호남성(湖南省)을 완전히 벗어나 강서성(江西省)의 수도인 남창(南昌)에 도착할 때까지도 살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아무런 일도 없자 강무진은 정말 그때 살수들이 있기는 있었나 하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뭔가 있어보이던 유운무가 다시 별거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남창은 수도라 그런지 늦은 밤인데도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장사를 하는 곳이 많았다. 강무진은 밤이 늦었기 때문에 일단 객잔에 들어가 빨리 쉴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묵을 객잔을 찾았다.
그런데 유운무가 갑자기 성큼성큼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닌가?
“어? 대주님, 어디 가세요? 혹시 아는 객잔이 있으세요?”
강무진이 유운문의 뒤를 따르며 물어보았으나 유운무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갈 뿐이었다.
그렇게 대로를 거침없이 걸어가던 유운무가 대로의 오른쪽에 있는 길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그 길로 들어선 강무진은 순간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그리 넓지 않은 길에는 야시시한 옷차림을 한 여인들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사내들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은 기본이요, 몸을 밀착시키며 가슴을 비비기도 했고, 사내의 머리를 당겨 가슴에 품고 끌어당기기까지 했다. 어떤 여인은 은근히 허벅다리를 보이며 허벅지보다 더한 곳을 아찔하게 보일 듯 말 듯 가리고 있기도 했다.
“헤.”
처음에는 그것을 보고 당황했지만 강무진은 곧 넋이 빠져 침을 질질 흘리며 그런 여인들을 보기 시작했다.
강무진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유운무는 어느새 저만치 앞에 가고 있었다. 이에 강무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유운무의 뒤로 따라붙었다.
‘어라?’
그렇게 유운무를 따라가던 강무진은 길가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여인들이 자신이나 유운무에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를 몰라 유운무를 슬쩍 바라본 강무진은 그제야 왜 그런지 이해가 되었다.
유운무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이곳의 여인들은 그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여인들이었다. 그랬기에 한눈에 자신들과 어울리고 갈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해 낼 수가 있었다. 또한 건드려도 될 사람과 그러지 말아야 할 사람 역시 한눈에 알아봤다.
괜히 무림인을 잘못 건드렸다간 자신은 물론이고 이 근방이 피바다가 될 수도 있었다.
‘대주님이 왜 저렇게 살기를 띠고 있는 거지? 혹시 살수가 있는 건가?’
강무진이 이런 생각을 하며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게 몸을 긴장시켰다.
그때 유운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월담루(月湛樓)란 간판이 걸려 있는 제법 큰 기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