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35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35화
35화
그것을 보고 화묵정은 속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쯧! 아직도 어깨가 잘 안 움직이는군. 나도 나이가 들었음인가? 흠, 어쨌든 영아에게 자신감을 좀 심어줘도 좋겠지.’
“우리 영아의 검이 정말 많이 늘었구나. 벌써 이 할아비의 소매를 자를 정도란 말이더냐?”
“아, 아닙니다, 할아버님. 제가 아직 부족하여서…….”
“허허, 너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검을 갈고닦아야 하느니라. 너는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서만 노력하면 된다.”
‘그러면 나머지는 이 할아비가 모든 것을 해주마. 그저 강해지기만 하거라. 강해지기만…….’
“네, 할아버님.”
그렇게 조손 간에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한쪽에서 주소예가 다가와 화묵정에게 인사를 했다.
“화 어르신을 뵙습니다.”
“오오, 그래. 예아가 왔구나. 허허, 못 본 사이에 더욱 예뻐졌구나.”
“호호, 어르신도 참…….”
그랬다. 주소예는 하루하루가 달라지게 예뻐지고 있었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남자라면 누구나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 네 아비는 요새 통 안 보이더구나. 어딜 간 게냐?”
“저도 모르겠어요. 성에 관한 일이라면 저보다 어르신이 더 잘 아실 텐데 어르신이 모르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야무지면서도 똑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조금은 예의가 없어 보이는 말이기도 했는데, 화묵정은 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래,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일로 왔느냐? 운영이와 놀려고 온 것이냐?”
“호호호. 놀다니요? 사제하고 이것저것 상담할 것이 좀 있을 뿐이에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사제를 데려가도 되죠?”
“허허. 물론이다. 어서 가보아라.”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어르신. 가자! 사제.”
주소예가 그렇게 화묵정에게 인사를 하고는 화운영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화운영이 머뭇거리며 화묵정을 바라봤다. 이에 화묵정이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화운영이 주소예를 따라 움직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화묵정은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화묵정은 주소예를 화운영과 짝 지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소예를 대하는 것이 늘 살가웠고 주소예가 좀 예의 없이 행동해도 그저 예쁘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주소예를 따라서 커다란 방으로 들어선 화운영은 눈에 보이는 풍경에 약간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화운영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만큼 지금 방 안에서는 의외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에는 화운영의 사형들인 적운휘와 왕이후가 먼저 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휘야 그렇다고 쳐도 왕이후는 절대로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글 같은 것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 뭔가를 고심하는 듯 인상을 잔뜩 쓰며 붓을 놀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것을 써야 하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꾹 참고 뭔가를 열심히 쓰던 왕이후가 순간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이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사형!”
그러나 주소예가 왕이후를 확 노려보면서 부르자 사자의 포효는 온데간데없이 왕이후가 찔끔하며 재빨리 책상에 앉았다.
“두 분 사형을 뵙습니다.”
그런 왕이후와 옆에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뭔가를 적고 있는 적운휘에게 화운영이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적운휘가 화운영을 슬쩍 보며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받고는 다시 뭔가를 적는 데 열중했다. 왕이후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사제도 이쪽으로 와.”
주소예가 한쪽에 남아 있는 책상에 화운영을 앉히더니 한지를 펴고 그 위에 붓을 놓으면서 말했다.
“대사형이 절강성으로 간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잖아. 하도 연락이 없어서 지금 모두들 서찰을 보내려고 해. 그러니까 사제도 여기에다가 대사형에게 할 말을 적어.”
“…….”
화운영에게서 대답이 없자 순간 여태까지 생긋생긋 웃던 주소예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그러더니 주먹을 포개 잡고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사형들처럼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적어!”
“헉!”
그 순간 주소예의 모습이 산과 같이 커지면서 그 뒤에 있는 두 명의 사형이 암울한 모습으로 붓을 놀리고 있는 것이 화운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꿀꺽!
이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화운영은 재빨리 먹을 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따르다>
“허! 정말 그 무거운 것들을 몸에 전부 차고 다니는 겁니까?”
이이책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무진은 대답 없이 앉아서 종아리에 묵갑을 두르며 끈으로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어느새 강무진이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동안 전에 강무진이 주문했던 도와 묵갑이 완성되었고, 이에 이른 아침부터 그것을 왕씨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왕씨가 혼자서 그것을 낑낑대며 내리지 못하고 있자 그것을 보고 있던 몇몇 조원들이 거들어줘야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쉽게 들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다. 이에 모두 내공을 끌어올리고 나서야 간신히 들 수가 있었다.
“제법 잘 만들어졌군.”
묵갑을 모두 두른 강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객잔의 낡은 마룻바닥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만큼이나 묵갑의 무게가 엄청났던 것이다.
“도(刀)도 좀 휘둘러 봐야겠는데……. 어때?”
“에? 저 말입니까?”
이이책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강무진이 그 커다란 도를 가볍게 들어 어깨에 메며 말했다.
“준비하고 나와.”
이이책이 난처한 기색을 짓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던 송편이 씩 웃으면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아! 조장이 대주와 대련한다아!”
그때 송편이 위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방 안에서 쉬고 있던 조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오오! 어디, 어디?”
“정말이야?”
전에 강무진과 황삼위의 대결을 본 적이 있는 대원들은 이번에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겠다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뛰어나왔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이책은 송편을 한 번 확 노려본 후 어쩔 수 없이 강무진을 따라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조원들이 누가 이길지 돈을 걸며 따랐다.
“아아, 날씨 좋다.”
강무진이 이미 여름으로 들어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조원들은 그런 강무진의 팔뚝과 종아리 부분에 천으로 싸여 뭔가 뭉뚝하니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설마 아침에 우리가 옮겼던 걸 모두 몸에 찬 거야?”
조원들은 의외라는 듯 강무진의 몸을 자세히 살피다가 강무진이 묵갑을 모두 찬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이길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던 몇몇 조원들이 반대로 이이책에게 걸기 시작했다.
저렇게 무거운 것을 차고 있으니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할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니 이이책을 이길 수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오오! 솜주먹 황삼위 아냐?”
“키킥!”
그때 이이책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황삼위를 보고 놀리면서 말하자 주위에 있던 몇몇 조원들이 키득댔고, 이에 황삼위가 울컥해서 소리쳤다.
“누가 솜주먹이야!”
“뭘 흥분하고 그래? 아는 사람들은 이제 다 아는데.”
그랬다. 강무진과 그렇게 겨룬 이후로 황삼위의 별명은 알게 모르게 솜주먹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사건은 위력에 있어서는 최고를 자랑하던 그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며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는데 한몫 거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이책이었다. 이이책이 솜주먹, 솜주먹이라고 입에 달고 다니자 대원들도 어느새 그것이 입에 배어버린 것이다.
패왕마전대에서 최고의 지략을 자랑하는 이이책이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한 가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동료 조장들을 괴롭히며 놀려먹는 것이었다.
그 뛰어난 머리로 사람들을 괴롭히니 패왕마전대의 조장들치고 이이책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 건 그가 항상 병 주고 약 주고를 적절하게 잘했기 때문이다.
“흥! 네놈은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
황삼위의 말에 이이책이 콧방귀를 살짝 뀌며 말했다.
“흥! 지금 나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주를 응원하겠다는 거냐? 그럼 이제 너도 대주를 인정한다는 말이잖아?”
“무, 무슨 말이냐? 누가 누구를 인정해?”
“아니면 말고.”
“이익!”
다시 황삼위가 울컥하며 뭐라고 하려는 순간 강무진이 이이책을 보며 말했다.
“잡담하지 말고 집중해.”
“흠! 그러지요.”
그렇게 대답을 한 이이책이 가만히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강무진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를 내려 두 손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서로 양보 없이 하기다. 간다앗!”
강무진이 외치면서 그 커다란 도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우웅!
그것을 이이책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 피하면서 강무진이 휘두르는 도의 거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강무진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한 계산에 의한 움직임이었다.
“어딜!”
그러나 이이책은 강무진이 휘두르는 도의 빠르기를 잘못 계산하고 있었다. 그 커다란 도를 설마 이렇게 빠르게 휘두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누구나 강무진의 커다란 도를 보면 일단 빠르기보단 위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이책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에 안으로 파고들던 이이책은 강무진이 휘두르는 도에 상체가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흐아앗!”
까아앙!
“크윽!”
그때 이이책의 소매에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둥근 쇠막대기가 나와 십 자로 엮이면서 강무진의 떨어지는 도를 막아냈다.
판관필(判官筆)이었다.
이이책이 그렇게 판관필로 강무진의 도를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 위력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이이책은 그 상태에서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버티다가 옆으로 그 힘을 흘리면서 물구나무를 섬과 동시에 양발로 강무진의 얼굴을 노리고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강무진이 잡고 있던 도에서 한 손을 떼어 얼굴을 막았다.
파팡!
이이책은 그것이 강무진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 커다란 도는 엄청난 무게 때문에 필히 두 손으로 휘둘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 손을 떼었으니 한 손만으로는 도를 휘두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도를 잡고 있는 다른 손을 노려 도를 놓치게 할 생각이었다.
이이책은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먼저 몸을 바로 하면서 강무진의 도를 양발로 내리누르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체중까지 도에 실리는 셈이니 강무진의 도는 완전히 봉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이책의 착각이었다. 강무진의 힘은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 절강성으로 오면서 실전이라면 몸을 내주면서(?) 지겹게 치러온 강무진이었다. 이에 실력이 몰라보게 진보해 있었다.
이이책의 동작에서 그가 의도하는 바를 읽어낸 강무진이 기합을 지르면서 있는 힘껏 한 손으로 도를 위로 치켜들었다.
“흐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