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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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1화
11화
강무진의 말에 주소예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자신을 예쁘다고 칭찬하는 말도 그렇지만 그때 강무진과 설왕설래(舌往舌來)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주위에 있던 세 명은 그런 주소예를 보면서 잠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자신들에게는 한 번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에요. 사매로서 당연한 일인걸요.”
주소예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나머지는 왜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느냐?”
적상군이 어색하게 서 있는 네 명을 보며 말하자 강무진이 적상군을 보며 말했다.
“저들은 제 사제들입니다. 사제들에게 사형이 먼저 인사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큭!’
‘저놈이…….’
“흠, 그것도 그렇군. 모두들 뭐 하고 있는 거냐? 강무진이 너희들의 대사형인 것을 잊었단 말이냐?”
적상군의 말에 그제야 마지못해 세 명이 나서며 강무진에게 인사를 했다.
“사제… 적운휘가 대사형에게 인사드립니다.”
“사제 왕이후가 대사형께 인사드립니다.”
“사제 화운영이 대사형에게 인사드립니다.”
그렇게 세 명이 강무진에게 예를 취하자 강무진이 씩 웃으면서 살짝 손을 흔들었다.
“어, 그래. 반가워.”
그런 강무진을 보면서 적운휘는 평소와 같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나 왕이후는 뭔가 심사가 비틀린 것 같은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화운영은 늘 그렇듯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미있군. 그럼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한 번 볼까?’
적상군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강무진을 향해 말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무공을 수련해 왔을 것이다. 네가 그동안 배운 무공을 모두 펼쳐 보거라. 흠, 그냥 무공만 펼치기는 그러니까 대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상대는 여기 있는 네 명 모두이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대련을 해보도록 하여라.”
“네.”
적상군의 말에 다섯 명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강무진의 처음 상대는 화운영이었다. 화운영은 그의 조부에게서 예전부터 패왕성의 사대비기 중 하나인 수라십삼검을 전수받고 있었다.
패왕무고에서 나온 이후 적상군의 지도로 수라십삼검이 더욱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부탁드립니다, 대사형.”
화운영이 검을 뽑아 들고 먼저 예를 취한 후에 검을 겨누었다.
강무진은 화운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적상군을 보고 물었다.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순간 강무진의 말에 모두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강무진에 대한 것은 이미 알 만큼 아는 모두였다.
2년 동안 아무리 패왕무고에 들어가 있었다지만 거기서 뭘 얼마나 익힐 수 있었겠는가?
설사 강무진이 패왕성의 사대비기를 찾아냈다고 해도 자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비기들을 수련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강무진이 저렇게 물어본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단순히 무공만을 겨루는 대련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되는 실전과 같은 대련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무공만 겨루는 대련이라면 강무진은 당연히 저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공만 겨루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되는 실전과 같은 대련이라면 강무진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강무진은 패왕무고에 있었던 마지막 6개월 동안, 책을 통해서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의 대결을 어느 정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 상태였다.
특히 강무진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무공이 약한 살수들이 강호의 고수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죽이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그것들을 잘 활용만 할 수 있다면 사제들을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강무진이 말한 의미를 알아들은 적상군이 뒷짐을 진 채 말했다.
“뭐? 그렇지. 때가 되면 내가 멈추게 할 테니 마음 놓고 해보아라.”
“그렇다는군. 조심해, 사제.”
강무진의 말에 화운영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사형도 조심하십시오. 그럼 갑니다.”
화운영은 일검(一劒)에 끝내려고 했다. 일검에 쓰러트려 망신을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에 무서운 기세로 강무진에게 다가가는데 강무진이 갑자기 손을 내밀며 외쳤다.
“잠깐!”
강무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운영이 전력으로 출수했던 공격을 급히 회수했다.
그렇게 억지로 공격을 거두다 보니 내기의 운용이 엉키면서 약간의 내상을 입고 말았다.
“큭!”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화운영은 그런 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뭡니까?”
“아, 미안. 미안. 사실 아직 난 준비를 안 했거든. 잠시만기다려봐.”
강무진이 이렇게 말하고 갑자기 한쪽으로 뛰어가더니 화운영과 거리를 굉장히 넓게 벌렸다. 적어도 10장 정도는 되는 거리였다.
강무진은 그쪽에서 휙 돌아서며 외쳤다.
“자! 됐어! 어서 덤벼봐!”
이에 화운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렇게 멀리 있으면 어떻게 대련을 한단 말인가?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것이란 말인가?
여태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던 화운영의 얼굴이 순간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왕이후가 놀랍다는 듯 적운휘에게 말했다.
“사형, 저놈이 저렇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것은 처음 봅니다. 크큭.”
적운휘 역시 항상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화운영이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지금 장난…….”
화운영이 강무진에게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화운영은 갑자기 눈앞에 뭔가 어른거리자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숙였다.
피익!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화운영의 귀를 스치며 뭔가 날아갔다.
“뭐……?”
화운영이 선뜻 이해를 하지 못하고 앞을 보자 그 뭔가가 또 날아왔다.
이에 화운영이 검으로 그것을 쳐내자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파악!
그것은 화살이었다.
멀리 있는 강무진을 보니 과연 강무진이 활에 시위를 먹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화운영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비, 비겁하다!”
화운영이 그렇게 소리칠 때 다시 화살 한 대가 무서운 기세로 화운영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큭!”
이에 화운영은 아까같이 재빨리 검을 휘둘러 화살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때 멀리서 강무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데 비겁한 게 어디 있어? 자신의 주특기대로 싸우면 되는 거지. 이런 건 당하는 게 바보라고. 그러게 대련하기 전에 내 손에 들려 있는 활부터 확인을 했었어야지.”
“이익!”
명백하게 화운영을 놀리는 말이었다.
만약 평소의 화운영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평정을 잃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만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본때를 보여주겠다아아!”
화운영이 외치며 무섭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강무진이 그만큼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활에 시위를 먹여 화살을 날렸다.
화운영은 그것을 일검에 쳐내면서 더 빠르게 강무진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뒤로 몰리던 강무진은 정원의 담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뒤로 피할 곳이 없었다.
‘흠, 격장지계(激將之計)는 훌륭했다만 더 이상은 피할 곳이 없으니 이제는 어쩔 거냐?’
적상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강무진이 아무 망설임 없이 정원의 담을 넘어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
이에 모두들 황당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강무진의 뒤를 쫓던 화운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적상군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크크크큭! 정말 예측을 할 수 없는 놈이로군.’
적상군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뒷짐을 진 채 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화운영은 순간 상대가 없어지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대련을 해왔지만 이런 식의 대련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강무진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오른쪽 정원 담 위에 강무진이 나타나더니 화운영에게 화살을 날렸다.
화운영은 그때까지도 멍하게 있다가 뭔가 머리로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강무진이 날린 화살은 그런 화운영의 눈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화운영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강무진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이… 정말…….’
화운영이 정신을 차리고 화살이 날아온 곳을 보니 이미 강무진은 모습을 감춘 후였다.
정원은 상당히 넓어서 정원 안에 있으면 모르되 정원을 벗어난 강무진의 기척을 화운영은 잡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방금 화살이 날아온 곳과 같은 방향이었다.
강무진은 담에서 내려와 쉬고 있다가 다시 그 자리에 올라가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화운영은 강무진이 설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다시 화살이 날아오자 깜짝 놀라며 또다시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화살은 이번에도 화운영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땅에 박혔다.
“헉! 헉!”
화운영은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공을 펼치지 않아서 체력적인 소모는 거의 없었지만 심력(心力)의 소모가 컸던 것이다.
강무진이 자신을 정말로 죽이려 한다는 압박감과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화살이 화운영을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강무진은 화운영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계속 나타나 몇 번이나 더 화살을 날렸다. 그때마다 화운영이 아슬아슬하게 화살을 피해내기는 했지만 갈수록 힘들어하고 있었다.
“헉! 헉!”
이런 심적인 부담감은 아무리 무공이 높다고 해도 이제 열다섯 살인 아이가 이겨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화운영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대련을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모두 화운영이 다칠세라 마지막 순간에는 항상 조심을 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운영은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설마, 설마 하면서도 강무진이 자신을 정말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의 실력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 화살은 화운영을 한참이나 벗어나 화운영의 머리 위를 그대로 지나갔다.
방금 날린 화살은 강무진이 화운영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피해서 날린 것이었다.
화운영은 그것도 모르고 심적인 압박감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맞지도 않을 화살을 화들짝 놀라며 피해냈다.
‘쯧쯧, 이미 졌군.’
적상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왕이후가 낮게 말했다.
“바보 같은 놈.”
“하악! 하악!”
화운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강무진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과 다름없는 강무진의 모습이었건만 지금은 이상하게 강무진의 모습이 산처럼 커 보였다.
‘주, 죽는다. 내, 내가……. 크윽, 아니다. 놈은 나를 죽이지 못해. 내가 누구인데. 나를 죽이면 놈도 살아남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은 사부님도 계시지 않은가?’
화운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검을 다시 꽉 움켜잡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강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강무진의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정말 자신을 죽이려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