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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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24화
24화
“처음이었나 보군. 차차 익숙해질 거다.”
유운무가 그런 말을 하면서 다시 강무진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이에 강무진은 여태까지 잔뜩 긴장하면서 가지고 있던 분노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후우.”
강무진은 크게 숨을 내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운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유운무는 처음 사람을 죽이고 저렇게 앉아 있으면 방금 사람을 죽인 것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무진에게 잡생각을 할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강무진은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유운무의 뒤를 따랐다.
강무진이 유운무에게 따라붙자 웬일인지 그 말 없던 유운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야. 앞으로 계속 공격이 있을 것이다.”
“에?”
“놈들은 나를 지치게 하려고 한다. 내가 지쳤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제대로 된 놈들이 나올 거야. 그때까지 힘을 아껴둬라.”
“차륜전(車輪戰)?”
강무진은 패왕무고에 있는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차륜전이었다. 돌아가면서 적을 상대해 힘을 뺀 다음 필살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차륜전이라기보다는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고 봐야지.”
‘칫! 엎치나 덮치나…….’
“도대체 저들은 누굽니까?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강무진의 물음에 한참이 지나서야 유운무가 대답을 했다.
“내가 유운무이고, 네가 패왕성의 대제자이기 때문이다.”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강무진이 선뜻 이해를 하지 못하고 되묻자 유운무가 잠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강무진을 바라봤다.
“패왕성에는 야심을 가진 자들이 많다. 그런 그들이 야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아직 성주님이 계시고, 나같이 성주님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그들이 대주님을 죽이려는 거군요. 하지만 다 같은 패왕성 사람들이잖아요.”
그 순간 유운무의 눈에 잠시나마 슬픈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강호다.”
“……!”
유운무의 말에 강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운무의 말은 간단한 말이었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강무진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저기… 그럼 그들이 나는 왜 노리는 겁니까? 제가 사부님의 대제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능력들은 오히려 사제들이나 사매가 더 뛰어나거든요. 혹시 대주님하고 같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강무진의 물음에 유운무가 또다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강무진을 바라봤다.
“넌 도대체 패왕성의 대제자라는 자리를 뭐로 아는 거냐? 만약 성주님이 잘못되면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바로 너다.”
“예?”
여태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강무진은 순간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다. 적상군의 아들인 적운휘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적상군의 둘째 제자였다. 그러니 적상군이 특별히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는 이상 적상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제자인 강무진이 패왕성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상군이 강무진을 대제자로 삼으려 했을 때 패왕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면서 혼란스러워했던 것이다.
“패왕성의 대제자의 자리는 바로 그런 자리다. 그러니 이참에 너까지 죽이려 할 수도 있는 일이지. 너와 나 단둘이 패왕성을 나설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겠지. 그들은 진작부터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성을 나선 이유가 절강성의 상황이 어려워 도와주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이렇게 달랑 둘만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그, 그거야… 뭐…….”
사실 강무진은 가라니까 가는 거지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패왕성의 세력들 간의 힘겨루기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무공을 익히기에 더 바빴던 것이다.
“이것도 다 그들이 뒤에서 힘을 썼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그런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면 왜 패왕성에서 나온 겁니까? 그냥 모른 체하고 있어도 됐잖아요. 굳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나올 필요가…….”
강무진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유운무가 강무진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성주님의 뜻이었다.”
“예? 사부님이? 사부님이 왜 그러셨죠?”
강무진의 물음에 유운무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몇 달 전.
유운무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갖는 취미가 주로 낚시였고, 유운무 역시 낚시가 취미였다.
그날도 유운무는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물론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말이다.
“한 마리도 없군.”
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아무도 없었던 유운무의 옆에 누군가 나타나서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운무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소리 없이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유운무가 옆에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강물을 보면서 낚시에 열중했다.
“여전하군. 자네는 말이야, 다 좋은데 말이 너무 없는 것이 흠이야. 그래서 항상 재미가 없단 말이야. 뭐, 그것이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기도 하지만 말이야.”
사내가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유운무는 여전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낚시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는 대화가 안 되겠어. 웃차!”
사내가 그런 말을 하면서 유운무가 드리우고 있던 낚싯대를 발로 차버렸다. 그러자 낚싯대가 저만치 날아가 강물과 함께 흘러가 버렸다. 이에 유운무가 약간 불만 섞인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크큭. 그런 표정하지 말라고. 내가 사과하는 뜻에서 아주 좋은 곳에 데리고 가주지.”
사내의 말에 유운무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느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유운무와 사내는 밤새도록 술집과 기루를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퍼마시고 놀았다. 그야말로 술 취한 두 마리의 개였다.
“푸하하하하! 마셔! 마셔라!”
“크헤헤헤!”
그렇게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두 사람 다 기루의 지붕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침 이슬이 차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미 내공이 경지에 올라 그런 걸 못 느끼잖습니까.”
“크크. 분위기 잡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제 할 말이나 해 보십시오.”
“알고 있었나?”
“모르면 바보 아닙니까? 만날 뭔가 부탁할 게 있을 때만 찾아와서 술과 여자를 제공하는데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랬나? 크크.”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사내는 말하기가 어려운 듯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조용하면서도 나직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죽어줘야겠어.”
“…….”
또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유운무는 아까 사내가 말한 것처럼 갑자기 아침 이슬이 차갑게 느껴졌다. 유운무 역시 내공이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유운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옆에 있던 술병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술병을 옆에 있는 사내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제가 죽어주는 대가가 너무 싼 거 아닙니까? 겨우 술과 여자라니요. 전 아직 혼인도 못 해봤습니다.”
“훗!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자네에게 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사내가 유운무가 내민 술을 받아 마시며 말하자 유운무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걱정하지 마. 나만 아는 일이니까. 그리고 대가가 너무 싸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저승길 외롭지 않게 나도 같이 죽어줄 테니까. 크크. 같이 지옥에 가서 다시 한 번 이렇게 놀아보자고.”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유운무의 눈이 순간 놀라움으로 커다래졌다. 유운무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할 텐가?”
술을 다시 한 번 쭉 들이켜고 나서 사내가 묻자 유운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기는 하겠지만 죽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대가가 너무 약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운무는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마지막은 지켜봐주십시오.’
사내, 적상군은 지붕 위에 혼자 남아 술병에 남아 있는 술을 마저 비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마지막은 지켜봐 주지.’
<헤어짐을 슬퍼하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잠시 멈춰 섰던 유운무는 의아해하는 강무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냥 몸을 휙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걱정 마라. 수신호위가 있는 이상 우리가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 수… 뭐요?”
강무진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묻자 유운무가 또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흠, 도대체 마홍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건지 모르겠군. 수신호위대를 모르나?”
“처음 듣습니다.”
“그럼 패왕성의 조직 체계도 모르겠군.”
“…….”
그것도 모르겠다는 듯 대답이 없는 강무진을 보면서 유운무가 정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패왕성에는 총 다섯 개의 집단이 있다. 그중 가장 강한 전투 집단이 바로 패왕마전대(覇王魔戰隊)다. 그 다음이 폭풍도 왕철심이 대주로 있는 패왕폭풍대(覇王暴風隊)이지.
패왕마전대는 고수들로 이루어진 소수정예다. 그래서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높지. 그에 비해 패왕폭풍대는 고수는 그리 많지 않으나 그 수가 패왕마전대보다 몇 갑절이나 많다. 그리고 성 안팎의 정보를 담당하는 패왕기밀수위대(覇王機密守衛隊)가 있고, 살수들로 이루어진 패왕비영대(覇王秘影隊)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 인사들을 호위하는 패왕수신호위대(覇王守身護衛隊)가 있지. 패왕수신호위대는 패왕성의 중요 인사들을 안 보이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호한다. 보통 한 사람에게 세 명의 수신호위가 붙는데 성주님 같은 경우는 열두 명의 수신호위가 붙어 있다.
늙은이들이 모여 있는 원로원(元老院)도 있기는 하지만 성의 일에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으니 유사시가 아니면 있으나 마나 한 곳이지.”
유운무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강무진이 그제야 뭔가 좀 알겠다는 듯 감탄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사부님 다음으로 수신호위가 많이 붙어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성주님의 따님인 적 소저다. 총 여덟 명이 보호를 하고 있다. 무공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붙어 있는 거지.”
적 소저라면 강무진의 이복동생인 적영령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아직까지 적영령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적영령이 워낙에 조신해 패왕성 안에서도 잘 돌아다니지를 않는데다가 강무진은 강무진대로 무공을 익히느라 바빴기 때문에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강무진은 적영령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들려오는 풍문 때문에 사매인 주소예보다 더 예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에, 그럼 대주님한테도 지금 수신호위가 붙어 있겠네요? 사부님에게 열두 명이나 붙어 있고 적 소저에게 여덟 명이면 대주님한테는 한… 여섯 명?”