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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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31화
31화
“대주님이, 그러니까 유운무 대주님이 비록 대주직을 물려주기는 했지만 성에서 인가가 난 것은 아니니 아직까지는 정식으로 대주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며 이이책이 대주패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강무진에게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이책은 어색한 침묵 속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강무진이었다.
“성에서 인정을 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내일 이야기하지.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군.”
축객령이었다.
이에 이이책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냥 밖으로 나왔다. 오늘만 날은 아닌 것이다.
“크크크.”
밖으로 나온 이이책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던 것이다.
옛날에 유운무와 같이 이야기할 때도 늘 저랬었다. 뭔가를 이야기하면 한참이 지나야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유운무의 대답을 기다리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고 서 있어야 했던가?
“크크큭.”
이이책은 그때의 일이 생각나자 미친 사람처럼 또다시 혼자 웃기 시작했다.
이이책이 그렇게 가고 나자 강무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 한 일이 정말 잘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강무진은 품에서 열화마결을 꺼내 펼쳤다.
열화마결의 처음 부분은 기초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했다. 이에 그동안 그 기초를 착실히 익혀온 강무진이었고, 그런 만큼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단전에서 꿈틀대는 약간의 화기를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갈수록 난해해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문장들을 볼 때마다 강무진은 허탈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쳇! 사부님은 기왕에 책을 줄 거면 해석본을 주던가 할 것이지 이건 뭐, 도대체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없으니…….’
강무진도 그동안 패왕무고에서 비급들을 봤다면 좀 본 편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무공도 열심히 익혔고 그만큼 무공에 대한 지식도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열화마결은 패왕성 사대비기 중의 하나인 최상승의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비결들이 다 그렇듯이 수많은 비유법과 어려운 문장들로 써놓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건 강무진의 지식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에 강무진의 열화마결은 계속 기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책을 펼쳐놓고는 있지만 앞에 몇 장을 넘기고 나면 뒷장부터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연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한순간에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끙! 도저히 안 되겠군. 뭐가 뭔지 알아야 뭘 해보든가 하지.’
강무진은 책을 다시 품에 넣고 침상에 와서 누웠다.
그러나 선뜻 잠이 오지 않았다. 이에 강무진은 다시 일어나 앉아 금강불괴신공을 연공했다.
사실 그동안 열화마결을 수련하면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자 대신에 가장 열심히 수련했던 것이 바로 금강불괴신공이었다. 그때 수신호위에게 겨드랑이를 맞아 내상을 입은 이후로 그런 약한 곳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던 것이다.
이에 금강불괴신공의 경지가 이제는 오성을 넘어서고 있었다.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쉰 강무진이 다시 침상에 누우면서 생각했다.
‘이제부터가 문제로군.’
그랬다. 금강불괴신공은 늘 그렇듯이 하나의 경지를 넘어설 때마다 그 이상의 충격을 몸에 가해야 했다.
강무진이 그때 책에서 본 내용대로라면 금강불괴신공이 오성을 넘어서면 이제 두 개의 관문만 통과하면 완벽해진다고 되어 있었다.
금강불괴신공이 완벽해지면 더 이상 몸에 약한 곳이 남지 않게 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몸 어딘가에 반드시 약한 부분이 남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조문이라고도 불렀는데 보통 단련하기가 어려운 눈이나 겨드랑이, 그리고 사타구니나 발바닥 같은 곳이 그러했다.
그러니 그 두 개의 관문이라는 것을 넘겨야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금강불괴신공의 마지막 남은 그 두 개의 관문은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피 토하며 죽기 직전까지 누군가에게 얻어맞아야 들어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지금도 웬만한 고수가 휘두르는 도검(刀劍)은 강무진의 몸에 생채기도 못 낸다. 적어도 절정의 반열에 발이라도 하나 턱하니 걸치고 있는 정도나 되어야 강무진의 몸에 충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그 수신호위도 강무진의 겨드랑이가 약한 것을 알고 전력으로 쳤기 때문에 강무진이 내상을 입은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실력 있는 고수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고수가 어디 흔하겠는가?
게다가 남은 것은 두 개의 관문이었다. 어쩌다 고수를 찾아서 하나의 관문을 넘어선다고 해도 다음 관문을 넘어서려면 그 고수보다 훨씬 강한 고수를 찾아야 했다.
하나의 관문을 넘어서면 그만큼 강무진의 몸은 더 강해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얻어맞아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정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강불괴신공이 그 긴 역사를 가지고도 완벽히 익힌 사람이 세 명밖에 없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강무진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수라패왕권으로 자신의 몸을 칠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걸렸다.
온몸 구석구석을 얻어맞아야 했는데 아수라패왕권은 한 방 치고 나면 아직까지도 반 시진 정도는 쉬어야 다시 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으음, 어디 가서 강한 놈한테 실컷 얻어맞아야 하는데…….’
그런 기괴한 생각을 하며 강무진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곳에서 지내다>
다음 날 아침.
강무진이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와 보니 객잔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에는 여전히 그 사내가 엎드려서 졸고 있었다.
강무진이 그것을 보고 그리로 가 탁자를 몇 번 두드렸다.
탁탁!
“으음.”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손을 휘저었다.
“오늘 장사 안 해요. 흠냐.”
쾅!
그 순간 강무진이 탁자를 힘껏 내려치자 사내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장사 안 한……. 하하.”
사내는 잠이 깬 것이 화가 났는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다가 강무진을 보고는 웃음을 띠었다.
“송편이라고 했던가?”
강무진이 어제 막평이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묻자 사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3조 소속입니다.”
3조는 어제 강무진을 찾아왔던 이이책이 조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송편이 강무진에게 이렇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어제 이이책이 3조 모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강무진을 대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이책을 따르는 3조의 조원들은 모두 싫든 좋든 강무진을 대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조의 사람들은 그들의 조장들이 강무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자연히 그들도 강무진을 대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항주로 좀 나가봐야겠는데 길 안내가 필요하다.”
“저는 이곳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패왕마전대는 모두 흑마련 쪽에 얼굴이 알려져서 항주 시내로 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 혼자 가란 말이군.”
“에, 그것이……. 하하, 그런 거죠 뭐.”
송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이책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일어나셨군요.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엇! 조장님.”
송편이 이이책을 보고 인사를 하자 이이책이 살짝 손을 들며 인사를 받았다.
그런 이이책을 보며 강무진이 대답했다.
“괜찮았다.”
“항주 시내에 볼일이 있으십니까?”
“옷도 좀 사야 하고, 무기도 사야 할 것 같군.”
“흠.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이책의 말에 강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이이책이 객잔 밖으로 나가자 그 뒤를 강무진이 따라 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송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흐음, 조장은 정말 저 애송이를 대주로 인정할 생각인가?”
이이책을 따라 항주의 중심가로 들어선 강무진은 새로운 경관에 주위를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응? 아, 일단 무기부터 만들러 가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까?”
이이책의 질문에 강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이이책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떤 무기를 쓰기에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대장간으로 가보면 자연히 알 일이었다.
“무슨 일로 왔소?”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덩치가 좋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사내가 땀을 닦아내며 물었다.
“오랜만이군, 왕씨. 작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자의 실력이 제법 뛰어납니다.”
이이책이 사내를 가리키며 말하자 강무진이 사내에게 원하는 것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도를 하나 만들어줬으면 하오. 크기는 내 키만 해야 하고 넓이는 당신 손으로 두 뼘 정도면 되겠군. 그 외의 것은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지.”
‘흠, 수련용 도(刀)를 만들려는 건가?’
이이책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강무진의 말에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실전에 쓸 거니까 부러지지 않게 단단한 것으로 만들었으면 하오. 현철 같은 거면 더 좋고. 얼마나 걸릴 것 같소?”
“……!”
이이책이 의외라는 듯 강무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왕씨 역시 생각지 못한 것을 주문받자 강무진에게 이것저것 계속 물어봤다.
“흐음, 그런 것은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무게는 어떻게 하시겠소? 그렇게 크게 만들면 무게가 상당할 텐데…….”
“무게는 상관없소. 오히려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지.”
‘허! 실전용 무기가 무거울수록 좋단 말인가?’
무림에 강무진처럼 커다란 무기를 쓰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그들 모두 자신에게 맞는 무게로 맞추어서 쓰지 강무진처럼 이렇게 무작정 무거운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랬다가는 사람이 무기를 휘두르기보다는 무기에 휘둘려지기 때문이다.
이이책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강무진이 그리 말하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오. 내 만드는 대로 그 객잔으로 가져다주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뭐요?”
“쇳덩어리로 몸에 두를 만한 것을 만들어주었으면 하오.”
“응?”
강무진은 왕씨에게 자신이 전에 쓰던 묵갑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왕씨가 또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질문했고 그때마다 강무진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이이책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그 무거운 것들을 몸에 걸치고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거참. 무슨 무공을 익혔기에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거지?’
“좋소. 대충 어떤 건지 감이 오는군. 내 한번 만들어보겠소. 다 만들면 나중에 도와 같이 가져다주겠소.”
왕씨가 그렇게 말하자 강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이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돈은 여기 있는 이 사람에게 받으시오.”
그러자 이이책이 잠시 어이없다는 눈으로 강무진을 보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왕씨에게 말했다.
“험험. 일단 물건을 가져오면 돈을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