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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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7화
17화
후우우우웅!
강무진의 몸에 걸치고 있는 쇳덩어리들과 강무진의 몸무게, 게다가 그 커다란 도의 무게까지 모두 실은 굉장한 위력의 공격이었다.
쩡!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적운휘가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도의 옆면을 장으로 밀어 치자 강무진의 몸이 도와 함께 옆으로 휘돌면서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쿠웅!
“크윽!”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그 1초식으로 끝이었다. 적운휘가 여전히 무표정하게 예를 취한 후 적상군을 바라봤다.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끙! 괴물 같은 놈.”
강무진이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슥 문질러 닦아냈다.
“대사형, 괜찮아요?”
주소예가 강무진에게 다가오며 묻자 강무진이 옷에 묻은 흙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괜찮지 않아. 휴, 사제나 사매나 하나같이 무공이 그리 뛰어나니…….”
1년 동안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여전히 그 격차가 컸다. 물론 전력을 다한다면 어떻게 이길 수는 있겠지만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무진.”
“네?”
그때 적상군이 강무진을 부르자 강무진이 적상군을 바라봤다.
“넌 조만간 절강성(浙江省)에 좀 갔다 와야겠다.”
“네? 절강성이요?”
갑작스러운 적상군의 말에 강무진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적상군을 바라봤다.
절강성이라면 패왕성과 흑마련(黑魔聯)이 현재 몇 년째 싸움을 하며 대치하고 있는 난지(亂地)였다. 그곳에 강무진을 왜 보낸단 말인가?
“그래. 조만간 정식으로 너한테 통지가 갈 것이다. 그곳에 가서 경험을 좀 쌓고 오도록.”
그렇게 이야기한 적상군이 자리를 뜨자 적운휘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로 있다가 곧 적상군을 따라갔다.
“훗! 좋겠수다, 대사형. 벌써부터 강호행이라니……. 그런데 첫 출두치고는 너무 빡센 곳 같수.”
왕이후가 실실 웃으면서 강무진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가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화운영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대사형.”
“화 사제, 너 무슨 말을…….”
“이크!”
그 말을 듣고 주소예가 화운영에게 화를 내려고 하자 화운영이 경공을 펼쳐 재빨리 몸을 피해버렸다.
“정말! 모두들 너무하네.”
“다들 내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걸, 뭐.”
그랬다. 모두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근 1년 동안 강무진을 대사형으로 여기며 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대사형은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그러니까 화 사제가 자꾸 그러는 거잖아요.”
“괜찮아. 나도 돌아가서 절강성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네. 당분간 사매랑 못 놀겠는걸.”
“피이, 내가 대사형이 없으면 놀 사람이 없는 줄 알아요? 내 걱정 말고 대사형이나 무사히 다녀오시지요!”
주소예가 예쁘게 눈을 흘기면서 말하자 강무진이 미소를 지었다.
며칠 후.
적상군의 말대로 정말 강무진 앞으로 정식 통지가 날아왔다. 내용은 절강성으로 가서 흑마련을 상대하는 데 일조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동행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단 두 명이서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절강성으로 가라고 하니 마홍이 안 된다고 펄펄 뛰었지만 나중에 동행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강무진과 같이 동행하는 사람은 패왕성 최고의 전투 집단인 패왕마전대의 대주 환영검 유운무였다.
“제가 같이 가야 하는데……. 대주님, 우리 대공자 좀 잘 부탁드립니다.”
“나 참! 마홍, 이제 그만 해도 돼. 도대체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대주님한테 하는 거야? 걱정 말라고 했잖아.”
강무진의 말에 마홍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런 말 마십시오. 강호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강호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강호에 처음 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대주님한테 딱 달라붙어서 절대로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으그, 그 말도 벌써 수십 번이나 한 거 알고 있지?”
“대주님, 부디 우리 대공자 좀…….”
마홍이 다시 유운무를 보고 강무진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순간 유운무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것을 보고 마홍이 흠칫하자 여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유운무가 나직이 말했다.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베어버린다.”
“헉!”
거짓이 아니었다. 마홍이 아는 유운무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하루에 한마디를 할까 말까 할 정도로 말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다 하는 한마디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풋!”
그런 마홍을 보면서 옆에 있던 주소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대사형, 몸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응, 사매도 나 없는 동안 건강해. 마홍도 이제 나 없으니까 자기 자신한테 좀 신경 써. 내가 초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해서 보약 지어놓으라고 했으니까 그거 꼭 챙겨 먹고.”
“헛!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다. 그럴 돈이 있으시면 노잣돈에 조금이라도 보태시지……. 흑…….”
마홍이 감격을 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마홍의 손을 잡고 말했다.
“꼭 건강 챙겨. 거기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올게.”
“네, 무사히 오시리라 믿고 있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마홍이 말에 올라타는 강무진을 보며 말하다가 유운무를 바라봤다. 그리고 뭐라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무진을 잘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유운무가 그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정성도 저런 정성이 없었다.
“이랴.”
그렇게 추운 겨울 새벽, 패왕마전대의 대주 유운무와 강무진이 패왕성을 나섰고 그 모습을 멀리서 배웅하는 이가 또 한 명 있었다.
‘죽지 마십시오, 사형.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때부터가 시작일 겁니다.’
<그녀를 만나다>
“저기 대주님, 제가 물어볼 것이 하나 있는데요.”
강무진의 말에 유운무가 물어보라는 눈으로 강무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강무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이거 아주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두 명 있는데요. 에, 두 사람도 저를 좋아하고 저도 두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오직 자기만 좋아하는 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으음, 어려운 문제군.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인데 어린 나이에 고민이 많겠어. 이쪽을 취하자니 저쪽이 아쉽고 저쪽을 취하자니 이쪽이 아쉬운 것이지. 그렇다고 둘 다 취하자니 양심에 걸리고, 이래저래 안 된다고 둘 다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지. 왜? 사랑하니까. 이런 어려운 문제를 나한테 상담하다니……. 나도 아직 양다리를 안 걸쳐 봤건만…….’
“…그래서요, 제가 사매한테 슬쩍 장난식으로 이야기를 해봤거든요. 혹시 나중에 나하고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내가 첩을 들이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랬더니 당장에 검을 빼 들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뭐 꼭 사매하고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패왕성의 대제자의 신분으로서 걸리는 것도 많을 것이야.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겠지. 흐음, 그런데 그렇게 잘생긴 외모는 아닌데 능력이 좋군. 주양악의 딸은 그 미모가 출중하고 무공 또한 뛰어나 벌써부터 탐을 내는 사람들이 많던데. 음, 다른 아이는 패왕무고에서 시중드는 아이라고 했나? 흠, 그 아이라면 무고를 지키는 도백광의 먼 친척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주님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으실 것 아닙니까?”
강무진은 강무진대로 한참 이야기를 했고 유운무는 유운무대로 강무진의 이야기를 듬성듬성 끊어서 들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강무진이 묻자 강무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강무진은 일단 질문을 던졌으니 이제는 기다려야 했다. 한 시진이든 하루든 간에 말이다.
패왕성을 나서서 절강성으로 향하는 수십여 일이 지나도록 둘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유운무는 말이 없는 사내였다. 강무진은 정말 이렇게까지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입을 다물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말이 없는 것은 강무진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말이 없다 해도 뭔가 물어보면 대답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유운무는 강무진이 뭘 물어보거나 말을 걸면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냥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건 완전히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이에 강무진은 몇 번이나 울컥하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는 말을 안 걸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패왕성이 있는 호남성에서 절강성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동행하는 사람과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은 유운무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강무진에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운무에게 말을 걸지 않으니 자신도 말을 안 하게 되어 그렇잖아도 긴 여행이 상당히 지루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강무진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유운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나 아주 세밀하게 유운무를 관찰하며 몇 가지 실험까지 해본 결과 강무진은 나름대로 유운무에 대해서 몇 가지 파악할 수 있었다.
유운무는 딱 보기에 글 좀 읽은 서생같이 보였다. 문약하고 점잖아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누구도 그가 패왕성 최강의 전투 집단인 패왕마전대의 대주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긴 것처럼 성격도 상당히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없었던 것인데,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혼자만의 생각은 무지 많았다. 그래서 늘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유운무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운무는 강무진이 뭔가 말을 걸거나 물어보면 그것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하다가 어느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러니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을 꺼내기 전에 수십 번에서 수백 번 생각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강무진이 처음에 그랬듯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유운무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강무진은 그런 유운무의 성격을 파악한 후로는 유운무와 대화를 할 때면 먼저 자기가 할 말을 쭉 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다.
그러면 어느 순간 유운무가 대답을 해준다. 어떤 때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 날이나 그 다음 날에 해줄 때도 있었다.
강무진으로서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패왕마전대의 대주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있으니까 그렇겠지 하고 간단히 생각해 버렸다.
지금도 강무진의 물음에 유운무는 한참이나 혼자만의 세상을 거닐고 있다가 드디어 결론을 내렸는지 강무진을 보면서 말했다.
“그 여자들이랑 잤냐?”
“네?”
강무진이 질문을 한 지 벌써 두 시진이 지난 후였다. 강무진이 잘 못 알아듣고 반문을 하자 유운무가 다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