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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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32화
32화
“안 되오. 주문한 것을 만들려면 철이 많이 필요한데 지금 이곳에는 그만큼의 철이 없소. 철을 사오려면 돈이 필요하니 어느 정도는 선불로 줘야 하오.”
“끙!”
결국 이이책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탈탈 털어서 왕씨에게 줘야 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돈은 성에서 나오지 않나?”
대장간을 나와 길을 가는데 이이책이 계속 꿍해 있는 표정을 하고 있자 강무진이 그렇게 물었다.
“휴, 그것도 옛날 말입니다. 요즘은 성에서도 포기를 했는지 대원들의 봉급 말고 따로 지원되는 돈이 없습니다. 결국 모두들 자기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요.”
“안 좋군.”
“크크큭. 그러게나 말입니다.”
강무진은 그렇게 이이책과 대화를 나누다가 몇몇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알아챈 이이책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훗! 신경 쓰지 마십시오. 흑마련입니다.”
“알면서도 저렇게 그냥 놔두나?”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지?”
“이곳 항주는 번화가라서 이권이 굉장히 큰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여태까지 이렇다 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에서 욕심을 부렸던 거지요. 호남성을 중심으로 주변 세 개의 성까지 꿀꺽했으니 이참에 절강성까지 먹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이곳으로 파견되었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항주 토박이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들은 우리가 항주를 노리는 것을 알고는 손을 잡고 똘똘 뭉쳤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흑마련이고, 그 당시 그 중심에 섰던 자가 흑마련주인 구소단이라는 자입니다. 별호가 흑마수(黑魔手)인데 별호처럼 괴상한 수공(手功)을 익혀서 무공이 제법 뛰어납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그렇게 잘 숨어 다니는 것을 보면 머리도 어느 정도 잘 돌아가는 편이지요.”
“그것하고 저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방금 말했다시피 흑마련의 사람들이 모두 이곳 토박이들이다 보니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도 모두 흑마련인 겁니다. 저렇게 무공을 모르고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노인이나, 저기서 저렇게 장신구를 고르고 있는 소저도 한 서너 다리 건너면 모두 흑마련의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항주에 사는 사람 전체가 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것을 우리는 이곳에 온 지 2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항주 시내로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길 가다가 누구한테 칼을 맞을지 모르니 제법 심각한 상황이지요.”
이이책의 말대로 이곳의 상황은 상당히 심각했다. 패왕성 최강이라는 패왕마전대의 4개조가 파견되었음에도 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곳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처음 2년 동안 패왕마전대는 흑마련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했다. 그렇게 싸울 때마다 서로 피해가 크기는 했지만 어쨌든 항상 이기는 것은 패왕마전대였다.
달리 패왕성 최강이겠는가?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흑마련이 모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원래 항주 토박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숨어버리자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계속 숨어만 지낸다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흑마련의 수뇌부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어디에선가 모여들어 패왕마전대에게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불리하다 싶으면 또다시 숨어버렸다.
이에 패왕마전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흑마련이 모여서 나타날 때만 상대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오늘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군.”
“크크. 흑마련의 수뇌부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지만 도대체가 잡히지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사실 끊임없는 소모전에 서로가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이이책이 대로의 옆에 있는 포목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의 옷이 제법 괜찮습니다.”
이이책의 안내로 강무진이 포목점 안으로 들어서자 굉장히 뚱뚱한 중년 여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호호호. 어서 오세요. 어머, 이 조장님은 오랜만에 오셨네요.”
“쯧! 흑마련이 무서워서 어디 올 수가 있어야지.”
“호호호호.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흑마련보다야 패왕마전대가 더 무서운 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일 아닌가요?”
그때 안쪽에서 옷을 고르던 여인 중 한 명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패왕마전대가 뭐가 그리 대단해요?”
이에 강무진과 이이책이 그곳을 보니 두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한 여인은 머리를 여러 가닥으로 땋아서 내리고 검을 등 뒤로 비스듬히 메고 있었는데, 눈이 커다랗고 생기 있는 것이 아주 발랄해 보였다.
또 한 여인은 긴 머리를 뒤로 묶어 내리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는데, 조용하고 현숙해 보였다.
두 여인 다 보기 드문 미인이었고, 검은색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사문인 것 같았다.
“허허. 이거 보타문(普陀門)의 여고수 분들이었구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보타문은 절강성 해안의 주산군도(舟山群島)에 위치한 보타산(普陀山)에 있는 문파였다.
원래는 보타문이 아니라 보타사(普陀寺)라는 비구니들이 있는 절이었지만 소림사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무림의 방파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문도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뛰어나서 무림에서 제법 그 이름을 알아주는 곳이었고, 이곳 절강성에서는 최고의 방파라고 할 수가 있었다.
“흥! 패왕마전대가 이곳에는 왜 온 거죠? 그것도 단둘이서 오다니 간이 부었군요.”
머리를 여러 가닥으로 땋아서 내리고 검을 차고 있던 여인이 말하자 옆에 있던 여인이 그 여인을 나무랐다.
“보아야, 말이 심하구나. 두 분께 죄송합니다. 아직 이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러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저! 왜 저런 자들에게 처음부터 굽히는 거예요? 그렇잖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데 그럼 우리 보타문을 무시한다고요.”
“허허. 이거 어린 소저에게 우리 패왕마전대가 안 좋게 보였었나 봅니다.”
“흥! 패왕마전대 따위 우리 보타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허참! 나…….”
이이책은 앞뒤 모르고 막말을 하는 여인을 보며 기가 막혔다.
이건 완전히 세상물정 모르고 자신의 사문만 대단한 줄 아는 철부지가 아닌가?
“이 색이 괜찮아 보이는군. 이런 색의 옷으로 나한테 맞는 것이 있겠소?”
강무진은 옆에서 이이책과 여인들이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천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 포목점 주인인 뚱뚱한 여인을 보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강무진에게 모였고 뚱뚱한 여인이 곧 웃으면서 대답했다.
“호호, 물론이지요. 공자님에게 어울릴 옷이 있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한 뚱뚱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머리를 여러 가닥으로 땋아 내린 여인이 콧방귀를 끼면서 말했다.
“흥! 저것 봐요, 사저. 저들은 사람을 앞에 두고도 저렇게 오만하게 행동한다니까요.”
“허 참!”
“보아야, 자꾸 저분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흥! 듣기 싫으면 자신들이 이곳을 나가면 되죠, 뭐.”
여인을 말리던 여인이 고운 아미를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사매라고 하나 있는 것이 항상 이렇게 천방지축이니 어쩔 때는 정말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여인은 마음이 여려 어린 사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사매가 더 이러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이이책이 그녀들을 보며 말했다.
“그대들이 구해신니의 제자로 절강삼화(浙江三花)라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거기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꽃처럼 아름다운 분이 둘째인 정소옥 소저일 테고, 옆에서 우리를 아주 난처하게 하고 있는 소저가 바로 셋째인 용보아 소저겠지요?”
“그래도 보는 눈은 있군요.”
“보아야, 한 번만 더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대사저에게 네가 한 행동을 모두 이야기할 것이다.”
“에? 안 돼요, 사저. 안 그럴 테니까 대사저한테 이야기하지 말아요. 응? 응?”
정소옥의 한마디에 용보아가 정소옥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용보아는 사부인 구해신니보다 대사저인 유빙화를 더 무서워했다.
유빙화는 정말 이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차가운 성정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사매들이라 해도 눈에 거슬리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에 가장 많이 혼나고 심지어 죽을 뻔 한 적도 있는 용보아였기 때문에 유빙화를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다.
“휴, 알았다.”
정소옥이 한숨을 쉬며 용보아에게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이이책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사부님의 제자인 것은 맞지만 절강삼화라는 이름은 과분한 말이에요.”
“허허. 그렇지 않소이다. 그대들은 충분히 그런 명성을 얻을 만큼 아름답소이다.”
이이책이 칭찬하는 말에 용보아가 살짝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당신은 다른 패왕마전대 사람들과는 다르군요.”
“허허.”
이이책은 그저 웃음밖에 안 나왔다. 정말 용보아가 다른 대원들을 보기는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호호, 많이 기다리셨죠? 여기 옷이 있습니다. 한번 입어보세요.”
그때 뚱뚱한 여인이 옷을 두어 벌 들고 나오면서 말하자 강무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여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흥! 건방져. 건방져.”
용보아는 그런 강무진을 상당히 못마땅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끙, 도대체 넌……. 휴, 죄송합니다.”
“아니오. 괜찮소이다. 허허.”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를 안 했군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정소옥이에요. 여기는 제 사매인 용보아고요. 듣기로 패왕마전대에 지략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 한 분 있다고 하던데, 혹시 그분이 아니신지요?”
“응? 하하하. 아니오, 아니오. 과찬이오. 지략은 무슨……. 그저 잔머리나 좀 굴릴 뿐이오. 하하. 패왕마전대 3조의 조장 이이책이라고 하오.”
이이책이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정소옥이 예를 받으면서 말했다.
“아! 이 조장님이었군요. 전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치잇! 사저는 항상 저렇게 고리타분하단 말이야. 적이나 다름없는 저런 사람들한테 왜 격식을 차리는 거야?’
그랬다. 보타문은 패왕성의 위세 때문에 대놓고 흑마련을 도와주지는 않고 있었지만 뒤에서 은밀히 도움을 주고 있었다. 흑마련 내에 보타문과도 끈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보타문 사람들도 패왕마전대를 대하는 눈길이 곱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안에서 옷을 갈아입은 강무진이 걸어 나왔다.
안에 소매가 없는 하얀 옷을 입고, 그 위에 한쪽 어깨와 팔을 내어놓은 남색의 옷을 걸친데다 머리도 단정하게 뒤로 묶어 내리니 방금 전과는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 보였다.
사실 방금 전에는 오랜 여행으로 인해 옷이 낡고 허름했기 때문에 사람도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오오, 아주 멋있습니다, 대주. 옷이 날개라더니 아주 좋군요.”
이이책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슬쩍 옆을 보니 정소옥과 용보아도 강무진을 보고 약간 놀란 기색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